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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대의 도끼질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1904년 1월 17일 초연된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장막극 ‘벚나무 동산’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86세 먹은 늙고 병든 하인 피르스가 벤치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다.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리서 소리가, 끊어진 현(絃)의 구슬픈 소리가 들린다. 정적이 다가온다. 그리고 동산 먼 곳에서 도끼로 나무 패는 소리만 들려온다.’ 살아있지만, 물화(物化)돼 버린 늙은이는 미동도 없어서 무대는 텅 비어버린 것 같다. 인간이 사라진 무대를 채우는 것은 소리뿐이다. 현악기의 줄이 끊어진 듯한 소리를 뒤이어 정적이 찾아들고, 정적을 이어서 나무를 베어내는 도끼질 소리가 들린다. 무대는 점차 어두워지고, 서서히 막이 내린다. 극작가 체호프의 최후 대작 ‘벚나무 동산’은 그렇게 끝난다. 백과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거대한 벚나무 동산을 장사꾼 로파힌에게 팔아넘긴 귀족 여성 류보피 안드레예브나는 도망치듯 파리로 떠난다.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지만, 그녀에게는 동산을 지킬 능력도 그럴 의지도 없다.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 애인이 기다리는 파리로 가려는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충성스러운 하인 피르스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자랑스러워했던 벚나무 동산은 다차로 만들어질 것이어서 속물적인 로파힌은 서둘러서 벚나무를 베어내고자 한다. 여기서 도끼질 소리는 귀족이 대표하는 토지 자본이 상인이 대표하는 상업자본으로 이동하는 상징적 기호다.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하고, 신흥 부르주아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는 의미도 도끼질 소리에 담겨 있다. 시대와 체제의 변화 양상을 체호프는 소리 하나로 단출하게 표현하는 놀라운 능력의 극작가다. 이 장면에서 연구자들은 부조리극의 단서를 찾아낸다. 인간과 인간의 언어가 소멸하고, 오직 사물의 소리가 지배하는 공간. 인간의 갈등과 대립이 완전히 사라짐으로써 무대의 본질이 소멸한 그곳에 도끼질 소리만 들리는 부조리한 상황을 포착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시대는 생명을 다하고, 전혀 이질적인 시대가 다가온다. 해마다 겨울이면 나는 장작을 만들 요량으로 도끼질을 한다. 3∼40분 도끼질을 하노라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물성(物性)이 다른 까닭에 숱한 도끼질에도 끝까지 저항하는 끈질긴 나무도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우리 속담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임을 확인한다. 공든 탑도 때로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의 집념으로 묵직한 쇠도끼로 질긴 등걸을 내리친다. 어떤 나무는 끝까지 버티며 자신의 모양새를 끝내 유지한다. 이런 때에는 도끼질을 멈추고 나무에 축하 인사를 건넨다. ‘그래, 네가 이겼구나.’ 50일 가까이 진행되는 내란 사태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도끼질이 어설픈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총력을 다해 저항하는 내란 수괴와 졸개들의 저급하고 추악한 행악질에 우리가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악의 본산과 잔당은 뿌리까지 뽑아 척결해야 하는데, 우리 도끼날이 무딘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맵고도 통렬한 도끼질을 염원한다.

2025-01-19

대중과 지식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19세기 후반 유럽에는 이른바 ‘프티부르주아’가 대대적으로 늘어난다. 그들은 지적(知的)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신문과 잡지를 읽을 줄 알고, 일부는 부유층으로 편입된다. 그들은 문화-예술적으로 고도한 수준의 귀족이 향유(享有)한 것들을 싸구려로 변용한 키치(Kitsch) 문화가 20세기 초에 널리 유행하는데 앞장선 계층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호텔, 미술관, 박물관, 카페, 극장 등지를 점령한 일군의 프티부르주아를 가리켜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mass)이라 명명한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그는 1929년 출간한 ‘대중의 반역’에서 대중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철부지이자 의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주장하는 응석받이로 대중을 규정한다. 대중과 대척적인 위치에 자리하는 지식인을 그는 상층권위나 세습 귀족이라 부른다. 20세기 이전에 그들은 사회와 국가를 주도했지만, 20세기 20년대 이후 대중은 그들의 지도와 편달을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진단한다. 그리하여 대중은 지식인에게 반기를 들면서 반역을 시도하고 있으며, 상층권위를 소유한 지식인들은 대중에게서 탈주(脫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중의 폭주로 인해 사회와 국가 혹은 대륙 전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항상적(恒常的)인 국민투표’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지적처럼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의 반역이 역사와 문화의 광범위한 후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지적이다. 그는 이런 논의를 유럽 연합 출범의 당위성과 필연성으로 귀결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고통스러운 내란 상황을 보면서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되먹임 구조가 아프게 다가온다. 일부 극우 유튜버와 그들을 지지하고 옹위하는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대중 사이의 관계가 상호 의존적인 공생과 먹이 사슬 구조를 구현한다. 제한적이지만 지식과 정보를 소유한 유튜버들은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고, 무비판적인 대중은 그것을 유통하고 소비한다. 그리고 유튜버들은 그 대가로 소위 유명세와 경제적 반대급부를 보장받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 멈추지 않는다. 그들과 결탁하거나 의지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은 앞장서서 극우의 정치-경제적 터전을 마련해주고 그 대가로 정치적 입지를 보장받으려 한다. 그리하여 정보와 지식 면에서 취약한 70대 이상 노인 계층과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부 청년세대가 그들의 적극적인 포섭대상으로 노출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엊그제 국회에 등장한 ‘백골단’은 이런 양태가 가장 조악하고 사악하며 야만적으로 구현된 형식이다. 1980년 5월 광주 학살로 등장한 전두환 학살 군부의 극악한 조력자로 노동자와 대학생, 시민을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고문한 자들이 백골단 소속 사복(私服)이었다. 민주주의를 압살함으로써 우리의 정치와 역사를 왜곡하고 타락시킨 백골단이 2025년에 다시 나타나다니?! 돈과 권력이 보장된다면, 조국과 민족과 역사는 언제든 팔아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중에게 빌붙는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살 자격이 전혀 없음을 꼭 명심했으면 한다.

