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때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의 원주민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통조림과 옷가지 등 각종 물자에 경탄했다. 미군 수송기가 섬에 상륙한 미군들을 위해 투하한 생필품 ‘카고(Cargo·화물)’였다.
전쟁이 끝나고 주둔했던 군인들이 섬을 떠나자 물자도 끊겼다. 원주민들은 나무로 비행기 모형을 만들고 숲에 가짜 활주로를 닦았다.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기도를 올렸다. 미군들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면 다시 하늘에서 화물이 내려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카고 신앙(Cargo Cult)’이다.
외부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힘과 풍요를 경험한 사회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스로 원인을 이해하거나 만들어내기보다 그 힘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믿음이다.
한국의 미륵 신앙과 동학(東學)의 ‘후천개벽’ 사상도 현실의 고난을 초월적 사건이나 새 질서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점에서 카고 신앙과 구조가 비슷하다고 해석 한다.
문제는 이 기묘한 인류학적 장면이 21세기 한국 정치에서도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성조기를 든 태극기 집회가 등장했을 때 일부 외신은 이를 ‘21세기형 화물 숭배’라고 해석했다.
2025년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의 조합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요즘 극우 진영 일각에서는 더 노골적인 기대가 떠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항공모함을 타고 와 한국 정치를 뒤집을 것이라거나, 이재명 정권이 외부의 압력으로 곧 무너질 것이라는 식이다. 어떤 인사는 “지방선거도 못 치른다. 여름 전에 정권이 날아간다”고 장담한다.
문제는 이 믿음의 구조다. 스스로 정치 세력을 조직하고 시민을 설득해 권력을 바꾸겠다는 현실 정치의 노력 대신, 외부의 절대적 힘이 상황을 대신 뒤집어 줄 것이라는 기대에 의존한다. 마치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이 가짜 활주로를 만들고 하늘을 바라보던 장면과 닮았다.
지난 3월 9일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 의원 107명 전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완전한 단절’을 결의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정치적 후폭풍 끝에 당이 마침내 ‘윤석열’이라는 과거의 활주로를 닫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 국민의힘이 과거의 ‘활주로’를 닫고 스스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카고 신앙’의 활주로를 만들 것인지.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