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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머니를 보내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토요일 한가로운 오후의 적막을 깨뜨리는 전화 수신음! 뭔가, 이런 시각에 나의 고막을 어지럽히는 소리는?! 동생의 갈라지고 긴장된 목소리가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래 알았어! 정리하고 바로 올라갈게. 이따가 서울에서 보자.” 잠시 망연한 상태에서 생각을 수습한다. ‘그래, 올 것이 왔지만, 너무 이르군. 예상치 못한 타격이야.’삶은 언제나 느닷없이 문제를 던진다. 해결 능력과 무관하게 불쑥 난제를 던지고 가버린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새침한 얼굴로 시간과 인생은 흘러간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 대응책은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던가?!언제나 예외는 있다. 19년 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음이 그랬고, 이번 어머니의 별세가 또 그러하다. 88세 ‘미수(米壽)’라서 형제-손자들 모여 잔치해드린 게 열흘 남짓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젊었던 시절 아버지가 떠나셨을 때는 천붕(天崩) 같은 슬픔과 설움이 밀어닥쳤더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오랜 세월 꿋꿋하게 버티신 어머니였기에 이르단 느낌은 있지만, 마음의 붕괴는 없다. 다만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뜻깊게 보내드리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붓다의 가르침과 절집 큰스님들 말씀에 귀를 기울이셨던 어머니. 어머니께 고타마 붓다의 의미심장한 설법과 삶의 본령을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것이다.남편과 자식과 손자들 걱정으로 늘 괴로워했던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 깊은 연민을 품었더랬다. 그래서 몇 번은 작심하고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어머니, 이제는 저희와 애들 걱정은 내려놓고, 어머니 인생과 다가올 죽음을 생각해보시면 어떠세요?!”어머니는 내 생각에 반대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 대한 자신감과 우월의식 그리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었을 터다. 부모 자식의 인연이 무려 8천 겁이라는데, 장구한 세월의 인연이 축적돼 현생에서 마주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추는 여러 색깔로 현현한다.강렬한 의지와 욕망과 진취적 기상이 남달랐던 어머니. 그래서 남처럼 성취하지 못한 꿈과 욕망으로 괴로워했던 어머니. 이제, 그런 건 내려놓으시고, 어머니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와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버지와 우리 자식들과 맺어온 인연의 의미와 향기를 성찰하면 어떠시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어머니.누구에게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생활양식이 있기 마련이라, 나는 어머니에게 차마 강권하지는 못하였다. 내가 개입할 성질의 인생을 어머니는 살아오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던 터다. 어찌 감히 간섭하겠는가?! 다만, 이제는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다 내려놓고 편히 먼 길 떠나세요. 당당하게 염라 만나서 화통하게 웃으시며 어머니 일생을 이야기하세요. 어머니, 고생 참 많이 하셨어요! 편히 쉬세요!”

2021-06-22

버림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애초 보름 예정으로 시작한 집수리 공사가 한 달을 넘기게 되었다. 2층 베란다에 창유리 끼우고, 들뜬 외벽 보강 정도 생각했는데, 7년 넘긴 목조주택은 곳곳에서 사람의 손을 부르고 있었다. 하기야 시간과 더불어 쇠락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잠시 생각한다.공사를 지휘하는 박 대목(大木)은 마당의 조경도 손보았으면 한다. 주밀(綢密)하게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가 분위기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진 나는 왕벚나무를 전지한다. 벌써 몇 차례 가지를 쳐냈으나, 왕성한 번식욕과 과시욕을 제어하기에 역부족이다.대문 좌우에 번성한 황매와 장미 그리고 조팝나무에도 전지가위가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쓰지 않는 닭장이 눈에 거슬린다. 닭장 거주자였던 청계 9마리는 재작년 전남대 교환교수로 나가기 전에 이웃에게 넘겨주었다. 빈 닭장은 창고로 사용해왔던 터다. 그것이 거슬려 철거하기로 한다. 여분의 공간이 생겨난 마당이 한결 널찍하고 시원하다.내부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오랜 세월 입지도 쓰지도 않는 물건이 지천으로 넘쳐났다.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들여다보고 버리기로 한다. 아쉬울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 그렇게 버리자고 마음먹고 정리하기 시작하니 일곱 부대가 쉽게 나온다. 그동안 나와 함께 있었으나, 따로 살았던 사물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퇴락한 추억과 완전하게 작별한 기분이다.물건을 정리하다 든 생각은 채움보다 버림이 어렵고 쓸모 있다는 게다. 이 물건이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누가 주었는지, 언제 받았는지, 무슨 쓸모가 있는지 가물가물한 사물의 연이은 행렬. 다용도실과 옷장, 책상과 장식장, 주방에서 나온 물건들에 담긴 나의 다채로운 욕망은 찬란하되 누추한 것이었다. 처연한 인간의 탐욕이여!덕분에 오래 묵은 과실주와 안 쓰던 물품이 본연의 자리를 꿰차고 의젓하게 앉았다. 더러는 돌아보고, 더러는 살펴서 쓰지 않는 물건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옛것이 오래도록 자리를 차지하면 새것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버려야 비로소 새로운 것이 자리 잡고 활동을 개시할 수 있을 터다.우리 내면의 오래되고 익숙한 습관과 사고방식도 오래된 물건과 매한가지다. 반성과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행동과 사유는 인간의 생기와 미래기획을 좀먹는다. 어제와 그제처럼 영위되는 오늘과 내일의 삶은 짙게 낀 이끼처럼 눅눅하고 축축하기 마련이다. 버리지 않은 혹은 버리지 못한 물건은 우리의 견고한 자기방어와 관련이 있다.시간과 더불어 축적된 자신만의 생활방식은 안전하고 아늑하며 편리하다. 그것을 매너리즘이라 한다. 매너리즘은 낡고 둔탁하지만, 익숙한 옷이나 물건처럼 우리를 아늑하게 인도한다. 그런 평안함과 익숙함이 우리를 타성과 습관의 눅눅한 늪지대로 인도한다. 거기서 우리는 환경과 습속의 수인(囚人)이 되어 사멸의 길에 접어든다. 버릴 것은 버릴 일이다!

2021-06-15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하자!