2025-01-12

말 말 말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답답하고 혼란한 정국이 연말을 지나 새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분노와 탐욕에서 시작된 권력자의 독단이 온 나라를 통분(痛忿)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울려 퍼지는 탄식과 한숨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다.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서야 하는 이 나라 민초(民草)들의 꽉 막힌 가슴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지 숙고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요즘 새삼스레 한나 아렌트(H. Arendt)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여성 철학자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주창한다. 숱한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라, 자상한 가장이자 성실한 공무원이었다는 것이다. 사악한 인간이 평범한 얼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쓸쓸한 괴담(怪談).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가 주장한 핵심은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이 불러일으키는 파괴적이고 궤멸적인 결과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서명 하나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인도하는지 전혀 사유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가 시키는 대로,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다했을 따름이라고 겸손하게 강변했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아렌트는 설파한다. 온전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깊은 사유와 숙고 없이 내던져지는 언어는 저급한 수준의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말과 행동은 그 인간의 사유와 인식 수준의 명징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행동의 일치를 보이는 사람들은 고도의 인식과 사유의 소유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터져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일상적인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아무 근거 없이 발화되는 언어는 없으며,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순간에 드러나는 인간의 행동은 그가 가진 사유와 인식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재연(再演)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평소 의식하지 않고 뇌까리는 말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우리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언론을 통해 날마다 까발려지는 권력자와 그 부역자들의 언어를 들으며 떠올리는 것은 그들의 빈곤하고 구차한 사유와 인식의 수준이다. 이순(耳順)을 넘긴 자들의 언어가 저토록 천박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호모사피엔스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보면 맹금류는 물론 어류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면이 많지만, 지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는 최상위에 자리한다. 그래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심화-확장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가 독서와 사색이다. 이런 작업에 기초하여 인간은 사회의 지도적인 지위에 오르게 된다. 시중에 떠도는 말과 말에서 들어보거나 생각해볼 만한 문장 하나 만나기 어려운 현실에 아연실색한다. 아, 저런 자들이 나와 내 어린 것들의 ‘지금과 여기’는 물론 앞날까지 감당했구나, 하는 깊은 절망과 쓰라린 자책이 나의 가슴을 통렬하게 후벼파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2025-01-05

계엄군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진입한 707특임대 소속 사병들이 뇌리(腦裏)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707특임대는 대한민국 최정예 특수부대로 대테러 작전, 인질 구출, 특수작전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다. 707특임대는 테러 위협에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로 불리며, 뛰어난 전투 능력과 고도의 훈련을 자랑한다. 그런데 707특임대 사병들이 12월 3일 밤에 보여준 모습은 아주 특이한 것이었다. 국회 유리창을 느릿느릿한 속도로 힘겹게 부수는 장면, 화분을 조심스럽게 옮기고 난 다음에 국회 사무실 유리창을 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소화기를 뿌리며 저항하는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대단히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장면 또한 신선하게 다가왔다.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혀 서둘지 않고, 뒤로 물러나면서 폭력행사 자체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소화기를 핑계 삼아 이리저리 서성이는 장면에서 나는 707특임대 사병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부대는 잘못된 시각에 잘못된 장소에 투입되어 잘못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니 태업(怠業)해야 한다.’ 나처럼 나이 먹은 세대에게 ‘계엄군’은 곧바로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무한폭력을 행사하여 학살 만행을 자행한 잔인무도(殘忍無道)한 사병과 장교들을 의미한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에서 그려낸 것처럼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어린 학생들을 죽여버리는 잔혹성이 그 당시 비상계엄을 겪은 2-30대 청춘들에게 각인된 계엄군의 모습이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빌미로 이승만은 첫 번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곧바로 11월에 제주 4·3사건을 빌미로 2차 비상계엄을 발동한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비상계엄을 발판으로 ‘보도연맹’ 사건을 일으켜 2∼30만에 이르는 국민을 처참하게 학살(虐殺)한다. 학살극에 동원된 경찰과 군인들이 훗날 장교로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광주로 투입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폭력의 변주(變奏)는 이승만에서 시작되어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에게 이어진 것이다. 문화와 예술, 여성의 시대인 21세기 대명천지 문화강국 대한민국에 참담한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다. 그런데 이번 12월 3일 비상계엄에 동원된 계엄군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과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상부 지시대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살해했던 광기(狂氣)의 계엄군이 완벽하게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21세기 계엄군이 출현한 것이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교양인이자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신세대 사병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이미 가슴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배 민주 시민이었다.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나는 신세대 계엄군을 보면서 죽은 자는 산자를 구했고, 과거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구원했다고 생각한다. 젊은 계엄군들의 놀라운 자제력과 정확한 판단 능력, 뛰어난 도덕성에 큰 박수를 보낸다.

2024-12-29

여성 시대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된 후 다소 낯선 풍경이 눈길을 잡는다. 야권 6당 대표들이 국회 앞에 모인 시위대에게 인사말을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발언권을 가진 대표자 6명 가운데 3명이 여성이다. 아, 우리나라가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순간이다. 여성들의 ‘넘사벽’ 가운데 하나가 정치 영역인데, 그것도 어느새 변했구나, 하는 깨달음. 동서양 신화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신은 예외 없이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가 그렇고, 동북아시아 신화인 ‘천궁대전’에 등장하는 ‘아부카허허’가 그러하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역시 여신이다. 이들 여신은 모두 창조신으로 온갖 생명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근원적인 탄생의 주관자들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인간세계 또한 가능했던 셈이다. 12월 3일 밤 불시(不時)에 터져 나온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혼란과 암흑으로 빠져드는 시점에 계엄군의 총부리를 맞잡고 “부끄럽지도 않아!” 대갈일성 내지른 이는 30대 여성이었다. 그 후의 사태 진전에서도 여성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통계는 12월 7일과 14일에 거리로 광장으로 국회 앞으로 나온 시민들 가운데 27.6%가 20∼30대 여성이라고 알린다. 계엄 상황을 지켜보면서 맨 먼저 찾아온 생각이 왜 젊은 여성들의 시위 참여가 현저한가, 하는 문제였다. 무엇이 저들을 한겨울 맹추위를 무릅쓰고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들 중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도 적잖았다고 언론은 전한다. 100만 인파 속에서는 혼자 몸도 버거울 텐데 유모차를 대동해서 겨울 한복판으로 나온 여성들이라니?! 나는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세 가지 사건이 자리한다고 여긴다. 2002년 6월 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렸다가 연말에 되살아난 ‘미선이-효순이 사건’이 첫 번째다. 당시 중학교 2년생이었던 그들은 길을 가다 속수무책으로 불귀의 객이 되었으나, 미국 고위층의 공식적인 사과나 위로 하나 받은 적 없다. 그로 인한 공분(公憤)을 공유한 세대가 지금 30대 중후반 여성들이다. 10년 전 4월 16일 벌어진 한낮의 참극 ‘세월호 대참사’에서 단원고교 2학년생 250명이 우리 눈앞에서 수장(水葬)되었다. 차마 저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인정하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던 대참사.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올해 27살의 혈기방장한 청춘으로 세상살이 초년생으로 세상의 비의(秘義)를 배워나갈 시점이리라. 2년 전 2022년 10월 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도 빼놓을 수 없다. 159명의 사망자와 195명의 부상자를 낳은 안타까운 사건이 ‘이태원 참사’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현 정권은 온전한 사과나 책임자 처벌을 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참사 희생자들 대부분이 청년층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사건의 중심에 20∼30대 청년들이 자리한다. 여성은 생명을 향한 강렬한 애착과 보호하려는 열망이 있다. 생명을 잉태하고 보육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여성은 생명의 주관자로 생동한다. 젊은 여성들이 맨손으로 무력에 대항하는 장면은 진정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바야흐로 여성 시대다!

