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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토픽감이 된 한국의 불수능

수능의 난이도가 어려우면 불수능이란 이름으로 호되게 비판을 받는다. 수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 수험생들의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험을 쉽게 내면 물수능이란 비판을 뒤집어 써야 한다. 대학 수능시험의 난이도 조절은 시험 때마다 자주 도마에 오르는 주제다. 시험의 변별력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난이도 조절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모든 수험생의 눈높이에 맞는 난이도를 구성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다. 2026학년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영어 영역을 둘러싼 난이도 논란이 시끄럽다. 논란 끝에 불영어란 불명예를 쓰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사태를 들여다 본 해외 언론들이 한국의 수능 영어 영역을 조명하고 나서는 등 뉴스 소재로 삼았다. 영어의 본산인 영국의 BBC 방송은 “한국의 대학입시 시험은 악명 높게 어렵다”고 설명하고 올해 출제된 영어 영역 문제를 두고 일부 학생들은 고대문자 해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일부서는 “미쳤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한국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불수능으로 불릴 정도로 어렵다는 소식과 함께 올해 출제된 영어 문항을 소개하고 독자들이 직접 풀어보는 온라인 퀴즈를 내기도 했다. 또 일부 해외 언론은 한국의 과열된 입시경쟁 구조가 청소년의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입시문제가 청소년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한국의 수능이 해외 토픽감이 됐다. 좋은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가 컸다. 32년 전통의 수능방식, 고민할 때 된 것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2-16

살육의 서막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인류는 폭력과 살육의 연속이었다. 무지한 인간이 신념을 지니면 더욱 무서운 법,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인간이 얼마나 광폭한지, 얼마만큼 폭력적이고 악해질 수 있는지, 자신의 이익에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실험 중일 것이다. 과거로 돌려보내는 것은 기억이고, 미래로 가는 것은 꿈이다. 발칸반도 폭력의 중심에 섰던 권력, 유고내전과 보스니아 전쟁, 그리고 민족을 앞세운 권력욕에 매몰된 인간들에 의해 자행된 코소보 살육의 현장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대한민국 해방정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정권에서 자행됐던, 당대 유명한 오제도(吳制道) 검사가 기획하고 이승만이 승인한 국민보도연맹사건(國民保導聯盟事件)에서 죽어간 수만 명의 억울한 주검 앞에 그 누구도, 백주대낮의 세상이 도래했다고 해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세상이다. 희대의 살육자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이다. 뒤이은 월남전, 중동전쟁을 넘어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청소한다면서 자행한 제노사이드가 21세기에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강대국은 이익이 나지 않은 곳에 눈 돌리지 않는 법, 어쩌면 재고 넘치는 순 구제 무기라도 팔아먹으려면 그마저도 부추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일평생 호위호식하며 몸을 살찌우고 이름 없이 죽어간 인물은 부지기수다. 그나마 악에 물들어 추호의 의심도 없이 살육에 앞장선 인물에 비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지독한 고독을 이겨내고 인류 평화를 밝혔던 역사 속 인물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현실보다는 역사에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조차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했다. 이것이 ‘기억의 힘’이다. 되돌아보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서두르지도, 넋을 놓아서도 안 된다. 아무리 두려워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 과거에 아픔이 있더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활용할 일이다.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 플리트비체 물길 따라 흐르는 장엄한 풍경, 아드리아해 진주 아름다운 항구 두브로브니크 성벽에 올라서서 윤슬 반짝이는 바다는 여전히 추억에서 반짝이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중세 골목골목을 누벼가며 장검을 찬 기사가 된 양 폼을 잡고, 골목 비탈길에 앉아 나 홀로 맥주를 홀짝거려본 기억도 그립다. 달마티아 해변에서 항구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시간, 달마티아 출신 최초로 로마 황제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만년을 보낸 궁전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 압도당했던 기억은 여전히 설렌다. 성도미니우스대성당의 고즈넉한 맛과 함께 신을 향해 흐르는 인간의 물결은 보이지 않는 신의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자그레브 밤거리를 대한민국인 양 휘청거린 경험은 치기의 아찔한 추억이다. 자그레브 옐라취치 광장에서 어린 학생들 단체사진을 찍어준 일, 이 모든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명강사는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삶처럼 베테랑 여행자일수록 꾸러미가 간소한 법, 길을 걷다가 보면 소도 보고, 중도 본다. 청산(靑山)과 녹수(綠水)가 산 입에 거미줄 치게 두겠는가, 어찌 소인처럼 작은 이익과 아름다움에만 얽매이겠는가. 삶은 길에서 배운다. 유랑민의 본능이 살아나면 폭력의 아픔과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아름다움에만 빠져 하늘을 우러러 찬사의 목청만 높일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드리아해 진주 두브로브니크 성에 올라 둘레를 몇 발자국만 걸어도 과거 아픈 상헌흔이 채 아물지 않은 채 생살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몬테네그로 자칭 용사들이 한 명의 크로아티아인도 남겨두지 않겠다며 무차별적인 포격의 현장이다. 크로아티아가. 일명 ‘문화전쟁’이라며 문화재를 총알받이로 앞세운 전략이었다. 세르비아 연방군을 문화재 파괴의 주범으로 몰기 위해 텔레비전 중계까지 준비하고 파괴하기만을 기다리는 크로아티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13세기에 건축된 두브로브니크 성이 화염과 포염에 휩싸인 모습을 상상을 해보면 마냥 아름답고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젖을 수만은 없다. 크로아티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유고전쟁 당시 연방군과 크로아티아군 살육전은 소름 돋는 역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극우조직 우스타샤는 나치 지원 아래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 35만(부상자 포함 70만?) 명을 학살했다. 순박하게 생긴 청년들, 밤에만 피는 박꽃 같은 여인들, 팁이라고 내민 손을 부끄럽게 만든 할아버지와 동방의 끝자락에서 날아온 이방인을 향한 비아냥대는 청소년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 세르비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넘을 때, 국경선 군인들 눈초리는 여전히 이들의 가슴에는 폭력의 앙금이 완전히 씻어지질 않았다고 대변하고 있다. 이제부터 21세기 우리 한반도와 닮은 발칸반도 폭력의 역사를 이야기할까 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2-16

