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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울행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침 아홉 시 반에 시작한 여정(旅程)이 자정 넘어서야 끝난다. 학회의 정례 학술논문 발표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학회 활동에 열렬한 연구자가 아니다. 공부를 혼자 해 버릇한 이유로 독야청청 독불장군의 길을 허위단신 달려온 세월이 30년 가까우니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청해서 발표를 결정하여 서울에 다녀왔다.정년을 불과 석 달 앞둔 백발의 연구자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희곡 ‘시골에서 한 달’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19세기 90년대 안톤 체호프의 극문학 성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극작가 투르게네프의 장막극을 여러 각도에서 천착하고 러시아 최초의 심리 드라마로 언급되는 ‘시골에서 한 달’을 곡진하게 들여다보았다.청도역에서 동대구역으로, 동대구역에서 다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그리고 다시 6호선으로 갈아타고 도보로 학술논문 발표회장에 도착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봄날의 환희가 약동하는 토요일 한나절을 거리에서 거리로 떠돈 셈이다. 세대교체가 완연하게 느껴지는 자리에서 뭔가 아쉬움과 쓸쓸함 같은 게 감촉된다.불꽃처럼 뜨겁고 여름 햇살처럼 찬연(燦然)하게 빛났던 아름다운 시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구나, 하는 아쉬움이 찾아들었다. 추석이고 설이고 연말연시고 다 팽개치고 연구실에 처박혀 논문과 작품을 읽으며 깊은 한숨과 탄식으로 늦도록 끙끙댔던 시절이 어느새 자취도 없이 스러져 버렸구나, 하는 깨달음에 문득 주변이 쓸쓸한 것이다.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곁을 영원히 사라져간 그 시공간은 학문 후속세대의 눈과 영혼과 가슴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지 아니한가,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리도 없이 그들은, 낯선 모습의 청년들은 각자에게 허여된 문학과 언어학과 연극학과 역사와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구에서 러시아 곳곳에서!4시간의 긴 발표를 마치고 몰려간 뒤풀이 자리는 실로 은성(殷盛)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기실 나의 서울행은 그들에게 따스한 저녁을 대접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은퇴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은 연구자들에게 맛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던 참이다.대략 20여 명의 러시아 어문학 연구자들의 뒤풀이 자리에서 오가는 정담(情談)과 웃음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약동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학회장의 권고에 따라 짧고 간명하게 인사말을 한다. 나는 그들에게 불운했지만, 불멸의 이름을 간직한 피렌체의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가 남긴 말을 전했다.“사람들이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그대에게 주어진 길을 가라. 그리하면 그대는 영광의 항구에 다다를 것이니!”학문하는 자의 배포와 당당함을 촉구하고 싶었던 게다.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게 빛난다.

2023-05-14

영남루와 위양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다. 마른 가뭄 아니련만 강우량이 미미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었다. 7년 대한(大旱)에 비 아니 오는 날 없고, 7년 홍수에 해 아니 드는 날 없다는 옛말이 떠오는 날이 이어졌다. 그래, 노는 사람이야 흥겨울 터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탈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실로 오랜만에 풍족하게 비 내린다.지난달 중순에 큰아들과 약속한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우리 집에 모여서 일박(一泊)하기로 한 것이다. 모임 하루 전날에 나는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문학자가 바라보는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대중강연을 한다. 광주와 전남대가 자랑하는 1980년대 대표 저항시인 김남주(1946∼1994)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강연하는 일은 가슴 벅찬 노릇이다.2019년 옹근 1년을 전남대 교환교수로 있던 때부터 ‘김남주 기념홀’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2019년 5월 3일 오후 5시에 열린 개관행사에 나는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여러 상념에 젖어 들었다. 대학원 시절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시집을 읽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런 남주를 길러낸 전남대 인문대학에 들어선 추모공간!어린이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오시더니 오후에 접어들어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이다. 서울에서 9시 무렵 출발한 아들의 승용차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화양(華陽)에 도착한다. 장성한 남녀 4인을 태운 소형 승용차에 동승(同乘)하여 고깃집으로 간다. 은성(殷盛)한 불빛 아래 따사로운 정담(情談)이 오가고 환한 웃음과 대화가 꽃을 피운다.자리를 옮겨 ‘파안재(破顔齋)’에서 생선회로 함께하는 훈훈한 술자리는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다. 내일은 청춘들과 함께 우포늪에 가서 ‘따오기’ 비상하는 모습을 보리라 생각한다.하지만 이튿날 기상하여 채비를 마치고 나니 창녕 오가는 길이 너무 멀다. 행선지(行先地)를 밀양의 영남루와 위양지로 바꿔 우중(雨中)에 출발한다.밀양의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이라고 큰아들은 힘주어 말한다. 내리는 빗발 속에서 영남루 누각에는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 살펴볼 따름이다. 사명대사 동상과 무봉사(舞鳳寺)의 석조여래좌상을 뵙고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흉상과 생가를 구경하고 위양지로 옮아간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대구에서는 끝물인 이팝나무에 하얀 꽃송이가 탐스럽게 달릴 것이라 기대한 나는 ‘어이쿠’ 한다. 몇몇 작은 나무에만 꽃이 흐드러졌을 뿐, 거목에는 이제야 대궁이 얼굴을 내밀고 있던 터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서 대화를 잇다가 길이 물에 잠긴 곳에 이른다. 황토물이 거리를 막아서는 바람에 다수가 걸음을 돌린다.이런 작은 곳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는 밀양시청의 둔감함을 생각한다. 노자는 이것을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柔曰强)’이라 했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여행을 마감한다. 남산 자락에 구름이 자꾸만 올라간다.