2024-12-22

고전에 답이 있다!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살았다.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도, 생각하고 글 쓰고 사람 만나는 일도 허청허청하기만 했다.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 물음만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이게 뭐지?!” 2025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 터져 나온 ‘비상계엄’이 내 삶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경북매일신문에 연재하는 아주 짧은 글 ‘파안재에서’를 서둘러 쓰고, ‘청도 인문학’ 강의자료를 블로그에 올린 게 정신 활동의 전모(全貌)다. 문자 그대로 생물적 대사(代謝)활동을 했을 뿐, 살아있는 인간으로 존재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한 열이틀의 시간이 지나간다. 한강 문학에 관한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엘렌 맛손의 강평을 들은 것이 고작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그것을 불가 (佛家)에서 가르치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에서 찾는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서 발원하는 세 가지 극독(劇毒)이 사태의 핵심에 자리한다. 생명 활동 과정에서 존재가 대면하는 탐진치 삼독을 숙고하지 않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은 무엇인가를 향한 억제할 수 없는 지극한 갈망에 뿌리를 대고 있다. 탐욕은 정신적·물질적·영적(靈的)인 영역에 모두 적용된다. 억제할 수 없는 지극한 탐욕은 분노로 전화(轉化)된다. 얻고자 하는 바를 관철하지 못하면, 인간은 분노의 노예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강한 판단력 상실에 따른 추악한 어리석음으로 귀결(歸結)된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말에 나는 경악했다. 세계 전역에 문화와 문학과 예술의 첨병으로 ‘한류’를 전파하는 21세기 나의 조국에 종북세력이 있는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집단은 ‘반국가세력’인가?! 권력자의 수사(修辭)와 명분이 아무리 엄중해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발상은 또 얼마나 반민주적인가?! 그와 그들은 거기 멈추지 않았다. 계엄 사령관이 발표한 ‘포고령’의 처단한다는 단어는 너무도 끔찍하게 다가온다. 본업에 복귀하지 않는 의료인과 포고령 위반자를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하겠다는 조항은 얼마나 악랄한가?!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에 근거하여 위반자들을 처단하겠다는 악마 같은 ‘포고령’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 권력자와 그에 기생(寄生)한 부역자들의 행악질은 낱낱이 밝혀지겠지만, 그것은 1980년 5월 17일 희대(稀代)의 학살자 전두환이 내건 비상계엄과 전혀 다르지 않다. 광주 시민들의 민주적인 저항을 무한폭력으로 짓밟은 그들의 잔인성을 우리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확인한다. 왜 그들은 멈추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들의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에 기초한다. 노자(老子)는 “만족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 갈 수 있다”고 했다. 최소한의 교양과 독서도 없는 자의 무지와 부패, 무능과 타락이 탄핵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우리 어린것들의 평화롭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2024-12-15

월장(越墻)의 추억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요즘 청년 세대는 ‘월장’이란 어휘가 낯설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담장을 뛰어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이는 ‘월담’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그것은 한자어 ‘월(越)’과 담벼락을 뜻하는 한글 ‘담’자를 합성한 다소 괴이쩍은 조합이다. 그러므로 한자어 그대로 ‘월장’이라고 쓰는 것이 어법상 옳다고 생각한다. 기초적인 한자어는 읽을 줄 알아야 우리말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자명한 이치를 한글 전용론자들이 수용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한다. 학부 시절, 날마다 지구 자전축이 심하게 흔들림을 느껴야 했던 시절 이야기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이란 제목의 주간지 소설에 마음을 주었던 때 일이다. 야간통행금지가 일상화되었던 시절, 제주도와 충청북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역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시민들의 통행이 엄격히 금지돼 있었다. 어기면 경찰서 보호실로 직행해야 했던 암울했던 시절. 그날도 어김없이 몹시 흔들렸던 나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대문 앞에 이르렀다.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초인종을 누를 수 없었기로 높지 않은 담장을 뛰어넘기로 한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아뿔싸! 이른 시각 화장실 가시던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엉거주춤 인사드리자 아버지 말씀, “이제 오냐?!” 그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월장의 추억이 있던 내게 아주 낯선 장면이 휴대전화 화면에 잡힌다. 국회의장이 대한민국 국회의 담장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뭐지, 이것은?! 국회 의사당 출입구를 봉쇄한 대한민국 경찰 저지선을 뚫지 못한 60대 후반의 국회의장이 담장을 뛰어넘는 장면이었다. 어, 이거 우리나라야?! 합성사진이 아니라, 진짜 일어난 일이야?! 있을 법하지 않은,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 기이한 밤, 나는 ‘한강의 문학 세계와 우리의 삶’이란 제목의 대중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저녁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설픈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다가 느닷없이 울려대는 카톡 신호음에 눈길이 간다. ‘이거, 정말이야?!’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무렵 풍경이다. 아주 많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새벽 4시 무렵이나 되었을 때 자리에 누웠다. 근근이 자료준비를 마쳤으나, 잠이 올 리 없잖은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눈이 절로 떠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퍼런 하늘빛이 참으로 고왔다. 마당에 내려앉은 흰 서리와 조화를 이룬 그날 아침 세상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심호흡하고 묵상에 잠긴다. 1980년 5월 28일 새벽 비상계엄 아래 놓여있던 전남도청 시민들이 보았던 하늘도 이렇게 고왔을까, 생각한다. 전날 밤 80만 발의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들도 그 하늘을 보았을까, 생각한다. 그들이 전남도청에 난입하여 여린 목숨들을 학살할 때, 그들 내부에는 어떤 느낌이 찾아왔을까, 생각한다. 만일 어젯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여 비상계엄이 관철되었다면, 오늘 아침 하늘이 이토록 아름답게 다가왔을까, 생각한다. 월장을 감행한 국회의장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4-12-08

착한 사람 증후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며칠 전 대구의 어떤 도서관에서 ‘영화로 가족 갈등 풀기’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고해(苦海)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심각한 정신적 갈등을 경험하게 하는 대표적인 인간관계는 가족이다. 가장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원초적인 분노와 불만, 짜증 같은 파괴적인 감정을 가족 구성원에게 노골적(露骨的)으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가족 갈등을 다룬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1999),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혼자 사는 사람들’ (2021) 세 편을 골랐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갈등과 상처, 충돌과 대결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살핌으로써 우리의 삶과 연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 말미(末尾)에 마련한 질문 시간에 60대로 보이는 여성의 물음이 인상적이었다. 요약하자면, 그분은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타자의 고충이나 곤경을 외면할 수 없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뒤로 한 채 열일 젖혀두고 남을 돕느라 진이 빠져버린 사람들이 적잖다는 얘기다. 중년 여성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많이 포진해 있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혹은 친구든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은 여리고 착한 심성 때문에 ‘안 돼요, 못하겠어요, 나도 힘들어요, 시간 없어요’라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한다. 그들 심성 깊은 곳에는 이른바 ‘착한 사람 증후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말이나 부탁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버린 경우를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 한다. ‘착한 사람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형제자매가 아프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경우, 강압적이며 도덕적인 행동을 강요한 부모 아래서 성장한 이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로 자라다가 성장한 다음에도 타자의 육체적 고통이나 물질적 괴로움을 외면하지 못해 ‘타의적(他意的)’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불만이나 불편을 꾹꾹 눌러 참으며,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쉽게 상처받으며 한번 받은 상처도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을 위해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참아가며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그들 몸에 배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까지 늘 그래 왔는데,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 하며 자신의 괴로움을 뒤로 한 채 남들의 요구와 부탁에 하루-한 달-한해를 탕진해온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 세상의 중심에 당신을 세우시라고 말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 있는 존재지만, 관계의 핵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빛나는 해와 달과 별도 우리가 그들을 보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사람은 남들에게 전연 무관심하다. 부모 자식, 형제자매, 친구도 그렇다. 나를 중시하고, 나를 사랑하며,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착한 사람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2024-12-01