김규종 경북대 교수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은 누구일까?! 온갖 고난과 난관을 돌파하지만 끝내 위로받지 못한 장발장인가, 법률의 주구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자베르인가, 아니면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다가 그를 대신해 총 맞고 죽은 에포닌인가?! 단언컨대 미혼모이자 코제트의 엄마인 팡틴이 제일 불쌍하다.팡틴은 바람둥이 애인 톨로미에스에게 버림받고 홀로 코제트를 기르다 악질적인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아이를 맡기고 공장에 들어간다. 200년 전 프랑스는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미혼모를 박대했다. 미혼모에 문맹인 팡틴은 공장에서 쫓겨나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다가 아이 때문에 머리털을 자르고, 생니를 뽑다가 끝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만약 그녀가 문맹이 아니었다면, 인생 행로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무상으로 교육하지 않는 사회는 죄악’이라고 주장한 위고는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관철한다. 1880년대 일이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조선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을 당시 프랑스는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깃발을 들어 올린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대학과 대학원도 무상으로 교육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가운데 16개국이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학교육을 개인의 선택과 비용으로 치러야 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과 일본 정도다. 내가 유학했던 도이칠란트는 1945년 제2차 대전으로 나라 전체가 폭삭 망해버린 그 이듬해인 1946년부터 전면적인 대학 무상교육에 돌입한다.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의 그들이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한 까닭은 교육이야말로 그들의 미래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변변한 부존자원이 없는 도이칠란트의 미래 먹을거리는 오직 교육에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모든 외국 유학생들까지 무상으로 교육했다. 나는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많은 국민이 부실한 사립대학 문제와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걱정한다. 천만번 옳은 말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부실 사립대학은 ‘사립학교법’을 시급히 재정비하여 퇴출하거나,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재편해야 한다. 국가가 대학교육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 분명히 타개할 방도가 있으리라 생각한다.재정적인 면은 훨씬 수월하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에 따르면 대학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정은 연간 12조원 정도라고 한다. 지난 2006년부터 작년까지 15년 동안 정부는 200조가 넘는 돈을 출산장려대책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참담하다. 작년에는 사망자 숫자가 신생아 숫자를 능가하는 ‘데드크로스’까지 발생했다.애먼 일에 헛돈 쓰지 말고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면 대학 무상교육은 분명히 가능하다. 무상교육으로 젊은이들과 학부모들의 큰 시름 덜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출산 장려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와 교육부는 거시적이고 대승적인 판단을 했으면 한다.

2021-06-08

보는 것과 듣는 것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날이 저문다. 불후의 명곡 ‘봄날은 간다’가 귓전을 쨍하니 울리는 시점이다. 왔으니 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하되 봄이 오는 것은 반갑지만, 가는 것은 아쉽다. 우리에게 ‘보는 것(봄)’의 향연을 차고 넘치도록 선사한 화사한 봄날이 퇴장을 준비하는 시절이다. 하기야 소만(小滿)은 벌써 지났고, 6월 5일은 망종(芒種)이다.너른 들을 걷다가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 들린다.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소리는 들리지만,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저런 새소리를 금방 구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숨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문득 물 위를 걷듯 달리듯 뛰듯 분망하게 돌아다니는 꼬마물떼새 두 마리. 청아하고 높은 음색의 소리 주인공은 그들이다.작고 여윈 녀석들에게서 저리 높고 맑은소리 나오는구나, 생각하니 형상과 소리의 부조화와 불협화가 떠온다. 크고 두터운 생명의 소리는 낮고 둔탁하며 위압적이다. 작고 여린 생명체의 소리는 날카로우며 앳된 서정과 동행이다. 그런데 홀연히 들려온 저들의 소리는 예상과 달랐으니, 형상과 소리의 어긋남이다.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의 거리에서 오는 불협화는 유쾌함과 당혹감을 선사한다. 당연한 기대치를 단박에 박살 내는 현장감을 뭐라 해야 할 것인가! 묵직하고 살집 좋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경이로울 때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기에 예단은 언제나 금물이다.대상을 인식할 때 동원하는 최초의 감각기관은 눈이다. 시각이야말로 정보를 수신하고 판단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단이다. 오감 가운데 으뜸이 시각인 것은 당연지사. 오죽하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법전(法典) ‘경국대전’에서도 최악의 장애를 ‘맹인(盲人)’으로 판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하지만 보는 것, 즉 외관(外觀)은 우리를 속인다. 조선 선비 이직의 말처럼 ‘겉 희고 속 검은 이’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정신을 놓고 실패를 경험한다. 시각을 보완하는 가장 적절한 감관(感官)이 청각인 까닭은 거기 있다. 소리를 듣고 대상을 온전하게 판단하는 것이다.얼굴이 모두 다른 것처럼 누구에게나 고유한 목소리가 있다. 소리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과 성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각에 압도된 나머지 청각신호에 대체로 태무심(殆無心)하다. 봄날은 보는 것의 나날들이다. 그 봄날이 간다. 보는 것의 시간이 흘러가면 열매 맺는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 이 시기에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시각이 아닌 청각이다.요즘 부쩍 꾀꼬리와 소쩍새 울어대고, 개구리는 밤늦도록 울면서 시절을 알린다. 저런 낱낱의 생명체에게 허여된 시절이 오고 가면서 자연의 순환과 우주 운항은 어김없이 진행된다. 이제 여름의 노래에 귀 기울일 때다!

2021-06-01

집을 수리하면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중량 목구조로 신축한 지 어언 7년. 벽면이 들뜨고, 그 사이로 습기 들어오고, 유리창 없는 베란다에는 비바람으로 물이 고이기도 한다. 손을 볼 때가 온 것이다. 와중에 참새들이 극성하여 지붕 틈새마다 둥지 틀고 새끼 키운다고 야단이다. 수소문한 끝에 정직하고 성실한 시공자를 만나게 됐다.“전체적으로 최소 2천500에서 3천 정도 생각하셔야 합니다.”“네?! 승용차 한 대 값이네요!”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애초 집을 지으면서 신중하게 숙고해야 할 것인데, 워낙 단과반이 체질이라 속도전으로 임한 것이 화근이다. “저는 야맵니다!” 그 말 한마디에 훅 가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다. 시골에 목조주택을 신축하는 일은 적잖은 배포와 과단성이 필요하다. 나는 전광석화처럼 밀고 갔다.짜장과 짬뽕 사이의 선택이 어려운 것처럼 건축업자 선택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을 단박에 던져버리고 “잘해봅시다!” 한 마디로 일사천리 밀어붙인 것이다. 뭐, 그렇다고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농촌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행복은 빼놓지 않고 향수(享受)한 까닭이다. 하지만 집도 사람처럼 늙는다.늙고 낡아가는 집을 방치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노자는 그것을 가리켜 “합포지목 생어호말(合抱之木 生於毫末) 아름드리나무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이번에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손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여러 근심 물리치고 “해봅시다!” 하고 수리를 결정했다.꼼꼼하고 매사에 치밀한 성품의 박 대목은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을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마당의 초목 재배치까지 일러준다. 내가 가꿔온 마당을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것이어서 나로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사 와서 심은 여러 나무며 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그것을 제때 손보지 않은 탓에 혼란하다는 것이다.집을 손보면서 집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누추해지기 전에 요모조모 뜯어보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도 누추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만큼 앞서서 질주하는데, 나만 낡은 것을 고집함도 희극적인 일이다. 수구와 보수가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시대착오적인 것을 전통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다.유연한 자세로 대상을 보고, 변해가는 세태를 주목하면서 나의 삶과 자세를 반추해보는 일은 늦게 늙는 기본이다. 나이 들어서도 천방지축 시대를 앞서가려는 것도 우습지만, 앞장선 사람들을 꽁무니에서 손가락질하는 것도 차마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21세기에 가마나 당나귀 타고 나들이하겠다는 것과 무에 다른가?!집수리가 말끔하게 끝나면 마당 정리는 스스로 감당하려 한다. 방아쇠 손가락만 아니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습하고 더운 주말 오후가 서서히 저문다. 창밖에 새 운다.

