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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산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를 바라보며

조현일 경산시장 경산은 지금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경산지식산업지구에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유치에 성공하고 지난달 28일 경산지식산업개발(주)과 현대백화점 계열사인 한무쇼핑(주)이 분양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경산지역에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는 2020년 9월 경산시와 경북도,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등이 경산프리미엄 아울렛 조성을 위한 투자유치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지역의 경제를 일정부분 견인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사업허가권을 가진 정부가 첨단산업을 육성하고자 조성한 단지에 유통과 쇼핑을 위한 공간이 조성되는 것은 지정 목적에 어긋난다는 입장에 난관에 부딪혀 실현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민선 8기 경산시장으로 당선되자 지역의 산업구조를 바꿀 것으로 평가받은 경산지식산업지구에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이 입점하면 지역 경제에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신발을 구두에서 운동화로 바꾸어 신고 중앙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개발계획 변경의 필요성과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의 당위성 설득에 집중했다. 시민들도 2020년 12월 10만 명 유치 서명운동에 들어가 16만 명의 서명부를 관계기관에 전달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했다. 이러한 정성과 주변 여건이 맞물리며 지난해 4월 산업통상지원부가 비록 경산지식산업지구 1단계에서 2단계로 장소도 변경되고 규모도 축소되었지만, 와촌면 소월리 유통상업시설 용지 10만9228㎡의 개발계획변경을 승인하고 12월 실시계획 변경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경산지식산업개발(주)이 지난해 12월 20일 유통상업시설용지 입찰 공고에 나서 지난 19일 한무쇼핑이 기준가 565억8000만 원보다 420억 원이 많은 994억5000만 원의 입찰가로 사업자로 선정되고 28일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경산시는 계약자인 한무쇼핑(주)에 큰 기대감을 걸고 있다. 경산을 바탕으로 현대백화점이 영남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자 함을 이번 분양계약에서 피부로 느껴 일명 ‘김현아’로 불리는 김포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처럼 (가칭)경산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도 아낌없는 투자로 ‘경현아’로 이름을 날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의 아낌없는 투자에 반응하고자 경산시도 경산지식산업지구 2단계의 상업용지 활성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더 많은 이용객이 현대 프리미엄을 찾아 현대백화점과 지역에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028년 하반기에 문을 열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은 다른 지역 쇼핑몰과의 차별화로 쇼핑뿐만 아니라 장시간 체류하며 즐길 볼거리와 문화가 있는 공간이 돼 경산을 찾는 쇼핑관광객이 지역의 명소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한무쇼핑(주)의 과감한 투자는 현재 62% 분양을 보인 경산지식산업지구 2단계 분양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난달 20일 분양 공고된 산업용지 11필지의 분양가가 평당 114만 원으로 평당 300만 원 수준에 분양된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의 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의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부지 분양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다시 한 번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기에는 시간과 물적 자원의 영향으로 포기하기도 해 경산시도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 과정에서 포기할 뻔도 했다. 자치단체장의 최우선 목표가 지역민의 행복임을 각인시키며 달려왔고 앞으로 달려갈 것이다. 아직 내 발에는 구두가 아닌 운동화가 신겨 있지만, 임기 내내 구두를 신을 일은 없을 것이다. 지역민의 행복은 현재보다는 내일이 중요하고 앞으로의 밝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려면 현장을 누비는 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유치에 온 정성을 쏟아부은 시민들과 공직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한무쇼핑(주)에도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프리미엄 아울렛 조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청한다.

2025-03-09

기대고 싶은 것들, 여기에

이희정시인 기대고 싶은 것들 전봇대 아래 모였다 이 빠진 그릇이며 다리 빠진 의자며 쓸모에 목숨 바친 뒤 여기 죄다 나앉았다 한철 영화 무색하게 주눅이 폭삭 들어 내일 없는 얼굴들 통성명 필요할까 묶인 몸 달그락거리니 길짐승들 킁킁댄다 찌그러진 몸 위로 햇살들 놀다 가고 휘청대던 취객이 피로를 내던지는 이별이 왁자한 이곳에 배경이 시들고 있다 ― 홍외숙, ‘여긴 이별이 와글대요’ 전문 (‘제 19회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작) 시인의 다짐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아파하고 있는 것들, 버림을 당한 것들, 도와 달라고 내미는 손들에게 마음이 가는 계절, 지켜봐 주는 모든 평범함에게 감사와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그런 시인의 눈길이 닿은 곳은 흔하디흔한 일상의 풍경이다. 정작 보고도 모른 척, 설령 눈빛이 머물라치면 외면하기 십상인 불편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간에 머문 시인의 눈빛을 그들은 다시 호출한다. 이제 그렇게 호출된 것들이 다시 우리를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이 시는 재현된다. 도입부 “기대고 싶은 것들 전봇대 아래 모두 모였다”는 첫수의 진술은 사뭇 눈길을 끈다. 지나치기 쉬운 누추한 풍광을 ‘전봇대’라는 완충재가 견인하며 제목 ‘여긴 이별이 와글대요’의 정황을 내밀한 서경으로 떠받치고 있기에. 이 시를 지탱하는 핵심 관계는 전봇대에 기댄 “이 빠진 그릇”이며 “다리 빠진 의자” 따위의 ‘쓸모를 다한’ 것으로 이제 더 이상 꼿꼿하게 자력으로 설 수 없는 것들과의 연민이며 연대이다. 이들의 씁쓸한 외경을 시인은 절묘하게 내면의 정경에 대입해서 풀어내고 있다. 결국 “쓸모에 목숨 바친” 캐릭터들이 지닌 특별한 힘은 존재의 ‘버려짐’에서 발원하고, 그들 사이의 연대는 동병상련의 상처로 조우 하는 것에 있다. 해서, 이 시가 거둔 성과는 만만치 않다. 헐한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상태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가 지닌 고유의 역할을 담담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런 때 ‘문학이 하는 일’에서 김영찬식으로 말하자면, “이즈음 예술인들이 대체적으로 공유하는 문학 혹은 글쓰기는 현실에 대한 물신주의적 부인(否認)이며, 현실을 알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태도에 있다. 그러니까 이 시를 높이 평가했던 지점은 더럽고 보기 힘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 의식의 ‘건강함’과 리얼리즘적 기율에 대한 충실함일 것이다. 그것으로 환기와 제언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기에. 사람은 누구든 언제가 되었든, 결국은 파기될 운명 앞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실존적 상처를 내장하고 있다. 종내 이 씁쓸한 내면 풍경을 “길짐승마저 킁킁댄다”는 더할 나위 없이 사실적인 이 묘사적 상황 앞에 우리의 감정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환멸에 치닫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마저 다소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이는 시조의 율격이 주는 율동성에서 기인한다. 이렇듯 시인은 아픔을 아프게, 상처를 상처답게, 무심한 듯 유정하게 기댈 수 있는 전봇대라는 기율에 기대어 상처들이 상처들의 주체가 되어 서로를 보듬고 있다. “이별이 왁자한 이곳에”

2025-03-09

학교에서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들

최근 몇 년간 나의 인생은 큰 폭으로 두 번 변화했다. 2022년 결혼을 하며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었고 2024년 아들이 태어나며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사건들은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누군가가 가정을 짊어지고 이끌어간다는 뜻인 가장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결혼을 하며 아내와 내가 서로의 보호자가 된 것과 아들을 만나며 내가 그의 보호자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내가 몸이 아플 때 일시적으로 나는 아내를 책임져야 하고 아들이 자립하기까지의 오랜 세월동안 나는 많은 부분에서 그를 챙겨야만 한다. 다른 이를 책임지고 챙길 때 나는 나 자신만을 건사하는 때보다 더 꼼꼼해지고 야무져져야하는데, 나는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서툴기만 하다는 게 속상할 때가 있다. 요 며칠은 아들이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했다. 새벽 내내 콧물을 줄줄 흘리고 기침으로 고생을 하는 작은 존재를 앞에 두고 병원 문이 여는 아침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받았고 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공부도 했건만 그러면 뭐하나, 정작 삶에서 필요한 중요한 지식과 지혜는 갖추지 못한 헛똑똑이에 불과한 것을. 그러나 이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내게 아이를 기르는 방법과 누군가를 간호하는 방법 같은 걸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세상에는 미분과 적분, 직유법과 은유법, to 부정사와 동명사 같은 것보다 더 필요한 지식들이 많은데 정작 그런 것들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입시 교육에 밀려 가볍게 지나치게 되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육아 상식은 누구나 조금씩은 알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육아 상식을 가르친다면 살면서 그것을 써먹을 확률은 미분과 적분을 배워 써먹을 확률보다는 분명히 높을 것이다. 부모가 되지 않더라도 부모가 된 다른 사람과 자라나는 어린 존재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생아는 몇 시간 마다 먹여야 하는지. 아기가 우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각각의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야해 하는지를 미리 배워 알고 있었더라면 시행착오는 훨씬 줄었을 것이고, 부모와 아기 모두 고생을 덜 해도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기초적인 의학 교육이 정규교육에 포함된다면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간호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데에도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어떤 증상이 생겼을 때 적어도 그것이 심각한 상황인지 가볍게 넘겨도 되는 상황인지는 빠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구급법이야 가끔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던 것 같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밖에도 손발목이 삐었을 때 뜨거운 찜질을 해야 하는지 차가운 찜질을 해야 하는지, 함께 복용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운 약은 어떤 것이 있는지, 평상시와 감기가 걸렸을 시에 집안의 온도와 습도는 각각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정도는 학교에서 비중있게 가르쳐준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자동차의 대략적인 구조와 간단한 정비 기술 같은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자동차 경고등의 종류와 해당 상황에서 어떤 조치들을 할 수 있는지. 엔진오일을 비롯한 소모품들은 어느 정도 주기로 갈면 되는지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불의의 사고나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가 고장날 때마다 정비업체에서 부르는 가격을 의심하고 때로는 뒤늦게 배신감을 느끼곤 하는 일들도 많이 줄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기초적인 법률 상식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면 어떨까. 지갑이나 휴대폰을 주워서 돌려주는 이에게 어느 정도의 사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할 때 어떠한 법률을 통해 어떤 부분을 보호받으며 일할 수 있는 것인지, 이사를 갈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과과정을 통해 교육한다면 사회의 질서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밖에 기본적인 가사노동 스킬이라거나, 연애를 할 때의 에티켓이라거나,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 같은 실용적인 것들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진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공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2025-03-09