다시 ‘논어’와 만나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2월 20일 시작한 청도 인문학 첫 번째 주제 ‘문명과 인간’은 10월 22일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주 1회 90분으로 실행한 청도 인문학 강연은 이로써 27회로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된 셈이다. 세계 4대 문명과 초원 문명으로 시작하여 칼 야스퍼스의 ‘축(軸)의 시대 Achsenzeit’를 거쳐 유라시아의 문명사를 두루 살핀 것이다. ‘문명과 인간’은 2020년 11월에 출간한 졸저(拙著)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에 터를 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기준으로 두고, 그것에 기초하여 동북아 세계의 미래상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분기점이지만, 과거의 축적이 현재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과거는 현재만큼 중요하다 할 것이다.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20세기까지의 과거에 할당했고, 21세기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미래진단은 소략한 감이 있다.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은 대내외적인 정세변화가 극심했던 까닭에 자기검열에 걸려 빠지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청도 인문학 강연에서는 그것을 강조했기로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문명과 인간’을 마칠 즈음에 수강자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논어’를 거론했다. 그리하여 10월 29일부터 ‘논어’ ‘학이편’ 제1장부터 읽기로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500년 전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남긴 어록을 낯선 한문 문장과 해설, 각주(脚註)까지 참고해 읽어야 하니 수강생들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2006년 9월에 ‘논어’를 처음 만났다. 연구년 한 학기를 허송세월(虛送歲月)하다가 홀연 반성하는 생각이 들어 지인에게 어렵지 않은 번역본 ‘논어’를 추천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개강할 무렵까지 6개월 동안 6번을 읽고, 감명 깊게 다가온 문장을 A4 용지 6장 정도로 축약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1시간 남짓 그것을 한문으로 쓰는 습관을 만들었다. 나중에 독회 10번을 채우고 분량도 A4 용지 10장으로 늘렸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식당에서 잠자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10장을 다 외우려고 무던히 애썼다. 좋은 문장이나 구절 혹은 단락은 통째로 기억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논어’를 읽으면서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장자’,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보태서 읽었다. 그런 독서 사이사이에 ‘논어’, ‘도덕경’, ‘장자’, ‘열전’ 관련 서적들을 대략 30권 남짓 통독했다. 좋은 서책은 당연히 서평(書評)을 써서 기억에 오래 남도록 ‘홈페이지’에 쟁여놓았다. 그런 결과로 2008년 가을부터 ‘동양고전’ 대중강연을 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형편이다. ‘논어’와 처음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내 눈으로 읽고, 내 손으로 써보고, 내 머리로 먼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독서의 결실이 나와 함께한다는 이치를 기억하시기 바란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기억하려 애쓰고, 기억한 문장을 실생활과 대화에 활용하면 더 유익할 것이다.

2024-11-24

의성 군립 도서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11월 15일 낮 12시 2분 승용차 한 대가 흐릿한 구름장 아래로 청도 화양을 출발한다. 죽음과 마주하는 나이 든 부부의 마지막 여정(旅程)을 영화로 만든 ‘해로(偕老)’(2012)를 중심으로 노년과 죽음에 관한 인문학 강연을 위해 길을 떠난다. 나의 목적지는 화양(華陽)에서 대략 105km 떨어진 의성 군립 도서관이다. 안계(安溪)에 자리한 의성 군립 도서관은 내게 낯설지 않다. 3-4년 전에 인문학 강연을 하러 두어 차례 들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청중들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행태를 보면서 ‘이런 강연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기억이 생생하다.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강연을 아무리 많이 들은들 저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평소와 달리 이번 행장(行狀)에는 기타도 차에 실었다. 훌륭한 솜씨는 아니지만, 나 혼자 혹은 가까운 친지들과 어울려 노래할 정도는 되기에 마음을 낸 것이다. 더욱이 의성 군립 도서관의 실무 담당자가 기타를 가져와 노래하는 것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기로 용기백배했다. 1시간 40분 남짓 걸려 도착한 의성 안계 하늘은 가녀린 햇살을 내비치고 있다. 담당자가 준비해준 악보대(樂譜臺) 위에 노래책을 펼치고 의자에 앉는다. 소월(素月)이 작시한 ‘못 잊어’와 혜은이의 명곡 ‘비가’를 부른다. 오랜만에 부르는 신통치 못한 노래지만, 강연장을 가득 메운 60여 노년의 청중은 주의 깊게 노래를 듣는다. 담당자의 연사 소개 후에 청중을 보노라니 몇 분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리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니 흐뭇한 마음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죽음이나 죽음과 연관된 말이나 생각, 혹은 대화 자체를 꺼리는 수가 많다. 하지만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두렵다고 외면한다 해서 죽음이 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강연을 시작한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강연 도중에 화장실을 오가고, 옆 사람과 쉬지 않고 떠들고, 심지어 큰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던 그들이 아연 조용한 것이다. 간간이 전화기가 울리고, 옆 사람과 떠들고, 강연장에 늦게 나타난 사람도 있긴 했으나, 예전과 현저히 대비되는 장면이 펼쳐진 게다. 오후 2시에 시작한 강연은 3시에 10분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4시 무렵 끝났다. 도서관장의 요청에 따라 연사를 향한 박수가 이어진다. 이윽고 청중이 모두 빠져나간 다음 관장과 잠시 환담한다. 그이도 청중의 태도 변화를 물어온다.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하는 관장의 물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하고 내가 묻는다. 지난 4-5년 의성군에서 인문학 강연을 계속 진행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인문학은 개인의 독서와 사유 그리고 글쓰기가 동반돼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인문학 강연 역시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가 이번 의성 군립 도서관 강연에서 얻은 망외(望外)의 소득이다. 붓다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2024-11-17

