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가을장마

등록일 2023-09-17 18:48 게재일 2023-09-18 19면
스크랩버튼
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처서(處暑) 백로(白露) 지나 추분(秋分)이 코앞인데 날마다 비가 내린다.

예년 이맘때면 가을바람 소슬하고 일기 쾌청하여 교외(郊外)로 나가기 제격이었는데, 요즘 날씨는 종잡기 어렵다.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지구 자연환경을 파괴한 결과를 마주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인류세(人類世)’라는 어휘가 낯설지 않다.

인류세는 1980년대 미국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와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들은 인류의 산업활동 때문에 지구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을 지질시대에 포함하고자 인류세를 제안한 것이다. 명칭에 담긴 것처럼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자연에 유의미한 변화가 초래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지질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는 약 1만1천700년 전 시작된 ‘홀로세’에 살고 있다.

하지만 불과 250년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의 결과 지구의 물리와 화학 시스템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함으로써 지구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는 게 인류세 주창자들의 논거다.

여러 주장이 난립하고 있지만, 1950년대를 인류세 기점으로 보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

지질학적인 논의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혜로운 인간’이란 의미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가 초래한 자연생태의 가공할 파괴양상은 지구촌 곳곳을 덮치고 있다.

칠레와 캐나다 산불, 버몬트, 르완다와 남수단 폭우, 인도의 몬순 홍수와 열대성 폭풍 마와르의 일본과 괌, 대만, 필리핀 강타 등 열거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올해가 인류에게 가장 시원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한다. 언뜻 들어도 섬뜩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로 분망한 대중에게 지구촌의 과거와 미래는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직 지금과 여기에 함몰돼야 가까스로 삶의 터전과 가족의 생계가 보장되니 말이다.

그러나 지식인 계층이나 상층권위를 가진 자들은 지구촌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된다. 인간이 하루살이로 전락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오직 돈과 권력과 명예에 목숨을 거는 짓은 식자층의 몫이 아니다. 그러하되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노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과 비탄을 자아내는 글로 도배되어 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안타깝고 답답한 이 나라 정치 현실, 완전히 실종된 미래기획, 젊은 세대를 위한 꿈과 희망의 실종, 끝없이 지속되는 남과 북의 대치와 대립…. 거명(擧名)하려면 한도 없고 끝도 없는 캄캄절벽의 연쇄가 우리 앞에 산적(山積)해 있다. 이런 난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로 풀어낼 희대의 영웅은 어디 있는가?!

지루한 가을장마를 견디면서 언젠가 울려 퍼질 명랑하고 쾌활한 종소리를 기다린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든 남루하고 비루하며 거칠기 짝이 없는 양아치 정치를 일거에 소탕하여 창천(蒼天)의 밝은 태양을 누가 보여줄 것인가?!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