2021-05-25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김규종경북대 교수지난 5월 11일은 세 번째 맞이하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1894년 3월 20일 (음력) 봉기한 동학 농민들은 조선의 낙후한 봉건 체제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일제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고자 두 번째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은 그해 4월 7일 (양력 5월 11일) 황토현 전투에서 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하려 했던 동학농민혁명은 오늘도 우리를 비추는 등불이다.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고부(정읍)에서 봉기한 동학 농민군은 파죽지세로 4월 27일 전주에 입성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왕조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여 5월 5일 아산에 청병 3천이 상륙한다. 호시탐탐 조선 침략을 노리던 일본은 5월 6일 인천에 4천 병력을 투입한다. 내정 문제가 국제전쟁으로 비화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지게 된 형국이다.전봉준은 조선 정부와 서둘러 27개 조목의 ‘폐정개혁안’을 맺고 화의한다. 그 가운데 14개 조목이 전하는데, 크게 두 갈래다. 그 하나는 왕의 총명을 가리고 국권을 농락하는 무리를 몰아내고, 탐관오리를 처단하라는 국정 쇄신이고, 그 둘은 민생고를 해결하라는 방책이다. 수령과 관장(官長)들의 적폐를 일소하고, 각종 부역과 세금을 낮추라는 것이다.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런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리가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동학 농민군은 전라도에 집강소 53개를 설치하여 직접 개혁에 나선다. 이에 전라감사 김학진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 ‘폐정개혁안’ 12항이 합의되기에 이른다. 탐관오리와 횡포한 부호, 불량한 양반과 유림의 징벌, 노비문서 소각, 칠반천인(七班賤人)과 백정의 차별철폐, 청상과부의 재혼 허가, 토지 분작(分作) 등이 ‘폐정개혁안’에 담긴다.신분제로 인한 적폐의 누적과 그것이 양산해내는 탐관오리와 유림의 징벌, 최하층 인민의 존중은 조선왕조를 지탱해온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노비문서를 태우고, 과부의 재혼을 허가하며, 토지를 평균하여 분작한다는 것은 혁명 이상을 담고 있다. 1392년 성립하여 장장 500년 세월을 이어온 늙고 쇠락한 왕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 자명하다.나는 토지의 평균 분작에 특히 주의한다. 토지를 경작하는 자가 토지를 소유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천명한 것은 획기적인 사변이기 때문이다.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오랜 불평등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대목 ‘토지의 평균 분작’이다.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LH’ 비리로 다시 불거져 나온 부재지주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동학농민혁명으로 더 크게 들려오는 듯하다.예나 지금이나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명제는 국가의 첫 번째 존립 조건이다.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어느 국가든 정권이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동학농민혁명은 오늘도 명명백백하게 웅변하고 있다.

2021-05-11

이순신과 영화 ‘명량’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1년 4월 28일은 충무공 탄생 476주년 되는 날이다. 조선왕조 518년 사직을 돌아보면 세종과 이순신이 선두에 있다.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약관 21세에 왕위에 올라 훈민정음을 비롯한 문물 정비로 조선의 기틀을 놓은 이도(李7979) 세종. 조선 초기 정비되지 않은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 후세 왕들의 모범이 된 인물 이도. 그는 당 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늦깎이로 과거에 급제한 이순신은 몇 차례 난관을 뚫고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거북선을 건조한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이후 전공을 세운 그는 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 총사령관에 오른다. 그 후 이순신의 행적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백의종군하던 그는 전함 12척으로 적선 133척과 맞붙어 승리하는 ‘명량대첩’을 진두지휘한다.2014년 7월 30일 개봉된 ‘명량’은 1천762만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게 한다. 왜 ‘명량’에 수많은 관객이 몰렸을까, 하는 의문은 같은 해 4월 16일 온 국민을 낙담과 절망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대답한다. 안산 단원고교 250명 학생을 포함한 305명의 귀한 생명을 수장(水葬)시킨 씻을 수 없는 ‘국가범죄’가 21세기 첨단정보통신 국가에서 발발한 것이다.실시간 중계된 ‘세월호 대참사’는 우리에게 국가의 부재와 권력자의 실종이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빤히 보이는 배에, 서서히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죽음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치를 떨어야 했다. 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권력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도록 만들었던 해양 참사가 우리를 바닥 모를 추락으로 인도했다.‘명량’에서 이순신은 ‘충’에 관해 맏아들 ‘회’와 나누는 대화에서 결연히 말한다.“충(忠)은 의리(義理)다. 의리는 왕이 아니라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누란지위의 백성을 지켜낸 이순신의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었다. 417년 전 이순신의 생각과 실천이 임진왜란의 극복으로 나타났다면,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충이 없는 대통령의 권력 유희였다. 현대국가 존립의 첫 번째 근거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국가로 불리지 못한다.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의 권력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 있다.국가의 이름으로 국난극복의 선두에 섰으되, 파직과 고문을 겪어야 했던 이순신. 모친상도 치르지 못한 채 백의종군에 임해야 했던 이순신.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낸 이순신. 그런 지도자를 염원했던 사람들이 ‘명량’에 환호했다.충무공의 탄신을 맞이하여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는 난관의 중심에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자리해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떠올리는 것이다.

2021-04-27

4·19와 ‘진달래’

김규종 경북대 교수올해도 어김없이 4·19가 돌아왔다. 요즘은 4·19 혁명기념일로 부르지만, 내게는 4·19가 익숙하다. 마치 5·18 광주 민중항쟁이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보다 5·18에 친숙한 것처럼. 벌써 61년 전 일이 된 4·19. 나처럼 나잇살 먹은 인간에게도 60년 세월은 무겁게 다가온다. 하물며 요즘 20~30대 청춘들이야 무슨 말을 더하랴!어떤 친구가 4·19 무렵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와 ‘노찾사’ 가수 김은희를 소개한다.“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맷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戀戀)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이호우 시조시인의 여동생이자 현대시를 썼던 이영도. 훗날 유치환과 주고받은 연서로 세상에 알려진 시인. 경북대 교수 몇 사람과 청도에 있는 두 시인의 고택을 찾았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허리춤까지 자라난 무성한 풀과 허물어져 가는 벽체와 달려드는 모기떼 등쌀에 쫓기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으니 말이다. ‘새마을운동’의 출발지를 자랑하는 일 말고는 문화와 예술에 담을 쌓고 살아가는 청도군수와 주민들….여하튼 이영도의 ‘진달래’와 김은희의 노래는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 후로 해마다 4·19가 오면 ‘진달래’를 틀어놓고 지내기 일쑤였다. 오늘 그 일이 다시 생각나 김은희 공연 실황을 찾아보았다. 1992년 ‘학전 소극장’에서 김은희 ‘진달래’는 시퍼렇게 살아서 극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처연하고 애절하여 우리의 내장 깊은 곳을 파고드는 김은희의 놀라운 가창력!다시 세월이 흐른 2013년 12월 ‘윤선애와 친구들’ 공연에 동참한 김은희의 ‘진달래’를 들어본다. 20년 세월 지나간 시간의 흔적과 무게를 가까스로 견디고 앉은 김은희 ‘진달래’는 그저 단아한 소품으로 고요했다. 그렇다! 모든 것을 무화(無化)하는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 김은희의 처절한 통곡은 여유로운 노랫가락으로 쓸쓸하고 허무하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하기야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시간 아니었던가! 그래서일까, ‘패왕별희’의 정접의(程蝶衣)가 40년 가까이 변치 않는 목소리로 우희(虞姬)를 노래함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이 먹은 김은희를 이제는 조용히 놓아 보내기로 한다. 1960년이든, 1992년이든, 2013년이든, 2021년이든 혁명은 언제나 청정하고 청청(靑靑)해야 하기에. 세월과 더불어 늙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혁명과 변혁의 사변뿐이리.어김없이 찾아온 4·19를 맞자니 흘러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스럽게 솟구친다. 그러나 그리움이 퇴색하지 않으려면 그것을 현재화해야 한다. 4·19에 새겨진 영혼과 정신을 반추하면서 그날 쓰러져간 영령들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4·19를 살리는 길은 4·19와 함께하는 일이 유일한 방도임을 확인하는 아침나절이 깊어간다.