아침 안개를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아침마다 안개가 짙게 내리는 시절이 왔다. 해마다 11월이면 청도 화양에는 지척(咫尺)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내리곤 한다. 날이 많이 차거나, 바람이 몹시 불거나, 일교차가 아주 적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모를까, 안개는 예외 없이 날마다 두툼한 얼굴을 내민다.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은 짙은 차폐(遮蔽)의 장막 속으로 숨거나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오래도록 묵상한 시기는 대구 금호강 안심 습지(濕地) 부근에 살았을 때였다. 겨울 아침마다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찾아왔다. 일출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안개가 지배하는 시공간에서 무기력하게 금호강을 내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안개에 관한 짧은 명상’이라는 시를 써야만 했다. 2부로 나누어진 시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썼다. “모든 떠나간 것들은 언젠가 그 자리로 반드시 회귀할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찾아오던 안개가 사라져버린 황량한 금호강 풍경을 떠올리면서 나는 안개가 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안개가 사라진 금호강 습지의 철모르는 오리무리를 보면서 느꼈을 허허로움이 지금도 감촉되는 듯하다. 그저께 아침에도 화양(華陽)에는 짙은 안개가 찾아와 오전 10시 42분이 되어서야 천공의 태양이 빛나는 얼굴을 내밀었다.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모든 것은 어둠의 장막 아래 침전한다. 안개의 그늘, 어둠의 심연 속에서 혹자는 평안하고, 누군가는 당혹스러워한다. 사람은 혼란을 기꺼워하는 이와 혼란에서 고통을 느끼는 자로 나뉘기 때문이다. 안개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어둠과 혼돈이지만, 다른 본질은 안개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 나오는 ‘몽환포영(夢幻泡影)’ 같은 것이다. 그렇다, 안개는 꿈과 환상,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시나브로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데려가는 것은 태양과 바람이다. 그것들로 인해 안개는 스르륵, 소리 없이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1988)은 안개로 시작하여 안개로 끝나는 안개 영화의 전범이다. 12살 소녀 불라와 다섯 살짜리 남동생 알렉산더가 아버지가 있다는 ‘게르마니아’로 길을 떠나는 영화 ‘안개 속의 풍경’. 그들이 여로(旅路)에서 마주치는 세상의 인간들과 풍경과 내면세계를 느려터진 사진기로 잡아내는 앙겔로풀로스. 지독하게 막연한 행로 첫머리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의 아버지는 실제로 있는 것일까, 있다면 도이칠란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리고 어린 남매는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남성 어른들이 뿜어내는 무한폭력과 그것에 무너져가는 남매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고요하게 숨 쉬고 있을 뿐이다. 영화 말미에서 남매는 속삭인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 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앙겔로풀로스는 빛과 어둠으로 점철된 그리스 현대사를 이것으로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둠(안개)을 거두는 빛을 찾아 떠나온 남매를 비추는 찬란한 빛! 어둠은 빛을 끝내 이기지 못한다!

2024-11-10

시간은 어디서 오는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4년 달력이 얇아지고 있다. 10월 말이면 나이 든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하는 유행가 ‘잊혀진 계절’(1982)이 거리를 소란스럽게 한다. 계절이 오직 10월에만 잊히는 것도 아닐 것인데, 어째서 유독 10월이 거명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10월에도 적잖은 비가 자주 내렸다. 그래서 ‘가을비 우산 속’(1978)이란 노래도 곳곳에서 불린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손목시계나 휴대전화에 내장된 시계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는 것이 하나이고, 달력으로 1개월 단위의 시간을 포착하는 것이 그 둘이다. 미시적인 시간을 살면서 거시적인 시간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가 성숙한 인간이다. 어린아이들은 개미나 매미처럼 지금과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며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철이 들 무렵을 사춘기라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시간의 흐름을 비로소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광속(光速)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고도로 진척된 물리학 개념을 따라잡지 못하고 끝없이 표류한다. 이탈리아 양자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1957∼)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2019)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시간 개념을 전복(顚覆)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간다는 고정된 시간 개념을 분쇄해버리기 때문이다. ‘군도’의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는 “현재는 쏜살같이 달아나고,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있다”라고 했다. 이 문장에 따르면, 시간은 미래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영원히 정지된 과거로 흘러간다. 미래는 현재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같이 과거로 달아나며, 과거는 죽음보다 견고하게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2012)에서 과학사가(科學史家) 스티븐 제이굴드(1941∼2002)는 직선적인 시간과 순환적인 시간을 지질학으로 풀어낸다. 지층은 오래된 것일수록 아래에 자리하고, 새로운 것일수록 위에 자리한다. 지층만 생각해본다면, 시간은 분명히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직선적인 흐름을 가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직선적인 시간에는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색바랜 사진에 들어있는 어린 시절 당신의 모습을 보라. 중고교 졸업사진에 뚜렷하게 각인(刻印)돼 있는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사진 속의 당신과 사진을 보고 있는 당신이 진정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육신은 우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존재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오장육부, 피부, 뼈, 혈액, 세포 등등)이 순간순간 변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시라. 어제의 나와 1년 전의 나, 그리고 10년 전 나의 물질적 구성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정신 혹은 마음이라 부르는 것 또한 고정불변하지 않은 것이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 한 시간 전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항상(恒常)하지 않다는 사실과 만난다. 시간처럼 인간도 불변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와 작별하고 지금과 여기를 응시하시라!

2024-11-03

감을 깎으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상강(霜降)을 지났건만 한낮 기온은 20도를 훌쩍 넘어선다. 그나마 새벽 최저기온이 5도 내외를 넘나드는 것을 위로의 하나로 삼을 뿐이다. 서리 내릴 무렵에 아침이슬이 뻑뻑하게 내리는 시절이니 무엇을 더할 것인가?! 그래도 시절이 변해가는지 동네 안팎의 감나무에 붉은 물감이 짙어지고, 마른 잎이 앞다투어 산들바람 따라 지상으로 하강한다. 엊그제 뒤뜰에 있는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따러 나섰다가 감나무처럼 늙은 뒷집 할머니와 마주친다. 요즘 귀가 어둡고 눈이 침침하여 심사가 아주 고단한 얼굴이다. 평소 활달하고 성미도 괄괄한 분인데, 말수도 줄고 활동량도 많이 적어진 듯하다. 생로병사의 하나인 노화를 할머니 역시 피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2045년까지 버틴다면 특이점과 대면할 수 있다는데!…. 청도(淸道)를 뒤덮고 있는 다수의 감나무는 쟁반을 닮았다는 이른바 반시(盤67FF)지만, 우리 집 감나무는 종자가 다르다. 탱글탱글하고 미끈한 생김새가 둥글넓적한 반시와는 전연 닮지 않았다. 그래선지 맛도 상당히 다르다. 반시는 달긴 하지만, 깊이가 얕은 달착지근한 맛이다. 하지만 우리 감나무는 맛의 끈기와 깊이가 반시와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르다. 이사 온 첫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감을 제대로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익은 홍시를 아무리 많이 보아도 한 번도 먹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터였다. 하지만 울안에 감나무가 있고 보니 환경 때문에 감을 먹게 되었고, 급기야 감을 깎아서 말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1500개 정도의 곶감을 마련한 일도 있었다. 거의 일주일 내내 감을 따서 마루로 옮기고, 등 뒤로 햇볕을 맞으며 온종일 감을 깎고, 베란다에 내걸고 하는 중노동을 솔선했으니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노릇이었다. 손 통증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그 뒤부터 나는 감 전도사가 되었다. 그것이 홍시든 반시든 단감이든 말랭이든 곶감이든 간에 감을 예찬하기 시작한 것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거름도 주지 않기에 울안의 늙은 감나무의 수확은 해마다 줄어들었다. 탄저(炭疽)가 달려들거나, 가을장마가 들라치면 수확 자체가 아예 없는 해도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100여 알의 굵은 열매가 달렸기로, 올해는 오랜만에 곶감을 만들 수 있겠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 감을 몽땅 훔쳐 가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담장도 없는 촌집에서 주인이 출타 중임을 확인하고 단박에 감서리를 감행한 것이었다. 허탈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런데 올해는 감이 제법 많이 달린 데다가 병충해도 많지 않다. 상강도 지났으니, 일단 감을 깎아보리라 작심한다. 줄기를 잡아채는 감 따개로 오랜만에 흐뭇한 수확을 하고, 마루에 퍼질러 앉아 감을 깎기 시작한다. 염치없는 모기가 덤벼들어 피를 요구하고, 눈치 없는 파리가 잘 깎은 감에 올라앉아 주인행세를 한다. 저쪽에선 초록색의 사마귀가 위풍당당하게 갈지자걸음이요, 공중에선 노랑나비가 비행 솜씨를 한껏 자랑한다. 푸른 하늘 높이 비행기의 날개 은색으로 빛난다. 가을이 깊어간다!