내가 나를 나로 인정하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할 리 없지만…. /언스플래쉬 작법 수업을 할 때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주어를 남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 일인칭은 필연적으로 ‘나’일 수밖에 없으므로 불필요한 단어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를 나로 인정한다’는 말은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듯하다. 하나 마나 한 표현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단조롭고 식상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식상함이야말로 이 문장의 본질이기도 하다. 내가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칼럼을 쓸 때다. 세상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시각을 명확히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라? 경북매일신문에 신설되는 코너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에서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얼마나 두려웠던가. 첫 번째 글을 송고하며 덜덜 떨던 기억이 선연하다. 어느덧 나는 ‘20’에서 ‘30’으로 넘어왔고 눈빛이 조금 흐리멍덩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손을 번쩍 들던 나는 어디로 갔나. 원고 쓰는 일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좋게 보면 여유가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을러진 셈이다. 특히 요즘 그와 같은 권태로움이 커지고 있는데, 어쩐지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런 듯하다. 몇 년째 함께하는 필진이 정말이지 대단해 보인다. 아니,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아있단 말이야?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고 비척비척 노트북 전원을 켜 슬픈 리듬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을 땐 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썼나 들춰 보기도 한다. 매우 수치스러운 작업이다. 손가락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 후루룩 읽어도 탁 걸리는 몇몇 문장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아주 가끔이지만 꽤 기특한 부분도 보인다. 그래?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지? 물론 그러한 마음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이 글 역시 나의 부끄러움이 될 것을 알지만, 뭐, 별 수 없지. 내가 차곡차곡 써 온 글을 바라보노라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한때 나는 인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이 꼭 점진적인 상승의 구조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은 하나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성취와 소유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려 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나’를 찾는 과정에 관해 무수한 철학자들이 한 마디씩 내어놓지 않았던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장자는 사회적 규범이나 외부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아의 발견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가정할 때 과연 지금처럼 살 것인가 자문하도록 했고, 라캉은 자아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통해 형성된 오인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현자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광장에 모일 필요 없는 세상이다. 훌륭한 사상은 도처에 범람하며 우리는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토록 좋은 말을 우격다짐으로 뱃속에 넣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건 왜일까?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니. 그 괴리가 클수록 ‘나’라는 사람은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할 리 없다. 예쁘지도 않고 어느 때엔 천박하기까지 하다. 두피를 벅벅 긁으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문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의 순간이 하나의 깨달음이다. 그렇게 쌓인 고민이야말로 ‘30’으로 가뿐히 넘어온 내가 얻은 값진 흔적이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포기했다. 하루를 정성껏 닦는 정도로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느슨한 분투 속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을 글로 적고 번번이 미궁에 빠진다. 이전에는 혼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눈물 콧물 쏟아내며 발을 굴렀다면 이젠 바닥에 벌러덩 누워 하늘이나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무엇보다 나는 단 한 번의 마감도 펑크내지 않은, 성실한 노동자가 아니던가!

2025-03-09

대구 군부대 후적지 개발에 시민관심 집중

대구시가 도심 5개 군부대 통합 이전지로 군위군을 최종 선정했다. 2년 전 대구에 편입된 군위군은 TK신공항에 이어 ‘밀리터리 타운’까지 유치함으로써 심각한 인구소멸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밀리터리 타운’에 입주하는 군부대는 2작전사령부와 50사단사령부, 5군수지원사령부, 제1미사일방어여단, 방공포병학교다. 대구정책연구원은 ‘밀리터리 타운’ 유치로 인한 군위군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매년 7000여억원에 달하고, 취업유발인원도 4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오랜 기간 군부대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한 영천시와 상주시가 선정 절차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지만, 군위군은 평가점수 총 100점 중 95.03점을 받아 영천(82.45점)과 상주(81.24점)를 따돌렸다. 특히 공용화기 사격장을 갖춰야 하는 ‘과학화훈련장’의 주민동의율에서 군위군은 만점(8.00점)을 받았다. 이 점수는 리서치 전문기관이 직접 이전 대상지 주민들을 대면 조사해 산출한 결과다. 대구시민들의 관심은 군부대 이전 후적지에 대한 개발 방향에 쏠리고 있다. 최근 대구시는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2작전사령부 후적지를 의료클러스터 지구(경북대병원과 의과대학 등 포함)로 조성하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나머지 후적지에 대한 개발방향도 앞으로 공론화작업이 본격화 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적지 개발사업은 사업자가 ‘밀리터리 타운’ 시설물을 군에 기부한 대가로 주둔지를 양도받아 개발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체 부지 규모만 5.65㎢(170여만 평)에 이른다. 당연히 수익성이 있어야 사업자가 나타날 것이다. 대구시는 이를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밝혔듯이, 대구 군부대 이전 사업은 대구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 ‘사업성’에 급급해서 군부대 후적지를 아파트 숲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공공인프라와 시민휴식공간 조성, 기업유치 등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2025-03-06

법 개정 취지 못 살린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제1회 전국 동시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가 5일 치러졌으나 법 개정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는 그동안 간접선거로 인해 발생한 불공정성 및 폐단을 없애기 위해 2021년 금고법을 개정하고 직선제를 도입했다. 5일 치러진 선거는 법 개정 후 처음 시도한 전국 동시선거였으나 결과적으로 전·현직 금고 출신자들만의 경쟁으로 끝나 “그들만의 잔치”란 비판을 받았다. 개정된 금고법에는 금고 자산 2000억원이 넘으면 직선제를, 그 이하면 직·간선제 중 선택하도록 했다. 이번에는 전국 1101개의 새마을금고 중 534개 금고는 직선제를, 567개 금고는 간선제로 이사장을 선출했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86개소, 104개 금고가 각각 선거를 치렀지만 외부인사가 출마를 한 곳은 대구 5군데, 경북 3군데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출마자는 금고와 인연이 있는 전·현직 관계자였으며 그나마 무투표 당선이 70% 가까이 나왔다. 입후보자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 문호를 넓히지 못해 자신들의 리그로 끝나 버린 것이다. 투표율도 저조했다. 대구 31.8%, 경북은 33.3%로 회원의 관심을 이끌지 못했다. 새마을금고는 지역공동체의 발전과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서민상호 금융기관으로 출범했다. 전국적으로 1200개가 넘는 금고가 설립됐고, 자산규모도 287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일반 금융기관보다 관리 감독이 느슨하면서 금고의 부실운영 문제가 자주 비판의 대상에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고, 한때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위기감이 감돌기도 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남발로 부실금고의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새마을금고 혁신을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사장을 선거를 통해 뽑자는 배경에는 선출과정의 투명성 재고뿐만 아니라 유능한 전문가를 유입하자는 뜻도 있다. 지금은 경쟁시대다. 관행적 경영에 의존해 금고를 운영해서는 기성 금융권과 경쟁을 할 수 없다. 풀뿌리 서민금융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2025-03-06

봄을 알리는 두꺼비 행렬

우정구 논설위원 두꺼비는 행운과 변화를 상징하는 동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 민화나 전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보통 두꺼비 꿈을 꾸게 되면 사람들은 길조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 특히 황금두꺼비를 꿈에서 보았다면 재물운이 크게 상승할 것이란 말을 듣는다. 몸길이 60∼120mm 정도의 두꺼비는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모양이나 행동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 개구리는 녹색 피부를 가졌지만 두꺼비는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두꺼비는 머리가 몸통에 비해 크고 몸 등면에는 많은 피부 융기가 돋아있다. 두꺼비는 주로 육상에서 생활하면서 곤충과 지렁이 등을 잡아 먹고 산다. 산란기에는 늪과 같은 습지에 모여 알을 놓는다. 대구시 욱수동 망월지는 국내 최대 규모 두꺼비 산란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매년 이맘때면 1000여 마리의 성체 두꺼비가 산란을 위해 망월지로 이동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올해는 늦추위 탓에 예년보다 조금 늦게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보통 암컷 두꺼비 한 마리가 약 1만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이곳 망월지서 깨어난 새끼 두꺼비는 5월이면 서식지인 산으로 다시 이동하게 되는데, 이 또한 광경이 놀랍다. 보존가치 문화유산 운동을 펼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0년에 망월지를 꼭 지켜야할 자연유산에 선정했다. 관할 구청인 대구 수성구는 자연생태 보존을 위해 망월지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두꺼비의 이동이 시작됐다는 소식은 곧 봄이 온다는 말과 같다. 계절의 변화를 깨닫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꺼비의 행렬이 반갑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06

‘하늘이’를 잃고 우린 무엇을 고치려 하는가

김세라변호사 최근 여덟 살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피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교육부는 ‘하늘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법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당은 교원 임용 전후 정신질환 검사를 의무화하고, 증상이 발견되면 업무에서 배제하고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반면 야당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휴직 및 복직 시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하고, 별도의 면담 및 평가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또한, 교사의 직무 수행 적합성을 평가하는 위원회에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안그래도 교권침해 이슈가 큰 요즘 교사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 ‘하늘이법들’의 내용을 보면 하늘이 사건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하늘이 사건의 첫번째 원인은 돌봄교실 운영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돌봄교실 운영상 돌봄학생은 돌봄교실 종료 후 그 보호자 또는 대리인에게 인계되어야 하는데 그 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지침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건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늘이는 돌봄교실이 끝난 늦은 오후 홀로 교실에 남아 있었고, 가해교사의 눈에 띄어 범행이 이루어진 시청각실까지 유인되었다. 돌봄교실 학생, 특히 하늘이 같은 저학년 학생들에 대한 보호자 등 대면 인계 조치가 철저히 지켜졌더라면 하늘이는 평소와 다름 없이 미술학원 차를 탔을 것이다. 두 번째, 이 사건은 가해 교사의 정신질환은 밝혀내지 못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거의 정신질환은 오히려 아주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우울증을 이유로 이미 8차례 이상 휴직과 복직을 반복한 사람이었고, 2024년 12월 복직하자마자 학교에서 동료 교사를 폭행하고 컴퓨터를 부수는 등 폭력성과 반사회성을 여러번 드러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육청에 그에 대한 휴직처리를 요청할 정도였지만 교육청에서 그를 휴직시키지 않았다. 성인에 대해서 폭력성 등을 충분히 드러낸 교사가 어린 학생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학교에 버젓이 출근을 해 돌아다니는데도 이를 막을 수 없었던 시스템이 이번 사건의 원인인 것이다. 하늘이를 잃고서야 우린 외양간을 고치려 하고 있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하늘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린 그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부서진 외양간을 고치는 것에 집중해야할 이 시점에 외양간 옆의 부엌, 옆집의 지붕을 고치는 일 따위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등교부터 하교까지 철저히 안전할 수 있도록 돌봄교실 운영지침과 이에 대한 준수 강제가 정비되어야 한다. 폭력성과 반사회적 인격장애성 등이 드러난 학교 구성원에 대해서는 즉시 분리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며 학교 복도에 씨씨티비도 촘촘히 설치되어야 한다. 학원차량기사가 하늘이가 차를 안탔다고 연락했을 때 학교에서 바로 하늘이가 사라진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하늘이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다시는 하늘이를 잃지 않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눈을 똑바로 떠야 할 것이다.