2023-05-07

아이를 죽이는 교육

김규종 경북대 교수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은 일 년에 단 하루 있는 어린이 ‘해방의 날’이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공부에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혹사당하고 있는지를 보다 못한 유엔이 나서서 어린이들에게 휴식과 놀이를 권고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지구촌에서 이토록 가혹하게 어린이들을 공부로 닦달하는 두 나라가 있으니, 인도와 한국이다.교육에 관한 대표 저서로 사람들은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꼽는다. 당연한 일이다. 1762년에 출간된 ‘에밀’은 260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시의성과 설득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에밀’이 출간된 해에 조선의 영조는 27살 먹은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굶겨 죽였다. 문명과 야만의 지극한 대비가 선연하다.‘에밀’이 출간되기 7년 전인 1755년에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기막힌 통찰을 선보인다. 학문은 무위에서 예술은 사치에서 나왔다고 일갈한 것이다. 그 문장을 읽던 순간 온몸을 관통(貫通)하는 전율에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농업혁명으로 촉발된 잉여(剩餘) 농산물이 불러온 계급과 문명 그리고 국가의 탄생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던가!훗날 출간된 ‘사회계약론’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이론적 기반이 되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유럽 제국주의가 남미의 은을 약탈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유럽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여 계몽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마침내 산업혁명과 정치혁명까지 일어나 유럽은 그야말로 근대를 일구는 첨병으로 세계사를 쥐락펴락하지 않았던가!‘에밀’을 읽다 보면 수능시험 하나로 귀결되는 우리의 초중등 교육의 야만적이고 살인적인 경쟁교육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어린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참혹하고 처절한 교육 아닌 교육이 교육의 탈을 쓰고 주인 행세하는 나라! 어린이를 타고난 본성에 따라 교육해야 인간답게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루소가 살아있다면 뭐라 할 것인가?!노예처럼 공부만 하는 아이는 불행하다고 외치면서 루소는 미래 행복을 위해 시작하는 교육은 야만이라 못 박는다. 대학입시 하나만 보고 초등에서부터 선행학습으로 달려가는 이 나라의 21세기 극성 엄마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18세기 ‘에밀’. 어린이를 천재 혹은 수재로 만들고 싶어 안달 난 숱한 엄마들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루소는 말한다.“어린 시절 지나친 독서는 아이에게 재앙이다. 호기심으로 글자를 익히게 하고, 아이의 어휘를 아이에게 맞는 수준으로 제한하라. 아이는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사고해야 한다.”공부 잘하는 자식을 선전하고 과시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 엄마의 과욕이 아이를 정신적·육체적 예비 장애인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참혹한 현실! 자기의 말을 노예처럼 순종해야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는 엄마는 미래에 자식이 남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루소는 질책한다. 당신이 아이를 위한다는 구실로 강요하는 살인적인 교육을 그만두지 않으면 아이는 평생 고통받을 것이다. 이제는 제발이지 멈출 때다.

2023-04-30

같은 것 달리 보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얼마 전 중간시험 감독을 하다가 손에 얻어걸린 작은 책자를 읽다가 생각에 잠긴다. 몇 년 전 우리 학과에서 초빙한 신임 교수의 글에 눈과 마음이 간 것이다. 그는 20년 전의 자신과 요즘 학생들을 비교하면서 아주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2020년대 대학생들이야말로 단군 이래 최고의 이력과 지적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수많은 지식과 정보에 노출되고, 체험을 통해서 예전 세대가 꿈도 꾸지 못한 것을 몸소 경험한 세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과 친하기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그들만큼 뛰어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세대는 일찍이 우리에게 없었단 것이다.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화기에 백과사전이 내장돼 있기에 필요한 어휘나 골자만 써넣으면 언제 어디서든 정보가 얼굴을 내미는 세상 아닌가?! 따라서 그는 요즘 세대를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지 말고, 외려 그들의 가능성과 미래를 믿는 편이 낫다고 결론 맺는다.나는 그에게 동조하기도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2020년대 청년들이 휴대전화로 지식과 정보 검색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엔 동의한다. 빠른 손놀림으로 그들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휴대전화에서 얻는다.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진 ‘사자성어(四字成語)’다. 문제는 이런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를 청춘들이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중고등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교수들 입에서 나온 지 한참 지났다. 세계사나 인문 지리를 공부하고 진학한 인문대나 사회대, 경상대 학생들이 거의 없다. 한국사는 물론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역시 깜깜이다. 시험을 위한 시험 ‘수학능력시험’에 맞춰서 찍는 훈련만 한 것인지 속이 답답할 지경이다. 모든 면에 너무나 캄캄절벽이다.전화기에 들어있는 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쓰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그때그때 주머니에서 머리에서 가슴에서 꺼내서 쓸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잠시만요, 하고 검색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가장 큰 문제는 독서량의 절대 부족과 기본적인 한자 혹은 한문 능력 부재에 있다.손가락 몇 번 두드려서 얻어내는 지식과 정보는 이내 잊힌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가고 상실한다. 고금동서 막론하고 진리다. 여기저기 책을 읽고 어렵게 찾아가며 묻고 기록하고 생각하면서 얻어야 진정한 지식과 정보로 남는 법이다. 더욱이 우리는 중국과 일본, 대만과 함께 유구한 ‘한자문화권’에 속한다. 최소한의 한자나 한문은 지식 습득에 필수적이다.각고(刻苦)의 고생 끝에 대학에 온 것은 대견하고 환영할 일이지만, 수능을 대신할 근본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때다. 강제된 독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독서와 한문 공부도 절실하다. 봄이 깊어가는 시절에 새삼 젊은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한다. 곧 소쩍새 울 것이다.

2023-04-23

세월호 대참사 9주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시간이 흐른다. 어제가 세월호 대참사 9주기였다. 참으로 신속하다. 열일곱 열여덟 살 먹은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흘러갔다니 실감 나지 않는다. 결코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사건으로 생떼 같은 청춘 250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자들은 희희낙락하며 절을 찾아다니며 정치 행각을 해대고 있으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그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구들방에 장작불을 넣고 있었다. 촌집으로 들어온 지 3주 남짓 시간이 흐른 때였다. 저녁 어스름 무렵 뒷집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당신 집으로 들어섰다. 왜 그러세요, 하는 내 물음에 텔레비전도 안 봐, 하고 대답한다. 집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던 나는, 안 봅니다, 했다. 그랬더니, 이를 불쌍해서 어쩌누, 하면서 연신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그날 밤에 나는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는 걸! 그 후 강의실에서 나는 경북대 학생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나 같이 나이 먹은 자들의 잘못이라고!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유민 아빠 김영오씨와 동조 단식을 하러 광화문으로 갔다.8월의 후텁지근한 기운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음습하고 뜨거운 열기와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속에서 수도승처럼 앉아 있던 그이를 잊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46일 동안 단식을 이어간 그의 초인적인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다. 단 한두 시간만 그런 자세로 앉아 있으면 무슨 말인지 실감할 터다.이듬해인 2015년 4월에 나는 청도에서 출발해 진도 팽목항 분향소에 다녀왔다. 6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진도 남쪽 끝에 자리한 팽목항 분향소 근처는 노란색 물결이었다. 305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던 분향소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영정 사진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저토록 많은 생명을 앗아간 자들은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온갖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었다. 제 나라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희희낙락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파렴치한 철면피는 마치 철가면(鐵假面)처럼 주둥이가 째진 채 허연 이를 히죽 드러내고 웃는 것만 같았다.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젊은이 159명이 다시 죽어 나가는 참사가 일어났다.지금까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뭉개고 있는 정부 여당의 행악질과 후안무치는 전임 정권과 판박이다. 툭하면 선진국 타령하는 인간들의 가증스러운 행태가 되풀이되는 와중에 발생한 대참사였다. 젊은이들과 어린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작태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세월호 9주기의 소감이다. 올해도 조기(弔旗)를 내걸고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빌었다.

