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한 봄날이었다. 연합 예배 현장에서 나눠준 달걀 한 알은 그 자체로 풍성함을 주었다. 매끄러운 껍데기 속에 응축된 온기, 그리고 부활절이라는 절기가 주는 당연한 관습은 내 의식 속에 이미 하나의 견고한 확신을 심어놓았다. 이 작고 둥근 물체는 의당 단단하게 응고된 단백질의 결정체, 즉 삶은 달걀이어야만 했다.
점심을 먹고 한참이 지난 시간, 허기가 몰려왔다. 차량의 시동을 걸자마자 나와 남편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달걀을 집어 들었다. 단단한 매질을 찾아 고개를 돌린 곳은 차창의 모서리였다. 경쾌한 파열음을 기대하며 ‘탁’ 하고 달걀을 내리치던 그 찰나, 나의 확신은 비참하게 붕괴되었다.
파편이 튀는 소리는 결코 경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둔탁하고 축축했다. 껍데기의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나온 것은 견고한 흰자가 아니라 생경하고 점성 강한 액체였다. 날달걀의 투명한 점액질과 노란 눈동자가 순식간에 내 옷과 시트를 점령했다. 동승했던 남편 역시 같은 확신에 차 있었던 터라, 차 안은 순식간에 비린내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양쪽에서 터져 나온 생(生)의 파편들이 옷을 적시고 차 안을 뒤덮는 것을 보며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그것이 삶은 달걀이라고 그토록 굳게 믿었는가. 부활절이니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수많은 정황들은 나를 눈멀게 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성벽을 쌓아 올렸다.
이러한 인지적 맹목은 비단 차 안의 소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생의 도처에서 ‘삶은 달걀’이라는 허상을 쥐고 살아간다. 내가 쌓아온 경험치가 정답이라는 오만,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가 보편적 진리라는 착각은 우리를 성급한 심판자로 만든다. 타인의 침묵을 동의로 확신하거나 누군가의 실수를 고의로 단정 짓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확인하지 않은 달걀을 생의 창문에 내리치고 있는 셈이다. 내면의 필터를 거쳐 여과된 정보만을 진실로 수용하는 사이, 정작 삶의 본질인 ‘날것의 실체’는 외면당하고 만다. 확증의 덫에 걸린 마음은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할 틈을 잃어버린 채, 익숙한 오류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러한 편향은 현대 사회의 거대한 알고리즘 속에서 더욱 교묘하게 우리를 통제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의 확신은 날카로운 흉기가 되기도 한다. 껍데기 속의 액체성을 잊은 채 단단한 고체성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결국 타자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나만의 폐쇄적인 세계관 속에 안주하게 만든다.
손에 쥔 무게감을 다시 느껴보거나, 살짝 흔들어 내부의 유동성을 확인해 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선입견은 그 짧은 검증의 시간조차 사치로 치부하며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 비린내 나는 사고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생의 전반을 관통하는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날달걀’을 ‘삶은 달걀’이라 오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타인의 미소를 선의로 확증했다가 그 뒤에 숨은 날것의 욕망에 데이기도 하고, 나의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인 완성형이라 믿고 세상을 향해 거칠게 신념을 내리칠 때, 예상치 못한 진실의 파편들이 내 삶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확증편향의 대가는 늘 비린 법이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은 반드시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와 우리의 일상을 눅눅하게 적신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인지적 겸손에서 시작된다. 내 손바닥 위의 달걀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믿는 진리가 실상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혼돈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부활절 계란 소동은 내게 묻는다. 혹시 내가 아직도 확인하지 않은 믿음으로 생의 창문에 거칠게 자아를 내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옷에 배어든 비린내는 쉽게 가시지 않겠지만, 이 냄새는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당연함 앞에서 나를 멈춰 세울 소중한 경고등이 될 것이다.
사유의 깊이가 결여된 확신은 때로 스스로를 옥죄는 칼날이 된다. 나는 이제 달걀 한 알을 쥘 때도 그 속의 유동성을 가만히 음미해본다. 껍데기를 깨뜨리기 전, 잠시 멈추어 그 무게를 가늠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확증편향이라는 거대한 늪에서 벗어나 삶의 실체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오늘 이 비린내 나는 교훈 속에서 뼈저리게 배운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