2025-03-06

개성시대

노병철 수필가 “아메카노로 주시고요 따뜻하게 원샷으로 부탁드립니다.” 커피 주문을 하는데 앞에 여자가 한 말이다. 무슨 소리 하는지 잘 못 알아들었다. 대충 마시면 될 것을 무슨 서양 음식 먹으러 온 식당에서처럼 “뭐 넣고 뭐 빼고 해서 주세요”하는 식으로 주문한다. 꽤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까탈스럽게 보였다. 어른 말대로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최고의 맛은 개인의 특별한 취향에 맞는 맛이다.” 그렇다고 자기 취향에 맞게 주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동태탕 먹는데 파 빼고 무 빼라면 그 집에서 그렇게 끓여 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런 주문이 가능하고 종업원들도 이런 주문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카푸치노를 주문하면서 탈지분유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 준다는 것이다. 왜 카푸치노에 탈지분유를 넣어야 하는지 이해 가지 않지만 그렇게 마셔야겠다는 독자적 취향을 맞춰준다는데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린 이런 손님을 ‘진상’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서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최고의 맛이다.” 우린 개인의 특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튀는 놈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고상한 척한다며 따돌림받기 일쑤이고 “마카다 짜장면”에 익숙한 우리 문화는 혼자 튀는 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우리의 전통은 까라면 까야 하는 획일성에 기초한다. 이 전통은 예와 효에 근거한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절대 대들면 안 되고 상급자에게, 선배에게는 항상 복종해야 하는 문화이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너는 아비 어미도 없나”라는 말이다. 개인보다는 철저하게 단체나 조직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저는 회를 못 먹어요.” 이제 세상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직장 회식을 가자고 하면 회를 못 먹어서 이번 회식엔 빠지겠다고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그냥 따라와서 튀김이나 몇 개 먹어주는 배려 따위는 기대하기 힘들다. 자기주장이 정말 뚜렷하다.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가치 기준이 너무나 명확하다. 여기에서 기성세대들과의 마찰이 발생한다.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을 ‘이기적’이라고 표현하는데 마다하지 않는다. 더불어 살기에 우리네 교육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언제부터인지 내 머리엔 ‘일사불란’이란 단어가 아주 깊숙이 꽂혀있다. 내가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따라와야지 반기를 들거나 어영부영하고 있으면 가차 없이 그 대가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요즘 하다간 노동부에 끌려가 아주 된통 당하고 말 것이다.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해 귀 기울이고 소수자로 불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뭔가 특별함을 인정해 주는 그런 사회가 왔다. 그래서 나이 든 분들이 혼란에 빠진다. 아직 충과 효에 빠져나오지 못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와 다름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나 혼자 거부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철저히 그네들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살아야 할 때이다. 지금은 개성시대이니까.

2025-03-06

생명이 움트는 3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3월 초순, 봄이 오는 길목이다. 그런데 훈풍에 화사한 꽃비가 내려야 좋을 계절에 영동할매의 심술인지 전국에 강풍을 동반한 차가운 눈비가 내렸다. 강원 영동에는 나흘째 폭설이 내렸고 제주에는 강풍이 불고 있다니 봄의 시작이 스산하다. 경칩에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겠지만 일찍 깬 개구리는 얼어 죽지는 않을까. 예부터 개구리 첫 울음소리에 농사의 길흉과 식복(食福)을 점쳤다고 하는데…. 다음 주에는 맑은 날씨를 회복하여 따뜻한 봄날이 될 것이라고 하니 겨울 가뭄에 바짝 마른 동해안은 그동안 내린 눈이 녹아 산불 염려도 한숨 돌리게 하고 파란 새싹을 움트게 할 것이다. 농촌에서는 밭갈이 나설 테고 옛날에는 임금님이 적전(藉田)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선농제도 지냈다지만 올봄의 이 나라는 정부와 국회 모두가 국민의 삶은 뒷전인 듯하다. 각급 학교가 개학을 했다. 초등학교는 올망졸망 귀여운 아동들의 발걸음에 밝은 웃음소리가 가득할 테지만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국 184개 학교로 작년보다 27개교가 증가했고 경북도는 42개교로 잠정 집계되어 전국 최고이다. 거기에다 입학생이 1명만 있는 ‘나 홀로 입학식’을 한 학교도 수십 개가 된다고 하니 출산율 감소와 수도권 집중 및 농어촌 공동화에 따른 지방소멸로 통폐합 또는 ‘줄폐교’가 늘어나고 있음은 나라의 미래를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대 정원도 해결하지 못한 정부의 고민도 크겠지만 교육체계 전반에 대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도 걱정이다. 한반도에 동쪽 해양의 저기압과 서쪽 대륙의 고기압이 마주치면 난기류가 형성되고 비바람이 불 듯, 미국의 일방적 관세정책으로 중국 등이 반발하며 글로벌 무역전쟁이라는 암운이 예견되는 가운데 우리는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 미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무관세 교역을 하고 있는데 평균 관세가 4배라고 우기고 있으니 큰일이다. 더구나 트럼프의 광물 협정을 젤렌스키가 평화에 대한 의지로 받아들여 종전된다면, 그동안 현대전을 익힌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도발을 할지도 모르는, 봄도 봄 같지 않은 날을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 정원수들은 벌써 전지(剪枝)를 했다. 시원스레 잘려나간 가지들은 묵묵히 봄을 기다리며 조용하다. 불량 가지, 죽은 가지뿐만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가지, 혼자 쭉 뻗은 가지, 밑으로 자란 가지 등을 잘라내니 통풍과 채광이 잘되고 목련꽃 망울도 부풀고 있다. 시골집 배롱나무와 가죽나무도 가지치기하니 그 옆에 있는 매화꽃 망울이 눈을 뜬다. 서울 여의도 정원수들도 전지를 해야할텐데…. 올해 제21회 죽장 고로쇠 축제는 긴 겨울 가뭄으로 수액이 많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러나 3월 초, 사흘간 열린 울진 대게축제는 6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14일부터 강구 해파랑공원에서 열리게 되는 영덕 대게축제도 새로 개통된 동해중부선을 타고 오는 봄바람으로 흥청대는 풍성한 먹거리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생명이 움트는 3월, 정녕 봄처녀가 꽃향기 흩날리는 맑은 봄이 오리라.

2025-03-06

젤렌스키에게 배운다

장규열 고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한민국도 이 사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를 놀라고 경계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 교훈을 챙기고 대비책을 고민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에 전폭적으로 의존하였다. 두 대통령 사이의 대화가 공개되면서 일방의 지원이 언제든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뜨거운 동맹이라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차가운 현실을 새삼 상기시켰다. 대한민국도 미국과 오랜 동맹관계를 가지지만, 미국이 항상 우리의 입장을 십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여기는 일은 위험하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과정에서 우리와 충분한 논의없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린 사례가 있다. 외교전략을 수립할 때 그들의 지원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다각적인 외교노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음이 분명해졌다. 두 지도자의 모습과 대화는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었고,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입지마저 흔들게 되었다. 국가지도자의 언행은 외교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한마디의 실언이 큰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국제무대에서의 발언은 전 세계가 듣고 분석하는 메시지가 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신인도를 결정하고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수년간 우리 지도자들이 해외정상들과의 대화에서 예기치 못한 논란을 빚었던 사례도 있다. 국가수반의 언행이 신중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겪으면서 러시아, 유럽 각국과 미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들의 대화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외교적 입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대한민국 역시 미·중 갈등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실리도 고려해야 하는 현실이다. 한쪽에 의존하는 외교정책은 위험하다.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대화에서 보듯이, 특정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뢰는 언제든 예상치 못한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되, 중국, 유럽, 동남아 등 다양한 외교 파트너와 협력을 강화하며, 군사적, 경제적, 기술적 자립도를 강화해야 한다. 국제정치에서 군사적 동맹이 실제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목격하였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만, 직접적인 군사개입은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자체적인 방위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위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 삼아, 외교와 군사정책을 돌아보아야 한다. 맹목적인 신뢰보다는 다각적인 외교전략을 구축하고, 자주적인 국방력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2025-03-05

마이스산업 이끄는 엑스코에 거는 기대 크다

대구의 마이스(MICE:미팅·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산업을 리드하는 엑스코가 지난 4일 대한민국미래공항엑스포 개최 등 새해 핵심사업 계획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엑스코는 국제적인 대형전시회나 학회 행사 등을 통해 실질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대구의 핵심동력이다. 엑스코의 올해 주력행사는 모빌리티, 반도체, 로봇, 헬스케어,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등 대구 5대 신산업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표적인 행사는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한국화학공학회 춘계학술대회 동시개최), 국제소방안전박람회(로봇, 드론, IoT장비 등 혁신기술특별관 운영), 미래혁신기술박람회(모빌리티·ABB·로봇·AI 분야 테크기업 참여), 대한민국미래공항엑스포다. 이중 미래공항엑스포는 올해 처음 열린다. 2030년 대구경북(TK)신공항 개항에 대비한 행사다. 세계적인 전시그룹인 인포마(Informa)와 협업해서 열리며, 전시회에는 첨단기술을 갖춘 공항 관제 장비, 공항 물류·운영시스템, 도심항공교통(UAM) 등이 선보인다. 앞으로 TK지역의 공항산업을 육성하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엑스코가 올해 유치한 눈에 띄는 국제행사는 8월 FIRA로보월드컵(1000명 규모), 9월 세계공학교육포럼(2000명), 10월 아·태소동물수의사대회(2000명) 등이 있다. 이제 마이스산업은 국내 중소도시에서도 주요 성장산업으로 육성할 만큼 일반화돼 있다. 도시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마이스 산업이 기반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엑스코가 올해 계획하고 있는 다양한 전시회나 국제회의 내용을 보면, 대구의 마이스산업 수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엑스코가 새해 전략과제로 제시한 전시사업 대형화와 국제화, 국제회의 유치기능 확대 등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경우 대구의 마이스산업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듯이, 엑스코에 대한 대구시의 파격적인 지원이 지금 가장 절실한 때인 것 같다.

