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뺑뺑이 1회 경기 50년

등록일 2024-07-07 18:20 게재일 2024-07-08 19면
스크랩버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인간은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의 폭풍우에 내몰리는 경우와 마주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강력한 의지와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 해도 어쩔 도리없이 끌려가는 지경에 이르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이것을 우리는 운명이나 천명이라 부른다. 그럴 때 인간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실체에 전율하거나 절망하기 마련이다.

지난 7월 3일 자동차를 몰고 서울로 떠난다. 나의 모교 경기고 73회 정기 동창회가 열리는 날이다. 50년 전인 1974년 나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뺑뺑이로 경기고에 입학한다. 공동학군 005로 시작한 남녀 고교는 경기여고와 경기고였다. 그날 나의 선친은 평소의 절반밖에 걸리지 않은 시간에 귀가하셔서 나의 경기고 입학을 축하하셨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교 평준화 정책 덕분에 나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꿰찬 인간이 된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이 내게 뺑뺑이 1회 경기 입학생의 비애와 원한 같은 것을 물어왔다. 아주 드물지만, 아직도 그때 감상을 묻는 자도 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뺑뺑이 1회 경기 입학생이자 졸업생으로 여러 가지 유쾌하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고1 담임 정휘민 국어 선생은 호된 글쓰기 훈련으로 나의 습관 하나를 결정하셨고, 고3 담임 안성도 영어 선생은 소시민의 작은 행복을 일깨워 주셨다. 두 분 모두 경기고 선배였다. 그런 경기고 입학 5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수요일 구(舊) 우미관(優美館) 자리에서 열린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에 등장하는 명소가 우미관이다.

17살 소년들이 50년을 살고 나서 60 중반 나이에 다시 만났으니, 그 감회가 어떠했을 것인지는 짐작 가능하리라. 입학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004년에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40 중반의 혈기방장한 시절이었다. 거기에 다시 20년이 보태지니 그사이 세상 버린 친구나, 투병 중인 벗들도 적잖게 늘어나 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은 반박불가(反駁不可)다.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출신고를 묻는 말에 경기를 말하고, 거기에 뺑뺑이 1회라는 말을 반드시 보탠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연유를 물을라치면, 뺑뺑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밤잠을 설친다고 대답한다. 타고난 결벽증도 있거니와, 사실관계 진술을 얼버무리는 것은 기질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동 1번지 경기고는 사전에도 없는 ‘정독(正讀) 도서관’이 되었고, 삼성동 91번지 경기고 앞은 왕복 2차로 도로가 16차로 도로가 되었으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만난 벗들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살과 백발 혹은 성긴 머리털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무겁고도 슬픈, 행복하고도 만만찮은 시공간과 인연을 웅변하는 것이었다.

고타마 붓다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과 여기를 열렬하게 살라는 뜻이다. 그것을 재삼재사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가 서늘하게 마무리되는 우미관의 밤은 실로 아름다웠다.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