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자유에 관한 짧은 생각

등록일 2023-11-26 17:54 게재일 2023-11-27 19면
스크랩버튼
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자유(自由)’를 말할 때 나는 한자(漢字)를 가지고 먼저 생각한다.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말미암는다는 것은 원인 제공자가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유란 나로 인해 생겨나는 온갖 사건과 인연의 원인과 결과를 스스로 감당한다는 말을 뜻한다. 남에게 구속되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사전적인 의미의 자유는 좁고 단순하다. 그것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를 통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말을 빌려서 자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원하는 만큼 처넣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조르바는 버찌가 무척 먹고 싶었다. 그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엄청난 분량의 버찌를 사다가 배가 터질 만큼 쑤셔 넣는다. 그리고 먹은 버찌를 모조리 게워낸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비로소 버찌로부터 놓여난다. 조르바에게 자유란 처넣고 토해낸 다음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화의 주인공 같은 조르바는 시종일관 경험론자다. 그가 토로하는 뱀과 새의 비유는 민중과 지식인을 은유한다. 온몸을 대지에 밀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뱀은 경험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민중이다. 반면에 텅빈 공중을 휙, 하고 날아가는 지식인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다. 조르바는 그런 지식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대하는 20대 청춘에게 조르바는 경이로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조르바와 생각이 다르다.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아가는 인간이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21세기 과학기술문명이 불러온 혁명적 변화를 그 이전의 경험과 인식체계로 수용함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인이든 아니든 어느 정도 책을 읽음으로써 최소한의 지적·정신적 소양을 축적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에 관한 그의 경험칙은 어느 정도 교훈적이다. 자신의 한계치를 처절하게 극복함으로써 도달하는 경지!

자유는 애착(愛着)을 버림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 인과율의 출발지점과 최종지점의 책임을 자신에게 부여하되, 인과율 자체의 성립을 원천 봉쇄한다면 더욱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속박되는 까닭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원한다. 만일 그런 마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나 속박, 원인 제공자나 결과 따위는 애초부터 무의미하다. 문제는 애착하고 욕망하는 마음이 언제나 우리를 사로잡는 데 있다.

아끼고 사랑하며 갈망하는 마음과 작별하는 일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은산철벽(銀山鐵壁)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풍미하는 유튜브를 볼라치면 돈과 건강, 인생의 행복과 정신적 안녕에 관한 내용으로 차고 넘친다. 나이 든 사람치고 노후(老後) 자금과 육체적·정신적 건강 그리고 무병장수에 무심한 사람이 있는가?! 문제는 그런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돈과 건강과 장수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이 들어서도 품위 있고 우아하며 매력적인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애착과 거리 두면서 자신을 자유로운 경지에 노닐게 하는 여유로움을 가질 일이다.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다!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