2025-03-05

줄어드는 아이들, 늘어나는 빈집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급격한 인구 감소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과 가속화되는 고령화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이다. 세칭 ‘인구 절벽’이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형국. 최근 낮은 출산율과 줄어드는 인구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비단 농어촌 지역만이 아닌 일부 도시에서까지 초등학교 입학생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강화군 삼성초교 등 인천 7곳, 춘천 당림초교 등 강원 21곳, 울산 1곳(울주군 상북초교 소호분교), 경기 1곳(여주 이포초교 하호분교), 익산 용안초교 등 전북 25곳, 여수 돌산초교 등 전남 32곳, 충북 7곳, 충남 16곳 초등학교엔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이 1명도 없었다. 그러니, 입학생 없이 학사 일정을 시작할 수밖에. 신입생이 단 1명인 초등학교의 입학식 풍경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홀로 선생님과 만난 어린 학생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북적거리던 전국의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은 이제 빛바랜 옛날 사진으로만 남았다. 아이들은 줄어드는 반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매년 늘어간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5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 수는 2023년 말 기준 153만4919호. 전체 주택 수 1954만6299호의 7.9%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 2015년과 비교하면 빈집의 수가 43.6%나 늘어났다. “증가하는 빈집은 도심 슬럼화로 이어지고, 범죄 발생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2025년 봄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05

9년 연속 출생아 증가 전국1위 달성군 비결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대구 달성군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1700명. 전국 82개 군단위 지자체 중 가장 많은 수치다. 같은기간 합계출산율도 1.05명으로 전국 평균 0.75명을 크게 웃돈다. 달성군의 출생아 수 전국 최고는 지난해만의 일은 아니다. 올해로 9년 연속 군단위 지자체 중 1위다. 전국의 지자체가 저출산 문제로 전전긍긍 고민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쯤되면 달성군의 출생아 수 증가의 비결이 당연히 궁금해진다. 달성군은 이에 대해 다양한 보육 및 교육사업이 주효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2023년 전국 최초로 어린이집 영어교사 전담배치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어린이집 170곳에 영어교사를 배치,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대구 시군구 중 최초로 연중무휴 24시간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올해는 대구 최초로 어린이집 무상교육을 실시할 예정인데, 국공립, 민간, 개인을 가리지 않고 원아 4500여 명에게 특별활동비를 지원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 30억원은 전액 군비로 지원한다. 그밖에도 대구시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 산업단지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일자리, 임산부를 위한 맞춤복지 정책도 출산율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한다. 달성군은 이뿐 아니라 10대 이하 인구가 사교육을 이유로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다양한 교육사업을 기획하고 연구한다. 신혼부부나 청년 등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하는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1.0명을 밑도는 출산율 보유국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9년만에 출생아수가 반등세를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도 출생자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1990년대 초반 출생자가 출산 연령대에 진입한 인구구조 효과에 영향을 받은 탓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반짝 반등이 될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는 뜻이다. 달성군의 출생아 전국 1위의 비결은 기존의 정책을 시대흐름에 맞게 다듬고 다시 기획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9년 연속 1등의 비결에는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는 법이다. 벤치마킹 할만하지 않나.

2025-03-05

나이 드는 것은 성장하는 것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영화 감상이 취미인 나는 영화를 짧게 편집하며 소개하는 유튜브를 여러 개 구독하고 본다. 더러는 이미 봤던 영화를 회상할 때도 하고, 보지 못했던 영화를 만날 때도 있다. 유튜브에서 그렇게 봤던 영화를 TV로 다시 볼 때도 많다. 20년도 더 전에 책으로 봤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그 당시 워낙 베스트셀러였기에 사 봤던 책이었는데 거의 동시에 영화로 나온 줄은 몰랐다. 책의 저자인 미치 앨봄(Mitch Albom)처럼 나도 일에 미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가 보다. 미치 앨봄은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인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교수의 제자다. 둘의 관계는 제자는 교수를 코치라고 부르고, 교수는 제자의 애칭을 부를 정도로 매우 돈독했다. 미치는 대학 졸업 후 성공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정신없이 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나 프로포즈도 못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사니 자신에 대한 성찰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때 우연히 본 유명 TV 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에 나온 모리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모리가 루게릭 을 앓고 있으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미치는 모리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 모리를 찾아간다. 16년만에야 다시 만난 교수 모리는 미치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눈물로 환영한다. 그 후 화요일마다 인생에 대한 둘만의 수업이 시작된다. 미치는 직장으로부터 해고 위협을 받고, 애인의 결별 선언을 감수하면서도 이 수업을 위해 14주나 비행기를 탄다. 세상, 자기 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사랑의 지속, 결혼, 문화, 용서, 완벽한 하루, 작별 인사를 주제로 매주 강연과 토론이 펼쳐진다. 제자 미치가 모리 교수와의 그 수업을 책으로 옮겼고, 모리 교수가 죽은 후 출간되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책장에서 찾았다. 과연 읽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까마득하다. 오래전 책이었기 때문일 테지만 40대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70살의 내게 공감되는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감동과 공감의 포인트가 나이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24시간만 건강해진다면?”이라고 묻는 미치에게 말하는 모리의 완벽한 하루는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롤케이크와 홍차로 아침을 먹고, 수영하고, 친구들과 점심 먹고, 이야기하고 싶어. 그리고 산책하면서 자연을 느끼고 저녁엔 레스토랑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멋진 파트너와 춤을 출 거야. 그리고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지.” 죽음에 대한 성찰도 곱씹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죽음은 외투 속의 손수건처럼 아주 가까이 있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활발하게 감정을 나누며 인생 최후의 시간을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든 모리 교수를 배우고 싶다. 가장 가슴에 와서 콱 박히는 말은 이것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쇠락이 아니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좀 늙었으면 하는 사람은 왜 없는 거지?”

2025-03-05

불면증 벗어날 수 있을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불안,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해 교감신경이 과하게 활성화되면서 불면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몸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심박수가 증가하고 근육이 경직되며 쉽게 잠들지 못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교감신경을 억제하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약재 중에서는 시호, 황련, 석고, 치자 등이 교감신경의 항진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시호는 간의 기운을 순환시켜 스트레스로 인한 열을 내리고 신경을 안정시키고 황련은 강한 쓴맛을 가지고 있어 심장의 열을 식히고 내리며 신경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한다. 석고는 몸속 열을 내리며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하며 치자는 스트레스와 분노로 인해 쌓인 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약재들은 몸의 과도한 긴장을 풀어주고 신경계를 진정시켜 숙면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황련과 치자는 불면증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 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도 효과적인 약재들이다. 또 불안감을 해소하는 한약재로는 복령과 복신이 있다. 복령은 이뇨작용을 통해 몸속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복신은 복령의 중심부에 있는 부분으로 특히 심장과 관련된 불안을 줄이고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활용하면 불안으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경우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복령은 위장 기능을 강화하는 작용도 있어서 스트레스성 위장 장애를 동반한 불면증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한약재들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는 방법은 한의원에서 처방을 받아서 복용하는 방법이다. 각자의 체질과 증상에 맞춰 처방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수면의 질을 상승 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간단하게는 차로 마시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이다. 시호, 황련, 석고, 치자를 함께 끓여 차로 마시면 교감신경을 안정시키고 몸의 열을 내려줘서 숙면을 돕는 효과를 낸다. 불안이 심하다면 복령과 복신을 추가해서 차로 마시면 더욱 좋다. 한약재를 이용한 차를 마실 때는 너무 뜨겁지 않게 미지근한 상태로 마시는 것이 좋고 자기 전 30분 정도 전에 섭취하면 더욱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생활 습관도 중요하다. 자기 전에는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전자기기 사용을 줄이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명상이나 심호흡을 통해 신경을 안정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 전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가벼운 독서를 하는 것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숙면을 유도할 수 있다. 수면 환경을 최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침실의 온도를 덥지않게 18~22도 사이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런 방법들을 한약재와 함께 병행하면 자연스럽게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맞추고 불안을 해소하여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다.

2025-03-05

화양연화(花樣年華)

배문경 수필가 어둠이 삽시간에 창으로 깊게 들어왔다. 불빛과 노인 가족들의 대화가 교차하며 밤은 깊어 갔다. 이제 퇴근 시간이다. 덜 끝낸 숙제를 남겨둔 것 같은 마음으로 노인이 누운 침대 주위로 가족이 함께 있는 방을 걸어 나왔다. 매일 보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삶이란 얼마나 가여운 것인지. 앰뷸런스에 실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달리던 그 안에서도 삶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꽃진 자리에 눈꽃이 피었다.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양로원의 방들은 온도를 높여도 서늘한 바람이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창밖은 어둠에 휩싸여 있어도 쌓인 눈으로 인해 창백해 보였다. 노인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이 방에서 노인을 중심으로 심각한 대화가 오갔다. 작년에도 유사한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노인은 실오라기 같은 생명줄을 놓지 않았다. 가족들은 임종을 못 본 채 조금은 어정쩡하게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 이듬해가 된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다고 가족들은 생각했을까. 그래도 그들은 임종을 못 보는 일이 불효라고 여기는 듯했다. 둘러앉아 의식이 가물가물한 노인 머리맡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호흡을 살피면서 그렇게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소중한 한 생명이 죽음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노인은 고왔다. 젊은 날 동네에서 미인이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말씀도 나긋나긋 곱게 하셨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혈압을 재고 나면 괜찮으냐는 질문을 하셨다. 혈압수치가 삶의 연장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인지, 의미 없이 고맙다는 뜻에서 그냥 하시는 말씀인지 헷갈리곤 했다.‘좋습니다.’라고 대답하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서랍에는 작은 앨범이 들어 있었다. 자녀들이 어머니를 위해 놓아둔 사진 서너 장이다. 맑은 가을,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기와집을 배경으로 부부가 앉았고, 그 뒤를 자녀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기와집은 제법 기품이 있었고 동네 부녀회장을 하셨다는 할머니는 아름답고 의젓했다. 아니 의기양양했다. 자녀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사진 밖으로 들려오는 듯했다. 식당에서 식탁에 앉아 자신의 숟가락을 들 수 있다면 그것이 삶이었다. 그 숟가락의 무게를 지탱할 힘이 없으면 죽으로 바뀌고 갈아진 음료가 대신 들어가야 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밥은 그냥 밥이 아니라 삶이다. 젊은 시절은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밥숟가락만 봐도 행복하다는 부모의 마음, 그 부모님이 이젠 자신의 입에 들어갈 밥을 떠 넣을 수 없고 삼킬 수가 없다. 점점 희미해지는 숨결이 거칠어지다가 조용해지기를 반복한다. 밥심이 없어서일까? 자녀들의 이야기는 옛 추억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동네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에서는 함께 웃었다.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어르신의 초상을 치를 때를 떠올렸다. 그래서 지금의 심정이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듯했다. 살아 있는 동안 혈압을 재고 맥박을 확인하며 산소포화도까지 살핀다. 밤새 병실을 오가며 듣는 이야기가 오래전 창호지 밖으로 새어 나오던 부모님의 이야기 같아 내 마음은 아련하게 시골 동네 어귀를 거닌다. 노인이 요양원으로 들어오실 때만 해도 가족들은 모실 여건이 안 되었다고 했다. 자녀들의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부모님을 간병할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는 부모님을 거의 십 년 정도 수발했다. 결혼하지 않고 우선 부모님을 보살피고 싶었다고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모님을 오래도록 모시고 두 분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니 언니는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시력은 안 좋아졌고 몸은 여기저기 아픈 소리를 내 허무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사람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간병에 딸의 인생은 홀연히 부모님의 세월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부모님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른 자식이란 속담이 없는 이유다. 요양원에 들어가는 일이 유배당하는 것 같아 대부분 노인이 질색한다. 자식의 화양연화 시절을 간병으로 보낸다면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효도일까? 병원을 나서며 어르신께 “내일 또 뵈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오늘 밤도 그녀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화양연화이길 바라며.