2021-04-20

벚꽃과 이화 사이에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쌀쌀하고 바람 불며 비 뿌리던 날이 지나고 그야말로 화사하고 포근한 봄날 하오. 꽃 활짝 피어난 배나무 옆 바위에 앉아 상념에 젖는다. 그때 엥, 소리 내며 벌 하나 배꽃으로 날아든다. 오각형 하얀 배꽃의 내부는 외양만큼이나 정갈하고 허허롭다. 뭐, 가져갈 게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매끈하고 밋밋한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는 꿀벌.민들레는 키가 작아도 빽빽한 꽃잎 안에 꽃가루며 꿀이 그득하다. 벌의 좌우 다리와 온몸에는 노란 화분(花粉)이 공처럼 매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화(梨花)는 아름답고 깔끔한 생김새처럼 내부 역시 단아하다 못해 적막하다. 그런데도 꿀벌은 쉬지 않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저공 비행한다. 참 부지런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고개를 돌리니 벚나무에서 꽃잎 몇 조각이 하늘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진다. 주어진 시간 소진하고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 벚꽃 보노라니 ‘화엄일승법계도’의 문장 하나 떠오른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티끌 하나에도 우주 전체가 들어있다! 떨어지는 미소한 꽃잎 하나에도 우리가 경험하는 지구뿐 아니라, 측량 불가능한 우주 전체가 담겨있다는 사유와 인식.하나에 전체가 들어있다는 인식과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이 한순간이고, 한순간이 곧 영겁의 시간이라는 성찰은 또 어떤가! 문득 허무해지기도 하고, 내가 꼬물거리며 간신히 지탱하고 꾸려가는 삶의 자락들이 돌연 허접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에도 나름의 의미나 무게가 있으리라 위로하면서 자신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삶의 근본원리이므로!다른 한편 신카이 마코토의 만화영화 ‘초속 5센티미터’(2007)가 떠오른다. 첫사랑의 달콤하고도 아픈 기억을 모티프로 펼쳐가는, 기막힌 서사와 장면과 상념의 응어리가 한데 어우러져 숱한 망상과 꿈을 되살려내는 영화. 너무 일찍, 너무 깊게 만나버린 어린 청춘들의 엇갈린 사랑을 담담하지만 후벼 파듯 그려내는 신카이 마코토.어째서 벚꽃은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 속도로 누군가에게 다가서고, 왜 우리는 그 속도로 누군가에게서 멀어지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라, 서서히 준비되고 기획되는 이별의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는 사실은 가슴 저미게 하는 바 있다. 변해가는, 포기해가는,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을 제때 알기만 했다면!….한쪽에서는 한창 피어난 이화가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빛나던 시간대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보내놓고 하염없이 떨어지는 벚꽃이 있다. 피는 것과 지는 것, 태어나는 것과 소멸하는 것, 만나는 것과 헤어지는 것, 이런 순환과 반복의 영원한 도돌이표 안에서 우리 인생은 마지막 그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가?!하지만 나는 허무하고 쓸쓸한 상념을 꿀벌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한다. 맹렬하게 노동하는 녀석에게 삶의 허무 따위를 함부로 말하거나 가르쳐서는 아니 되기에! 봄날의 하오가 긴 그림자 끌며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2021-04-13

순천 기행

김규종 경북대 교수꽃이 피고 지는 계절에 길 나서는 일은 축복이다. 울산 친구가 잠시 기거하는 순천을 목적지로 길 떠난다. 서울에서 오는 친구를 순천역에서 마중하여 상사면으로 동행한다. 그 좋던 날이 연이틀 비와 구름과 습기로 촉촉하다. 상사호(上沙湖) 벚꽃길에 넘치게 떨어진 희고 분홍의 이파리들이 우리 발목을 잡는다. 낙환들 꽃이 아니겠느냐, 하는 심정으로 녀석들을 본다.여정은 선암사로 이어진다. 태고종 본산으로 승선교(昇仙橋)로 유명한 선암사.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승선교는 언제 보아도 아름다움과 온유함으로 질리는 법이 없다. 반원형의 원만한 모습은 태생적으로 날카로운 나의 부족한 면모를 여지없이 일깨운다. 비는 혹은 굵게 혹은 가늘게 내리기를 되풀이하면서도 멈추는 법이 없다. 그래도 어이 하랴, 이 좋은 봄날의 향연을!절집을 돌다가 각황전 마루에 앉아 농반진반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데, 방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노스님이 나오신다.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하는데, 온화한 낯빛의 스님은 싫은 기척이 없다. 그래서 “이런 고적함을 어찌 견디십니까”하고 여쭈었다. “그저 인내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지요”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단양 사인암에서 만난 젊은 납자(衲子)의 대답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고독이란 수행자의 도반인 모양이다.우리는 순천만 갯벌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주말이지만 코로나와 봄비로 습지를 찾은 사람은 많지 않다. 고요함과 넉넉함을 누릴 수 있는 행운에 감사드리며 뻘밭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칠게와 짱뚱어가 돌아다니는 회색의 두툼한 뻘밭에 뿌리를 내린 갈대는 아직도 지난 계절의 호흡으로 살고 있다. 숱한 생명이 영역을 구획하여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장면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것이었다.친구가 낙조를 완상한다는 해변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런 날에 낙조는 불가능하지만, 분위기는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썰물로 드러난 작은 섬 좌우로 비어버린 바다는 적막하고 쓸쓸했다. 하지만 비어있음과 적요로 인한 처연한 아름다움은 상념을 일으켰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한다. 그래, 망상과 몽상으로 점철된 일평생과 어찌 쉽게 작별할 수 있겠는가?!귀로에 들른 한식당의 은성(殷盛)한 실내등과 화사한 분위기는 술과 음식을 구하는 길손에게 오아시스처럼 느껴진다. 아, 그런데 희한한 녀석이 시중드는 아주머니와 함께 오는 게 아닌가! ‘아니, 저 녀석은 뭐지?’ 말끔하게 생긴 인공지능 로봇이 반찬이며 술병과 그릇을 빼곡하게 담고 아주머니를 따라오는 것이다. “저,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나의 부탁으로 로봇은 오던 길 돌리더니 다시 우리 곁을 찾는다.인구 28만의 순천에서 진귀한 구경을 한 게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변화의 실마리를 500리 너머에서 찾았으니, 멀리 와서 답을 찾은 셈이다. 지엄 화상을 만난 의상의 처지라고나 할까?! 봄날의 순천 기행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2021-04-06

