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사랑의 내력(內歷)

등록일 2026-06-02 17:48 게재일 2026-06-03 17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김경아 작가

지난 연휴, 타지에서 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의 집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를 견디며 일구어낸 독립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제 몫의 삶을 당당히 살아내고 있는 어엿한 사회인이건만 부모의 눈이란 참으로 기이하고도 무력한 돋보기 같았다. 장성한 아들의 어깨 뒤로 여전히 품 안에서 뉘어 키우던 아이의 실루엣이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손에서 걸레가 떠날 줄을 몰랐다. 방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이불을 걷어 올려 세탁기를 돌렸다. 다가올 여름을 대비해 에어컨 필터를 뜯어내고 선풍기를 분해해 찌든 때를 닦았다. 또 아들이 안내한 카페도 가고 소문난 식당 앞에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의 가장 깊은 서랍에 남은 것은 맛있는 음식보다도 아들의 공간을 쓸고 닦던 그 수고로운 행위 자체였다.

문득 지나온 시간의 궤적이 겹쳐지며 묘한 기시감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 젊은 날 친정엄마 역시 내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그러했다. 엄마는 딸이 차려주는 대접의 자리에 공주처럼 고상하게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싱크대 앞에 붙어 서서 밀린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뒤져 밑반찬을 뚝딱 만들고, 집안의 구석진 먼지를 찾아내 청소하기 바빴다.

Second alt text
청소도구.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못내 싫었다. 자식의 집에 와서만큼은 그저 편하게 쉬다 가기를, 대접받는 손님으로서의 여유를 누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왜 엄마는 자식 앞만 서면 무조건적인 노동의 주체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까. 왜 당신의 존재를 낮추어 자식의 일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려 하실까. 그것이 젊은 날의 내가 품었던 철없는 의문이자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세월을 건너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 아이가 자라 다시 나만의 우주를 독립해 나간 지금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되고 있는 엄마의 습성을 바라보며 비로소 그 지극한 마음의 내력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계보의 이어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세계를 조건 없이 품어 안는 방식을 배우는 영성(靈性)의 과정에 가깝다. 부모의 눈에 자식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가거나 완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이 그를 두고 대리님, 과장님 혹은 한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라 부르며 무게를 지울 때, 오직 부모만이 그 무거운 갑옷 속에 감춰진 부드럽고 유약한 살결을 알아챈다. 아무리 높이 자란 나무라 할지라도 뿌리는 여전히 대지의 깊은 품을 필요로 하듯, 자식이 이룬 삶의 거처는 부모에게 언제나 보살핌과 안쓰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수필가 피천득은 인연을 말했으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고 오직 아래로만 흐르는 내리사랑의 물리 법칙을 따른다. 자식의 집을 청소하는 행위는 단순한 가사 노동의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거친 전장에서 상처받고 돌아왔을 자식의 고단함을 닦아내 주는 치유의 의식(儀式)이자, 네가 없는 시간에도 너의 안녕을 바라겠다는 무언의 기원이다. 칠이 벗겨진 선풍기 날개를 닦아내고 필터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속에는 자식의 일상에 조금의 막힘도 없기를, 그가 들이마시는 공기 하나조차 맑고 청정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생의 전반부에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누렸다. 그러나 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스스로 부모의 자리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가 누렸던 그 모든 안락함 뒤에는 누군가의 굽은 등과 튼 손마디,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기꺼이 지워내며 자식의 길을 밝혀준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우리는 청소포를 들고 자식의 방을 닦아내던 부모의 뒷모습을 닮아 가며, 비로소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깊고 사유 깊은 사랑의 온도를 배워가는 것이다. 아들의 방은 깨끗해졌고, 내 마음의 해묵은 먼지 또한 말끔히 씻겨 내려간 참으로 푸르고 개운한 봄날이었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의 푸른 돋보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