2025-03-05

죽도시장 할머니 막걸리집

그 한 평도 안 되는 막걸리집팔 십 생애의 생업(生業)찐 계란과 소금밖에 없다한 놈이 한 병 시켜먹으면 오 백 원이지만잔술 넉 잔 팔면 팔 백 원이다나는 적당히 계산적이다앉아 마실 자리도 없으니집세 걱정도 상대적으로 적으며알아서들 챙겨 마시고 간다나는 최소한 의자 몇 개는 준비하고 있으며누군가를 기다릴 줄 안다, 그 가난의 자리날품팔이의 고단함 대신할 십시일반의개념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저렇게 알아서 마시고 길을 나서니나의 권력도 적당하고 정당하다들락날락 온갖 잡놈들 종일 바쁘다허리가 아파도 사람구경이 좋다지랄하는 놈, 외상하는 놈 일체 없다인생에 있어 공짜라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사람은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장착되어 있다바닥이라고 바닥을 치지는 않는다배워서가 아니라 선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그 가치를 스스로 지향하고 있다우리는 남루해서 눈부시고 그렇게 살아간다가치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 의미도 모른다덧셈 뺄셈 구구단 정도면 충분하다인생의 일몰이 분주해서 행복하다이만한 남는 장사 또 없으리.원고료가 두둑하면 늘 가고 싶은 곳이 죽도시장 할머니 집이다. 더 돈을 버는 느낌이다. 천천히 한잔 마시면서 내가 생산한 결과물들에 대해 심도 있게 비평한다. 쓸데없이 진지하다. 수없이 많은 입술들이 닿았을 저 잔에 노을이 슬쩍 걸터앉는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05

'김두한기자의 시선/울릉도 '명이'명칭, 육지사람들 이젠 울릉에 돌려주는 게 맞다'

경북부 김두한 기자 '명이'는 울릉도 심심 산골 눈 속에서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싹을 틔워 울릉주민들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북돋아 주는 봄철 최고의 특산품이다. 그 명품  `명이`가 내륙지방에서 대량 재배돼 유통되면서 울릉도 고유명인  ‘명이’ 이름을 잃어가고 있다. 울릉도 명이는 자라는 환경과 토질이 전혀 달라 육지 산마늘과는 비교가 안 된다. 쌉싸래하면서 맵고 달콤한 그 맛은 독특,  육지에서 대량 재배되는 생산품과는 에초부터 차원이 다르다.   '명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울릉도로 이주해 온 개척민들이 이른 봄 먹을 것이 없자 명이를 먹고 명을 이었다 해서 지어 졌다. 60년대 만해도 마늘처럼 생긴 명이의 뿌리는 말린 뒤 가루를 만들어 다양하게 음식재료로 이용했고,  줄기는 김치로 잎은 쌈을 싸서 먹었다. 울릉도 토속 주민들은 명이나물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명이(맹이)라고 부른다.  생명을 이어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름에도 격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명이'하면 웬지  마음이 찡하다. 향토 식물로 울릉의 섬 애환을 같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 '명이'가 육지에서 지금 고유의 맛을 잃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돌아보면 '명이'가 이 지경이 된데는 울릉주민들의 책임도 크다. 우선은 울릉은 '명이'라는 상표등록을 했어야 했다. 그걸 안해 놓은 탓에 명이가 돈이 되자 뿌리가 육지로 무분별하게 반출됐고  시험재배들을 거쳐 본격적으로 대량 수확되고 있다.  뒤늦게 원래 이름을 유지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차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됐다. 울릉도 명이는 생채로 먹어야 독특하고 신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해상교통이 원활하기 전 명이의 생채 반출이 어렵자 절임을 통해 대량 반출시킨 장본인들도 울릉주민들이다.  특히 명이 절임을 위해 설탕, 간장 등 각종 조미료가 들어가면서 육지에서 생산된 산마늘 절임과 맛이 큰 차이가 없게 됐다. 명이는 산마늘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결국 조미료가 맛을 내도록 해 분별력이 크게 떨어져 버린 것이다. 울릉도 명이는 화산섬에서 겨우내 2~3m가 넘는 눈 속과 나무가 우거진 그늘에서 어렵게 자란다. 하지만, 육지 산마늘은 주로 시설하우스에서 재배되거나 산에서 자생한다해도 산새가 험하고 그늘지고 습한 화산섬 눈 속에 자라는 울릉도 명이와 식생환경이 전혀 다르다.  때늦었지만 '명이' 제이름 찾기가 시급하다.  울릉군에서 본격 나서줬으면 한다.   육지에는 산마늘이라는 학명이 있다. 그걸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작금 육지에서 사용하는 '명이'라는 명칭은 솔직히 상표 도용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당국의 허술한 대처로 등록은 못했지만 겨우내 굶주렸던 울릉도 개척민들의 허기를 채워주며 생명을 이어줬던 '명이'의 고귀한 이름을 본래 제 자리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지난 2019년 최혁재 창원대 교수, 한국한의학연구원 양성규 박사, 국립수목원 양종철 박사, 러시아의 니콜라이 프리센 박사가 참여한 공동연구팀이 전세계에 분포하는 10여 종의 자생 산마늘을 조사한 적 있다.  그 결과  ‘명이’는 울릉도가 생성된 직후인 약 157만 년 전부터 울릉도에 자생하기 시작한 고유종으로,  ‘Allium ulleungense’라는 학명의 새로운 종으로 학계에 보고돼 육지의 산마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게 밝혀졌다. 산마늘이 육지 어느 곳이든 생산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재배 여건과 환경이 완전히 다르고 종자도 다른데 '명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맞지 않다. '명이'는 울릉도에서만 사용되는 고유 명칭으로 육지 산마늘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울릉군이나 농협, 명이 농가도 명이 상품 차별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명이와 산마늘을 구분할 수만 있으면 구태여 '명이' 이름을 찾지 않아도 산마늘이 명이로 변할 수 없을 것이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3-05

혁신 인프라를 보면 길이 보인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업의 혁신 활동은 여러 제약 요소로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노조, 근무제도, 조직문화, 편중 된 운영, 직원 사고 등 많은 요소들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준다. 기업 혁신 인프라는 기업이 혁신 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물리적, 기술적, 조직적, 제도적 기반을 의미한다. 기업 혁신 활동 성과에 영향을 주는 인프라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물리적 인프라이다. 연구개발(RD) 시설, 생산설비, IT 시스템 등이다. 생산에 연구개발 인프라가 연계되어 있으면 새로운 미래 소재 강종개발이나 공정 기술개발로 새로운 강종을 생산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생산에서 일어나는 각종 Data를 가공 할 수 있도록 신뢰성이 있는 IT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적 인프라이다. 품질분석시스템, 라인 자동화, 수작업 자동화, AI 활용한 지능화 등이다. 품질 불량 등 생산 상태를 분석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공정 문제를 감지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조직적 인프라이다. 기업 내 혁신 문화, 조직 구조, 협업 방식 등 기업의 내면에 흐르는 문화가 성과에 영향을 준다. 특히, 수평적 조직구조와 운영이 중요하고 화학, 철강 등 연속 생산라인에서 4조 2교대 등 근무제도 요건이 조직문화와 혁신 인프라 구성에 영향을 준다. 넷째, 제도적 인프라이다. 법적인 규제, 지원 정책, 특허 및 지적재산권 보호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 필자가 기업 혁신 컨설팅을 할 때 활동 인프라를 먼저 보게 된다. 시간, 손 발이 움직이는 활동 인프라를 보고 그에 맞는 기획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행력이 없는 기획은 무의미하고 갈등과 고급 낭비가 된다. 12시간 교대 근무자에게 개선활동을 하라면 저항에 부딪치게 되고, 휴무날 출근이나 근무 중 틈나는 대로 하게 되는 데, 연속성의 한계로 큰 개선은 쉽지 않다. 수리 날에는 2인 1조 활동 등 안전 법규 준수로 한계가 있다. 기업 혁신은 현업 활동 인프라를 감안한 기획이 되어야 한다. 회사의 방향인 비전을 설정하고 경영 목표, 전략, 추진계획, 인프라에 맞는 운영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CEO의 생각과 경영 철학을 운영 제도에 담고 직원 공감대 형성과 각 조직의 Top이 정기적인 회의체를 통해 활동 현황을 공유하고 이슈를 개선해주는 것이다. 또한 MZ세대가 대세를 이루는 요즘 생산 흐름에 직원의 동기부여 강화가 제도적으로 필요하고 조직 수장의 모범적인 솔선과 진정성 있는 소통, 격려, 포상이 따라야 한다. 기업 혁신 인프라는 물리적 자원뿐만 아니라 조직문화와 제도적 요소까지 봐야한다. 이러한 인프라가 잘 구축될수록 기업은 지속적인 개선 활동을 통해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시장 경쟁력 확보 등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혁신 성공을 위한 기업 활동 인프라는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조직 구조를 혁신하며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공감하는 제도 운영이 길을 열어준다. 기업의 활동 인프라를 보고 운영 제도를 기획하면 성공의 길이 보인다.