봄날

김규종 경북대 교수주말에 오신 봄비로 대지가 촉촉하고, 대기는 청명하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지만, 봄날의 정취를 완상하기에 모자람은 없다. 토평(土平) 들과 천변을 향하는 걸음걸이 가볍고, 콧노래 절로 나오는 봄날. ‘동심초’에서 시작하여 ‘4월의 노래’를 거쳐 ‘하얀 목련’을 지나 소월의 ‘못 잊어’로 마무리하는 홀로 ‘걷는’ 노래방. 창고 그늘 밑에 있던 젊은 농부가 슬며시 외면해주는 덕에 황망한 얼굴의 홍조는 겨우 모면한다.흡족하게 내린 비로 논과 밭이 모두 흐뭇한 표정이다. 마늘과 양파가 훌쩍 자라나고, 웃자란 청보리는 적잖게 넘어져 있다. 지난겨울 추위 견디고 시퍼렇게 자라난 보리가 바람에 넘실댄다. 어설픈 날갯짓으로 까마귀는 ‘서(西)으로’ 길 재촉하고, 풀숲의 장끼 푸드득, 소리 내며 밭고랑 사이로 숨어든다. 노란 나비 춤추듯 날고, 곤줄박이 하나 전선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발치에는 풀들의 경연이 한창이다. 노랗고 하얀 민들레와 키가 훌쩍 큰 냉이, 여린 몸에 노란 꽃을 단 꽃다지, 자주색 광대나물과 앙증맞은 제비꽃, 과수원 일부를 저희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큰개불알풀, 이제 막 세력을 확장하는 살갈퀴와 우슬(牛膝), 냉이를 닮았으되, 더 크고 거칠지만 둥근 지칭개, 먹을 수 있을까, 오해 부르는 개쑥갓까지 초록 융단이 깔렸다.길을 걷노라니 완만한 능선 선보이는 장중한 남산 홀로 우뚝하다. 산의 발치에는 진달래와 녹음이 제법 찾아들었고, 종아리 부근에는 자두꽃 자못 화사하다. 허리 부근엔 하얀 산벚꽃이 봄날의 환희를 노래한다. 딱 거기까지였다. 작년 이파리 단 갈색 활엽수들이 아직 겨울에 잠겨 있다. 상록수들만 예나 지금이나 초록으로 대견하지만, 그리 환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가던 길 멈추고 상념에 든다. 산 아래는 봄날의 기쁨과 약동으로 넘쳐나는데,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겨울 아닌가?! 빛나는 꿈의 계절을 완상하지 못하고 침묵에 잠긴 산꼭대기. 봄은 산 아래서 시작하여 등성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다. 하지만 단풍의 가을과 삭풍의 겨울은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등성이 거쳐 아래로 내려온다. 산에서 좋은 것은 아래에 있고, 고단하고 괴로운 것은 위에 있다.우뚝한 정상이 있기에 아래쪽 뭇 생명은 봄날을 노래한다. 정상에는 비바람과 땡볕, 칼바람과 눈보라 거세고, 환희의 날들은 훨씬 짧다. 산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꼭대기에 서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더 많은 것을 감내하라! 편하고 쉽고 달콤하며 아늑한 것은 아래 생명에게 넘겨주어라. 단, 정상에 있기에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전망과 장쾌함을 보상으로 받는 것이라고.하지만 인간 세상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모든 것을 혼자 가지려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사랑까지 독점하려 든다.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데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이제 그만하고 웃으며 양보하고, 나누며 물러서면 어떻겠는가, 하고 말이다. 질시의 시선 받는 고독한 강자가 아니라, 축복과 박수를 받는 그런 부류가 되기를!….

2021-03-30

탐진치 삼독과 LH사건

김규종 경북대 교수석가족으로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소생인 고타마 싯다르타는 29살에 아내인 야쇼다라 공주와 아들 라훌라를 버려둔 채 출가한다. 한밤에 궁성의 담을 넘으면서 그의 흉중에 어떤 상념이 자리했을지 궁금하다. 자리를 보전하기만 한다면 군왕이 되었을 터, 무엇 때문에 6년에 걸친 고행의 길을 선택했단 말인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순환이 그토록 견디기 어려웠던가?!극한의 고행으로 깨달음에 도달하려던 고타마는 수행 방법을 바꾸어 해탈한다. 엄혹한 수행을 통해 카르마를 극복하는 방도는 자이나교에 고유한 것이다. 고타마는 그런 방식으로 열반에 이르지 못한다. 그가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근거는 고행마저 놓아버리는 데서 발원한다. 내려놓고 다시 내려놓음으로써, 비우고 또 비움으로써 그는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한다.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에 나오는 ‘초발심시변정각’에 들어맞는 깨달음이다. 득도하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그 후의 경지가 ‘생사열반상공화’다. 삶과 죽음, 열반이 늘 조화롭다는 것이다. 생과 사의 미묘한 차이, 깨우침과 어리석음이 지나칠 만큼 가깝다는 설파다. 생사와 열반이 하나의 흐름에 있다는 깨우침의 경지가 일순간 성취되는 현장.붓다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는 오래도록 묵상(默想)에 잠긴다. 대중의 삶이 처한 ‘삼계개고(三界皆苦)’가 너무도 도저(到底)했던 까닭이다. 세상 모두가 괴로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얘기다. 괴로움의 원인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이다. 삼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중이기에 생로병사와 ‘수비뇌고(愁悲惱苦)’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하여 끝없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고통받는 것이다.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토지주택개발공사(LH)’ 사건은 탐욕에서 출발하여 어리석음으로 끝날 듯하다. 남다른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물질적인 탐욕에 사로잡힌 자들이 보여주는 한바탕의 칼춤! 돈의 노예가 된 자들이 쉽고 안전하게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에 빠져 투기꾼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1년 365일 ‘돈 돈 돈’하고 살아가는 중생들의 탐욕과 타락이 만들어낸 희화의 한마당이 LH사건의 본질이다.문제는 그렇게 돈을 번 자들이 불러일으키는 선망과 질시다. 그들이 얻어낸 불의한 돈과 물질적인 풍요는 직장과 미래기획, 물려받은 재산 없는 2-30대 청년세대를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간다. 돈이 돈을 벌고, 정보가 인맥을 낳고, 인맥이 다시 돈을 물어다 주는 희한한 작태는 그만둘 때다. 불로소득이야말로 공정과 평등에 지극히 어긋나는 대척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경에 누가 피와 땀을 흘려가며 노동하고 싶어 하겠는가?!끝없이 돈을 좇는 것은 갈증을 면하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돈의 갈증은 돈으로 해갈되지 않는다. 그것은 멈출 줄 아는 것에서, 바닷물을 그만 마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자들에게는 법의 엄혹한 심판과 벼락같은 죽비(竹7BE6)를 내릴 일이다.

