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목욕탕의 파수꾼과 이방인

등록일 2026-04-07 15:27 게재일 2026-04-08 17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김경아 작가

아버지가 떠나신 뒤 집안의 공기는 줄곧 영하에 머물러 있었다. 상실의 무게는 중력보다 무거워 어머니의 어깨를 짓눌렀고 나는 그 적막한 냉기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를 이끌고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평생을 살아온 동네, 낡은 타일과 빛바랜 간판이 세월을 증명하는 그곳은 슬픔을 씻어내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를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목욕탕 문을 여는 순간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낯선 공기가 나를 덮쳤다. 그곳은 단순한 세척의 공간이 아니었다. 탕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여사님들’의 무리는 마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합창단처럼 견고한 결속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Second alt text
목욕탕. /김경아 작가 제공

그들의 시선은 집요하고도 원초적이었다. 옷가지와 함께 사회적 지위나 나이를 벗어던진 그곳에서 뉴페이스인 나는 그저 해부되어야 할 하나의 피사체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시각적 검문’은 노골적이었고, 내가 샤워기를 틀고 자리를 잡는 모든 동선을 따라 그들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뒤를 쫓았다. 침입자가 된 듯한 불쾌감이 습한 공기와 섞여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탕 속에 몸을 담그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질문의 화살이 날아왔다.“누구네 집 딸이냐, 며느리냐?”“어디서 왔어? 몇째야?”그들에게 프라이버시는 수증기처럼 휘발된 개념이었다. 이름보다 관계를, 직업보다 근거지를 묻는 그들의 질문 세례 속에서 나는 알몸보다 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익숙한 듯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얹어주셨고, 그제야 나에 대한 감시는 호구조사라는 통과 의례로 변모했다.

어머니와의 목욕은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나에게 목욕은 ‘씻어내야 할 과업’이었으나, 그들에게 목욕은 ‘머물러야 할 일상’이었다. 그 여사님들은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나갈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초록빛 오이를 촘촘히 붙인 채, 마치 영겁의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흐르는 수증기 속에서 아이스 커피를 시켜 마시며 어제의 일상과 오늘의 일과를 나누었다. 1분 1초를 효율의 잣대로 재단하며 언제나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의 관성으로 볼 때 그것은 기이한 풍경이었다. 나에게 시간은 직선으로 달려가는 화살이었으나 그들의 시간은 탕 안의 물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일렁이며 고여 있었다.
그 정체된 시간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그들의 태평함이 지독하게 부러웠다. 마감 시간에 쫓기고, 성과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소진하던 나에게 오이 향기 속에 파묻혀 흘려보내는 두 시간은 사치스러운 평화처럼 느껴졌다.

축축한 수증기 사이로 비치는 그들의 느릿한 몸짓은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눈동자들,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저토록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가’라는 날 선 질문은 이내 그들을 향한 연민으로,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치졸한 시선으로 변질되었다. 성취가 없는 삶은 무가치하다는 강박이 이곳의 안온한 정적을 불순한 게으름으로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 섞여 있다 보니, 문득 낯선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거창한 목적지 없이도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손길에는 다정함이 배어 있었고, 탕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이 공간을 유대의 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치열한 ‘생산’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생의 여백’이라 비하했던 그 빈틈이야말로, 상처 입은 일상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공간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오만함 너머로 사람들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비판할 문제도, 평가할 문제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 두 시간 동안만큼은 슬픔을 잊고 여사님들의 수다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면 그 고인 시간은 그 자체로 숭고한 치유의 시간이었으리라. 목욕탕을 나오자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등 뒤에 남겨진 오이 향기와 왁자지껄한 소음이 어머니와 나의 등을 따뜻하게 밀어주고 있었다. 각자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삶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시간을 죽이며 생을 살리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의 푸른 돋보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