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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

등록일 2025-03-30 19:24 게재일 2025-03-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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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가황으로 불리는 나훈아의 ‘테스형’이란 노래를 듣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국 대중가요에 그리스의 철학자를 끌어들인 것도 엉뚱한데, 소크라테스란 이름에서 테스만 잘라 형이란 칭호를 붙인 게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이라는 가사도 소크라테스란 철학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쓴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즉흥적으로 끌어온 게 아닌가 싶다.

소크라테스는 예수, 석가, 공자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聖人)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기독교, 불교, 유교 같은 종교적 교리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흔히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나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자는 아폴론 신전 앞에 새겨져 있던 말이고 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보다는 “무지(無知)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일 테다.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 역시 직접 저술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행적이나 사상은 주로 제자였던 철학자 플라톤의 저술에 의해서 후대에 전해졌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란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을 부정했다’는 죄명으로 아테네 법정에 섰을 때, 자신에 대해 변론했던 말을 그 자리에 참석했던 플라톤이 옮겨놓은 것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을 담은 이 변론에서 그는 참된 정의와 진실과 용기가 무엇인지를 설파했다.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변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배심원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그의 변론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인가’라는 정의와 진실의 규명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로부터 500여 년 후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 선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예수는 자신을 변호하는 말조차 하지를 않았으나 빌라도는 그에게 죄가 없다는 걸 알았다. 채찍질을 해서 풀어주고자 했으나 거부하는 군중들의 소요를 우려해서 결국 십자가형 선고를 내렸다. 소크라테스에게 유죄판결을 한 아테네 법정의 배심원들이나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친 빌라도의 법정의 군중들이 그렇듯, 예나 지금이나 민심이 반드시 정의와 진리의 편만은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게 하는 사건이었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나훈아의 이 질문에 소크라테스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대답보다는 되묻기가 전공인 그는 되레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세상이 어떤데?” 세상이 어떤지를 미주알고주알 일렀다고 한들, ‘테스형’은 그 해결책을 스스로 찾도록 소위 ‘산파술’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 대한민국을 난국에 휩쓸리게 한 것도 국민들이고, 그 난국을 헤쳐나갈 해결책도 결국 국민의 몫이다.‘테스 형’에게 물을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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