2021-03-23

교육부를 생각한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종잡기 어려울 만큼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겨울이 마침내 봄에게 자리를 내준 교정에 개나리 노란 물결 넘실거린다. 성질 급한 홍매와 백매 시들어가고, 산수유와 살구꽃이 여기저기 화사한 자태 뽐낸다. 키 작은 큰개불알풀과 민들레, 냉이와 꽃다지가 앞다투어 봄을 맞이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봄은 보는 계절이다. 산야에 넘쳐나는 형형색색의 장관(壯觀)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기막힌 계절이 왔다.그러나 봄을 완상하기에는 마뜩잖은 소식도 있다. 대학입시가 끝난 지금 경향 각처의 신문에 오르내리는 ‘지방대 소멸위기’가 그중 하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입시에서 적어도 1만 명 정도의 미달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200명 이상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한 대학이 위치한 시도는 다음과 같다. 경북 (2), 전북 (3), 강원 (2), 충북 (2), 부산 (2), 경남 (3), 충남 (2), 대전 (2), 전남 (1), 제주 (1). 그야말로 전방위적(全方位的)이다.이런 상황에서 대구대학교는 총장이 사퇴를 선언했고, 원광대학교는 교수협의회 의장이 총장사퇴를 대놓고 요구하고 있다. 총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방대 소멸문제는 일과성 문제가 아니라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지점에 사태의 본질이 있다. 그 하나는 서울과 경기 공화국의 가공할 흡입력이고, 그 둘은 지방에 없는 양질의 일자리다.이 둘은 총장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구조적인 문제다. 가뜩이나 힘겨운 판인데, 안에서 총질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칼자루는 누가 뭐래도 교육부가 쥐고 있다. 대학정원이 지원자 숫자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10여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교육부는 이런저런 제도적인 방책을 제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에 지나지 않는 미봉책으로 드러났다.아파트 투기를 제어하지 못해 오늘의 부동산 문제를 불러온 국토부의 무능과 다를 바 없다. 교육부의 대학정책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나라에 대학정책이란 게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치원부터 초중등 교육은 일선 교육청에 실권을 모두 이양하고, 교육부는 대학정책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 아직도 교육부 장관이 초중등생 등교와 대학입시에 몰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그동안 국공립대학교 연합방안,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방안 같은 여러 대안이 제시되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런 현안을 여러 각도에서 살피고,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물론 2007년에 누더기가 되어버린 ‘사립학교법’이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되, 180석 국회는 무엇 하러 존재하는가?! 악법은 개정해야 마땅하고, 국공립대학은 나름대로 발전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사정이 이럴진대, 교육부 장관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선제적으로 대학정책을 제시하고, 여론을 수렴하여 이제라도 국리민복과 100년의 미래를 당당하게 기획-실천해야 할 것이다.

2021-03-16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동참을!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2월 초하루에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축출하는 쿠데타를 감행한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열렬한 민주화운동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미얀마의 정치상황을 본래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시민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최소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천700명이 넘는 시민이 군부에 억류돼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진정 피를 먹고 자라나는 것인가?!미얀마 시민들의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을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르는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고립무원의 절체절명 상황에서도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일당의 군사 쿠데타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싸웠다. 광주의 피어린 항쟁은 도이칠란트의 위르겐 힌츠 페터 기자의 기록으로 세계 전역에 알려진다. 우리는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그것을 가슴 절절하게 확인한 바 있다.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트위터나 텔레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고 있다. 딴 툿 우(다니엘딴) 동국대 초빙교수는 이런 정황을 “불행 중 다행”이라 말하면서도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이다. 대구 문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시인의 저녁’에 출연한 그는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한국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여러 차례 부탁한다.2007년부터 한국에서 공부했던 그는 동국대 아시아연구원의 초빙교수가 되어 한국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한국인처럼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면서,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격변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희구하고 있다. 그와 대담(對談)하면서 나는 41년 전 절해고도(絶海孤島) 광주에서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롭기 그지없었다.우리는 광주 시민들의 희생 위에 견고한 민주주의의 성채를 세울 수 있었다. 오늘날 경제와 정치,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우리가 도달한 성취의 배후에는 광주의 고귀한 희생이 자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한창 진행되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의 강고하고 열렬한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와 경제의 대표적인 모델이 우리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지구촌 전역의 상황이 순식간에 알려지는 시대에 미얀마 군부의 자국민 살해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총칼로 자국민을 살해하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학살자나 도살자에 지나지 않는다. 1980년 광주에 투입된 한국군이 그러했고, 지금의 미얀마 군대가 그러하다.미얀마 군부의 야만적인 폭거에 대응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하다. 상황이 종식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세대 전에 겪은 학살과 폭력의 기억을 현재화하여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일일 것이다. 스테판 에셀의 말처럼 분노하고 연대하는 길밖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분노하라! 연대하라!

2021-03-09

2·28 민주운동기념일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2월 28일은 61번째 맞은 2·28 기념일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타오른 민주주의를 향한 봉화가 나라 전체로 번진다.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 이승만의 예정된 부정선거에 저항하는 청춘들의 피 끓는 함성이 달구벌에 울려 퍼진다.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급사하는 바람에 이승만은 당선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 이기붕은 장면 민주당 후보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특히 대구에서 그런 양상이 강했다고 한다.올해처럼 1960년 2월 28일도 일요일이었다. 그날 장면 후보의 유세가 신천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자 대구의 8개 고등학교에서는 일요일 등교라는 희한한 고육책을 감행한다. 이런 불의하고 참람(僭濫)한 행태에 반대하여 경북고, 대구고, 대구여고, 경북여고, 경북사대부고, 대구농고, 대구공고, 대구상고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팔청춘 고등학생들이 주역이 되어 독재자 이승만에게 목숨을 걸고 투쟁한 것이 2·28이다.2·28운동은 3월 8일 대전으로, 3월 15일 마산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저항운동의 씨앗으로 작동한다. 마침내 2·28은 위대한 4·19혁명을 촉발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영원히 빛내게 한다. 2·28은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3년 동안 독재의 외길로 일관한 이승만을 권좌에서 축출한 기폭제가 대구의 청년학도들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 뜨겁다.당시 항쟁에 참여한 장주효 선생의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구고 2년생이었던 장주효 선생은 경북고 학생대표 등과 거사를 모의하면서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죽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장가도 못 가고 죽는 게 가장 한스러울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만 18세 소년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눈앞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다. 한편으로 담대하고, 다른 한편으로 천진스러웠던 그들!2·28과 관련하여 인상적인 분은 ‘2·28 행진곡’을 작곡한 백남영 선생이다. 능인고 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동료 김장수 선생이 작사한 가사에 곡을 붙인다. 평양 출신으로 만주에서 활동하던 그는 6·25 한국동란에 대구로 피란 와서 주저앉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는 김장수 선생과 함께 대구에서 ‘4·19의 노래’도 만들었지만, 기억해주는 이가 없는 실정이다.언제부턴가 대구와 경북이 수구의 본산처럼 각인되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1946년 10월의 대구 봉기가 제주의 4·3과 직결되어 우리나라의 아픈 현대사 첫 장을 대구가 연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1960년 4·19 대혁명의 진원지였던 대구는 오랜 세월 자유와 민주를 향한 열렬한 투쟁의 본산이었다. 그러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부독재의 서슬로 풀 죽은 형국이 되어 30년이 지났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30년이면 한 세대가 종언을 고하는 법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불변하는 것은 없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동토(凍土)의 대구에도 산수유와 홍매, 백매 환하게 피어나기를 고대해본다.

