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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꽃다발 위에 내린 하얀 작별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3-10 16:15 게재일 2026-03-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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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작가

가장 화려한 빛의 꽃을 품에 안았던 날, 역설적이게도 내 삶에서 가장 깊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달 전부터 약속된 생일 약속이었다. 친구들의 축하 속에 미역국과 점심을 먹으며 생의 환희를 만끽했다. 셔터 소리에 맞춰 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 찰나, 휴대폰 진동이 정적을 깨뜨렸다. 수화기 너머 오빠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중환자실의 사투를 견디다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지 불과 열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통보였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색채가 휘발되었다. 어떻게 운전대를 잡았는지, 도로 위의 풍경이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지독한 죄책감이었다.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고독한 강을 건너실 때, 막내딸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기름진 음식을 삼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비수처럼 심장을 찔렀다.

나는 아버지의 차가워진 손을 붙잡고 절규했다. 한 달 전, 화장실에서 미끄러지시던 그 순간부터 중환자실의 기계음에 의지해 숨을 이어가시던 고통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날 아침 기이한 꿈을 꾸었다. 영정사진 속 아버지가 평소보다 훨씬 환하게, 마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별의 전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망 선언 5분 후에야 도착한 병실, 이미 온기를 잃어가는 아버지의 육신 앞에서 나는 생전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했던 짐승 같은 곡성을 쏟아냈다. 그것은 단순히 슬픔이 아니라, 끝내 가닿지 못한 임종의 거리에 대한 통한이었다. “아버지, 내가 미안해···. 생일밥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아버지 가는 길도 못 보고, 아버지 너무 미안하고 고생했어.”

내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빈 공간에 흩어졌다. 아버지는 막내딸의 불효를 이미 용서하신 듯, 그저 고요히 눈을 감고 계셨다.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딸인 나를 유독 금지옥엽으로 키우셨다. 세상 모든 풍파를 당신의 마른 등 뒤로 숨기시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응원해주시던 분. 여든이 넘은 노구(老軀)를 이끌고도 막내딸이 친정에 오면 손수 된장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려주시던 분이었다. “우리 막내 왔나” 하시며 냄비 뚜껑을 열 때 나던 그 구수한 연기는 이제 전설처럼 사라졌다. 구수한 된장 냄새는 아버지의 사랑이 시각화된 온기였고, 그 찌개 한 그릇에 나는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내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던, 꿈속의 모습처럼 환하게 웃고 계신 사진으로 결정되었다. 슬픔의 예식장에 걸린 사진은 죽음을 말하고 있었으나, 그 표정만큼은 생(生)의 절정보다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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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피어 꽃으로 지다.

이제 나의 생일은 영원히 아버지의 기일(忌日)과 겹쳐지게 되었다. 매년 돌아올 나의 탄생일은 아버지가 이승의 옷을 벗으신 날이며, 내가 꽃다발을 들었던 시간은 아버지가 수의(壽衣)를 입으신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이처럼 잔혹하게 맞닿아 있고, 기쁨과 슬픔도 한 몸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앞으로 나는 길가에서 카스텔라의 달콤한 향기를 맡을 때마다, 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노인을 마주칠 때마다, 그리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의 김 서린 냄새를 접할 때마다 불쑥불쑥 아버지라는 이름의 파도에 휩쓸릴 것이다.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치환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끓여주셨던 된장찌개의 온기로, 당신이 좋아하시던 카스텔라의 부드러움으로 내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어 계실 테니까. 육신은 소멸하였으나 그분이 내게 부어주신 사랑의 질량은 우주 어디에도 사라지지 않고 내 삶의 궤적을 지탱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생일날 아침,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신 그 꿈속의 미소는 아마도 당신의 마지막 배려였으리라.

“막내야, 미안해하지 마라. 나는 이렇게 웃으며 잘 가고 있단다.”

나는 이제 비로소 눈물 젖은 손으로 그 웃음을 받아 안는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가장 깊은 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내 드린다.

/김경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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