2023-04-16

꽃다지와 꽃샘추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배운 첫 번째 노래가 민중가요 ‘꽃다지’와 동물원의 ‘거리에서’였다.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하고 시작하는 ‘거리에서’가 시나브로 입안을 맴돌았다. 처연하고 서정적이며 내장(內臟) 깊숙한 곳을 푹, 찔러오는 가사와 음조가 날마다 흔들리던 나의 내면을 후려갈겼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유학 나가기 전에 나는 적어도 30곡 정도의 민중가요를 알고 있었다. 쾰른에서 첫 번째 어학 과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작은 잔치(kleine Fete)를 했을 때 ‘이 산하에’를 부른 일이 기억난다. 러시아 민요 세 곡을 알던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함께했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이 산하에’였다. 야경꾼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늦은 밤 도서관에서 귀가할 때도, 뭔가 애잔하고 답답할 때도 길동무가 돼주었던 노래가 ‘이 산하에’였다.그런데 ‘꽃다지’라는 낯선 노래가 주는 정감은 색다른 것이었다. 강력하고 웅혼하며 유장(悠長)한 노래들과 결이 다른, 애틋하고 섬세하며 가슴을 아프게 저미는 노래였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 밤 캄캄한 창살 안에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무력감과 무기력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약한 자아를 고백하는 민중가요라니! 그래서일까?! 어렵지 않게 서둘러서 노래를 배우고 익혔다.세월은 물처럼 흐르고 사라져 자취도 없는데, 어제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언론은 ‘꽃샘추위’라 규정한다. 모든 꽃이 일제히 피어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통렬한 3월도 지났는데 느닷없는 꽃샘추위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뒷집 할머니는 윤이월로 인해 봄이 늦고 늦추위 있을 거라 했는데, 요즘 일기는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인간이 지구별을 끝없이 착취한 결과로 자연파괴(自然破壞), 기후변화, 환경위기가 초래된 것 아닌가?!마당에는 올해 꽃다지 풍년이다. 작년에 군데군데 앙증맞은 자태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를 거듭한 꽃다지였다. 그랬던 녀석들이 마당을 점령할 태세다. 꽃다지와 함께 새로 주둔한 제비꽃들의 위세도 대단하다. 작년에 쑥과 우슬, 민들레를 정리하고 난 후 안심한 게 화근이다. 꽃집 주인 말로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나 떨어지면 그 30배에 이르는 꽃씨가 퍼져나가 군락을 이룬다고 한다.한편으로 무척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론 저 많은 녀석을 어찌 감당하리, 하는 걱정도 찾아온다. 마당을 절반 넘게 차지했던 사초(조릿대)와 쑥, 민들레의 추억이 아직도 삼삼하다. 잔디 심은 마당을 건사하노라면 거의 날마다 호미로 불원초(不願草)와 전쟁해야 한다. 풀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잔디 형상을 유지하는 것이 게으르지 않은 주인 행색이라 수고로운 노동을 아껴서는 아니 된다.입김마저 하얗게 나가는 아침마당에서 때늦은 한기(寒氣)와 만나면서 인생살이 곳곳에서 나를 덮쳐왔던 크고 작은 시련을 생각한다. 봄꽃 흐드러진 봄날의 정한(情恨)이 깊어만 간다.

2023-04-09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김규종 경북대 교수 책이란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온다. 스무 살 무렵 읽은 소설이 나이 들어 다시 읽을라치면 전혀 새롭게 읽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예외가 아니다. 학부 시절 나는 ‘어린 왕자’와 ‘윤동주 평전’, 시인들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그야말로 ‘문청(文靑)’ 흉내를 내고 살았던 게다. 문학적 재능도 강고한 끈기도 없던 나는 시인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러시아 문학 공부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았기로 영어판 ‘어린 왕자’를 밑줄 그어가며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책방에 ‘어린 왕자’를 주문해 단숨에 읽었다. 모자와 어린 왕자 그림이 웃으며 다가왔다.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을 연상할 수 없는 나는 천상 상상력을 잃어버린 천덕꾸러기 어른인가 보다. 하기야 숫자를 사랑하고, 숫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 같은 인간이 순수 동심의 세계를 꿈꾸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리라.‘어린 왕자’를 읽다가 작년 8월에 유명(幽明)을 달리한 이상엽 울산대 철학과 교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교수의 맑고 투명한 웃음소리가 필시 어린 왕자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후를 생각하지 않는 웃음, 앞과 뒤를 재지 않는 흔쾌하고 여유로우며 당당한 웃음. 약간 높은 어조의 전염성 강한 웃음소리를 가졌던 이 교수가 생각난다. 삶에 허여된 시간의 순차성이 무의미해질 때면 잠시 막막해지곤 한다.많은 이가 ‘어린 왕자’의 기막힌 구절에서 삶의 위로나 작은 등불을 찾았을 것이다. B612 소행성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는 지구별에 오기 전에 여섯 개의 별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왕과 사업가, 술주정뱅이와 가로등 켜는 사람, 허영심이 강한 남자와 지리학자를 만난다. 권력과 돈, 알코올과 무의미한 노동, 자만과 학식으로 무장한 어른을 만난 왕자는 상심한다. 지리학자가 추천한 지구별에 1년 동안 머물던 왕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비행사다.왜 그들은 여섯 개의 별에서 하나같이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돈과 권력과 노동과 학문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작가는 묻는다. 지금 지구에는 80억 인간이 각자의 소행성에 유폐된 채 홀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조금 외롭지만,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야 하는 구절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왕자가 여우와 뱀을 만나서 지혜와 신생(新生)을 얻고 자신이 떠나온 별로 돌아갔음은 다행한 일이다.‘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름다운 몇 구절을 소개한다. “어른도 처음엔 어린이였어.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지.”우리는 자연과 담을 쌓고 21세기 20년대를 살아간다. 오늘날 자연은 어린이들이 ‘체험’하는 대상으로 전락했고, 밤하늘의 별과 달은 망각(忘却)된 지 오래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만연한 사회지만 별을 헤아리고 별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23-04-02

