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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의 환삼덩굴

등록일 2025-11-23 15:57 게재일 2025-11-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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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14년째 옆집이 비어 있다. 청도 화양(華陽)에 이사 온 후 옆집 주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낡고 허름한 고가(古家)만 덩그러니 남아 사계절 내내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비와 눈에 고스란히 온몸을 내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다가 그 집이 서울 누군가에 팔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연히 새로운 주인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이는 돈 때문에 집을 샀으니까.

그리고 1년 남짓 지난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인부들이 들이닥쳐 집을 허문다. 땅을 고르고,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온갖 소음과 먼지를 선사하더니 사라진다. 그들 말로는 누가 고가 철거를 주문했는지, 새집을 지을 요량인지, 하는 어떤 정보도 들은 바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허망한 사건이 한여름 벌건 대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거였다.

그리고 10년 넘는 세월이 스르륵 지나고, 그곳에는 각종 뱀과 이름 모르는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내가 던진 복숭아씨 하나도 용케 발아되어 크게 성장하여 해마다 유월이면 굵은 열매도 선사하는 기이한 사건도 생겨났다. 그곳의 유일한 지킴이는 감나무 몇 그루뿐! 동네 늙은 아낙이 작년부터 호박을 심어 먹는 것 말고는 옆집은 여전히 휑하게 비어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 반갑지 않은 방문객이 그곳을 찾아들었다. 환삼덩굴이다. 처음에는 몇몇이 얼굴만 빼꼼하게 내밀더니 급기야 올해는 크고 작은 나무들 위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장관(壯觀)을 연출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나는 작년부터 그곳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울울창창 자라난 대나무 수백 그루를 정리했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온종일 그곳을 말끔하게 갈무리하는 것이 나의 일과 가운데 하나다. 환삼덩굴과 내 칼질에서 살아남은 대나무를 겨냥한 작전이 시작된다. 큰톱과 중간 톱, 전지가위, 삽, 쇠갈퀴로 무장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아직도 쌀쌀한 오전 9시 반부터 일을 시작한다. 환삼덩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 먼지가 자욱하게 앞을 가린다. 지독한 녀석이다.

대나무 위로 자라나 나무를 억압하듯 찍어누르는 환삼덩굴의 위세는 나의 오래전 잊힌 분노를 생생하게 일깨운다. 한편으로는 환삼덩굴을 제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나무 밑동을 가지런히 잘라서 정리한다. 거의 세 시간이 지났건만,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는데, 일단 후퇴하자!’ 그런 심사로 잠시 휴전에 돌입한다.

다섯 가지 공구로 무장한 나의 맹렬한 진격에 환삼덩굴과 대나무, 우슬(牛膝)과 찔레 등속이 하나둘씩 무너진다. 그 사이 나의 머리와 얼굴, 온몸에는 진땀이 범벅되어 흐른다. 오후 4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작업을 마무리한다. 환삼덩굴의 끈질긴 저항과 엉겨드는 끈적거림은 실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을 끝까지 시험하는 저 잔악무도한 환삼덩굴!

세상 살면서 환삼덩굴 같은 사람과 연을 맺는다면, 그것은 거의 천형(天刑)처럼 여겨질 터. 어떤 악한(惡漢)이라 해도 환삼덩굴처럼 끈질기고, 메케한 먼지 풀풀 날리며, 끈끈하게 안면몰수(顔面沒收)한다면, 과연 뉘라서 대적할 수 있겠는가?! 제발 영원히 사라져다오, 환삼덩굴아!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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