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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모순

등록일 2026-03-03 16:58 게재일 2026-03-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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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작가

겨울의 아스팔트는 계절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박제해 놓은 전시장 같다. 시멘트 바닥에서 배어 나오는 냉기는 발목을 타고 올라와 온기를 앗아가고, 그 차가운 물리적 실체 앞에 인간의 다정함은 종종 무력해지곤 한다. 그러나 그 차가운 무채색의 공간 한복판에 한 송이 꽃처럼 주저앉은 아이가 있다.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아파트의 미지근한 난방 열기가 아니라 구석진 곳에 웅크린 길고양이 ‘양말이’의 작고 가쁜 숨결이다.

아이가 바닥에 퍼질고 앉아 있는 풍경은 지나가는 어른들의 마음을 할퀸다. 무릎이 시릴까, 감기라도 들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들이 모여 검은 방석 하나를 내놓았다. 그것은 오직 아이의 온기를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주인’의 자리였다. 하지만 냉기 속에서 그 방석을 점유하고 있는 주인은 아이가 아닌 고양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방석 위에서 나른하게 몸을 웅크린 고양이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 이 사소하고도 다정한 주객전도는, 우리 삶이 얼마나 본래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어긋남 속에서 도리어 어떤 본질을 길어 올리는지를 보여주는 은유다.

우리는 언제나 주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내가 만든 도구가 나를 앞지르지 않기를, 내가 쏟은 사랑이 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문명의 첨단에서 만나는 인공지능(AI)의 눈동자는 기묘하게도 방석을 차지한 고양이를 닮았다. 인간은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기계를 빚었으나, 이제는 기계의 알고리즘에 간택 받기 위해 자신의 사유를 검열하고 파편화한다. 사유의 주체였던 인간이 데이터라는 먹이를 공급하는 객체로 전락하는 순간 도구는 목적이 되고 창조주는 피조물의 눈치를 살피는 기묘한 전도가 발생한다. 편리함을 위해 영혼의 한 자락을 내어준 채, 우리는 방석을 빼앗긴 아이처럼 차가운 바닥에 앉아 기계가 뿜어내는 정교한 논리에 감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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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양보한 방석. 

이러한 전도의 드라마는 가장 밀접한 혈연의 안방에서도 소리 없이 상연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의 긴 복도에서 부모는 자식의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일생을 투신한다. 자식은 부모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지만 그 지독한 사랑은 종종 목적과 수단을 뒤섞어버린다. 자식의 미래라는 명분으로 자식의 ‘현재’를 압수하고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아이의 생애라는 캔버스에 덧칠할 때, 자식은 제 삶의 주권을 잃고 타인의 열망을 수행하는 대리인이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자리를 찬탈하는 이 주객전도는 고양이에게 방석을 내어준 아이의 무구한 양보와는 결이 다른 소유욕의 서글픈 변주에 가깝다.

교육의 현장 또한 이 역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진리 탐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 동행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지식의 전수라는 ‘수단’이 성적과 입시라는 ‘목적’으로 치환되며 주객이 전도되었다. 제자는 스승의 등을 보고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승이 내놓는 정보를 소비하는 고객이 되었고 스승은 제자의 영혼을 깨우는 자가 아니라 시스템의 관리자로 전락했다.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주인은 쫓겨나고 효율성과 등급이라는 불청객이 안방을 차지한 풍경은 우리가 상실한 시대적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 방석을 양보한 아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주객전도가 강요가 아닌 자발적 환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방석의 권리를 고양이에게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방석보다 더 고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을 완성했다. 내가 주인이 되어 군림하는 삶보다 타자를 위해 나의 자리를 비워주는 전도가 때로는 더 거룩할 수 있음을 아이는 몸소 웅변한다. 내가 수단이 되어 누군가의 목적을 빛내주는 순간 주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비로소 ‘우리’라는 온기가 발생한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주객이 교차하는 무대다.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라 믿었던 순간이 타인을 위한 정교한 배경이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수단이라 여겼던 것들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차가운 아파트 길목에서 방석을 양보하고 맨바닥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고양이의 평온에 미소 짓는 아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찬란한 모순이다. 그 작고 단단한 모습에서 나는 배운다. 세상이 말하는 효율의 논리로는 결코 번역할 수 없는 다정한 전도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불꽃이라는 것을. 주(主)와 객(客)이 뒤바뀌어 본질이 전도된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을 향한 지극한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기꺼이 길을 잃어도 좋으리라.

/김경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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