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을 제대로 알고자 하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절실하다. 제한된 경험과 불충분한 시간은 대상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가져오기 쉽다. 이런 이유로 ‘수박 겉핥기’라든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경구가 나온 것이다. 후자는 불가(佛家)의 경전인 ‘열반경’에서 유래하는데, 좁은 식견과 안목 없이 대상을 주관적으로 잘못 판단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카프카스산맥 남부에 자리한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한 면적의 63% 정도다. 인구는 370만 정도니까 부산과 구미의 인구를 합한 규모다. 오랜 세월 정교(正敎)를 신봉해온 정통 기독교 국가로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나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4박 5일 체류했다.
125만 인구의 트빌리시에는 곳곳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고, 버스 카드로도 탈 수 있다. 조지아가 본디 산악국가인 까닭에 조금만 올라가도 시내 전경(全景)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손자를 안고 나온 중년 여인네가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풍경을 보노라니 우리 어머니들의 예전 모습이 겹쳐져 마음이 적잖게 애잔했다.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도시 므츠헤타(Mtskheta)를 택시로 찾아간다. 12살에 운전을 배워 33년째 차를 몰고 다닌다는 45세 운전사와 김 이사가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왕복 80라리로 다녀오기로 했지만, 멀리 산 정상에 솟아있는 즈바리 수도원에 마음이 가기로 50라리를 더 주고 방문을 결정한다.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아름답게 만나는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서 잠시 묵상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서기 337년에 기독교를 공인할 정도로 조지아 정교회는 그 역사가 남달리 깊다. 즈바리 수도원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차도로 이어진 종점에 자리한다. 저 높은 곳까지 도달해야 했을 그들의 돈독한 신앙심을 새삼 돌이킨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신은 어느 편이냐, 하는 김 이사 질문에 택시 기사가 잠시 난감한 얼굴이다. 하되, 조지아 정부와 정치인들은 러시아 편이지만, 일반 국민은 우크라이나 편이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디서나 강자는 강자의 편에, 약자는 약자의 편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공자는 이것을 일컬어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 했다.
트빌리시 시내 곳곳에 마련된 수많은 동상은 조지아를 빛낸 시인과 문사(文士) 혹은 화가를 기리는 것이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동상으로 제 나라의 영웅들을 기념하는 습속을 이어왔고, 한때는 그루지야로 불린 조지아 역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럴진대, 우리는 이런 문화에 이질적이며, 시인과 묵객(墨客)을 위한 동상 건립은 여전히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주인 없는 수많은 개가 길거리에서 낮잠을 자고, 택시들이 곡예(曲藝) 하듯 미끄러지지만, 교통질서가 유지되는 트빌리시. 서둘지 않는 시민들의 발걸음과 대학생들의 여유로운 미소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환하게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고 능소화 붉게 피어있는 조지아를 떠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