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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强者)의 철학

등록일 2021-12-07 18:15 게재일 2021-12-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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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6)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니체의 ‘초인(超人·Uebermensch)’을 선행한다. 법대 휴학생인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저당으로 잡은 물건으로 사욕을 채우는 버러지 같은 인간으로 그녀를 본 것이다. 노파가 가진 재산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그는 생각한다.

치밀한 계산과 사전답사를 마친 그는 완전범죄를 실행하기 직전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와 마주치게 된다. 그는 불가피하게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그의 흉중에는 자신감이 있다. 나폴레옹은 수십만 수백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누구도 그를 살인자라 하지 않는다. 외려 그를 영웅이라 부르고 숭배하기도 한다. 벌레 같은 노파와 누이동생을 죽인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의 사상적 배경은 강자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강자의 철학’이다. 그의 심리에는 자신을 강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은 소영웅주의가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우연히 거리의 여자 소냐를 알게 되고 나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처럼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순교자 소냐의 형상에 크게 동요하는 라스콜리니코프. 소냐의 또 다른 변용은 스비드리가일로프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루소가 ‘에밀’에서 갈파한 ‘양심의 가책’이 보낸 ‘섬망에 시달린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뒤집어버리는 섬망과 저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점점 강력하게 조여오는 소냐의 자수 권유. 그가 한낮에 더러운 센나야 광장에 키스하고, 포르피리가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올라가는 장면은 기막히다. 뒤에서 그를 따르면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소냐.

‘죄와 벌’과 라스콜리니코프를 거명한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요즘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돈’과 ‘권력’을 향한 강박 때문이다. 잘 사는 18개 나라 국민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가 참혹하다. 다수가 가족을 가장 소중한 첫 번째 가치로 꼽았지만, 유독 한국인들은 ‘돈’을 맨 앞자리에 올려놓았다. 자나 깨나 ‘돈 돈 돈!’인 것이다. 아, 아직도 돈을 향한 처절한 갈망이 기갈(飢渴)처럼 해소되지 않았구나, 하는 허망함!

깜냥도 되지 못하는 자들의 대권 놀음에 언론사들의 지면이 하루가 멀다 않고 누렇게 시들어간다. 권력을 향한 그들의 탐욕과 그들을 향한 민중의 분노가 상충하는 양상이다. 그들 가운데 누가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적임자인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극심한 정치적-문화적 양극화, 상상을 뛰어넘는 세대 갈등과 남녀갈등, 뿌리 깊은 분단 문제 극복 같은 당면한 난제를 누가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돈과 권력만을 탐하는 무리 때문에 골수까지 병들어가는 이 나라 민초(民草)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줄 정치가와 정치세력의 도래를 기대한다. 돈과 권력을 움켜쥔 강자들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세상 모두가 상생하는 정치와 정치가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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