2021-03-02

라떼는?!

김규종 경북대 교수한국인은 언어유희에 능하다. 머리가 좋기도 하지만, 한국어에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수의 언어유희가 동음이의어에 기초한 말장난에서 출발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예컨대 내 작은 아이 이름이 ‘우연’이다. 사람들이 “우연이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우연(佑鍊)이요, 우연(偶然)히 잘 있어요!” 우연이가 두 번 겹치면서 듣는 사람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본보기는 끝이 없다.요즘에는 외국어까지 언어유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이 우리 언어생활까지 넘보고 있는 셈이다. 그 가운데 으뜸은 ‘라떼는’이 아닐까?! ‘카페라테’에서 추출된 용어일 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라떼는 말이야’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대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갑질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나이 든 축이 예전 경험담을 일반화하면서 젊은 친구들을 훈계할 때 나오는 말이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어구다.나는 ‘라떼는’에 유감이 많은 사람이다. 염량세태가 변했다 해도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대물림에 기초한다.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아들 세대에서 다시 손자 세대로 무수한 대물림이 21세기 21년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오죽하면 구약의 ‘전도서’ 1장에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구절이 나오겠는가?! 발명이 아니라, 오직 발견밖에 없다는 확신은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나는 대물림으로 수용한다.대물림의 정점에 자리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지금과 여기다. 지금과 여기는 과거의 시공간과 경험 그리고 인과율과 결합한다. 그래서다! 2천500년 전에 공자가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를 설파한 까닭은 이유가 있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선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육자의 첫 번째 조건을 옛것을 익히는 것에 둔 공자. 따라서 새것은 옛것을 바탕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먹은 사람들의 경험이나 방법론을 잔소리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거야 옛날얘기고, 모든 것이 나날이 바뀌는데, 너무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와 같은 생각의 바탕에는 옛것은 모두 케케묵은 것이고 시대착오적이기에 서둘러 내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자리한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20대 청년을 존립하게 하는 것은 ‘지나간’ 20년 남짓한 세월의 삶과 경험에 근거한 과거에 있다. 우리 모두의 지금과 여기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나간 것’에 터를 두고 있다. 과거의 유용한 누적을 기억과 경험 속에 축적한 사람을 우리는 현인이나 원로라고 부른다. 모든 늙은이가 현명하거나 원로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들이 경험한 시공간과 인과율의 깊이와 너비 그리고 목표지점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누군가 ‘라떼는’ 하고 말하면, 잠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누구나 ‘조르바’의 경험을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인생에서 배울 것은 있기 때문이다.

2021-02-23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1년 2월 15일 새벽 백기완 선생이 세상과 작별했다. ‘회자정리’라는 말도 있지만,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로 여겨짐은 비단 나만의 소회는 아닐 성싶다. 그렇다 해서 내가 선생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선생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들어온 두 가지만 회상하고자 한다. 인간사는 작은 기억과 그것의 누적이 희로애락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바 크기 때문일 것이다.1987년 1월 초 ‘민중문화운동연합회(민문협)’ 새해맞이 행사인 단배식이 열렸다. 당시 한국의 민중운동은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이 주도하고 있었다. 민문협은 민통련을 구성하는 단체였고, 백기완 선생이 의장이었다. 민통련 의장은 1994년에 고인이 되신 문익환 목사였다. 모임 장소에는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청춘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활기가 돌았다. 백 선생은 그런 우리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문 목사님 오셨습니다!”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백 선생은 우리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하면서 자리를 문 목사께 넘기고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기실 민중민주 운동판에서 보면 백 선생이 연배는 어리지만, 연륜은 문 목사보다 윗길이었다. 여하튼 그날 문 목사는 한복 두루마기 곱게 입고, 돼지 대가리가 차려진 고사상에 절을 하고, 돼지주둥이에 만원 짜리 몇 장을 꽂아 넣었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내게는.1980년대 한국 민중운동의 두 기둥을 모신 민문협 새해 단배식 자리는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향한 뜨거운 기운이 분출했다. 어쩌면 그런 열기가 하나로 모여 1987년 평화대행진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2014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나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세월호 대참사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유진 학생 부친 김영오씨가 단식하던 곳이다. 그이의 단식에 동조하는 단식을 하려고 2박 3일 여정으로 광화문에 갔더랬다. 마지막 날인 8월 15일 우리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백 선생을 뵙게 됐다.여든 살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거리에 나선 백 선생의 거동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동행한 친구 말로는 당뇨와 신장이 불편하여 일상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국가 환란을 맞이하여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과 구호를 외치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 이가 백기완 선생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백 선생을 뵙지 못했고, 그저 들리는 말로 선생의 안부를 듣곤 했다.백 선생 부음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문장으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나와 함께했던 1980년대부터 2021년까지 어디가 됐든 고통받고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백기완 선생이 계셨다는 자명한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토록 열망한 통일을 보지 못하고 눈 감으신 백 선생의 영면을 기원한다.

