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은 경이롭다. 열흘 전인 2월 13일 마당을 살피다가 아, 하는 소리가 부지불식간에 나온다. 수선화 어린싹 몇 줄기가 뾰족하게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수선화 알뿌리를 몇 알 심어놓았는데, 녀석들이 해마다 잊지 않고 봄을 알리는 전령 구실을 하는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샛노란 영춘화(迎春化)가 어느새 담장 아래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이튿날 바위 틈새에서 튤립과 히아신스도 싹을 틔운다. 며칠 뒤에 학교에 갔더니 홍매(紅梅)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돌 틈에서 크로커스가 보라색 시든 꽃을 달고 처연하게 삐죽, 모습을 드러낸다. 시든 꽃을 보건대, 필시 며칠 전에 마른 잔디 아래서 힘겹게 피어난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 뿌려준다. 생명에 절실한 물!
조금 늦든 이르든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 새삼 마음이 뻐근해진다. 한번 먼 길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는 법이 없는데, 초목은 그러지 아니하는 곡절이 궁금하다. 마당에서 자라는 네 종류 구근(球根)인 히아신스, 크로커스, 튤립, 무스카리는 대학 후배가 택배로 보내준 것이다. 그이는 작년에 고인(故人)이 되어 영영 작별한 인연이 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무슨 상념(傷念)과 만났는지 알 길 없지만, 올해도 여린 싹이 여기저기 돋아나는 걸 보니 자연 그이 생각이 난다. 다소 그늘이 진 얼굴에 떠오는 맑고 순정한 표정과 어색한 웃음이 일품이었던 사람. 만약 그가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네 종류 알뿌리를 전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아끼는 마당의 풍경은 상당히 쓸쓸하고 허전했으리라.
불가(佛家)에서 전해지는 말 가운데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있다. 참으로 비어 있지만, 묘하게 존재한다는 의미다. 비어 있음(空)은 없음과 같은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지만, 고유한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이다. 세상 만물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인연으로 서로 엮여서 어떤 형태를 가지며, 그 인연이 다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진공은 사물의 본질을 가리키고, 묘유(妙有)는 사물의 작동 원리를 일컫는다. 얼핏 보면 상호 모순적인 표현으로 보이지만, 진공과 묘유는 만물에 내재한 근본원리이자 이치다. 한 알의 사과에서 우리가 들여다보는 것은 무엇인가?! 영양과 비타민, 맛과 향, 색과 형태?! 아니면, 아이작 뉴턴처럼 만유인력의 실마리를 당신은 사과에서 보고 있는가?!
사과 열매를 보면서 씨앗 하나와 흙과 물과 햇빛과 바람을 떠올려 보시라. 적절한 생육조건, 즉 인연이 생겨나서 씨앗 하나가 발아(發芽)하여 싹으로 자라고, 그것이 나무로 생장하여, 벌과 나비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여 마침내 열매 맺었음을 상기하면 어떤가! 만약 이런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우리는 사과 열매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홍매와 크로커스가 피고, 수선화와 히아신스가 여리지만, 단단한 싹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면서 기약 없이 훌훌 떠나간 후배를 떠올린다.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인지상정 아닌가! 삶에 허여된 ‘지금과 여기’를 치열하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자명한 명제를 곱씹을 시각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