재난의 정수리로 돌진하는 청춘

김규종 경북대 교수 3월 8일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만화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2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 3년 동안 새로 만들어진 풍속도 가운데 하나가 영화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영화 관객이 확연히 줄었다. 천만 관객 영화가 드물지 않은 영화판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비싼 입장료다. 조조할인을 받아야 1만1천원이니, 젊은 세대에게는 적잖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이런 형편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순항하고 있는 게다. 영화는 이른바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면서 재난 드라마와 사랑 이야기까지 동반한다. 그렇다고 구성이나 사건 전개, 갈등과 해결이 밋밋하지 않다. 한 마디로 신카이 마코토의 저력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역작이다. 규슈에서 시작하여 시코쿠의 에히메를 지나 혼슈의 고베와 동경에 이르는 장정(長程)이 지루하지 않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강도 7 이상의 지진이 지나간 곳이다.일본을 괴롭히는 전통적인 자연재해는 화산 폭발, 태풍 그리고 지진이다. 태곳적부터 이런 자연재해에 익숙해진 일본을 우리는 매뉴얼 사회라 부른다.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전해주는 재난 공화국 일본. 하지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망연자실 우왕좌왕 뒤죽박죽, 문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 정권이 아베 신조의 자민당으로 넘어갔다.12년 세월이 흐른 2023년 3월 일본은 대지진을 얼마나 극복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스즈메의 문단속’은 이런 정황을 배경에 두고 ‘지금과 여기’의 일본을 보여준다. 평범한 여고생 스즈메와 그녀가 등굣길에서 마주친 대학생 소타가 자연재해와 대결하는 장면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문단속’은 도둑이나 강도를 막아내는 작은 범주의 노동이지만, 영화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조금은 낯선 제목이다.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일본 열도는 화산과 지진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다. 언제 어디서든 지진과 화산이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감독의 설정이 흥미로운 게다. 청춘남녀가 재난의 한복판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영웅성을 사랑의 당의정(糖衣錠)으로 달콤하게 포장한 ‘스즈메의 문단속’. 그래서 젊은 관객들의 발길이 영화관에 이어지고 있다.무기력과 무능력,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표현되는 현대 일본 청년들의 모습과 딴판인 남녀 주인공의 사유와 행동이 가슴을 따사롭게 적신다.만약 일본의 청춘들이 저런 양태로 성장·변화·발전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의 힘은 도전과 모험 그리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른다.영화가 막을 내릴 즈음 한국 청춘들의 얼굴과 생각과 행동이 어른거린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그들의 내면 풍경과 장쾌한 미래기획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2023-03-26

나의 몸과 마음은 누구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의 몸과 마음은 그대들의 것인가?!” 학생들 얼굴이 뜨악하다.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몸과 마음은 모두 나의 것이란 자명한 사실을 왜 물어보느냐, 그런 눈짓이다. 문제는 이것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과연 우리 몸과 마음이 우리 것인지, 하는 문제가 단순명쾌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내 몸이 내 소유라면 몸은 언제나 나의 희망과 요구에 따라야 한다. ‘멘사 클럽’에 들어갈 만큼 머리는 명민해야 하고, 걸출한 운동선수의 체격과 체력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3년 넘게 고생한 우리로서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실상은 어떤가?! 툭하면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는 육신이 일반적인 현상인 걸 보면 내 몸은 내 바람과 무관한 듯하다.그렇다면 나는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변덕스럽지 않고 관대하면서 언제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나는 초조하고 불안하며 마음에 차지 않고, 툭하면 짜증을 내고, 토라지는 일이 다반사에 옹졸하고 쩨쩨하며 이기적이다.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아우러져 살아가는 일도 종종 있지만, 속으로는 앵돌아져 있으니 불편하기가 유만부동(類萬不同)이다.무언가의 주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조건은 항상성(恒常性)과 주재성(主宰性)이다. 언제나 그러하다는 것이 항상성이다. 들쭉날쭉 넘나듦이 없이 똑 고르게 그 본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내가 원하는 시공간과 상황에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재성’이다. 아무리 곤고(困苦)하고 난처한 상황이라도 내가 바라는 수준을 지켜내고 오히려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녕 그러한가?!이런 설명을 듣고 난 학생들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고민해본 적도 없는 자명한 명제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이 먹은 세대의 사유와 인식은 변화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성찰과 회개(悔改)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인식의 성립과 성장은 쉽지 않다. 반면에 20대 청춘의 영혼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이런 까닭에 그들이 더 나이 먹기 전에 최소한의 지적·정신적인 문제 제기가 절실한 것이다.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식의 전파는 여전히 주입식 교육과 집중적인 암기에 편중되어 있다. 학문과 종교의 차이는 ‘도그마’의 유무에 있다. 언제든 더 올바르고 새로운 진리를 향해 열려 있는 분야가 학문 혹은 과학이다. 반면에 특정한 방향으로 완전하게 닫힌 세계로 돌진하는 것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같은 유일신에 기초한 종교다. 오늘날 한국 대학에서 지식과 정보의 전파과정은 나날이 선교와 비슷해져 간다는 혐의가 짙다.유연한 자세로 학문에 임하려면 결론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명제와 지식과 정보에 물음표를 부여해야 한다. 미래로 열려진 지성의 시대를 기원한다.

2023-03-19

붓다와 니체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발표하게 하고, 운이 좋다면 토론까지 시키는 수업이다. 요즘 학생들은 책과 담을 쌓고 지내기 일쑤다. 살인적인 입시 공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 어린 시절부터 엄마들이 강제한 지긋지긋한 독서, 널려있는 숱한 놀거리. 그것이 학생들에게 책과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리라.이번 학기에 나는 세 권의 책을 학생들과 읽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2030 축의 전환’, ‘대중의 반역’이 순서에 따른 독서 목록이다. 신입생들이 마주하는 급변한 환경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여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책을 고른다. 니체 하면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그가 남긴 저작 가운데 한 권이라도 통독한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고전의 범주에 들어선 책의 운명이 필시 모두 그러할 것이지만.약관 25세에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 니체는 28세인 1872년 ‘비극의 탄생’을 출간한다. 고전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비극의 쇠퇴 원인 그리고 비극의 부활을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에서 통찰한 명저다. 니체가 제기하는 철학적-정치적-사회학적 논지는 이분법에 기초하는데, 그 출발을 알린 서책이 ‘비극의 탄생’이다. 하지만 10년 만에 니체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교수직을 사임한다.소액의 연금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던 니체는 편두통과 가슴 통증, 극도의 근시, 마침내는 정신질환까지 견뎌야 하는 고난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용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일갈은 나약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21세기 20년대에 아주 유효하다. 니체는 이 세상을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으로 보았다.생로병사 외에도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의 인생 팔고(八苦)를 주장한 붓다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 불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붓다가 내세운 ‘팔정도(八正道)’는 의미심장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추구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먼 길이다. 위대한 수행자나 깨달음을 찾아 나선 ‘납자(衲子)’들에게는 맞춤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하튼 붓다와 니체는 모두 세상을 고통의 도가니로 보았다.대상을 보는 같은 눈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붓다는 끈기 있는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 인간을 옥죄고 있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삿된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호수의 물처럼 평정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위대하고 깊다. 붓다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방일(放逸)하지 말고 정진하라!’니체는 고통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짓치고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나약하고 섬약한 영혼과 육신으로 일신의 안락과 장수만을 추구하는 삶은 무가치와 무의미로 귀결된다고 역설한다. 힘들고 괴로운 세계와 정면 대결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인간이 초인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장수와 행복을 아침저녁으로 탐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들을 보면 니체는 뭐라고 할 것인가?!

