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여자 셋이 여행을 가면 꼭 한 명은 소외되거나 싸우게 마련이다, 평소에 아무리 친해도 여행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등의 우려 섞인 조언들이 가방의 덤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걱정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잠시 벗어나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오로지 ‘나’로서 그리고 ‘우리’로서 마주한 첫 여정이었다. 그것은 익숙한 집밥을 떠나 낯선 이국의 별미를 마주할 때의 짜릿한 긴장감과도 같았다.
일본의 복잡한 노선도 앞에서 나는 길잡이를 자처했다. 유창하지 못한 실력이었지만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역무원에게 묻고 또 물었다. 혀끝에서 맴도는 서툰 단어들이었으나 뒤에서 나를 믿고 따라오는 두 친구의 존재가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환승 플랫폼을 찾아 헤매고 구글 지도를 돌려보며 낯선 골목을 누비는 과정조차 우리에게는 하나의 유희였다. 길을 잃으면 어떠하랴, 우리 세 사람의 발길이 닿는 그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을.
타자와의 동행은 언제나 자기 세계의 균열을 전제로 하지만, 이번 여정은 그 균열 사이로 오히려 눈부신 교감이 범람하는 경이로운 합주였다.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결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절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우정이라는 이름의 유대감을 더욱 견고하게 길어 올렸다. 낯선 이국의 풍광은 그저 부차적인 배경일 뿐, 정작 우리를 고양시킨 것은 서로의 결핍을 메워주는 배려와 그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찰나의 웃음들이었다. 익숙한 일상의 궤도를 이탈하여 조우한 낯선 연대(連帶)는 고착화된 중년의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여행지에서 음식을 고르는 일은 때로 고역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 친구는 갑작스러운 두드러기 증상 때문에 현지 음식보다는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미안해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우리는 기꺼이 한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녀는 미안함을 ‘기록’으로 승화하였다. 자신의 얼굴을 담기보다 렌즈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었던 친구는 “얘들아, 저기 서봐! 지금 빛이 너무 예뻐”라고 외치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배려는 우리의 식탁 위에, 그리고 핸드폰 갤러리 속에 영원히 박제된 온기로 남았다.
또 다른 친구는 마치 마법사의 가방을 지닌 만물상 같았다. 호텔 실내화의 불편함을 예견하여 챙겨온 여분의 슬리퍼, 짐이 늘어날 것을 대비한 보조 가방, 심지어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 챙겨온 여유 자금까지. “혹시 이거 있어?”라는 물음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의 가방에서는 정답 같은 물건들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치밀함 덕분에 우리는 타지에서의 불편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온전히 즐거움에만 침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여정을 지탱해 준 가장 견고한 안식처였다.
하루의 끝과 시작을 우리는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뿌연 수증기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십사 시간을 붙어 지내며 발견한 서로의 새로운 단면들이 있었다. “너는 이런 습관이 있었구나”, “너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구나.”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이는 일임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니 우리의 여행은 잘 짜인 삼중주였다. 부족한 언어와 여정의 조율로 앞장선 나, 배려의 시선으로 우리를 담아낸 친구, 빈틈없는 준비로 우리를 채워준 친구. 누구 하나 욕심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였기에 여행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길을 묻다가 터져 나온 폭소, 잘못 탈까봐 노심초사한 기차 안에서 나누던 농담, 편의점 간식 하나에 아이처럼 기뻐하던 순간들. 그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일본의 낯선 공기를 타고 경쾌한 파동으로 번져나갔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든든한 집밥이라면, 친구들과의 이번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이국의 별미였다. 익숙함 속에 숨겨진 새로운 맛을 보고 나니 인생이라는 긴 여정 자체가 조금 더 가볍고 경쾌해진 기분이다. 우리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서로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며 더 깊은 우정의 닻을 내렸다. 세 사람의 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이번 여행을 뒤로하며 벌써 다음 식탁을 고대한다. 삶이라는 허기진 길 위에서 또 어떤 낯설고 맛깔스러운 풍경을 함께 나누게 될지, 벌써부터 혀끝에서 기분 좋은 군침이 돈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