2025-03-04

남도의 봄 마중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전국적으로 내리는가 싶더니, 강원·충청지방에서는 밤사이에 눈으로 둔갑해 소복이 쌓였다. 3월에 내리는 눈은 대부분 무거운 습설이라 농가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 피해나 설해목을 초래해 걱정이 앞선다. 한 달 전 입춘 무렵의 한파와 영하권의 날씨가 경칩까지 이어져 꽃과 나무들의 개화시기가 늦춰지는 바람에 지자체별로 고심하고 있다고들 한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매화축제가 매화는 없고 축제만 있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대충 난감’이 따로 없을 정도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이상기온과 예측불허로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더디 오는 봄을 마중이라도 하듯 남도로 향했다. 섬처럼 군데군데 야트막한 등성이가 솟아 있고 바닷물이 빠졌다가 다시 채워지는 갯벌에서 묻어나는 비릿함이 인상적인 ‘녹차수도 보성’의 득량만이다. 전남 벌교읍과 장흥군 사이의 연안에 서당항, 군농항, 율포항 등의 고만고만한 항ㆍ포구들이 이어져 있고, 멀리 고흥군과 보성군 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득량도를 품은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5년 후인 정유재란 때,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고 배설이 감춰둔 12척의 배가 있는 장흥 회진포로 가던 중 군량미를 얻었다 해서 붙여진 득량(得糧)이기도 하다. 보물(寶)같은 고장(城)답게 전남에서 평균고도가 가장 높은 보성군은 바다와 산, 섬이 어우러져 발길 닿는 곳마다 테마와 먹거리, 스토리가 많은 곳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천혜의 산자락 일대에는 차밭이 많아 전국 녹차 생산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산 아래 도강과 영천마을에는 서편제 판소리 명창이 많이 배출되었는가 하면, 동쪽 벌교의 꼬막과 서쪽 회천의 낙지 등의 먹거리가 풍부해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남도의 연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그곳 보성에서 ‘어디에도 없는 득량만’의 오묘함에 매료되어 시절인연처럼 일림산 기슭 삼의당에 5년째 칩거하며 글을 쓰고 살아가는 한 소설가가 있다. 세상의 풍찬노숙을 달관한 듯 해맑은 웃음이 여유롭고 ‘측간수인(厠間囚人)’을 자처하며 호탕하고 분방하게 글을 쓰고 시를 읊으며 지역의 문화적인 소통과 교류에도 한몫하고 있다. 밤낮없이 집필하고 고뇌하며 유유자적 행운유수로 수행하듯이 살아가며 때때로 세상을 향한 일갈도 서슴지 않는 그는, 어쩌면 요즘 보기 드문 기인(?) 같고 달인같은 모습이랄까? “커피 앞에서/바다를 마신다/고깃배 선창에 떠맡기고/집으로 돌아간 사람들/꼬막 낙지 주꾸미 갯 것 건진다고/칼바람 맞서며 짠물 삼켰다/사나운 시간이 잠들면/검은 머리 갈매기 날개를 접고/먹이를 찾느라 뻘짓 바쁘다//바다 앞에서/커피를 마신다/철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숨어버리는/생을 찾는다” - 양승언‘커피 바다’전문 썰물과 밀물이 드나드는 율포항 언저리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커피 바다’ 시를 감상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움처럼 멀어져가는 썰물에 내 마음 뻘처럼 고스란히 드러나 속내를 보이지만, 두고두고 사무치는 마음 나지막이 밀물처럼 살며시 다가오면, 한결 넉넉하고 푸근하게 삶을 다독이며 세상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남도의 봄은 그렇게 잠방잠방 오고 있었다.

2025-03-04

‘감시사각지대’가 된 선거관리위원회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정치부기자 시절 대구지역 일부 선거구 총선후보자의 캠프를 출입하면서 일반인에겐 생소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파워가 엄청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각 선거캠프에서는 선관위직원을 저승사자처럼 두려워했다. 선거법이 워낙 까다롭고 복잡해 후보자 연설 발언이나 선거운동원 활동, 회계자료 체크 등을 조금만 소홀히 했다가는 페널티를 당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각 선거캠프는 보통 선관위 전담직원을 따로 뒀으며, 이 직원이 일일이 선관위에 질의한 후 선거자금을 쓰거나 선거운동을 했다. 선관위는 후보자의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고발, 수사 의뢰 등을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주 “감사원은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고 결정함으로써, 선관위는 이제 외부기관의 감시를 받지 않는 ‘사각(死角)지대’가 됐다. 헌재는 “감사원 감사가 아니더라도 국회의 국정조사나 수사기관을 통해 외부통제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선관위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국회 출입기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선관위는 국회의 자료 요구에 비협조적이거나 잘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사기관도 고소·고발이 없는 한, 판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선관위를 조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지난주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가 최근 10년간 291차례에 걸친 직원채용 과정에서 878건의 규정위반을 했다. 간부자녀와 친인척 특혜채용을 비롯해 면접 점수를 직접 조작하는 비리도 드러났다고 한다.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경우,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연락 전용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감사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맡은 선관위 총 책임자가 감시대상인 정치인과 몰래 소통했다는 의혹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김 전 총장이 휴대폰 데이터를 복구불능상태로 만든 뒤 감사원에 제출했기 때문에 그가 어느 정치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감시사각지대에서 선관위가 각종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민주당은 지난주 선관위를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서 제외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헌재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법안이다. 헌재와 선관위, 민주당의 카르텔을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출신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최근 그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국회 입법권을 독점한 민주당이 선관위 비리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헌재의 판단으로 선관위 비리가 용인받는 것으로 호도된다면 그것은 국가에 위험하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선관위의 상상을 초월한 비리행태는 국민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선관위가 앞으로 정파성이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선거관리를 하려면 외부견제장치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2025-03-04

박근혜의 ‘한동훈 비판’…보수갈등 유발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사저를 방문한 국민의힘 지도부에 “윤석열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돼 이런 상황을 맞게 된 것에 마음이 무겁다. 국가 미래를 위해 여당이 단합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예방에는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등이 함께했다. 박 전 대통령은 1시간가량 진행된 면담에서 현 국가상황과 민생에 대해 걱정하며 “개인의 소신이 있을 수 있지만, 집권당 대표가 소신이 지나쳐서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힘을 합쳐야 한다”고도 했다. 보수세력의 단합을 주문한 메시지지만, 누가 들어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기도 하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3월 총선을 보름 앞두고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적이 있다. 당시에도 박 전 대통령 변호사로 참여했던 도태우 후보자(대구 중남구)의 공천이 ‘5·18 폄훼’ 발언 논란 등으로 취소되면서 두 사람 관계가 서먹서먹했다. 지난 2022년 박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현 국회의원)가 느닷없이 대구시장에 출마하면서 ‘박근혜 사저정치’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유 변호사가 경선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당시 ‘박심(朴心)’의 정치개입에 비판적인 평가가 많았다. 한 전 대표를 겨냥한 이날 발언도 보수통합보다는 보수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 내에서 ‘12·3 계엄’에 대한 ‘한동훈 책임론’이 이슈로 부상할 경우 당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에 대한 중도층의 민심 이반현상은 심각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은 공통적으로 비상계엄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내일 조기대선이 치러진다고 가정하면 여당후보의 승산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한 것도 아마 조기대선을 의식한 행보일 것이다. 현 시점에서 여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외연확장이다. 강성 지지층을 붙잡는데 당력을 집중해선 안 된다.

2025-03-04

청년연령 논란

우정구 논설위원 청년연령의 기준점을 두고 설왕설래가 잦다. 우리나라 청년 나이는 청년기본법에 따라 19∼34세까지다. 그러나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 기대수명이 느는 등 사회적 변수의 등장으로 오래전부터 청년 나이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돼 왔다. 올들어 국회서도 청년연령을 39세까지 상향하자는 청년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제 청년연령은 시간의 문제지 사실상 상향이 기정화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법 개정안 발의에도 불구, 전국 지자체에서는 이미 조례를 통해 청년연령을 상향한 곳이 많다는 것이다. 행안부에 의하면 전국 226개 시군구 가운데 83곳이 40대를 청년연령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한다. 일부 지역은 49세까지를 청년으로 규정한다. 경북도내만 해도 22개 시·군 가운데 14곳이 40대를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년기본법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를 통해 청년의 연령을 상향하면 그 지역에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들의 사회 안착을 위해 지원하는 정부 지원금이 지역마다 나이가 각기 달라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도시청년과 시골청년의 기준 연령이 다르고 경북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청년연령의 기준이 서로 다른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노령화하고 청년인구가 줄어드는 농촌 입장에선 청년연령의 상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건강 나이가 그만큼 늘어난 것도 연령 상향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청년 나이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 개정이 문턱에 들어선 만큼 청년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한다는 차원에서 청년연령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04

원전 수명 발목 잡는 고준위법 개정 필요

고준위특별법의 제정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안정적 처분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원전 수명 연장을 위한 저장시설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법 개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북도는 이와 관련 법개정 필요성을 관련부처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원전지역 주민의 불안을 해소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여야 협의 끝에 9년만인 올해 법 제정을 완성했다. 특별법 제정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구축이 가능해졌다. 특히 현재의 임시저장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게 된 것은 원전 선진국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데도 큰 힘이 된다. 원전 선진국으로서 방폐장이 없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게 됐다. 고준위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두고 방사성폐기물관리에 관한 계획 수립과 시행 등 업무 전반을 총괄토록 했다. 원전사업의 일관성 유지와 세계 최고 원전생산국으로 발돋움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법안이다. 다만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 설계수명 중 발생 예측량으로 한정한다는 규정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많다. 업계와 학계 등은 이 조항은 원전의 수명이 10년 단위로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며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없게 하는 법이라고 반대한다. 당장 월성 2·3·4호기 운전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10년 연장을 추진 중인 월성 2·3·4호기의 경우 이 조항에 적용되면 2026년 11월, 2027년 12월, 2029년 2월에 각각 가동을 멈춰야 한다. 울진의 한울 1·2호기도 경우가 같다. 원전 사용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설계 당시 예측발생량을 초과한다는 이유로 가동을 멈추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다. 원전의 안전성을 보장하겠다고 만든 법안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준위 특별법 제정에는 학계와 업게의 노력도 컸지만 지역 정치권의 활약도 컸다. 법안 가운데 문제가 있다면 이제라도 바로 잡는 게 순서다. 경북도는 관련 부처에 적극 건의하고 지역 정치권은 법안 개정에 다시한번 힘을 쏟아야 한다.