2023-03-12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이 오고 있다. 작년보다 월등히 추웠던 겨울이 지난주 금요일 오후를 기점으로 봄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갔다. 목요일 오전 영하 7℃, 금요일 오전 영하 5℃를 끝으로 청도는 앞으로 영하의 아침을 만나기 힘들어질 모양이다. 하지만 겨울의 여파는 곳곳에 남아있다. 작년 이맘때에는 홍매가 졌을 터인데, 올해는 아직도 봉오리 상태로 몸을 닫아걸고 있다. 봄의 첫 번째 전령인 영춘화(迎春化)가 이제야 노란 꽃송이를 선보이기 시작한다.대구 동촌 유원지 전봇대 아래 하얀 냉이꽃이 앙증맞게 피어났다. 도심의 소음과 매연과 인총(人叢)들의 무관심을 이겨내고 청정하게 피어난 냉이꽃에 마음이 짠해진다. 대구 문화방송국 주변 욱수천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버드나무에도 도톰하게 꽃눈이 올라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선화 꽃대가 시나브로 키 자람을 하고, 원추리와 루드베키아, 봄까치꽃도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 흐드러질 참이다.길을 걷다가 나무에 손을 대본다. 겨우내 차가웠던 나무에도 조금씩 온기가 느껴진다. 창천(蒼天)의 구름도 살이 붙어 통통하다. 저녁 7시나 되어야 캄캄해지는 사위(四圍)를 뚫고 금성과 목성이 천상에서 유희하는 장면은 경이롭다. 그것을 지켜보며 증인 구실을 하는 하얀 반달이 어느 참엔가 노랗게 색깔을 바꾼다. 겨우내 고요했던 지붕에 참새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조류의 소음과 추함은 여전하다.밤하늘의 별들이 찬란하게 빛났던 차고 아름다운 시절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떠나가고 있다. 모든 떠나는 것에 동반하는 만가(輓歌)에는 슬픔과 아쉬움이 깃들기 마련이지만, 겨울과 봄의 교체에는 그런 징후가 없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생명의 약동과 환희가 대지와 하늘과 인간들의 아수라판에 범람할 것이기 때문이다. 10월 말까지 이어질 뭇 생명의 환호작약과 괄목상대와 욱일승천의 기세에 미소(微小)한 인간의 개입이 불가능하다.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문자 조합은 자연보호(自然保護)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겠다니! 마치 세 살짜리 천둥벌거숭이가 부모를 부양하고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과 다를 바 없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과 지난 2월 6일 터키와 시리아를 덮친 지진을 생각해보라. 인간은 자연을 보호할 수도 없고, 자연은 인간의 보호를 바라지 않는다. 인간은 수많은 생명과 어울려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일 따름이다.자본주의와 과학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괴물인 근대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자연 정복이다. 과학에 터를 둔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오만에 빠진 인간은 ‘계몽’이란 허울 아래 자연을 인간의 하위에 자리하도록 했다. 그것이 불러온 파괴적인 양상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해진 일부 괴짜 사내들은 화성 탐사와 인간의 달 이주 계획을 서둘러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정말로 희화적인 지구의 풍경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개발이익과 업적을 챙기려는 시커먼 욕망의 무리가 거악을 만들어낼 태세다. 우리의 봄과 자연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2023-03-05

청년들에게 삶을 허하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실업계 10대 여고생 소희의 자살을 조명한 영화 ‘다음, 소희’를 보면서 절망한다. 고교생 신분으로 콜센터에 현장 실습하러 간 소희가 마주한 현실은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것이었다. 악의적인 고객들의 악담과 폭언, 희롱과 협박을 끝까지 참으면서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소희. 실적을 초과하는 성과를 내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팀장의 약속은 허언이 되는데, 그것은 학교가 회사와 실습생을 상대로 체결한 이중 계약서가 원인이다.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실업계 고교생들의 자살과 사고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20∼30대 청년들도 마주해야 하는 죽음 역시 익숙한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2022년 1월부터 실행된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기업들과 전경련이 극구 반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2023년 1월 26일 기준 229건에 이르는 처벌법 적용 사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에 불과했다.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죽음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협력기구(OECD)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한국은 23.6명을 기록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수치는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통계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인의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10대 사망의 43.7%, 20대 사망의 56.8%, 30대 사망의 40.6%가 자살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창한 젊음과 화사한 미래기획으로 찬란한 빛을 발하는 10대부터 20∼30대 청년들이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삶을 접고 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젊은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이른바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문제, 우울감, 사회적인 소외와 고독 같은 빤한 원인만 들먹일 뿐 묘안은 없다. 더욱이 자살을 대비하는 예산은 연간 417억 수준으로 일본의 6조7천억에 비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하기야 홀로 죽고 난 연후에 발견되는 연간 고독사 전국 통계조차 온전히 잡지 못하는 죽음의 후진국이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나라에서 삶의 의미가 얼마나 진지하게 수용될 것인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사정이 이럴진대 정부와 언론이 날마다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합창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극도로 낮은 출산율 때문에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며 하루가 멀다 않고 떠들어대는 인구문제가 더는 새롭지도 않다.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여 사회의 일원이 된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청년 세대가 자살과 사고로 줄지어 죽어 나가는데, 무슨 출산율 타령인가?! 주객전도(主客顚倒)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 아닌가?!우리 곁에 있는 생명은 뒷전이고, 아직 오지 않은 생명만을 간절히 희구하는 희화적(戱畵的)인 장타령(場打令)을 되풀이하는 희한한 나라의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삶을 허하라!

