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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에 관하여

등록일 2026-04-12 17:22 게재일 2026-04-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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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언제부턴가 나라 곳곳에 휴양림이 하나둘씩 세워져 오가는 길손들의 훌륭한 쉼터 구실을 하고 있다. 국토 면적의 65% 정도가 산으로 이뤄져 있는 산악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알뜰한 행정이라 하겠다. 봄비가 제법 많이 그리고 자주 내리는 시기에 금원산 자연 휴양림에 다녀온다. 그곳에서 느낀 소회(所懷)가 적잖게 깊고 다채로워 짤막한 글로 옮긴다.

유안청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밤새 멈추지 않는 곳에서 유숙함은 특별한 경험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낮과 밤에 따라 기능 분화가 심화(深化)된다. 낮에는 시각이 밤에는 청각이 특화되는 것이다. 빛이 넘쳐나는 한낮에 눈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지만, 어둠이 지배하는 한밤중에는 귀가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연암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이 점을 입증한다.

한밤중 바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바람 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빗소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무위자연의 실천가들에겐 심상(尋常)한 노릇이겠지만 말이다. 이튿날 아침에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드세게 불었고, 물소리도 어젯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되 구름장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에 의지해 짧은 등정(登程)을 시도한다.

일주일 사이에 두어 차례 오신 봄비와 거센 바람으로 산벚꽃잎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떨어져 있다. 숲속 오솔길의 야트막한 바위들 틈새에 온갖 여린 풀들이 각자의 하늘과 대지에 의지해 환한 얼굴로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내가 알아본 것은 남산제비꽃, 현호색, 고사리, 광대나물 정도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나의 존재를 수용하는 첫 번째 관문은 이름 아닌가?! 우리는 커다란 나무와 이름난 꽃들은 잘 기억한다. 영춘화(迎春化), 매화, 산수유, 살구꽃, 벚꽃, 목련, 박태기, 수수꽃다리, 배꽃 등속은 환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꽃다지, 제비꽃, 민들레, 갈퀴나물, 엉겅퀴, 뽀리뱅이, 지칭개, 씀바귀, 애기똥풀, 양지꽃, 고들빼기 같은 작은 풀이나 꽃에 이르면 사정이 완연히 다르다.

크고 높고 이름난 것은 누구나 알아본다. 반대로 작고 낮고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무시당한다. 노자는 ‘도덕경’ 52장에서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柔曰强)”이라 설파한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노자는 크고 작음, 높고 낮음의 상대성에 주목하면서 양자의 조화와 공존에 자연의 이법(理法)이 있다고 본 것이다.

산벚꽃이 하얗게 뿌려진 길섶 틈틈이 여린 풀잎과 꽃들이 피어나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서 오고 감의 ‘무상(無常)’을 새삼 생각한다. 벚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유한한 생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1년 내내 피어있는 벚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길 사람이 있겠는가! 유한성에 기초한 순환에서 우리는 무상과 함께 영탄(詠歎)의 순간을 만나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양태를 보면서 화합에 기초한 상생과 조화를 깨우치지 못한 유대교도와 개신교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것을 알지 못한 채 고귀한 인명 살상에 몰두하는 학살자들의 얼굴이 낙화(落花)와 자꾸 겹쳐지는 봄날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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