잠금 이후

작년에 새 노트북으로 바꾼 후 일 년을 나의 호흡처럼 품고 있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수업의 문장들이 깜빡이며 살아났고 미완의 글들은 밤의 잔열을 머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노트북은 나를 배척했다. 늘 통과하던 비밀번호가 더는 문이 아니었다. 기계는 침묵했고 나는 의아함과 불안함이 번갈아 오고 갔다. 서비스 센터에서는 백업이 불가하다 하여 외부 수리에 맡겼지만 문을 통과하지 못한 원인은 간단했다. 해킹, 누군가 나의 공간에 들어와 비밀번호를 바꾸었고 나는 나의 방에서 추방되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초기화였다. 그 단어의 무정함은 늘 정확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혹은 시스템의 명령에 의해 기억은 지워졌다. 이전 노트북에서 옮겨 놓은 수많은 수업자료와 켜켜이 쌓아온 문장들, 밤마다 키워온 내 삶의 비유와 숨결들. 자식 같은 글이라는 표현이 과장 같을지 모르나 글을 써 본 사람이면 안다. 문장은 태어나기까지 오랜 진통을 치르고 태어난 뒤에도 수없이 넘어지며 자란다는 것을. 그 아이들이 한꺼번에 몽땅 사라졌다. 기계의 망각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인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주, 시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병실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수없이 아버님을 불렀다. 자식들의 부름은 공중으로 흩어졌고 아버님의 몸은 그저 누운 채로 저 깊은 수면 상태로 시간은 흘러갔다. ‘반응 없음’ 의료 기록의 차가운 문구는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해킹은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에 침입해 문을 잠그는 행위, 기억의 경로를 바꾸고 접근 권한을 박탈하는 폭력이었다. 나의 노트북이 그러했고, 아버님의 몸도 그러했다. 뇌라는 서버에 갑작스러운 오류가 발생하자 아버님이 평생 축적해 온 얼굴과 목소리, 하물며 사랑의 암호까지 모두 접근 불가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늘 대비하며 산다고 믿는다. 백업을 하고, 보험도 들고, 검진도 미루지 않고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삶의 취약점은 우리가 방심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순식간에 열린다. 보안은 완벽할 수 없고 건강은 영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일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초기화 이후의 노트북은 말끔했다. 공백은 깔끔했고 빈 바탕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애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지워진 것들 위에 새로 쓴다는 것은 상실을 전제로 한 창조였다. 지금의 나의 저울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전의 기억을 더듬는 데 더 기울어져 있었다. 아버님이 계신 병실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체온을 확인하고, 숨의 리듬을 읽었다. 기술은 반응을 숫자로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숫자 너머의 미세한 떨림을 기다렸다. 삶은 언제나 데이터보다 느리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만 회복된다. 나는 다시 문장을 쓴다. 기억을 백업하고 비밀번호를 바꾸며 동시에 사람의 손도 더 오래 붙든다. 기술은 보호막이지만 결국 삶을 지키는 것은 주의와 애정의 지속이다. 아버님의 침묵은 아직 풀리지 않은 암호처럼 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로그인을 시도한다. 이름을 부르고 기억을 들려주고 사랑의 키를 바꿔간다.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우리의 삶을 해킹으로부터 지키는 최후의 보안이라 나는 믿고 싶다. 해킹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침입자는 로그를 지웠고 시스템은 정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용자는 어딘가 달라졌다는 것을 안다. 아버님의 맥박도 규칙적이라고 기계는 말했지만 우리가 알던 아버님의 리듬은 사라졌다. 정상과 온전함 사이의 간극에서 우리는 매일을 건너고 있다. 잠금은 늘 풀릴 수 있고 잠금 해제는 예고되지 않는다. 우리가 믿어온 ‘안전’이 얼마나 임시적인지 생각한다. 기록은 기계에 남기되 삶의 의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남기고 나눠야 함을 다시 한 번 나에게 로그인한다. /김경아 작가