2021-02-16

뽕짝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대학시절을 돌이키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젓가락 장단과 거듭된 폭주(暴酒)다. 강의가 끝날 무렵이면 선배 가운데 한 사람이 쪽지를 보낸다. ‘고모집, 6시!’ 술집 이름치고는 정겨운 고모집이 우리 학과 아지트 비슷한 곳이었다. 막걸리와 빈대떡, 김치찌개, 제육볶음 정도가 주된 안주였다. 제육볶음은 특별한 일이 있어야 먹는 호사스러운 음식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에 고기안주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으니 말이다.자리를 잡으면 막걸리나 소주를 한 순배하고 누군가 흘러간 옛노래를 선창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노랫소리가 들리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들고 술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당시 우리가 즐겨 부르고 따라 했던 노래는 예외 없이 뽕짝이었다. 요즘 고급스럽게 ‘트로트’라고 하지만, 나는 뽕짝이나 ‘도로토’ 같은 용어가 친숙하다.뽕짝은 4분의 2박자가 주조를 이루는데,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고복수의 ‘사막의 한’이나,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 같은 노래는 ‘폭스트로트’이기에 속도감이 배가된다. 그런 노래가 나올라치면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기 마련이었다. 누군가는 운치 있게 ‘왈츠’나 ‘슬로 록’ 혹은 ‘탱고’ 같은 곡으로 분위기를 잡기도 했지만, 대세는 뽕짝이었다. 수준 높은 일부 선배는 ‘명태’ 같은 가곡으로 기를 죽이기도 했지만.뽕짝을 함께 부르고, 정치 얘기에 치열하게 몰두한 적도 많았다. 유신정권 말기에 학교를 다녔기로, 세상의 모든 것이 고깝고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술을 먹고, 강의 빠지고, 여기저기 쏘다니고, 염세주의에 함몰되어 20대를 마구 살았던 시절이었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공부했던 극소수의 대학생이 ‘범생이’ 딱지로 소외되고 고립되어야 했던 희한한 시대. 그 시대를 위로했던 흘러간 옛노래와 젓가락 장단 그리고 막걸리의 추억.요즘 ‘트로트 열풍’이라고 한다. 일부 유튜브에서는 외국인 여성까지도 기막히게 트로트를 불러댄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K’로 시작하는 온갖 것이 세계 전역으로 팔려나가는 놀라운 시대를 경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와중에 뽕짝이 불러온 향수는 대단한 것이다. 어린 친구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흥얼거리는 뽕짝의 열풍은 분명 놀라운 시대상이다.20대 10년을 학교에 다녔던 까닭에 나는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막걸리와 젓가락 장단과 뽕짝에 심취한 사람이다. 그 결과 수많은 노래와 곡조를 기억한다. 더욱이 남들의 노래를 듣기보다는 직접 노래하는 게 체질에 맞는다. 농촌에 사는 관계로 이웃에 아무런 방해도 주지 않고 노래 부를 수 있는 환경 또한 든든한 우군이다. 힘들고 지치고 괴로운 때가 오면 조용히 기타를 꺼내서 조율하고 노래한다.한동안 국민 뽕짝이었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을 3절까지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맺혔던 울혈(鬱血)이 풀리는 느낌이다.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과 그이를 보내는 사람의 정한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시대의 명편(名篇) ‘눈물 젖은 두만강’. 여러분은 3절 가사를 아시는가?!

2021-02-09

‘시인보호구역’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0년 10월 5일부터 대구 문화방송국에서 ‘시인의 저녁’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생뚱맞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 누가 시를 읽는다고 ‘시인의 저녁’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시사와 인문학이 있는 저녁’의 줄임말이다. 대략 40분 남짓한 시간 앞부분에는 시사를, 뒷부분에서는 인문학을 다룬다. 다채로운 손님을 모셔다 여러 가지 세상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이어서 호응도 제법 좋은 편이다.지난주에는 인문-예술공동체 ‘시인보호구역’의 대표인 정훈교 시인과 함께 대구와 경북의 인문학, 특히 시를 둘러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았다. 요즘에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뿐 아니라, 자가 출판한 사람도 시인으로 인정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등단 여부와 무관하게 시인으로 인정받고 활동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시를 읽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그나마 소설은 어느 정도 호응이 있지만, 시나 희곡 분야는 그야말로 설한풍(雪寒風)이 불고 있다 한다. 하기야 나 같은 사람도 시집을 산 지가 꽤 오래전 일이니까 문자 그대로 유구무언이다. 나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문학 전반에 관한 독자들의 처절할 정도의 무관심과 냉소일 것이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정도의 독서가 끝나면 책과 멀어지는 염량세태가 사태의 본질 가운데 하나다.다수 대중은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텔레비전의 ‘막장드라마’와 철 지난 트로트 열풍에 휩쓸린다. 왜냐면 단순하되 재미있고, 시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며, 화제로 삼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질료(質料)가 없기 때문이다. 화제가 궁한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가볍고 유쾌하며 부담 없는 오락 프로그램 아닌가.그에 비하면 문학, 특히 요즘의 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명색이 문학 교수라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구절과 문맥과 사유와 감성이 차고 넘치는데, 누가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친구 안사람이 시인으로 등단해서 상까지 받았다고 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몇 편 읽다가 던져버렸다. 내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윤동주와 이육사,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편 가운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 시가 있는가?! 한국의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시인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일찍이 ‘장한가(長恨歌)’의 시인 백거이는 ‘노구능해’라는 전범을 선보였다. 뒷집에 사는 늙고 문맹인 노파가 이해할 때까지 퇴고를 거듭했다는 백거이. 그런 자세를 진즉에 잃어버린 한국 시인들의 자승자박 자업자득 사필귀정이 독자의 상실이리라.그러나 21세기에도 시인은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귀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소멸하면 인간세(人間世)도 끝장이다. 자연 생태계의 깃대종처럼 시인은 저잣거리의 난잡함과 번다함을 저지하는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시인을 ‘시인보호구역’에서 해방할 그 날을 고대한다.

2021-02-02

나의 작은 동무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중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1월 14일 개봉된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작은 동무(The Little Comrade)’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란 나라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우리는 가끔 ‘발트 삼국’이라는 어휘와 대면한다. 북구와 러시아에 면한 발트해에 자리하고 있는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도상 위쪽부터 거명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서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세 나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1차대전 종결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0년 스탈린의 강제 통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세 나라는 1990년 다시 주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영화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 스탈린 통치 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시골 소녀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전제정치로 자유를 향한 에스토니아 국민의 열망이 짓밟히던 시절. 여섯 살 소녀 렐로는 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교사인 엄마가 소련에 저항하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지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에스토니아 국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엄마 헬무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아빠인 펠릭스는 여러 방면으로 구명 노력을 하지만, 렐로에게 약속한 9월 입학 전까지 헬무스를 빼내지 못한다. 그들 부녀가 만 5년 동안 겪어나가는 눈물겨운 애환이 영화의 얼개다. 약소국 에스토니아가 강대국 소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목과 소련 앞잡이로 등장하는 펠릭스의 친구가 얄밉기 그지없다.영화를 보면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민중과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 앞잡이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특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말로 유명한 의열단장 김원봉이 친일 악질분자이자 이승만의 충실한 하수인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일이 절로 떠올랐다.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던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렐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학년이 올라가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공포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2년 넘는 세월이 흐른 1955년 5월 헬무스는 열차 편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에 도착한다. 엄마를 찾으려던 렐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 아빠를 본다. 조금은 어색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렐로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가 손을 내민다.어린아이에게 만 5년 넘도록 엄마를 빼앗아간 전체주의 통제국가 소련의 운명은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다. 그들도 1991년 12월 31일 종언을 고했다. 철권통치의 끝은 언제나 고약하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나의 작은 동무’는 우리가 잊었던 시절을 일깨우는 소중한 영화다.

2021-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