2025-03-04

문경 봉명산 출렁다리는 언제 어떤 코스로 탐방해야 할까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구간인 문경을 지날 때다. 동쪽으로 문경 시내가 내려다보이더니, 그 우측으로 이색적인 풍광 하나가 눈 안으로 쑥 들어온다. 4층 높이의 망대와 연결된 노란색 출렁다리가 건너편의 작은 봉우리와 이어졌는데, 주변의 경관과 어울린 전경이 너무나 빼어나서다. 근래에 문경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관광지는 어딜까. 아마도 봉명산 출렁다리가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미션이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에게 눈 호강을 선사하고 입소문까지 타면서 이제는 명실공히 문경의 핫플레이스이자 랜드마크로 부상되었다. 그러나 전국 언론 매체와 여행객이 주목한다고, 그것 하나만 보고 가기에는 무언가 조금 아쉽다. 그렇지만 여행이 아닌 봉명산 등산이 목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봉명산 출렁다리를 거쳐 원점회귀로 산행한다면, 약 8.5㎞의 거리에 소요 시간만 3시간 30분이 넘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자를 위해 그 대안을 제시할 차례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좋지만, 어떤 코스를 선택하고 언제 다녀오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막연하게 출렁다리만 왕복하기보다는 작은 높이의 봉우리에 축성된 마고산성을 오르고, 봉명산 오름길 첫 번째 데크전망대를 다녀온다면 하루 일정으로는 더없이 좋은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봉명산 출렁다리가 놓인 위치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 산 49번지다. 주차는 문경온천이 있는 온천교 주변으로 주차할 공간이 많다. 온천교를 건너면 문경온천 조형물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봉명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나타나면서 좌측으로 오름길 데크계단이 보인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5분 정도면 완만한 지능선이 나타나면서 계단이 끝나고, 야자 매트가 깔린 탐방로가 이어진다. 70미터면 관산정 정자에 도착한다.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통하면, 북쪽 정면으로 문경의 명산 주흘산이 정자 기둥 사이로 들어와 마치 액자처럼 보인다. 서남쪽과 서쪽으로는 옥녀봉(636.6m), 백화산(1,603.6m), 황학산(912m), 황계산(568.7m), 잣밭산(377.3m)이 시계방향으로 병풍을 치면서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척의 잣밭산은 원근감의 척도가 되고, 우측 뒤쪽으로는 멀리 조령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관산정에서 160여 미터 더 위쪽에 있다. 산봉우리에 4층 높이의 망대를 세우고 꼭대기 층에서 건너편 석화산과 동등한 높이로 연결되었다. 망대 속을 층계로 오르면 주변으로 펼쳐지는 조망도 관산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조망이 훨씬 더 넓어지면서 광활해진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바라보는 망대 방향의 전경과 조망은 압권이다. 왜 봉명산 출렁다리가 이곳에 세워졌는지를 설명 대신에 풍경으로 대변해 준다. 출렁다리의 망대를 주축 점으로, 좌로부터 옥녀봉 백화산 황학산 잣밭산 등이 부챗살처럼 펼쳐지고 조령산과 주흘산까지 쭉 이어진다. 출렁다리가 놓인 석화산(石花山·274m)은 높이가 낮아서인지 표지석도 없다. 야자 매트와 나무 계단으로 형성된 내림 길을 5분 정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우측은 서울대학교병원 인재원으로 가는 내림 길이고, 직진의 오름길은 마고산성((麻姑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마고산성은 ‘증보문헌비고’에 요성(堯城)으로 나온다. 길이가 약 750m, 높이가 2~4m의 석성으로 옛날 마고할미가 앞치마에 돌을 담아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이어진다. 북쪽은 가파른 절벽을 활용하고, 동·서·남쪽으로 산성을 쌓았다. 오늘날 하늘재로 불리는 계립령과 문경새재, 이화령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실제로는 삼국시대 때 쌓은 산성으로 추정된다. 마고산성의 최고점은 266.5m로 석화산보다 오히려 90여 미터나 더 높다. 모두가 봉명산 출렁다리의 출현을 반기지만, 상대적으로 서운함을 느끼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바로 석화산과 마고산성이다. ‘봉황이 울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봉명산(鳳鳴山·692.1m)이 없었다면, 지금쯤 출렁다리의 이름이 석화산 출렁다리 또는 마고산성 출렁다리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출렁다리가 직접 연결된 봉우리가 석화산이고, 봉명산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가까운 곳이 마고산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봉명산 출렁다리의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봉명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 출렁다리가 놓여있어서다. 무너진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마고산성 돌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탈출하는 탐방로가 있지만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 오름길을 계속 오른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듯한 희미한 등산로를 지나 10분이면 첫 번째 데크전망대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쪽으로 너른 들판과 주흘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조령산이 좌측에 어른거린다. 이곳에서는 잠시 후에 내려가야 할 신북천이 내려다보이는 데, 강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도 조망이 된다. 올라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 내려가, 오름길에 보았던 희미한 갈림길에서 우측 신북천으로 내려선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신북천의 원류는 백두대간의 하늘재로, 징검다리는 홍수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2차선 도로인 여우목로에 올라서면 도로 좌측에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길을 왼쪽으로 줄곧 따르면 탐방 시작점이었던 문경온천 주변이다. 지홍석 수필가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가 되면 문경은 온통 꽃의 거리로 넘쳐난다. 특히 이곳 주변은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언제 봉명산 출렁다리를 찾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탐방의 시작점이자 종료 지점인 문경온천의 온천수는 약간 붉고 끈끈하며 약리 성분이 풍부하다. 국내 최우수 보양 온천으로 관절염, 신경통, 고혈압, 피부병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 문경약돌돼지거리가 조성되어 온천과 먹거리, 벚꽃 탐방을 한꺼번에 기획한다면 멋진 하루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걸었던 탐방로를 여유 있게 따르고 벚꽃 구경까지 겸하면, 소요 되는 시간은 약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03-04

자르려 하면 잘리지 않는다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언스플래쉬 칼을 쥐고 무언가 잘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미스터 초밥왕. 최근 우연히 읽게 된 만화책이지만 생각보다 나는 더욱 깊게 빠져 들어 읽고 있다. 거대 초밥회사인 사사 초밥이 장악하고 있는 홋카이도 오타루시. 주인공인 쇼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토모에 초밥은 사사 초밥의 훼방 속에서 간신히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가게가 망해갈 무렵, 다시 가게를 일으킬 기회인 초밥 콘테스트를 쇼타가 나가게 되고 어딘가 미숙하지만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 오오토리 세이고로의 스카웃으로 도쿄의 유명 초밥집인 봉초밥집에 입성하게 된다. 곧바로 초밥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쇼타의 담당은 배달, 접시 닦기, 청소뿐이었고 간신히 그럴 듯한 임무가 주어지면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뿐이다. 하지만 쇼타는 그 어려운 도전 속에서 사람을 믿는 마음과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고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정진한다. 늘 새롭고도 강력한 도전자를 만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약점이 더 도드라지지만 약점에 함몰되어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될지 안될지 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꾸준함으로 나아간다. 상대의 방해와 계략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놓고 쇼타를 험담하는 상황 속에도 쇼타는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상대의 본질과 약점을 파악하고 만다,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집중하여 근원을 찾는 쇼타는 결국 스스로를 믿는 힘에 열쇠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쇼타는 늘 성장한다. 어제보다 더 깨우치고 더 배우며, 자신보다 초밥 기술을 16년이나 앞선 라이벌의 코를 짓밟기도 한다. 쇼타는 그런 해맑고도 우직한 모습을 통해 알 수 없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쇼타가 늘 열의에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강적을 만날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쇼타는 심히 당황한다. 두 주먹을 질끈 쥐고서 어쩔 줄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땅 아래로 시선을 향해 있다. 나는 그러한 상태를 요즈음 나의 모습과 계속해서 겹쳐 보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쇼타의 주변인들이 나타나 한마음으로 쇼타를 응원한다.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쇼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며 지지 않아야 되는 이유들에 대해 다시금 쇼타에게 알려준다. 쇼타 또한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다시금 일어나 씩씩하게 나아간다. 내가 지금 어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를 때, 믿음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고, 나는 그러한 믿음으로 이어진 유대감이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자 중요한 삶의 이유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만화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지게 느낄 만큼 믿음과 유대로 이어진 선의 편은 늘 이기고, 증오와 미움, 거만으로 점철된 악의 무리는 늘 거만에 취해 승부에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만화적인 권선징악의 주제가 좋다. 선은 어떤 방향으로든 이긴다라는 다소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이 주제를 애써 믿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세상은 언제까지고 느리고 어리숙한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알게 모르게 그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게 제일 중요한 건 한낱 응석 뿐만이 아닌,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고 노력하는 마음을 갖는 것.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내 앞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상이 아주 새까맣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혹스럽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내 주변의 믿음과 사랑을 떠올리면 된다. 최근엔 아주 어릴 적 논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단 할머니를 기다리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기에 전생이나 꿈결처럼 희미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갔던 언덕의 시골 풍경과 모퉁이의 코스모스의 길이 기억 난다. 할머니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다 같이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은 분명히 천국의 무지개를 마주한 것처럼 따스했고 지나치게 평온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일은 무언가 급히 잘라야만 한다는 강박의 칼자루를 내려두고, 그저 현재를 지혜롭고 편안하게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삶을 평온하게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날들이지만 마음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는 사랑의 요소를 생각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2025-03-03

