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자주 그리고 제법 많이 오는 봄날이 깊어간다. 이렇게 흐뭇하게 비가 내리면, 우리를 깊은 공포로 몰고 간 지독한 산불과 거리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적절한 수준의 강우량은 대지에 기반을 둔 초목의 활성도를 대거 끌어올린다. 마당에 나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우쑥 솟아오르는 온갖 풀들의 향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100여 평 남짓한 마당을 덮는 풀은 매해 양상을 달리한다. 우점종(優占種)이 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꽃다지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는 벼룩이자리가 만만찮은 기세로 세력을 넓힌다. 예전에 없던 가시상추가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산괴불주머니도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마당 곳곳에서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풀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조금씩 달라진다. 농가주택으로 이사한 다음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호미와 낫으로 무장하고 풀과 끝없는 사투를 벌였다. 근절(根絶)하지 않으면, 풀을 이길 수 없다는 필승의 각오로 날마다 전의(戰意)를 불태우곤 했다. 그런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나의 열의와 직접행동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기로 나는 풀과 일정 기간 휴전해야 했다. 그런 배경에는 ‘야생초 편지’(2002)나 ‘풀들의 전략’(2006) 같은 서책의 도움이 자리했다. 어느 일방의 절멸(絶滅)이 아니라, 상호 공존의 자세가 절실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 터다. 그리하여 나는 풀의 여러 가지 자태와 생태에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온갖 풀꽃이 어디선가 날아와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수세미가 대문 옆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일도 있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지금도 붓꽃과 원추리, 자주달개비와 분홍달맞이꽃, 참나리와 부추, 개족두리풀과 돌나물, 달래와 냉이가 여기저기서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일까!
며칠 전 넉넉하게 내린 비로 제법 자란 풀과 잔디를 깎으면서 자연의 놀라운 속성을 새삼 떠올린다. 대지는 언제 저토록 많은 생명체를 보듬고 있었단 말인가! 경이로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메꽃을 뿌리째 뽑다가 슬며시 돌아보면 두더지가 곳곳에 구멍을 뚫고, 광대나물과 민들레, 봄까치풀과 애기똥풀, 괭이밥 같은 풀이 소리도 없이 수북하게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국민 혹은 민중을 민초(民草)라 부른다. 조상들이 오래도록 터를 쌓고 살아온 한반도 곳곳을 뒤덮은 수많은 산야초를 닮은 국민. 그들 하나하나를 빼닮은 풀을 보노라면, 풀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갈 이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자연이 보내준 저 많은 생명과 함께해야 인간들의 삶도 평화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1968년에 이영도 시인은 절창 ‘진달래’에서 4·19로 스러져간 넋들을 추모한다. 1973년 작곡가 한태근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 ‘진달래’를 부르면서 한없이 서러웠던 우리의 처절한 4월을 돌이킨다. 21세기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여린 씨를 뿌린 민초들의 뜨거운 함성 들리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