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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지식혁명

등록일 2026-03-09 15:42 게재일 2026-03-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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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류는 몇 차례의 지식혁명(知識革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 첫 번째는 문자의 발명이었다. 직접 대면하여 말과 몸짓으로 전달하던 정보와 지식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축적하고 전승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 다음의 지식혁명은 인쇄술의 발명이었다. 금속활자가 실용화 되면서 지식은 소수의 수도원이나 귀족들의 서고(書庫)를 벗어나 대중 속으로 확산되었다. 성경과 고전, 자연과학 서적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지식은 더 이상 특권 신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또 다른 지식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해온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수시로 접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단순히 데이터를 찾는 도구가 아니라 인류가 쌓아온 자연과학의 법칙과 인문학적 성찰을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논리와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학과 철학,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른바 통섭과 융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눈부신 기술적 성취 뒤에는 서늘한 질문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폭발적인 지식의 팽창이 과연 인류의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오히려 현대인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결정 장애’와 ‘인지적 과부하’를 걱정하게 되었다. 과거의 지식혁명이 인간의 팔과 다리를 대신하거나 기억력을 보조했다면, 지금의 지식혁명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사유(思惟)’와 ‘창의(創意)’마저 대신하는 실정이다. 지식을 스스로 습득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생략된 채 AI가 내놓은 결과물만을 소비할 때, 인간의 뇌는 퇴화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자연생태계의 한 종으로서 인류에게 안정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온다. 하지만 AI가 주도하는 변화의 속도는 생물학적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임계치를 이미 넘어섰다. 지식은 통합되어 거대한 지능의 바다를 이루었으나, 그 바다 위를 항해하는 개별 인간은 갈수록 소외되고 파편화되는 모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기술의 축복이 소수의 설계자에게 집중되고 대다수가 지능의 하청업자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진화가 아니라 재앙의 서막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폭주를 멈출 수는 없을진대,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성찰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인공지능이 가져온 지식혁명의 용처와 가치,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묻는 ‘지혜’의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가 답을 주는 존재라면, 인간은 질문을 던지는 존재여야 한다. 새로운 지식혁명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넘쳐나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인간다운 가치인지를 가려내는 윤리적 선별력이다.

 윤리적 기준이 없는 지식은 흉기가 될 수 있다. AI의 편향성 문제나 디지털 격차로 인한 불평등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지식을 다루는 인간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아는 인문학적 지식이야말로 지식 폭발의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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