2024-10-27

기록의 힘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10월 10일 목요일 저녁 경북대 교수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큰 경사가 났음을 안다. 한강 소설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놀라운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몇몇 단톡방이 그 소식으로 시끌벅적하고, 나도 늦게나마 축하 대열에 합류한다. 오래 살다 보니 정말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하는 소회(素懷)가 절로 일어난다.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많은 댓글 가운데 “노벨 문학상을 번역 없이 읽을 수 있다니 참 기쁩니다!” 하는 문구가 인상적이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내가 진행하는 청도 인문학 화요(火曜) 강연회에 오랜만에 얼굴을 내보인 참가자는 환한 얼굴로 말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함께 기뻐하고 싶은데, 여기가 제일 좋은 곳 같아서 왔어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인문학 강연 초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다가 영어 회화 공부 시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장기간 결석한 인물이다. 그날은 영어 회화 수업도 빠진 채 우리와 동석한 것이었다. ‘21세기 한국 대학의 문제점과 대응 방안’에 관한 강연을 마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던 차 어느 날인가 한국 교육 방송(EBS) 유튜브에 반가운 얼굴이 나온다. 1996년 만 26세 앳된 얼굴의 한강 소설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과 청바지 차림의 청춘 한강이 ‘문학기행-한강의 여수의 사랑’이란 제목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나는 ‘그래, 역시 기록은 대단한 거야!’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1994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한강은 1995년 3년 정도 여수에 머물면서 창작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 당시 나온 한강의 첫 번째 소설집 제목이 ‘여수의 사랑’이며, 표제작의 제목 역시 ‘여수의 사랑’이다. 한강은 ‘여수’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포착한다. 문자 그대로 물이 아름다운 고장 ‘여수(麗水)’와 여행자의 우수인 ‘여수(旅愁)’를 떠올렸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 점에서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두 여인 가운데 ‘자흔’이란 이름에 한강이 부여한 자취와 흔적이란 의미도 단순하지 않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버려진 기억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인간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이름 자흔. 이미 이 지점에서 스물댓 살 난 젊은 작가의 인식과 사유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교육 방송 ‘문학기행’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이 아니라, 거의 무명에 가까운 앳된 소설가의 처녀작에 눈길을 주고 그녀와 소설을 기록으로 남긴 대목이다. 우리는 지금과 여기,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열렬(熱烈)한 욕망으로 나날을 살아가기 일쑤다. 돌아봄이 불가능해진 광속(光速)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돼버린 게 아닌가?! 그런데 교육 방송이 만든 28년 전 기록으로 우리는 시간 기계(타임머신)라도 탄 것처럼 과거의 여수와 한강을 만나는 것이다. 오늘의 한강을 가능하게 한 지난날의 한강을 돌이켜보면서 시간과 기록의 힘을 재삼재사 확인한다. 기록을 우리 일상의 일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2024-10-20

어떤 충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얼마 전 나의 누옥(陋屋)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찾아왔다. 상당히 격조(隔阻)했던 터라 이야기가 여러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지난 2월 20일 청도에서 시작한 나의 인문 강연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문명과 인간’을 주제로 한 강연이 거의 30회에 이르고 있는데, 두 차례 강연을 마치고 나면 ‘논어’함께 읽기로 방향을 전환할 요량이다. 강연이나 강의할 때 내가 취하는 태도가 이내 도마 위에 오른다. 나는 정해진 시각에 강의를 시작하여, 예정된 시각에 어김없이 강의를 마치는 습관을 오래도록 지켜왔다. 사적(私的)인 얘기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함구한다. 한 시간 강의나 강연을 위해서 나는 곱하기 3의 법칙을 준수하고자 애쓴다. 1시간 강연을 위해 최소 3시간 이상 준비한다는 얘기다. 언젠가 ‘가락 스튜디오’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명민한 청중에게 따끔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너무 빠른 속도로 듣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서 쏟아내는 나의 강의 방식에는 낭비되는 측면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생각을 정리하고, 나름의 호흡으로 정보를 소화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나의 강의 방식은 이른바 ‘최대 강령 주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의 반응을 살피고, 그들의 지적-정신적 수준에 맞춰서 최소한의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도 있는데, 그것을 일컬어 ‘최소 강령 주의’라 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최대 강령 주의에 기반하여 강의를 진행한다. 그것이야말로 대중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연에서 강연자가 제공해야 하는 최대한의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대중과 작별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귀중한 시간과 정성,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강연에 참석한 대중의 교양과 지식을 고양하지 않을라치면 무엇 때문에 강단에 선다는 말인가?! 강연자의 농담과 헛헛한 개인사 혹은 허언(虛言)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게 충고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청중의 심사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적-정서적-지적인 용량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강연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로는 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쇠귀에 경 읽기식’의 강연이 된다면, 그 또한 난감한 일 아니겠는가?! 쉽고 재미있게 강연을 인도하는 것 역시 강연자의 기초적인 소양(素養)이므로! 그러하되 내 생각은 결이 아주 다르다. 강연에 참여하는 청중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눈과 마음을 통찰하여 강연의 난도(難度)와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에 가깝다. 따라서 단 한 사람의 청중이 나의 강연에 몰입하여 무엇인가 깨우침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강연으로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교양의 보완이 매우 절실하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청중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믿는다.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는 강연자와 청중의 어설픈 공존은 오히려 인문 강연의 심각한 질적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024-10-13

