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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고무신

등록일 2024-07-28 18:18 게재일 2024-07-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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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어린 시절 유난스러운 병치레로 부모님은 나로 인해 무던히 속을 썩였다 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 하나는 아버지가 나를 무동 태우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걸어 한의원으로 가는 것이다. 초록색과 주황색 색실로 꿩을 수놓은 조끼를 입고, 하얀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 젊은 아버지가 큼지막한 걸음걸이로 의원을 찾아가는 한겨울 풍경.

그때 아버지는 스물아홉 청춘이었고, 발에는 하얀 고무신이 신겨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필시 양말 발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경유지인 한의원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길을 걸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고작 만 세 살 전이었고, 폭설로 어른들마저 힘겹게 길을 걸어야 했던 사정이 있던 터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아버지 연배가 되었을 때,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고, 박사과정에 다니고, 여름방학 특강을 할 때, 나도 아버지처럼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집에서 학교까지 편도 2시간 20분이 걸리는 장거리 통학생이었던 시절을 돌이키면 지금도 짠하다. 지하철 1호선에 냉방기 대신 선풍기가 돌아가던 시절이었으니, 두 발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언젠가 제기동에서 막차를 타려고 제기 천변(川邊)을 서둘러 지나갈 때 일이다. 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하얀 고무신 발아래 무엇인가 뭉클, 하는 느낌이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게 뭐지, 하는 섬뜩함과 고약한 심사가 어우러져 말할 수 없는 낭패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설마?! 아니, 그랬다. 커다란 시궁쥐가 고무신 아래 밟힌 것이다. 아아!…

녀석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기사식당이 즐비(櫛比)한 천변에서 야식을 만끽하고 여유롭게 야간산책을 나온 녀석에게 나의 고무신은 폭력에 가까웠을 터! 하지만, 나도 그랬고, 쥐도 마찬가지로 침묵하면서 상황을 끝까지 통찰하고 인내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황은 평온하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적인 섬뜩함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것이 두 번째 하얀 고무신의 소회다. 지난 2월 20일 시작한 ‘청도 인문학 강연’ 마지막 무렵부터 나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두어 해 전 이서(以西)에 사는 양반 집에 다니러 갔다가, 그 집 안주인이 선물한 하얀 고무신이다. 안주인은 솜씨가 출중한 분이어서 고무신에 화사하게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아주 멋지고 우아한 하얀 고무신이다.

오랜만에 신어보는 고무신은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발에도 잘 맞고, 가벼운 데다가, 신고 벗기가 간명하여 마음에 쏙 드는 것이다. 급기야 그걸 신고 대구와 서울, 용인 나들이에도 나서는 형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활개 치며 다닐라치면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냥 눈감아버리기로 한다. 남의 신발에 관심 가진 인간은 없는 법이기에!

고무신은 이제 생필품처럼 느껴진다. 한여름 더위와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나와 동행하는 가까운 벗이 된 것이다. 도서관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동네 산책에서 나와 함께하는 하얀 고무신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호사까지 누리는 행복이 이어지는 삼복염천이다. 신이여,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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