2025-12-16

혁신주상과 삶의 프레임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기준 틀’을 삶의 프레임(Frame)이라고 한다. 살면서 얻는 지식과 경험이 삶의 프레임이 되고 세상을 보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같은 현실을 겪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느끼고 선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프레임 때문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며, 어떤 기준으로 선택과 포기를 결정하는가를 규정하는 내면의 사고 구조이다.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의 잣대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면 지혜롭게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제조 기업의 안전과 작업 환경, 생산 경쟁력을 위해서 공장 내 수작업 장이 이슈가 되곤 한다. 일을 하는 데 돌아가거나 넘어가거나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것은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장 레이아웃(Layout) 최적화를 해나가야 한다. 사람, 자재, 설비, 정보의 흐름을 기준으로 작업자의 동작 낭비를 최소화하고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극대화하도록 작업 공간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수작업 공정에서는 설비보다 사람의 이동·동작·판단이 성과를 좌우하므로 작업 품질과 속도를 결정하는 공간 설계인 레이아웃 최적화가 중요하다. 레이아웃 최적화의 핵심 조건은 첫째, 흐름 중심 설계(Flow)이다. 작업 흐름에 맞는 설비 배치와 자재 입고, 가공, 검사, 포장, 출하가 역류 없이 직선 또는 U자 형으로 흐르게 한다. 둘째, 작업자 동작 최소화이다. 수작업에 필요한 공구·치구·비품·용품 등을 허리-어깨 높이, 팔꿈치 반경 50cm 이내 일하기 쉽게 배치한다. 셋째, 생산과 일의 흐름화이다. 일의 흐름에 맞게 작업 통로를 만들고 지그재그 작업을 강물이 흘러가듯 작업 흐름화로 만들어 간다. 넷째, 표준과 시각화이다. 작업 통로 선을 긋고, 이를 중심으로 물건의 위치 구획선, 비품, 공구의 이름을 VM(Visual Management)하여 찾아 쓰기 쉽게 시각화 한다. 제철소 FINEX부 ‘혁신주상만들기‘ 할 때의 일이다. 쇳물을 생산하는 주상을 ‘산모가 아기를 낳는 신선한 곳’으로 정의하고, 열악한 환경과 작업 조건 개선을 시작했다. 3시간마다 쇳물 흐르는 탕도 위치가 바뀌고, 뚜껑이 열릴 때 다량의 연기(Fume)가 발생한다. 탕도 주변은 경사져 있어 지게차, 작업자 이동시 미끄럼 위험이 상존한다. 주상 바닥은 설비 중심부 외는 콘크리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서장의 생각 프레임이 있었다. 작업자의 안전 위협과 일의 비효율성을 근거로 주상 전체 평탄 작업 필요성을 인지시켰다. 모래·왕겨 운반 차량과 안전 통로를 확보하고, 주상에 필요한 물건들을 허리 높이부터 어깨 높이 사이에 배치하여 일을 쉽고 안전하게 했다. 부서장의 생각 프레임에 바닥 평탄 작업을 못했다면, ‘혁신주상’ 레이아웃 최적화는 실패했을 것이고, 환경,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식과 경험으로 고정 관념화 되는 생각 프레임은 중요 의사 결정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에 멈춘 삶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유연성을 갖고 미래를 향한 가치관으로 내일을 열어가야 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16

