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봄볕은 담장이 낮은 고택의 마당 위로 유난히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조선의 외교관으로서 수많은 이들을 사지에서 구해냈던 충숙공 이예 선생님의 자취가 서린 학성 이씨 근재공 고택. 그곳에 들어서면 정갈하게 얹힌 기와 아래로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날 내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은 것은 정교한 가옥의 구조도, 고귀한 가문의 내력도 아니었다. 마당 한쪽, 낮은 돌담을 등지고 선 늙은 모과나무 한 그루였다.
처음 그 나무를 보았을 때 위태로워 보였다. 나무의 몸통은 마치 누군가 예리한 칼로 도려낸 듯, 혹은 세월이라는 거대한 벌레가 파먹은 듯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만이 얇은 막처럼 남아 간신히 나무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 반대편 풍경이 휑하니 보일 정도였다. 저토록 처절하게 제 몸을 비워낸 나무가 어떻게 여태껏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지, 자연의 신비보다는 차라리 어떤 지독한 의지 같은 것이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더욱 경이로운 것은 그 빈 몸체 위로 뻗어나간 가지들이었다. 생명의 기운이라곤 전혀 남지 않았을 것 같은 마른 껍데기 위로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고, 해마다 가지에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다고 했다. 속은 비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나무가 제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열매들을 자식처럼 보듬고 있는 그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나무 아래 서서 한참을 응시했다. 텅 빈 나무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비어 있는 공간은 단순히 사라진 목질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어준 ‘헌신’의 흔적처럼 보였다. 그것은 영락없이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름의 거목 아래서 그들이 피워낸 달콤한 과실을 먹고 자란다. 부모는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의 수분을 내어주고, 영양분을 나누며, 급기야는 자신의 뼈와 살인 속살까지도 아낌없이 갉아 내어준다. 자식이 세상 밖으로 나가 단단한 씨앗을 품은 어엿한 결실이 될 때까지 부모는 제 안이 비어가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가지 끝에 달린 열매의 무게만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등이 넓고 단단한 줄만 알았다. 늘 그 뒤에 숨으면 세상의 어떤 풍파도 비껴갈 것 같았고,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직접 열매를 맺어보니 그 단단해 보였던 등 뒤에는 자식을 키우느라 문드러지고 비어버린 고독한 세월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은 텅 비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으로 버티며 여전히 가지를 뻗어 올리는 모과나무의 처절한 생명력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일치한다. 나무는 제 몸 안에 가득 찼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다 주고 나서야 비로소 가장 향기로운 모과를 완성해낸다. 부모 또한 자신의 꿈과 청춘, 그리고 육체적인 강건함을 자식이라는 열매 속에 오롯이 담아 보내고는 본인은 거친 주름만 남은 껍질이 되어버렸다.
이예 선생님의 고택에서 만난 이 모과나무는 나에게 묻는 듯했다. “너라는 열매는 과연 어떤 향기를 품고 있느냐”고, “그 향기가 누구의 희생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인지 잊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고택의 돌담 아래 쌓인 햇살 속에서 모과나무는 여전히 당당했다. 비록 속은 비었을지언정 그가 매달고 있는 열매들은 누구보다 건강하고 풍요로웠다. 그것은 패배한 삶의 흔적이 아니라 완성된 사랑의 훈장이었다. 부모라는 이름의 나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제 몸을 다 내어주고 껍데기만 남았을지라도 자식의 삶 속에서 주렁주렁 맺히는 열매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다시금 살아갈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고택을 나서는 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텅 빈 속을 감추지 않고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길러내는 저 늙은 나무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물겹도록 고귀해 보였다. 나 또한 누군가의 열매로서 그들이 내어준 빈자리만큼이나 깊고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그 숭고한 껍데기의 의지 위에서 말이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