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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인간

등록일 2025-11-09 16:23 게재일 2025-11-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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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늦도록 일복이 많아선지 이번 학기에도 시간강사로 학생들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작품과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비교하면서 이모저모 생각하는 수업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과 ‘덤불 속’, 셰익스피어의 ‘햄릿’,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지바고 의사’,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내가 고른 작품들이다.

요즘에는 조르바를 논의하고 있는데,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마다 신선하게 와 닿는 대목이다. 이미 넘치도록 익숙한 사물이나 관계에서 경이로움이나 신비로움 혹은 경탄을 경험하는 조르바의 놀랄만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진부함이나 밋밋함 같은 감성이 없는 것이다.

21세기 20년대 대학생들처럼 웃음과 슬픔, 환희와 절망 같은 감정이 스러진 세대를 일찍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들이 이 대목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혹은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등굣길에 낯설게 다가온 사물이나 사람이 있는지 묻지만, 그들은 당황스러워한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거니와,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은 까닭이다.

2019년 겨울 광주에는 눈도 많이 내렸지만, 해가 바뀌도록 전남대 교정에는 꽃이 쉬지 않고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꽃을 보면서 아끼는 후배의 성공적인 항암 투쟁을 기원하곤 했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그는 담도암의 공격을 이겨내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한겨울 눈 속에서 피어난 새빨간 장미를 보면서 후배의 건강을 기원했던 내가 기억에 생생하다.

같은 대상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만일 그나 그 여자에게 대상을 낯설고 의미심장하게 대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시인의 상상력과 감성이 자리한다면, 어떤 익숙한 인간과 관계와 사물이라 해도 그것은 언제나 신선하고 날카롭게 영혼을 찔러오는 감동과 경이의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르바는 아들뻘인 화자(話者)에게 툭하면 이런저런 질문 세례(洗禮)를 퍼붓는다. 자신만의 상념과 목적의식에 투철한 화자는 어쩔 줄 모른다. 대상을 새롭게 포착하는 사람은 늘 새로운 문제의식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는 언제나 질문하는 인간이다. 이것을 날카롭게 잡아낸 생화학자가 영국의 찰스 파스테르나크이며, 그 저작이 ‘호모 쿠아에렌스’(2005)다.

인간이 진화 사다리의 정점에 오른 동기를 파스테르나크는 직립보행과 시야 확대, 자유로워진 두 손과 엄지손가락, 언어 소통 능력, 생각과 기억, 추론과 연결된 대뇌 피질 신경세포 등을 말한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에 근거한 ‘질문하는 인간 (Homo quaerens)’이다.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해소하는데 주력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침팬지의 차이?!

무학(無學)이나 다름없는 그가 지식인 화자를 가르치고, 인생의 비의(秘意)를 일깨워주는 것은 경험뿐 아니라, 경탄에서 발원하는 질문에 기인한다. 묻지 않는 인간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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