소리를 담금질하는 정가(正歌)의 울림

연말이면 으레 길거리에서 들리는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정겹고 훈훈하게 여겨진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따뜻한 이웃사랑의 울림이 잔잔히 퍼져 나가고 있다. 매년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세계 100여 국에서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 종소리가 우리나라 명동에서도 100여 년째 울리면서 따뜻한 불우 이웃돕기와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다. 길거리에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연말에는 이러저러한 음악회나 발표회 등이 잇따라 열리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살고 사랑하며 수고한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는 음악회가 다채로운 선율을 타고 위로와 위무의 마음으로 흐르고 있다. 음악과 소리는 그만큼 상황과 느낌에 따라 마음을 이완시키며 위안과 치유로 더할 수 없는 감동과 감흥을 주기도 한다. 소리를 재료로 하는 복합적인 시간예술인 음악은 대부분 악기나 음향장비를 이용하여 리듬이나 멜로디, 하모니, 음색 등을 표현하고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게 된다. 다양한 음악의 장르 중 특히 우리 고유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국악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일컫는 말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예술적 표현활동인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와 이를 재해석·재창작한 공연예술을 가르킨다. 그중 정악(正樂)·정가(正歌)는 한국 전통 성악곡의 정수이자 조선시대 선비 문화의 미적·정신적 가치를 보여주는 음악 장르로, 고려와 조선시대의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향유된 ‘바른 음악’을 의미한다. 정악(正樂) 가운데 대표적인 가곡·가사·시조창을 성악곡이라 하여 ‘정가’라고 통칭하고 있다. 즉 정악정가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 정신과 예술적 미학을 담고 있으며, 전통 성악곡의 미학과 선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음악 장르로 오늘날까지 전승, 보존되며 그 예술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첨단 문명의 정보화로 전통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우리의 뿌리 깊은 소리를 배우고 익히며 전승하는 일은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가곡·가사·시조창에는 선조들의 얼과 풍류가 스며 있고 우리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있기에, 정가를 현대적으로 계승, 보급,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적극 장려해야 되리라고 본다. 그러한 차제에 최근 정가의 맑은 울림으로 겨울의 인사를 나누듯 소리의 향연을 다소곳하게 펼쳐 보인 곳이 있어서 주목된다. 지난 주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원에서 포항정가보존회의 정가 발표회가 담담하고 구성지게 열린 것이다. 옛날 선비들이 사랑방에서 거문고나 장구의 장단에 맞춰 가곡이나 시조창을 멋들어지게 불렀듯이, 좁은 실내지만 음향시설 없이 대금을 곁들여 가곡·가사·시조창에 민요까지 다양하고 이채롭게 펼쳐 보여 상당히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방 안에서 그야말로 정가 특유의 방중악(房中樂)으로 부르고 연주하며 춤까지 어우러진 시간 내내 품격과 감흥을 더하며 탄성과 추임새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통의 가치를 창(唱)과 소리로 담금질하며 소중한 정가의 맥을 이어가는 활동과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2-16

