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예견된 더위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덧붙일 것이 없을 지경이다. 문제는 이런 무더위의 기세가 쉽게 숙질 것 같지 않다는 난감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트럼프 같은 정치인과 기업주들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자연 생태계 파괴에 눈과 귀를 막고 있다.
더위와 정면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비겁하지만 피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을 검토하다가 후자를 선택한다. 젊은 날 나는 학생들이 덥다고 볼멘소리하면, 주눅 들지 말고 더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라고 일갈하곤 했다. 아름답고도 당찬 그 시절이 어느새 작별을 고하고, 백발 성성한 지경에 이르니 더위에 꼬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나의 피서지는 ‘청도 도서관’이다. 집에서 6㎞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도서관에서 대학입시에 여념이 없는 청소년들과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것이 나의 피서법이다. 요즘 읽고 있는 서책은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노자 타설’, ‘우주의 구조’, ‘모든 순간의 물리학’, ‘1417년 근대의 탄생’ 등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편집한 방대한 서양 철학사가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이며,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저명한 이론가 남회근의 ‘도덕경’ 해설서가 ‘노자 타설’이다. 브라이언 그린이 집필한 ‘우주의 구조’는 지난 세기와 금세기 물리학이 도달한 인식의 지평을 알려주고, 카를로 로벨리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얇지만, 짜임새 있게 현대 물리학의 다채로운 성과를 요약한다. 르네상스 시기의 책 사냥꾼 포조를 중심인물로 두고 오래전 잊힌 로마시인 루크레티우스의 ‘만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서책이 ‘근대의 탄생’이다.
나는 요즘 왼손으로 ‘도덕경’을 외워서 쓰는 작업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지금까지 ‘도덕경’ 81장 가운데 23장까지 기억해서 쓰는 형편이다.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좋은 구절이 있어서 일부를 소개한다. “견소포박(見素抱樸) 소사과욕(少私寡慾)” 바탕을 드러내고 소박함을 지니며, 사사로움과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
노자는 위정자와 지식인들의 탐욕이 불러오는 전란(戰亂)의 참화를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函谷關) 너머로 표표(漂漂)히 사라진 인물이다.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를 살았던 노자마저 두 손을 놓아야 했던 암울했던 시기를 경계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 5000자로 이뤄진 동양사상의 정수가 ‘도덕경’이다.
‘도덕경’ 곳곳에 기막힌 명구(名句)가 자리하는데, 그 가운데서 요즘 정치인들이 명심할 만한 구절이 ‘견소포박 소사과욕’ 아닐까 한다. 각자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욕망을 적절한 색깔과 향기의 포장지로 꾸며대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정치판이 날로 가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오직 백성의 평안과 평정한 일상을 염원한 노자의 사유가 잘 드러난 표현이 견소포박과 소사과욕이다. 개인적인 야망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내세우는 기망(欺罔)의 정치는 그만두고 남루하고도 냉엄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치열하게 마주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