2023-02-26

동주를 생각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래전 일이다. 서관에서 강당을 거쳐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정한숙 선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선생의 자세가 이상했다. 오른손을 눈썹 위에 갖다 붙이고 경영대 방향 동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궁금증이 많은 나는 선생께 여쭈었다. “뭘 보십니까?!” “안 보이나?” “글쎄요?” 나도 선생을 따라 같은 자세를 취했으나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 특별한 건 안 보입니다.” “저기 멀리서 봄이 오고 있어.”‘뭐지?’ 하고 나는 혼잣말했다. 노교수의 눈에는 봄이 오는 것이 보였으나, 젊은 육신의 내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노소(老少)의 문제가 아니었다. 봄을 간절히 그리는 초로의 교수와 봄이 아쉽지 않은 청춘의 차이가 불러온 결과가 아니었나 한다. 정한숙 선생이 지금도 떠오는 것은 “시는 무조건 암송해야 한다”는 소중한 말씀 때문이다. 선생의 ‘소설 기술론’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말씀이 그것이다.신입생 시절에 나는 두 가지 일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하나는 손에 닿는 대로 시인들의 시집을 찾아 읽고 마음에 드는 작품은 외우는 것이었다. 윤동주, 이육사, 서정주, 한용운 시인의 작품이 주요 대상이었다. 여기 덧붙여 시인들의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그 둘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영어판을 아껴서 읽는 일이었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어린 왕자’를 선물하곤 했다.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적잖은 시를 기억한다. 시조와 한시, 일본의 하이쿠 몇 편도 번역으로 기억하며,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도 암송한다. 정한숙 선생의 말씀은 진리였다. 암송하지 못하고 군데군데 이가 떨어져 나간 시편(詩篇)은 아쉽기 그지없다. 요즘도 불가(佛家)의 서책이나 유가(儒家)나 도가(道家)의 경전 가운데 마음을 흔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기억하려는 자세는 그때 생겨난 것이다.지난 2월 16일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가 세상을 버린 날이다. 1917년 12월 30일 태어나 해방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세상과 작별한 동주. 그와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던 후배 정병욱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동주에 관한 안목을 넓혔던 기억도 어제처럼 선연하다.“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을 모두 헤일 듯합니다.”로 시작하는 ‘별 헤는 밤’과 연관된 정병욱 선생의 글은 잊히지 않는다. 본디 ‘별 헤는 밤’의 마지막 연은 “따는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였다고 한다. 병욱은 마지막 연이 너무 허전하다는 말을 동주에게 전했고, 두어 달 뒤에 동주가 마지막 연에 새로운 부분을 덧붙였다는 것이다.“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부끄러운 자신을 부정하는 청년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시인의 면모를 아름답게 그려낸 동주. 창밖 촉촉한 빗소리가 봄을 부르는 듯하다.

2023-02-19

역사적인 판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2월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명백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면서 원고에게 3천만 원과 관련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재판부는 한국군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6월 12일 작전 중에 원고 가족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원고의 이모와 남동생, 언니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원고와 오빠가 중상을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완료됐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 역시 원고가 처한 심각한 장애 사유로 발생한 늦은 권리행사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이번 판결에 한국인들의 증언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해병대 소속 증인들이 한국군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10월 해병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 파병을 기점으로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4만8천여 명을 베트남에 보냈다. 그 결과 5만여 명의 베트남인을 죽이고, 한국군 5천여 명의 사망자와 1만여 명의 부상자, 2만여 명의 고엽제 환자가 생겼고, 총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언젠가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시작해 다낭에 이르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방문 목적은 베트남의 전쟁역사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는 예외 없이 전쟁역사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에서 방송으로 안내하는 베트남 전쟁 전개 과정이 처음에는 영어로 바로 다음에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특이하게 다가왔다.파리를 관통하는 센강의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프랑스어, 영어, 도이치어 순서였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전쟁역사박물관을 찾은 푸른 눈의 여행객들은 실망을 감추지 않고 한국어 방송 도중에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미안함이었다. 남의 나라 내전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하여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학살한 대가로 10억 달러 벌어서 조국 근대화의 소중한 종잣돈으로 썼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20세기 국가들이 보이는 공통의 행태가 있다. 그것은 고대에는 자국(自國)의 위용은 과시하고, 현대에는 피해자로 자신을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일본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다윗과 솔로몬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되, 디아스포라와 유대인 학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이스라엘. 임나일본부설과 찬연한 만세일손의 국가로 자부하다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만 누누이 강조하는 일본. 그런 대열에 우리도 합류하기 일쑤였다.이번에 나온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배상 판결은 역사적이다. 가해자로서 대한민국의 책임을 물음으로써 가증스러운 일제와 그 후예들에게 우리의 역사 인식과 책임감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베트남에서 한 짓은 눈 감고 왜 우리에게 사죄를 요구하느냐’ 하는 일본인들의 역겨운 시선을 일거에 날려버린 판결이기 때문이다. 재판부에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2023-02-12

굳어진다는 것

김규종 경북대 교수 타로 카드로 나를 보니까 거꾸로 매달린 남자 ‘행맨’이 나온다. 인식대상을 거꾸로 보는 인간이 행맨이다. 사람들이 대상을 보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보는 행맨. 어쩌면 그것은 나도 알고 있던 속성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것을 온존·강화해온 것도 틀림없는 나였다.나는 남들처럼 보는 것도 행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싫었다. 나름의 고유하고 독특한 별세계를 구축하고 확장하고 싶었던 때문이다.나를 그렇게 키워온 배경에는 타고난 성정 말고도 집안 분위기와 사회·역사적인 환경이 자리한다.‘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외워야 했던 어린 시절, 10월 유신을 외쳐야 했던 중학 시절, 교련 검열을 받아야 했던 고교 시절, 군사교육을 받아야 했던 학부 시절, 그리고 광주 학살과 신군부의 철권통치,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과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끝없을 것 같던 압제와 폭력과 죽음과 검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저 암흑의 20세기 중후반!수줍고 내성적이며 우울한 기질의 소년은 세월과 더불어 청년이 되고 장년을 지나 초로의 단계에 들었다. 삶에 대한 그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져서 이제는 화강암 수준으로 단단해졌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진 내면세계는 타자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물 한 방울 스며들 공간조차 없을 만큼 굳어진 자아는 행맨의 면모를 훨씬 강고하게 인도한다. 그런 자아에 구원이 가능할 것인가?!세상에는 ‘인연’이 존재한다. 언젠가 손에 들게 된 불가(佛家)의 책들이 여러 각도로 문제를 던진다.‘벽암록’, ‘붓다 연대기’, ‘반야심경’, ‘금강경’, ‘법성게’ 등에서 나는 오랜 수수께끼와 대면한다. ‘그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역’ ‘계사편’에 나오는 ‘무평불피 무왕불복’이란 말도 있지만, ‘생자필멸 거자필반’ 역시 소용되는 구절 아닌가?! 그러다 ‘오온개공(五蘊皆空)’에서 꽉 막혀버렸다.‘색수상행식 오온’이 왜 모두 공하다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반야심경’ 260글자는 그저 글자로만 남는다. 2년 넘도록 생각했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어느 날 ‘법문’을 듣다가 ‘저렇게 이해하면 되겠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문제는 나의 분별하는 마음과 분별에 기초한 얕은 지식이 깊고 너른 이해를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굳어진 세계인식과 사고방식이 장애물인 셈이다.인식대상이 인간이든 사물이든 세상이든 현상이든 나의 분별은 너무도 강력하고 완악하여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내면에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무장한 채 똬리를 튼 자아의 철옹성을 스스로 혁파하지 않으면 출구는 없다. 굳어진다는 것은 젊은 시절에는 자아확립 차원에서 유용한 덕목이지만, 나이 든 연후에는 거대한 걸림돌로 작동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강력하되 부드러워질 수는 없을까?!‘상선약수(上善若水)’를 설파한 노자를 다시 읽어봐야 할 모양이다. 부드럽고 연약한 물에 내재한 강력한 물성과 본성을 재삼 살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봄이 멀지 않다!