자유를 생각함

하나의 책이 엉성한 대로나마 마무리를 향해 간다. 얼마 전부터 아직 써야 할 게 남아 있다고 느꼈다. 시간이 가면서 그 부담감이 더 커졌다. ‘자유’라는 큰 주제가 남았던 것이다. 생각하면, 자유는 무상으로 주어진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도 같다. 꼭 짝을 지어 평등과 함께 소중한 것이라 말하고 그뿐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다. 자유는 필연의 인식이라 했다. ‘꼭두서니’에서 알리자딘이라는 염료를 얻을 수 있으면, 우리는 그에 관한 자연법칙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만약 필연, 곧 자연법칙을 다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자연의 ‘노예’인가? 국회도서관에서 대의제에 관한 책을 찾을 때였나? 자유민주주의는 유럽의 사민주의에서도 그 토대를 이룬다고 했다. 사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이념을 놓고 경쟁하는 근본적 사회정치적 토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일제 강점기 때 작가 이효석은 ‘산’·'들'·'소라'의 연작을 남겼다. 이중 ‘산’에서 주인공인 머슴 중실은 자신을 핍박하는 주인집에서 나와, 다른 주인을 찾아가지도 않고, 서울 같은 도시로 가지도 않고, 산으로 올라간다. 한 계절을 산에서 보내고 나니 자신도 산의 나무들 같은 나무가 되어간다고 느낀다. 중실은 ‘나무의 자유’를 찾아 ‘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 대목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밀은 인간은 나무처럼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했다. 비유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여기서 나무는 부자유하지 않다. 자연은 자유의 토대요, 사회는 속박의 조건이다. 만해 한용운의 시 ‘복종’은 ‘자유’를 노래한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이 당신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화자는 그에 대하여 스스로 복종하는 ‘자유’를 누리고자 할까? 이 한용운의 ‘조선 독립의 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도대체 자기 목숨을 터럭같이 여기게도 하는 이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란 생명체의 본연의 자기 존속의 원리일 것 같다. 생명은 본디 생명력을 추구하고 소모하기를 근본으로 삼는 존재이고, 이 지향은 무조건적이고 원리적이다. 이러한 생명체적 본성을 인간의 언어로 옮긴 말이 바로 자유일 것이다. 자유는 자기 몸과 마음에서 말미암음이며 구속이나 복종조차도 자유일 때만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한국 작가와 시인은 이것을 어떻게 사유해 왔던가? 남은 문제가 너무 크다. 연말인데도 즐겁지가 않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2-15

공공기관 2차 이전, 국토균형발전 시작점으로

이재명 정부 최대 화두는 국토균형발전이다. 이 대통령은 대구 타운홀 미팅에서 “국토균형발전은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마지막 탈출구”라 말한 바 있다. 그는 “지방과 수도권과의 불균형이 너무 심각할 뿐 아니라 앞으로 개선될 여지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고도 했다.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잘 표현한 말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하면 과거 정부보다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아야 한다. 김윤덕 국토부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방을 살리는 특단대책으로 “공공기관 2차 이전을 2027년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대상기관은 대략 350개 정도이나 모두가 이전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때도 340개 공공기관을 검토해 176곳을 이전했다. 업무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공공기관 이전은 단순한 나눠먹기가 아니고 집적 효과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이전기관을 전국에 흩어놓으면 이전 효과가 줄어들게 되는 것을 경계해서 한 말로 풀이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지역사회·경제에 단시간 파급효과를 줄 가장 강력한 정책이다. 각 지방정부가 2차 공공기관 이전에 깊은 관심을 표하며 유치전에 뛰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공기관 2차 이전이 정부 발표대로 내년에 일정과 배치지역을 정하고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이전작업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은 과거 정부 때부터 거듭 약속을 어겨 정부 발표에 대한 지방민의 신뢰가 바닥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가 명운을 걸고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실행에 옮기는 용단을 보여주어야 한다. 공공기관 1차 이전이 2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원인도 밝혀 대비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한편 대구시와 경북도는 정부의 발표에 맞춰 공공기관 2차 이전이 지역의 발전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 지역을 살리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2025-12-15

