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대구 사람

등록일 2021-11-16 20:01 게재일 2021-11-17 18면
스크랩버튼
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금요일 대구 문화방송 ‘시인의 저녁’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이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대구 사람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면 어떻겠는가?’는 문제 제기. 지금까지 대구 사람들이 생각해온 기준은 혈연, 지연, 학연에 얽힌 것이라 한다. 시대가 바뀌고, 들고 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에 이런 기준을 재고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기준 가운데 내가 동의한 대목은 이러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여기에 뿌리 내린 사람은 당연히 대구 사람이다. 그러나 직장이나 다른 목적으로 대구에 이주한 사람 가운데 대구에 기여하고 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대구 사람에 넣자. 대구를 떠난 ‘출향(出鄕) 인사’ 가운데서도 대구를 그리워하고 대구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도 대구 사람 범주에 포함하자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지금까지 30년 대구에 살면서 나는 여러 번 대구 사람의 정체성 때문에 말다툼을 했다. “말투가 여기 사람 아니네에?!”, 하면서 끼워주지 않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아니 여기서 일하고 봉급 받아 생활하는 나 같은 사람이 대구 사람 아니면, 누가 대구 사람이죠?!”하는 나의 항변은 늘 간단히 무시됐다. 나 또한 더는 우기지 않기로 했고, 앞으로도 그럴 요량이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왜들 그렇게 말투에 집착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마치고 타지로 나간 사람들은 같은 말투 하나로 이내 대구 사람이 된다. 하지만 타지에서 굳어진 말투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은 대구에서 오래 살아도 대구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참 이상하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요즘 젊은 세대는 대구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대구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듯하다.


서울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해 대구로 내려온 상당수 정치인은 언제나 대구 사람이다. 그들이 서울에 집이 몇 채 있는지, 매주 서울에 가든지 말든지, 1년에 며칠이나 대구에 머무는지 하는 문제는 아예 무시한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무장돼 있거나, 그런 생각에 익숙한 대구 사람들이 무섭다. 여기서 출발하는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남이가!” 철학이다. 말투 하나로 그들은 언제나 정치적-이념적 동지가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한다.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라는데, 대구는 툰드라의 정치적·이념적 동토가 해동되지 않은 곳이다. 젊은이들이 왜 대구를 떠나려 하는지, 관심조차 없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끼리 열심히 하면 된다는 저 강력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끼리’라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우리만의 틀에 갇혀 배제와 적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거기에 순혈(純血)의 철옹성을 쌓고 안주한다. 그들은 성 바깥의 풍경이나 변화에 무심하다. 세상과 세계가 어떻게 바뀌는지에도 무관심하다. 그저 우리끼리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당신은 정녕 대구 사람인가?!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