젊은이를 사랑하고, 노인을 존중하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대만(臺灣) 출신 저자 당락(唐)의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을 읽다가 무릎을 친다. 젊은이는 비판해서도 안 되고, 비판의 대상도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에 관한 진지한 단상 88개를 포함하여 모두 1만4400자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의 책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구절이 나의 폐부를 강렬하게 찔러왔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시도 때도 없이 요즘 애들은, 하고 입에 게거품 물기 일쑤다. 패기가 없다, 예의범절을 모른다, 이기적이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등등 하나같이 부정적인 평가 일변도로 젊은이들을 깎아내린다. 그러면서 ‘라떼는’ 하고 철 지나 녹슬고 고색이 창연하여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는 낡아빠진 풍악을 두둥 울려댄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세대 갈등이다. 갈등의 골과 폭이 깊고 넓어서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 같다. 원인 제공자는 당연히 사회의 주도 세력인 나이 먹은 기성세대다. 오랜 세월 세파(世波)에 단련된 그들 눈에 비친 젊은이들은 미숙하고 한심하며 안타깝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요즘 젊은이들처럼 20대와 30대 시절을 지나오지 않았는가?! 그래선지 당락의 주장은 곧장 내 심장을 관통한다. 그렇구나, 나도 더러 깊은 생각하지 않고 청년들을 나무라고 몰아세웠는데, 이건 정말 잘못한 짓이구나, 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그런 정황을 경험해야 하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처참한 지경이 아닐 수 없을 터. 비난과 거부가 아니라, 동조와 이해의 시각으로 청춘을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당락의 서책은 2016년에 대만에서 출간됐고, 2020년에 한국어로 번역됐으며, 나는 2024년에 읽기 시작했다. 나와 서책 사이에는 8년의 시차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50세가 넘으면 침묵해야 하고, 노인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죽음을 향해 홀로 가야 한다는 문장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대만에서는 8년 전에 기성세대 전반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신과 기성세대의 자조(自嘲)가 이미 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그보다 8년 전에 이런 풍조(風潮)가 번져나갔다. 그것을 입증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개봉된 해가 2008년이다. “요즘엔 노인이 개 목걸이를 하고 알몸으로 거리에 뛰어나가야 사람들이 겨우 쳐다보는 세상이야”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와 같은 노인 경시 풍조는 2016년에 대만에서 일상화되고, 요즘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만연된 형국이다. 정확한 시점(時點)을 제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노인 홀대나 노인 경시 풍조는 다반사(茶飯事)가 되고 말았다. 그림자나 허깨비처럼 대접받는 노인들이 차고 넘치는 게 우리 사회의 감출 수 없는 풍속도 아닌가?! 나는 노장과 청춘의 대결과 충돌이 아니라, 양자의 조화와 화합을 말하고 싶다. 청년세대를 따사롭게 감싸는 여유로운 노인이 늘어나고, 노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젊은이가 한층 많아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사랑과 존중이 넘쳐나는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4-10-06

노인과 인문학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주 화요일 오전에 대구 수성구에 있는 ‘대한 노인회’에서 ‘노자의 도덕경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주제로 강연했다. 대략 70명 정도의 노인들이 강의실에 모여서 선행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추석이 지났건만 아침 햇살은 매우 강렬하여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었고, 들고나는 노인들 때문에 분위기는 적잖게 산만했다. 강사 소개가 끝나고 그들과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준비해간 강연 자료가 유용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잠긴다. ‘가능하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갔지만, 실제로 면대면을 해보니 훨씬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16년 이상의 대중강연 경력 덕분에 예정된 강연 자료를 즉각 폐기하고 현장 분위기에 적절한 강연을 하는 것은 내겐 문제가 아니다. 가능하면 그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강연에 대한 교감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열기를 끌어올리기로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예기치 않은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 맨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 두 분이 끝없이 떠드는 바람에 집중력이 자꾸 떨어지고, 인내력은 바닥으로 내려간다. 청중 몇 분이 그들에게 대놓고 눈치를 해도 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나는 최대한 참기로 하고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손을 드세요.” 강연 중간에 예닐곱 사람이 나갔기 때문에 60여 청중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잘산다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대구의 강남(江南)인데?….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까닭을 묻는다. 그랬더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분도 있고, 산다는 것이 고통으로만 생각된다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 노인들의 행복 지수가 세계 최저 수준이란 통계는 있지만, 이토록 처절할 줄은 정말 몰랐다. 더욱이 다른 지역에서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분노와 슬픔과 절망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갈 수 있다고 노자는 갈파했다.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라는 구절이 위 문장의 출처(出處)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기본적인 표지(標識)다. 적정 수준에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지면, 인간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부모의 억압 기제에서 자신을 해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가 강제하고 요구한 덕목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당수 중장년은 물론 노인들마저 여전히 그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다. 그것이 그들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와 모멸감의 첫 번째 원인으로 작용한다. 나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가능성을 설명하고, 최대한의 긍정과 자기 확신을 설득한다. 하지만 두 노파는 여전히 웃고 떠들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명언이다. 나이만 많은 부끄러운 노인들이다. 하되 인문학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2024-09-29

불같은 추석을 보내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1년에 네 번은 서울에 간다. 부모님 기일과 추석, 그리고 설 명절에 상경한다. 열차를 타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타자(他者)가 옆자리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아주 낯설어졌기에 승용차를 이용한다.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과일 같은 제수(祭需) 물품을 차에 싣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3년 전부터 홀가분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이번 추석에는 동생들과 함께 생선 횟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기로, 예정보다 하루 일찍 운전대를 잡는다. 312㎞를 4시간 반 운전하여 당도한 동생 집에서 잠시 여독을 풀고 약속 장소로 나간다. 상당히 넓은 횟집에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불경기라고들 하지만 역시 되는 집은 되는 것이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매양 다르게 굴러간다. 그렇게 3박 4일의 추석 서울 나들이가 시작된다. 나와 두 동생, 계수와 내 큰아들 모두 다섯 사람이 주고받는 지난 시절 이야기가 두 시간 남짓 이어진다. 화제 중심에는 언제나 부모님이 자리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두 분의 행적이나 사건은 조금씩 엇갈린다. 불완전한 기억 때문이다. ‘라쇼몽’(1950)에 그려진 것처럼 인간은 선택적 기억에 의지해 살아간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갈라치면 나는 거의 매번 두 분 묘소를 찾는다. 충북 음성군에 자리한 ‘대지공원묘지’를 22년째 찾아다니고 있다. 한여름처럼 불같은 서울 날씨를 뒤로하고 지난 수요일 오전 7시 13분 운전을 시작한다. 간밤에 길 떠날 만반의 채비했기에 따로 시간을 축낼 일은 없었다. 다음날 일정을 전날에 숙고하면 삶은 그만큼 여유로워진다. 동생이 준비해준 물품 덕에 두 분께 올릴 제수가 풍성하다. 드넓은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영령은 어제 온종일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분망했을 터. 하지만 오늘은 드물게 찾아오는 이들을 제외하면 비둘기나 까마귀 등속이 전부다. 묘소 경내를 정리하는 노동자들의 분주한 발길과 고함이 가끔 들릴 뿐이다. 망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 지난 6월 이후 일어난 일에 관해 말씀드리고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전송한다. 저 아래 주차공간에 차를 대고 허위허위 걸어 올라왔기로 온몸이 땀범벅이다. 하얀 고무신이 시멘트 콘크리트와 만나면서 딱딱한 질감을 선물한다. 아득한 동녘 산등성이 쪽으로 아파트 군락이 보인다. 거기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한숨과 걱정이 한창일 것이다. 하지만 망자들의 공간은 고요만이 감돈다. 노자(老子) 말처럼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근간이 된다. 나의 피부와 허연 머리털과 얼굴을 무참하게 들쑤시는 무지막지한 햇살은 얼마나 장려(壯麗)한지,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9월 중순의 태양이 아니라, 8월 초순의 햇살처럼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무엇이 우리의 영원한 태양을 저토록 이글거리도록 했을까?! 하라리 말처럼, 사피엔스는 자발적인 소멸의 길을 밟다가 정말 ‘데우스’가 되기로 한 것일까?! 두 계절이 바뀌면 나는 다시 묘소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표표히 귀로에 오를 것이다. 생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복은 살아있음의 진정한 증표다.