2023-02-05

일본은 귀감인가? 타산지석인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영국 방송협회(BBC)’ 동경 특파원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기자가 일본 생활 10년을 돌아보며 쓴 기사가 흥미롭다. 이 기사의 일본어 번역을 읽은 일본인이 100만을 넘고, 공감을 표시한 사람도 1만5천명이 넘었다 한다. 루퍼트 기자가 들여다본 일본과 일본인의 명암에 관한 내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1980년대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잘 살았지만, 지금은 영국인보다 넉넉하지 못하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세계 3위 경제 대국이고, 기대수명도 가장 길며, 범죄도 적고 정치적인 갈등 역시 거의 없는 나라다. 그런 일본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이유로 루퍼트는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와 교체되지 않는 지배층,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배척과 순혈주의를 들었다.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40년 만에 작은 섬나라에서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배경에는 일본의 관료집단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창설한 독일 제도를 도입·강화하여 일본 국립(제국)대학 졸업생들을 기반으로 고시를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관료제를 실행했다.2차 대전 이후 일본에 상륙한 맥아더는 제국주의에 물든 일본을 변화시키려 애썼으나 관료제만은 바꾸지 못했다. 고시를 통해 관료를 뽑아온 일본에 제국대학 출신을 제외하고는 쓸 만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제국대학은 동경대학, 경도대학, 오사카대학, 북해도 대학 등이 있다. 지금도 건재한 이들의 영향력으로 일본은 관료공화국이라 불린다.루퍼트는 지배 세력이 변하지 않는 것도 일본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지적했다. 예컨대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전범으로 체포됐으나 교수형을 면하고 나중에 총리가 된다. 그가 창당에 참여한 자민당은 지금도 일본을 지배한다. 루퍼트에 따르면, 메이지 유신과 2차대전 후에도 살아남은 일본 남성 지배층은 민족주의와 ‘특별한 일본’이란 확신으로 무장하여 일본이 침략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믿는다는 것이다.이른바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인들의 삶이 피폐해졌는데도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는 것은 콘크리트 지지층인 ‘지방 거주’ 노년층의 영향이 크다고 루퍼트는 말한다. 노년층에 권력이 있고, 저출산으로 젊은이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사회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얘기다. 일본 사회의 빈약한 시민사회단체도 여기에 한몫한다. 일본인들에 내재한 외국인 혐오와 배타적인 태도 역시 일본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루퍼트는 강조한다.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가? 일본의 근대를 모방 답습한 한국 역시 관료공화국이다. 대통령과 국회의 지배집단은 5년이나 10년 단위로 권력을 교체하지만, 관료집단은 그야말로 철밥통에 ‘복지부동’이다.서울 강남을 필두로 한 ‘신지배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지방의 노년층 역시 강고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의 귀감이 아니라, 타산지석임을 인식하는 것이 우리가 일본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는 유용한 방책이 아닐까.

2023-01-29

오지선다와 확증편향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의 끝에 독자에게 다섯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것은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로 나뉜다. 이것은 하나의 기사를 두고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예를 들어보자. 2023년 대학입시에서 정시 지원자가 하나도 없는 학과가 26개에 이르렀는데, 이들 학과의 공통점은 지방대라는 것이다.지방대 위기가 날로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해법은 단순·명료하다. 지방대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교육부가 가지고 있던 대학재정 지원 권한을 2025년까지 모두 지방자치단체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학령인구 감소와 장기 간의 대학 등록금 동결로 인한 대학재정 악화, 서울과 경기도 소재 대학과 지방대 격차 심화 같은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지방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정책이다.이 기사를 본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추천해요 1, 좋아요 1, 감동이에요 2, 화나요 7, 슬퍼요 4였다. 좋아요와 추천해요를 누른 독자는 이 기사의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논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화나요와 슬퍼요를 누른 독자는 지방대 위기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응 방안에 부정적인 태도와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난해한 대목은 감동이에요를 누른 사람들의 내면세계일 것이다.감동적이라는 말에는 ‘어떤 대상이나 정황에 마음이 크게 동요하는 것’을 뜻한다.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평균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자기희생이나 지고지순한 행위를 경험할 때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 그런데 지방대 위기의 현황과 해법에 관한 정부-여당의 대응에 관한 기사에서 감동적인 구석은 찾기 어렵다. 사정이 이럴진대 감동이에요를 선택한 사람들은 평균인의 사유와 인식을 초월하는 지경에 있다.2차대전 이후 일본 영화의 중흥을 이끈 영화인 가운데 한 사람이 구로사와 아키라다. 그가 1950년 연출한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몽’(1915)과 ‘덤불 속’(1922)을 결합한 것이다. 1951년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라쇼몽’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엇갈리는 세 가지 시선을 보여준다. 백주(白晝)에 벌어진 사무라이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각이 극명하게 나뉘어 관객을 전율케 한다.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견해와 태도를 지키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이나 사회·정치적인 상황 등에 따라 개인의 사유 방식과 행동 방식이 결정된다. 이렇게 형성·고착된 의식을 확증편향이라 한다. 확증편향은 편견과 선입관으로 강화되며, 그 결과 나이 든 세대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비아냥거리는 풍조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민주주의에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공론장이다. 나와 당신, 우리와 너희의 엇갈리는 견해와 태도를 열린 공간에서 말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우리는 단 하나의 관점, 획일적인 동조, 편파적인 정파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긍정적인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 감동이에요를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2023-01-15

세계 6위와 세계 21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연초에 엇갈리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발표한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에서 한국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간지에 따르면,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 가운데 하나가 됐고, 세계 최대 규모의 저축량과 외국인 투자액을 기록한 국가다.‘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해마다 세계 85개국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군사력을 포함한 국가 영향력을 설문 조사해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순위에 있는 국가를 보면, 미국과 중국, 러시아, 도이칠란트, 영국이며, 프랑스가 7위, 일본이 8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과 함께 음악과 영화, 텔레비전 같은 대중문화를 선도함으로써 최강 1위를 지키고 있다.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 공정성 지수’를 발표했다. 신문은 인권 존중과 법 준수, 무역의 자유, 환경에 대한 배려 등 10개 지표로 세계 84개국을 평가했다. 신문은 이것을 ‘정치와 법의 안정성 (30점)’, ‘인권과 환경 (30점)’, ‘경제 자유도 (40점)’ 등 3개 영역으로 계량화하여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 자유도 28점, 법의 안정성 25점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인권과 환경 16점으로 중하위권에 머물러 종합 68점으로 21위를 기록했다.‘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나라는 86점의 아일랜드였다. 일본은 77점으로 11위, 미국은 74점으로 17위였다. 34점의 중국과 33점의 러시아는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문이 내린 결론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세계화가 효율성을 우선했다면, 이제는 효율성과 공정성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벼락부자의 시대가 아니라, 인간적인 교양과 품위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두 가지 조사를 보면 우리가 나갈 방향 표지판이 보인다. ‘잘살아보세’라는 한 많은 표어를 들고 일로매진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넘사벽’으로 여겨지던 경제 강국 일본을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성세대인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에게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보였던 일본을 돌파한 한국인들의 저력이 새삼 가슴 뿌듯한 것이다.그러나 뿌듯한 가슴을 진정하고 주변을 살피면 상황은 급변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강고해지고, 승자독식의 아수라판이 날마다 펼쳐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지방과 지방대의 소멸과 서울·경기도의 승승장구, 재벌과 대기업의 압승과 하청(下請) 중소기업의 몰락, 도시와 농어촌의 커져만 가는 격차,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아우성이 나날이 높아만 간다. 경제 격차는 필연적으로 정치와 문화·사회격차를 잉태하고, 그것은 대물림으로 이어진다.‘니혼게이자이’의 평가지표인 인권과 환경에서 낙제점인 16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가 아니라,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넉넉하고 여유롭게 ‘호시우행(虎視牛行)’하는 자세가 절실한 계묘년 2023년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다.

