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언제나 인간의 사소한 소란쯤은 기꺼이 삼켜줄 것처럼 넓고 아득하다. 지난 주말, 뜻밖의 여유 자금이 생긴 모임에서 “바닷가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는 소박하고도 설레는 제안이 나왔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푸른 파도 앞으로 모여들었다.
하늘은 지나치게 눈부시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해사했고, 살랑이며 뺨을 스치는 바람은 숯불의 열기를 식혀주기에 더없이 알맞았다. 각자의 소중한 가족들을 동반한 자리였기에 온기는 배가 되었다. 특히 여섯 남매를 둔 어느 부부의 아이들이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바다가 길러내는 생동하는 물결 같았다.
불판 위에서는 삼겹살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갔고, 뒤이어 바다의 향을 가득 머금은 오징어와 통통한 새우가 차례로 구워졌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음식과 웃음을 나누는 일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을 넘어,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연대를 확인하는 하나의 의식(儀式)과도 같았다. 마지막에 새우 머리를 듬뿍 넣어 끓여낸 라면의 칼칼하고 깊은 국물 맛은, 그날 우리가 나눈 정(情)의 밀도만큼이나 진했다.
완벽해 보이는 풍경 속에도 언제나 예기치 못한 파편은 존재하는 법일까. 어디든 눈에 가시는 있는 법이라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 시선 끝에 자꾸만 걸리는 한 무리가 있었다. 모임의 회원 중 한 명이,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낯선 이들을 몇 명 데리고 왔다. 공적인 모임에 사적인 손님을 예고도 없이 초대했다면, 적어도 그 분위기에 녹아들려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비롯한 그의 일행은 거대한 성벽처럼 완강하게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마치 대접받아야 마땅한 ‘선민(選民)’이라도 된 듯, 가만히 앉아 남들이 땀 흘려 구워 나르는 서빙을 당연하게 받아먹기만 했다. 숯불의 매운 연기를 마시며 고기를 굽고, 아이들을 챙기며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의 노고는 그들의 안중에 없는 듯했다.
화기애애함 속에 감춰져 있던 이기심의 민낯은 사소한 간식 시간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준비한 수박이 다소 부족한 상황이었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며 양보하려던 그 순간, 그녀의 무리는 수박의 가장 달고 맛있는 중심 부분만을 쏙 골라 자신들의 접시로 가져가 버렸다. 붉고 달콤한 과육을 베어 무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거세된 이들의 서늘한 탐욕을 보았다.
결정적인 장면은 일정이 끝나고 찾아온 노동의 시간이었다. 모두가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줍고, 무거운 짐을 나르며 다 함께 뒷정리를 하던 시간에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파도가 치는 바닷가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자신들만의 화보를 찍듯 다채로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끝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유유상종(類類相聚)이라더니, 참으로 닮은 이들끼리 모였구나.’
그들이 남기고 간 얌체 같은 행동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불쾌함 뒤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본인들은 자신들이 주변에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 타인의 눈에 얼마나 가시로 박혀 있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악의를 가지고 타인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인의 시선이나 감정을 읽어내는 ‘공감의 안테나’가 고장 난 이들. 내가 편하면 세상도 편한 줄 아는 그 무지함이야말로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질병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스스로는 우아하고 무해하다고 믿는 그 당당함이, 오히려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허물을 낱낱이 헤아리던 서슬 퍼런 시선은 내 안을 향해 굽어들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그녀들의 무리를 격렬하게 비난하던 내 안의 잣대가 문득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을 찔러온 것이다. ‘나는 과연 타인의 삶에 언제나 무해한 존재였는가.’
나 역시 어느 자리에서는 무심코 몸에 밴 이기적인 행동으로 누군가의 눈에 아픈 가시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달콤한 수박의 중심을 차지하느라 누군가에게는 껍질 쪽의 밍밍한 맛만을 남겨두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가시를 보며 분노하기보다, 내 몸에 돋아나 있을지도 모를 가시를 정성껏 깎아내는 일. 그것이 바다를 닮아가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