2024-09-22

분노를 조절하는 색다른 방법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내가 사는 청도의 이번 여름철 강우량은 예년과 비교해 적은 듯하다. 비는 잦게 내렸으나, 전체적인 강우량은 상당히 부족해 8월에는 마당의 잔디와 텃밭에 이틀에 한 번꼴로 물을 줘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선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8월 초에 얼굴 내밀어야 할 상사화(相思花)가 8월 하순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 무슨 해괴한 노릇인가?! 해마다 초봄이면 진초록 이파리 내보내고, 8월 초가 되면 어김없이 화사한 연분홍색 꽃을 피워냈던 상사화다. 그것도 무려 10년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서. 더욱이 진초록 이파리가 그 세(勢)를 불려 올해는 여느 해보다 풍성한 상사화를 보리라 남모르게 고대하고 있던 터에 얼굴마저 내밀지 않는 꽃을 기다리는 아쉬운 마음만 깊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홀연 하나의 생각이 찾아들었다. ‘필시 수분부족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그래서 8월의 전반적인 강우 상황을 돌이켜보다가 무릎을 친다. 그렇다. 비가 적으니 토양 속으로 스며들 수분의 총량이 줄어든 것이고, 꽃을 피워 올릴만한 내적인 동력이 고갈된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상사화 이파리 나온 곳을 찾아서 듬뿍 물을 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1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20mm 가까운 단비가 우리 동네를 찾아왔다.‘이번 비가 필경 개화를 촉진할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혼잣말한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비록 단 두 줄기였지만, 상사화 꽃대가 곧게 올라오더니 시원스레 하늘로 몸을 여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반가울 데가 있나, 하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아는 이들에게 전송한다. 그와 함께 짧은 글을 지어 블로그에 올리고, 동창회 밴드나 카톡에도 부지런 떨면서 늦었지만 반가운 상사화의 개화를 알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을 받았거나, 블로그에 실린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천만뜻밖이었다. 뭐, 그만 일로 수선을 떨 필요가 있느냐, 하는 식의 시큰둥한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소주(蘇州) 한산사(寒山寺)에서 만났던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에 감동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카톡으로 알렸던 상황이 반복된 셈이다. 기막힌 한시(漢詩)를 보내줘서 정말 고맙네, 잘 읽었어, 하고 답장 보낸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오래도록 혼잣말한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게다. 뭐, 대수롭지도 않은 걸 가지고 호들갑인가?! 나이값도 못하고서, 쯧쯧…. 사정이 이럴진대, 나름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 십인십색 각양각색 아닌가. 각자도생의 시간대라니, 각자 제멋에 겨워 사는 것이리. 해와 달도, 별과 우주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주인인 세상에서 특별한 일도 아닌 게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나 아닌 사람은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도 나와 같은 느낌, 생각, 취향, 기획, 판단 같은 걸 공유하지 않는다. 모두 이상한 사람들이야, 생각하면 서운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을 터. 억제키 어려운 분노를 조절할 때 활용해보시기 바란다.

2024-09-08

‘시절 인연’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감수성이 예민했던 학창 시절에 읽은 글 가운데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이었다. 선생과 아사코의 세 번에 걸친 만남에 관한 글은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의 장면처럼 뇌리에 새겨져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세 번째 만남을 깊이 후회하는 선생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래도 명징하게 확인하고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곤 했다. 화사하고 가슴 뛰는 두 번의 만남만 간직한 채 망연히 세월을 보내고 나이 먹어간다면, 그 아쉬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은 낭만주의자 기질이 농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선생이 경험한 인연을 흉중(胸中)에 하나라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늠해본다. 백에 하나나 혹은 둘?!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 방송을 듣다가 인연과 관련해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60줄에 접어든 여성이 아끼는 친구의 장례식에 갔다가 늘그막에 홀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80대에 부인과 사별한 다음 요리며 빨래며 청소 따위를 혼자 해나가며 씩씩하게 생활하는 90줄의 친정아버지를 찾은 딸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60대에 하지 못해서 아쉬운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시절 인연에 너무 연연(戀戀)해한 것, 피부 관리 잘하지 못한 것, 외국어 하나 새로 시작하지 못한 것, 걱정 너무 많이 한 것, 젊은 나이에 요리 배우지 않은 것.” 피부 관리만 빼놓으면 상당히 공감 가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시절 인연에 매달려 전전긍긍했던 60대를 담담하게 회상하는 노인의 심중이 무엇보다 깊이 다가왔다. 아무리 싫어도 다가오는 인연이 있고,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지만, 끝내 떠나가는 인연이 있기 마련이란 것이다. 내가 원한다고 붙들거나, 내가 싫다고 뿌리칠 수 없는 것이 시절 인연이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거자불추(去者不追) 내자불거(來者不拒)’가 그것이다. 가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으면 가려는 사람의 의지를 꺾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마저 퇴색하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또 다른 의미 있고 새로운 인연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버리거나 지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이면 인연이 생겨나고, 사대가 흩어지면 인연이 끝났다고 여긴다. 생로병사의 근본도 인연에서 시작하여 인연으로 끝난다.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가 의지나 고집으로 이미 끝난 인연을 고집하거나, 불가능한 인연을 강제하려 든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갈 사람은 가야 하고, 올 사람은 와야 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는 우울하게 썼지만,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다. 그래서 그는 잃고 얻음의 양면성,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상호보완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을 잃으면, 다른 사랑이 오고, 그 사랑마저 떠나면, 제3의 사랑이 찾아온다는 이치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여러분도 시절 인연과 만났으면 한다.

202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