2023-01-08

국토교통부 유감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길은 추상과 구체의 양면성을 가진 단어다. 우리가 걷거나 교통편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나 있는 가시적인 물상(物像)이 길이다. 인도나 보도, 자전거 전용도로나 국도나 고속국도 혹은 철도를 본보기로 들 수 있다. 물과 바다, 하늘에도 길은 있다. 일컬어 수로와 해로 그리고 항로라 한다. 둘 다 길인데 도(道)와 로(路)로 나누어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 무슨 까닭이 있을 터.“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기막힌 명제를 남긴 공자에게 도는 필생의 목표였다.노자의 명저 ‘도덕경’에는 도와 덕의 의미와 작용원리 및 쓰임새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여기서 도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오랜 세월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근본방책으로 도를 추구해왔다. 따라서 도에는 추상과 구체의 양면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21세기 인공지능 로봇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인간은 추상적인 의미의 ‘도’를 상실했다. 의도적으로 내다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도가 이젠 쓸모없다고 판단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반면에 길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나날이 깊어져 간다. 2023년의 첫날인 1월 초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승용차와 고속버스, 열차와 비행기, 선박편으로 해돋이를 보려고 길 떠났는지 우리는 안다. 그들에게 길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길을 걷노라면 인도가 갑자기 사라진다. 차도는 멀쩡한데 인도는 오간 데 없다. 한국의 길은 자동차와 기업체를 위해 존재한다. 이런 현상은 수많은 학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도는 있는데, 인도나 보도는 차도에 밀려나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크고 작은 인명사고가 잇따른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부근에서 인도 없는 차도를 걸어가던 아이가 승용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농촌에 사는 나는 두려울 때가 적잖다. 시골길에는 가로등도 한적하다. 그러다 한밤중에 느릿하게 달리는 경운기나 자전거 혹은 보행자와 느닷없이 마주치는 수가 있다. 등골이 서늘하다. 왜 국토교통부는 야광 표시기가 없는 경운기와 자전거 판매를 아직도 허용하고 있는가. 캄캄한 길을 달리는 승용차가 경운기나 자전거와 추돌하는 장면을 국토부 관료들은 상상이나 해보았는지 궁금하다. 야광 표시기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30년 전 도이칠란트를 유학할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는 밤이면 전조등이 빛나고,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을 받으면 타이어에 부착된 야광 표시기가 초록과 노랑과 빨강으로 환하게 반짝였다. 거리도 밝았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의 안전장치가 거의 완전하여 자동차와 자전거의 추돌과 충돌은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선진국 타령하는 대한민국 국토교통부의 관료들은 여전히 경운기와 자전거의 안전장치에는 전연 무심하다.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가 존립하는 제1과 제1장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공무원이라면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책무라도 수행하면서 연봉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2023-01-01

대학입시와 지적 호기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했고,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알고 싶은 욕망, 지적 호기심(好奇心)이다. 한국동란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는 네팔의 산악인 텐징 노르가이의 도움을 받아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다. 그들보다 30년 앞서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가 정상 수백 m 앞에서 실종된 조지 멀로리(1886-1924)는 기막힌 명언을 남긴 사람이다.“산이 거기 있으니까.”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나는 이 말을 다른 형태로 변용한다. “코끼리나 도마뱀, 공룡이나 악어, 침팬지나 개구리가 산소통 짊어지고 에베레스트에 오른 적이 있던가?!” 왜 인간은 극한의 고통을 참으며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의 정상에 오르려 하는가?! 그것은 하나의 이유로만 설명할 수 있다. 궁금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이고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 등반가의 마음은 또 어떤지. 호기심은 진화 사다리의 정점에 인간을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과 높아진 시야, 언어능력 이외에도 인간은 지평선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동아프리카 지구대를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시기를 유발 하라리는 7만년 전, 다니엘 밀로는 5만8천년 전, 홍윤철은 5만년 전으로 상정(想定)한다. 그들이 활용하는 고고학 자료와 문건이 상이하기 때문이다.호모사피엔스의 최초 이동이 오늘날 지구촌의 초기 역사를 결정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바나에 남거나, 유럽으로 넘어가거나, 아시아와 호주 쪽으로 이동하거나,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거나! 이런 분기점의 차이는 사바나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새로운 땅과 물에 대한 사피엔스의 거역할 수 없는 지적 호기심에서 발원한다.호기심을 자극하는 원천은 인간의 뇌(腦)다. 뇌는 인간 몸무게의 2%를 차지하지만, 기초대사율 비중은 20%에 이른다. 여느 신체 기관보다 월등한 에너지 소비량을 자랑하는 것이 뇌다. 뇌가 활발하게 작동되어야 인간이 자격이 생겨난다는 얘기다. 인류의 생존비법이자 진화 사다리 정점에 도달한 근본적인 동력이 뇌에서 나왔다는 증거다. 그런데 요즘 청춘들은 뇌를 본래의 기능에 맞춰서 쓰지 못하는 듯하다.생각하는 능력으로 여타 생명체를 압도한 인간이 21세기 시점에 스스로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나의 조국에서 강력하게 현현하고 있으며, 책임소재의 상당 부분은 대학입시에 있다. 독서와 사색, 글쓰기와 토론에 기초한 교육 대신에 암기와 찍기 능력 향상을 목표하는 수능은 폐지되어야 한다. 중고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말살하고 성적순으로 서열화를 강요하는 악랄한 대입제도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자라나는 청춘들에게 자유롭고 활달한 상상력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대입제도의 도입이 시급한 시점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분발을 새삼 촉구한다.

20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