내가 모르는 상처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몸의 상처만큼 마음도…. /챗gpt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무릎에 새끼손톱만 한 핏자국이 굳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다쳤는지 모른다. 어떤 날에는 손등에, 또 어떤 날에는 정강이에, 심지어는 뺨이나 콧등에도 원인미상의 상처가 생겨 있다. 살갗이 까지거나 패인 자국, 무언가에 할퀸 자국, 어디 찧었는지 멍 자국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때마다 ‘칠칠치 못하게 쯧쯧, 조심 좀 하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한다. 마치 자동차에 난 미세한 흠집처럼, 어쩌다 다쳤는지 모르는 작은 상처들도 하나 둘 자꾸 많아지니 신경이 쓰인다. 목욕탕에서 내 몸을 보며 골똘해졌다. 격투기 선수도 아니고 유격훈련 받는 군인도 아닌데 무슨 상처들이 이렇게 많을까. 문득 내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차분하게 행동하자, 모서리를 조심하자, 자다가 함부로 몸을 긁지 말자’ 정도의 반성과 다짐이 됐지만 그때뿐이다. 집에 와 보니 양말 발뒤꿈치에 검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몸의 상처만큼 마음도 어쩌다 다친 줄 모르면서 벌써 패이고 깎이고 베인 곳들이 있다. 마음의 잔상처들은 어디서 오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 찧거나 할퀴는 것처럼 마음도 무엇엔가 접촉하고 충돌했기에 다쳤을 텐데. 하루에도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며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문자든 말이든 우리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러는 사이 칼이 칼인 줄 모르고, 가시가 가시인 줄 모르면서 다치거나 다치게 하는 일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 누구와 다툰 것도 아니고 혼난 것도 아니고 손가락질 받거나 모욕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극히 보통의 일상을 보냈을 뿐인데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 날이 있다. 어느 순간에 어떤 지점에서 상처 받았는지 모른다. 아니, 알지만 그러려니 한다. 따져들면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고, 쓰라리긴 해도 심각한 건 아니니까 그냥 묻어두기로 한다. 이런 일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으면 험한 세상 못 산다고, 그러니 무던해지자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면서. 하지만 무딘 사람이 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상처가 아예 굳어져서 더는 상처 받지 않는 바위를 보면 굳고 정한 기상이 느껴지는 대신 안쓰럽기만 하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위의 패이고 벌어진 상처에 손을 넣고 암벽을 오른다. 상처는 손을 부른다. 상처로 모여드는 손들이라고 다 치료하는 손은 아니다. 익숙하니까, 편하니까, 나한테 필요하니까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고 손을 넣는다. 내가 매달려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나로 인해 바위처럼 패인 자국을 많이 지녔을 것이다. 바위를 안쓰러워 할 시간에 사람부터 챙기자.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안 그러는데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은 늘 그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일단 ‘아니야’라고 부정하는 버릇이 있다. 수년 째 같이 운동하는 사회인야구팀에서 선발투수인 나는 외야수가 실책을 하면 허리에 손을 얹고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노려보곤 한다. ‘설마 그런 사소한 걸로 상처 받겠어?’ 싶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죽을 것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린 게 패혈증이 되어 합병증을 앓다 죽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신기섭, ‘나무도마’)을 생각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나의 바위, 나의 나무도마인 엄마가 이제야 어른거린다. 짜증, 투정, 핀잔, 탓… 얼마나 오랜 세월 엄마는 자식의 감정 하치장이 되었나. 이제는 안 그럴 나이가 됐는데도 엄마 앞에선 여전히 ‘금쪽이’다. 엄마의 마음이야말로 시인이 말한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이 아닐까. 내 상처가 대수롭지 않으니 타인의 상처도 가볍게 여겼을까. 차를 범퍼카처럼 막 굴리면서 이 정도 스크래치쯤이야 하는 사람처럼, 접촉사고를 내고서도 다 나 같은 줄 알고 뭘 이런 걸로 보험을 부르냐며 적반하장이었을까. 이제 나는 내 상처를 똑바로 보려 한다. 어쩌다 다쳤는지, 누가 아프게 했는지 찾아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작은 흠집이라도 내 상처를 심각하게 여겨야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도 진지해진다. 안 다치는 법을 알아야 안 다치게 할 수 있다. 내 상처를 잘 관리해야 타인의 상처에도 새살을 돋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지금 까진 무릎에 바를 연고를 찾아 서랍을 뒤지는 중이다.

2025-03-03

깨진 유리창의 법칙

학원을 파하고 급히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아찔하다. 차들은 바삐 오고 갔다. 아파트 옆 동 동생과 함께 저녁 산책을 다녀오며 무심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신호등을 찾았지만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호등이 있는 것처럼 계속 서 있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뒤로, 우리 옆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누군가 휴대폰을 보며 뒤따라 멈췄고, 이어서 유모차를 밀던 엄마도 정지선에 멈췄고, 손을 꼭 잡고 걸어오던 노부부도 멈췄다. 횡단보도는 그대로였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마치 당연히 기다려야 하는 장소가 된 것처럼. 나는 문득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떠올랐다. 작은 무질서가 방치되면 더 큰 무질서를 부른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거꾸로 누군가가 질서를 지키면 다른 이들도 따라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때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곤 한다. 누군가가 무단횡단을 하면 뒤따르는 사람들도 별다른 고민 없이 건넌다. 반대로 누군가 오늘처럼 멈춰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멈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작용하는 듯 했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전봇대에는 낙서가 많았다. 처음에는 작은 글씨 몇 개였는데 금세 키 큰 전봇대는 사람의 손이 닿는 모든 지점이 낙서로 뒤덮였다. 그 때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붓을 들고 페인트를 칠해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의아해했지만 깨끗해진 전봇대는 의외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새로 낙서를 하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이다. 누군가 작은 질서를 만들어 놓으면 그 질서를 따르려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는 듯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단순히 멈춰 서 있었을 뿐인데 그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작은 변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조금 후, 차 한 대가 멈췄다. 신호등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지자, 운전자가 양보한 것이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자 모두가 건너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 앞에 또 새로운 사람이 서 있었다. 뒤에 또 다른 사람이, 그 뒤로 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 가져 오는 변화, 질서를 깬 작은 요소가 혼란을 가져오듯 질서를 지키는 작은 행동도 조화를 만들 수 있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보이지 않는 신호처럼. 최근에 본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카페에서 자리가 부족해지자 어떤 손님이 쓰레기를 테이블에 그냥 두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손님들도 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결국 카페 안은 금세 어질러졌고 직원이 치우기 전까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유명한 카페라고 갔지만 정돈되지 않은 무질서에 시간 내어 찾아온 카페에 대한 불 김경아 작가 신과 후회까지 밀려왔다. 긴 시간도 아니었고 찰나에 일어난 무질서였다.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무질서가 퍼지듯 질서와 배려도 전염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대신 닦아내고 정돈을 시작하는 것, 지금 우리 주변에 가장 필요한 법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변화를 원하지만 정작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행동의 본질을 간과하곤 한다.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있다면 그림자를 본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점점 그 공간은 질서를 갖춘 분위기로 변해가는 간다. 우리는 선순환의 시작점을 만드는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내딛는 한 걸음이 작은 변화가 되고 큰 바람을 일으킨다. 시간이 흐르면 긍정의 선택이 모여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낼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더 박살내고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으려는 시작점에 누군가는 또 서 있게 될 것이니까. /작가 김경아

2025-03-03

영혼의 맹인들을 향한 윤동주의 점자

저의 앨범에는 중학교 3학년 때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요. 자세히 보면 제 손에는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들려 있습니다. 어린 저는 윤동주를 읽으며, 나도 감히 문학을 한다면 윤동주처럼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문학의 출발에는 윤동주가 있었고, 문학이라는 길 위에 서 있는 지금도 윤동주는 변치 않는 ‘문학의 상징’입니다. 당연히 윤동주의 삶과 문학이 건네주는 감동은 저만의 것은 아닌데요. 사실 윤동주만큼 시공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문인도 드뭅니다. 윤동주의 시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에서 모두 사랑받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일본에는 아름다운 시비가 세워져 있을 정도니까요. 윤동주의 그 고결한 삶을 앗아간 일본에서조차 윤동주의 문학은 수많은 일본인들의 영혼을 울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여러 곳에서는 지금도 윤동주에 대한 추모 모임이 열리고, 낭송회가 열리고, 답사 모임이 열리고는 합니다. 윤동주는 고작 27년 1개월을 이 지구별에 머물다 갔지만, 그처럼 동아시아의 다양한 공간을 두루 편력한 문인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윤동주는, 한반도의 평양과 서울에서 중학교와 전문학교를 다녔으며, 이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교토의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결국 후쿠오카의 차가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윤동주는 오늘날의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을 모두 중요한 삶의 공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가 1년간 도쿄에 머물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계획한 일 중의 하나도 윤동주의 도쿄 내 행적을 따라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윤동주는 1942년에 한 학기 동안 릿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다녔는데요. 2025년 2월 16일은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월 16일은 일요일이었기에, 저만의 조촐한 추도회를 갖는 심정으로, 이틀 앞선 2월 14일에 윤동주의 도쿄 내 흔적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윤동주가 도쿄에서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다카노바바의 하숙집 터였습니다. 다카노바바에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밝혀낸 이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야나기하라 야스코입니다. 수필가이기도 한 그녀는 윤동주의 릿교대 후배로서, 평생 동안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알리는데 헌신해 온 분인데요. 그녀의 조사에 따르면, 윤동주의 하숙집은 현재 일본점자도서관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윤동주가 머물렀던 곳에 일본점자도서관이 생겼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윤동주가 영혼의 잉크로 써내려 간 시들은, 일제 말기 정신의 맹인들을 깨우치기 위한 점자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윤동주의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한참을 서성였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건물이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윤동주가 한 학기를 다닌 릿교대학이었습니다.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던 다카노바바에서 릿교대학은 대략 2.5킬로미터 정도가 떨어져 있었는데요. 스물여섯 살의 윤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릿교대학까지 직접 걸어가 보았습니다. 릿교대학에 도착했을 때, 고풍스러운 본관인 모리스관이 저를 맞아 주었는데요. 어딘가 낯이 익다고 생각하여 자세히 보니, 담쟁이 덩굴까지 포함하여 윤동주가 공부한 연세대의 언더우드관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윤동주가 도쿄에 머물며 릿교대학에 다닌 때는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직후여서 참으로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그것은 윤동주가 이 무렵 삭발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야나기하라 야스코에 따르면, 릿교대학은 윤동주가 입학한 직후에 “전시체제에 맞추어서 질실강건(質實剛健)한 기풍을 진작하려는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삭발을 강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릿교대학 본관 바로 옆에는 Mather Library 기념관이 있었는데요. 그 건물의 입구 바로 오른 편에는 윤동주가 릿교대학에 다니며 창작했던 다섯 편의 시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쓰여진 시’, ‘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다섯 편의 시는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인데요. 이 시들은 윤동주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들로서, 윤동주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편들입니다. 도쿄에서 윤동주는 조선(인)을 참으로 그리워했던 거 같습니다. “사랑하는 동무 박이여! 그리고 김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흐르는 거리’)라며 애타게 벗들을 불러보는가 하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사랑스런 추억’)며 애타게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결국 윤동주에게 “육첩방은 남의 나라”(‘쉽게 쓰여진 시’)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절절한 외로움 속에서 윤동주는 “홀로 침전”(‘쉽게 쓰여진 시’)하며 “슬픈 천명”(‘쉽게 쓰여진 시’)으로 주어진 시 쓰기에 열중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속에서 윤동주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쉽게 쓰여진 시’) 인류의 예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 만물은 부서지고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맑고 투명하여 애처롭기까지 한’ 윤동주의 삶과 문학만은, 2025년 2월의 도쿄에서도 변치 않는 ‘젊음의 표상’으로 영원을 살고 있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