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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의성 교육청 도서관

등록일 2025-07-13 18:06 게재일 2025-07-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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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대중 강연을 한다는 것은 유쾌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2007년 하반기부터 전국 곳곳의 대중을 상대로 강연해 왔으니, 어언 18년 세월이 흘렀다. 오산 시청에서 ‘공자와 논어’를 강연한 기억도 새롭고, 부산진 경찰서의 ‘혜원에게 조선의 풍속을 묻다’ 강연도 떠오른다. 한 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강연은 어쩌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도 불러주는 곳이 있음은 고맙고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명예교수’보다 ‘초빙교수’라 불리는 게 좋다. 명예교수는 연구와 교육에서 멀어진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생과 작별하는 최후의 시각까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대중과 함께하는 작업을 해나가려고 한다. 평생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한 것이다.

각설하고, 지난 7월 9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세계와 우리의 삶’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소서(小暑) 지난 사흘째 무더위 속에도 적잖은 군민들이 모였다. 강연 시작 전에 도서관장과 인사 나누고 내 생각을 전달한다. 그것은 강연자가 자기검열을 해서는 온전한 강연이 성립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대구·경북에서는 다소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아를 억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청주나 전주, 포항이나 부산, 광주에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묘한 곳이 이른바 ‘티케이’ 지역이다. 이 점에서 포항은 예외적인 곳이다. 강연 첫머리에 나는 문학을 말하는 자리에서 자기검열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청중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강연 중에 듣기 거북하거나 괴로운 청중은 조용히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40-50명 청중 가운데 두 사람이 나간다. 절대다수 청중은 진지한 태도와 눈빛으로 강연을 경청한다. ‘검은 사슴’ (1998), ‘채식주의자’(2007), ‘소년이 온다’(2014), ‘작별하지 않는다’(2021) 같은 소설을 중심에 두고 한강의 창작과 거기서 우리가 생각할 골자를 말한다.

첫 번째 장편소설 ‘검은 사슴’부터 한강은 생명에 관한 묵직한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한강은 탄광에서 빈발하는 매몰사고와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산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려낸다. 그런 정황을 한강은 성수대교 붕괴 (1994), 대구(大邱) 상인동 가스 폭발과 삼풍 백화점 붕괴(1995)처럼 차마 있을 법하지 않은 대형참사와 자연스레 연결한다.

한강은 생명 존중 사유를 제주 4·3 항쟁과 5·18 광주항쟁으로 넓혀 나간다.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수많은 생명을 기리면서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토록 자명하고 지고지순한 생각을 전달하는 강연에서 자기검열이 들어설 자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18년의 티케이 강연은 자발적인 검열을 요구해 왔으니 참 애석한 노릇이다.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강연은 유쾌하게 끝났고, 도서관장과 담당자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어 흐뭇한 심사였다. 학살자를 학살자라 부르고, 독재자를 독재자라 규정하는 것이 당연한 민주 평등 사회가 속히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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