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정국에서 여당과 야당의 선두 주자인 김문수와 이재명은 후보들 중 가장 대척점에 있는 두 인물이다. 정치 성향뿐 아니라 삶의 역정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소년 김문수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공부를 잘해서 지방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3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아 결국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입시 준비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정의감과 패기가 남달랐음을 보여준다. 반면, 이재명은 일찍부터 학업을 잇지 못하고 소년공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때를 회상하며 2006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는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하여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 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나이를 속였다고 여자애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치고, 힘이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던져서 기세를 제압하는 ‘만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김문수는 그 어려운 일류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장래가 보장되는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71년 위수령반대 시위와 19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두 차례나 제적을 당하자, 한일도루코 공장에 위장취업하여 노조위원장을 지내는 등 적극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에게는 개인적인 출세 영달보다 노동자들의 인권과 사회정의실현이 우선이었다. 이 역시 오로지 신분 상승을 위해 독학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고시공부에 전념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재명과는 대조가 되는 행적이다. 두 번의 경기도 지사와 세 차례 국회의원 등 오랜 공직생활 중에도 김문수는 한 번도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적인 없는 그야말로 청백리였다. 경기도 지사 시절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도내 전 공무원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 했으며, ‘부패즉사(腐敗卽死), 청렴영생(淸廉永生)’ 슬로건을 내걸고 부패공직자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퇴출이란 원칙을 적용하는 등 청렴문화 확산을 실행했다. 이 부분도 두 사람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지금 재판 중인 사건만도 공직선거법위반, 위증교사혐의, 대장동·성남FC·백현동 개발 특혜, 대북송금,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등 다섯 건이나 된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가진다. 누가 대통령직을 맡느냐에 따라 국운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을진대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절실한 시점이다. 가장 훌륭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나라를 위태롭게 할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먼저라야 한다.
202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