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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가는 길

등록일 2023-11-05 17:57 게재일 2023-11-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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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28일 노문과 졸업생 초대로 포항에서 하루 묵고 왔다. 포항에 간 김에 구룡포에 있는 일본인 거리와 구룡포항 그리고 횟집에 들렀다. 자연산 횟감과 신선한 안주를 푸짐하게 내오는 인심 좋은 주인을 졸업생이 잘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눈도 마음도 육신도 풍요롭고 넉넉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귀로(歸路)에 오른 것이다.

구룡포항과 포항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이어주는 신작로가 돌아오는 길을 상쾌하게 동반한다. 불과 25분 만에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달리다 보니 ‘안동’으로 연결되는 도로 표지판이 얼굴을 내민다. 그 순간 무엇인가 가슴을 ‘쿵’ 소리 나게 두드린 것 같다. 삽시간에 가슴이 아프고 곧이어 눈시울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대체 이건 뭔가?!

그것은 지나간 날들의 상념과 장면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까닭이다. 큰아이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갈 것인가, 고민할 때 나는 안동대 민속학과를 추천했다.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이며, 그 중심에 우리나라가 자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것은 나의 확신이자 예감이며, 어떤 강렬한 계시 같은 확증이 심중을 관통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왕과 서글픈 사대부들과 한심한 신료(臣僚)들 때문에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선 백성은 민주주의 시대에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다. 신분 제약의 사악한 족쇄(足鎖)가 풀리자 민초(民草)들은 하늘로 비상(飛翔)했다.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의 등쌀을 뚫고 21세기 20년대 우리는 세계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16년 전 큰아이는 내 결정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다독여 민속학을 공부하도록 하면서 틈나는 대로 안동대를 찾았다. 언젠가 안동대 정문에서 아이를 만나서 즉시 영덕 강구항으로 차를 달렸다. 대게를 먹는 철도 아니었지만, 둘이 한 상 푸짐하게 받아들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했다.

그 당시 나는 맛난 걸 먹게 되면 모친에게 택배로 부쳐드리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은 것보다 많은 양을 서울 모친댁으로 부쳤다. 그래야 속이 편하고 유쾌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와 출장을 가는 동료 교수들은 안절부절도 유만부동이다. 제주도에 가면 갈치나 돔, 여수에 가면 말린 생선을, 장흥에 들르면 돼지고기를 부친 까닭이다.

그래봐야 10만원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마음의 선물을 보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얘기를 동료들에게 하곤 했고, 몇몇 사람은 나와 함께 택배 행렬에 동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택배를 받아줄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시다. 그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안동 가는 도로 표지판을 보았을 때, 큰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16년 전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사라져간다. 그래서다. 내 마음과 눈시울이 순간 커다란 변화와 마주했던 까닭은 그래서다. 저 멀리 떠나간 시공간과 언어와 인연이 하얀 일광(日光)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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