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 가는 것이 인생사 필연의 불가피한 과업이라 하지만, 심성이 여린 사람에게 이것은 극한의 과제일 수 있다.
어느 시인은 나에게 오는 사람은 그 하나가 아니라, 온 우주가 온다고 기막히게 노래했지만, 그것은 축복일 경우에 한한다. 내게 오는 그나 그녀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재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그러하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 (去者不追 來者不拒)”는 옛말이 있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할 사람은 많지 않다.
떠나려는 사람은 한사코 막고자 하고, 마음에 없는 사람이 들이닥칠라치면 끝까지 거부하려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때문이다. 하되, 삶의 근간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좋은 이치나 결말은 없다!
한 주일 전, 불귀의 객이 된 사람 하나를 보내는 자리에 함께했다. 강원도 양양 어느 촌구석에서 마지막 자리를 한 것이다. 아침 7시가 되기도 전 캄캄한 새벽녘에 다섯 사람이 승용차 편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여섯 시간 가까운 여정을 동행한 것은 겨울비와 진눈깨비였다. 마른 날씨보다 우리의 심사를 달래주는 천상의 진객(珍客)이 고마웠던 하루!
그를 추억하는 가족과 우리와 그의 또 다른 지인들이 모여서 끓인 한겨울의 얼큰한 섞어찌개가 눈과 비와 눈물과 서정으로 끓어 넘친 하루를 새삼 돌이킨다. 산골(散骨) 자리 전에 맞은 곰치국과 차가운 소주 한 잔은 먼 길 달려온 우리를 위한 소박한 잔칫상! 그래, 다시 올 수 없는 길 떠나는 이를 위한 술 한 잔 어찌 아끼겠는가?!
길지 않은 생을 투박하고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일관한 그이의 웃는 얼굴이 벽면에 붙어있고, 그 앞에 정갈한 제상(祭床) 준비돼 있다. 그를 추모하는 글 읽노라니, 돌연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앞을 가려 종잡을 수 없다. 그렇다! 사람은 타자의 운명이 아니라, 근본 제 운명의 가혹한 손길에 말문과 숨길이 막히는 법이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나니.
눈과 비가 잦은 올해, 우리의 장엄한 강원도의 깊은 산골엔 곳곳에 짙은 눈이 흔적을 남기고, 그곳 어디선가 고라니와 멧돼지의 숨길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삶은 근본 죽음을 매개로 성립하나니, 가고 옴은 근본 정해진 이치 아니던가.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은 없다(無往不復)’는 주역 ‘계사편’의 말씀은 얼마나 따사로운 위로인지!
그날 홀린 사람처럼 온종일 꾸역꾸역 무엇을 입으로 자꾸만 처넣는 낯선 자아를 보면서 이건 또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람 하나 보낸다는 일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길을 언젠가 모든 우리가 따를 것은 명약관화한 것! 시간의 빠르고 늦은 차이를 뺀다면, 그 본질은 불변 아니던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새삼 확인하면서, 13시간이 넘는 여로(旅路)를 마치고 돌아온 촌집의 적막은 새삼 깊고 너른 것이어서 쉽게 잠들지 못하였던 바다. 하되, 삶이란 본디 불가사의한 것 아니더냐! 이튿날 큰소리로 외친다. “편히 쉬시게. 다시 만날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