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生)을 관장하는 거대한 두 축이 있다. 하나는 밤과 낮의 교차처럼 쉼 없이 흐르는 양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요, 다른 하나는 찰나의 순간에 영원이 깃드는 질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다. 우리는 흔히 시계바늘의 일정한 궤적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고 믿지만 영혼이 각인하는 진짜 삶의 무늬는 언제나 카이로스의 틈새에서 피어난다. 시간은 결코 누구에게나, 혹은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는 물리적 선(線)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밀도에 따라 점성이 달라지는 기묘한 착각이다.
얼마 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온종일 어느 세미나장에 묶여 있던 날이 있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서 시간은 잔인할 만큼 무겁고 고체화되어 있었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시간의 무게는 고스란히 육체의 통증으로 치환되었다. 꼿꼿하게 버텨내야 하는 허리는 끊어질 듯 둔탁한 비명을 질렀고 미동 없는 자세를 강제당한 다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밀려드는 활자와 음성 속에서 머리는 형체 없이 어지러웠으며, 초점을 잃은 눈은 시려 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는 오직 파편화된 숫자를 세는 것뿐이었다.
‘이제 다섯 시간 남았구나. 아니, 겨우 두 시간이 지나 이제 세 시간 남았네.’
그 순간의 나는 크로노스의 거대한 맷돌 사이에 끼어 으스러지는 존재였다. 기계적으로 분절되는 1분 1초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영혼을 짓눌렀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는 전진이 아니라 주체성을 박탈당한 자의 목을 죄는 형벌의 메트로놈이었다. 물리적 시간의 절대성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내 의지가 거세된 공간에서의 한 시간은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시간만큼이나 지루하고 아득한 형벌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이 잔인한 절대적 시간의 독재는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 함께 보낸 1박 2일의 여정 속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들을 만나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보낸 그 시간은 마치 찰나의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려고 마음먹었던 수많은 일들은 반의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무심한 해는 저물고 이별의 시간은 너무도 성급하게 당도했다.
아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볼 필요가 없었다. 그 시간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깊은 곳으로 촘촘히 스며들어 쌓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째깍거리는 시계 바늘의 속도는 세미나장의 그것과 분명 같았을 터이나, 아들의 수다 사이로 흐르던 시간은 빛의 속도로 명멸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카이로스’, 즉 의미와 가치로 가득 찬 주관적 순간이다.
문학적으로 볼 때, 카이로스는 존재의 밀도가 극대화되는 ‘계시(啓示)의 순간’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에서 유년의 시간을 통째로 길어 올렸듯, 카이로스는 연대기적 순서를 단숨에 뛰어넘어 삶의 본질을 대면하게 한다. 세미나장에서의 시간은 알맹이 없는 황량한 크로노스였기에 육신이 고통스러웠던 것이고, 아들과의 시간은 밀도 높은 서사로 채워진 카이로스였기에 너무도 매끄럽고 빠르게 흘러간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를 ‘지금 시간(Jetztzeit)’이라 불렀다.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균질하고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구원이 불꽃처럼 스파크를 일으키는 꽉 찬 시간. 아들과 함께 걷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물리적 시간에 쫓기는 필멸자가 아니라 영원의 한 자락을 붙잡은 예술가였다. 비록 계획했던 일들을 다 이루지 못했으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는 행위의 양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이란 거대한 크로노스의 바다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카이로스의 섬들을 찾아 항해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타의에 의해 고통받던 육체의 지난함도,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느꼈던 안타까운 달콤함도 모두 시간의 상대성이 내 영혼에 새긴 깊은 사유의 흔적이다. 우리는 시계를 차고 살아가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은 시계 바늘이 가리킨 숫자가 아니라 그 순간 우리가 느꼈던 감각의 밀도다. 크로노스의 독재 속에서도 우리는 늘 카이로스를 꿈꾼다. 찰나가 영원이 되는 그 신비로운 틈새 속에서, 비로소 나의 삶은 온전한 제 이름을 찾고 숨을 쉬기 시작한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