‘통일교 의혹’ 뭉갰다간 후폭풍 감당 못한다

통일교의 여야 정치권 로비 의혹이 연말 정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경찰은 지난 10일 김건희 특검팀으로부터 통일교의 정치인 접촉 관련 내사 사건 서류를 넘겨받은 뒤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청 특별전담수사팀은 15일 오전 경기 가평 통일교 천정궁, 서울 용산구 통일교 서울본부, 통일교 한학자 총재와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이 구속 수용된 서울구치소 등 10곳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자택과 의원실,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의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광범위한 압수수색에 착수했지만, 현역 민주당 의원 신분인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 인사권을 쥐고 있어 경찰 간부들이 소신 있게 수사에 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11일에는 윤영호씨가 경찰의 구치소 방문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진술내용에 대한) 기억이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특검 진술 내용을 번복한 것도 수사가 난항에 빠질 수 있는 요소다. 윤씨의 진술이 결정적인 단서라는 점에서 경찰 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씨의 태도 변화는 내년 1월 28일 선고를 앞둔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로서는 그의 엇갈린 진술 내용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밝혀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다. 지금 민주당 일각에서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통일교 의혹을 선제적으로 털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이 지난 8월 통일교 간부로부터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고도, 민주당 부분은 수사에서 뺀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민주당도 이젠 통일교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수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특검이 불가피하게 됐음을 인식해야 한다. 특검 없이 경찰 수사만으로 의혹을 뭉갰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025-12-15

노무현을 팔아먹는 자들

칼 마르크스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 정치가 언제부터 토론의 영역이 아닌 신념의 영역이 되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먼저 묻는다. 이때부터 정치는 토론이 아니라 충성의 문제가 된다. 이런 상태를 두고, ‘정치가 종교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라고 한다. 정치가 종교처럼 어떤 상황을 비판할 수 없는 영역으로 격리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가. 정치가 종교가 된다는 것은, 특정 이름과 가치가 질문으로부터 보호된다는 의미다. 보호되는 순간, 사유는 멈춘다. 질문은 곧 불경스러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진보 정치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점점 이런 성역의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처음 이 이름이 불리었을 때, 그것은 한 개인의 선택과 실패, 용기와 고독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기득권과 싸웠고, 패배를 감수했으며,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권력을 불편해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하나의 질문이 아니다, 노무현은 어느새 정의가 되었고, 정의는 진보가 되었으며, 진보는 현재의 특정 정치 세력과 동일시되었다. 이러한 등가와 연쇄가 작동하는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다. 누군가 현재의 정책을 비판하면, ‘노무현의 가치를 부정하는가? 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여기서 논의는 끝이다. 비판하는 자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문제 제기는 내부 총질이 되고, 자연스럽게 ’입틀막‘으로 가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 연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종교에서 신이 성스러운 이유는, 비판과 사용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성스러워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 된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지금 그런 위치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그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그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용 가치가 아닌 교환 가치가 된 것이다. 돈과 권력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성스러워진 이름은 그 이름이 가졌던 좋은 것들을 제거한다. 예컨대,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나‘ ’왜 권력은 늘 기득권의 편으로 기우는가‘ ’왜 진보조차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가‘ 같은 질문들이 사라진다. 대신 상징만 남는다. 상징은 질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거의 희생은 현재의 정당성이 되고, 죽은 자의 이름은 살아있는 자의 방패가 된다. 믿음은 반복되지만, 의미는 갱신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이름으로 하는가이다. 이데올로기는 늘 이렇게 작동한다. 거창한 선언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아주 익숙한 동기에서 출발한다. 노무현=정의. 정의=진보. 진보=지금 우리. 이 등가와 연쇄가 완성되면 현재의 권력은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없어진다. 노무현을 팔아 돈과 권력 장사를 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노무현 성전‘을 세워 신도들을 그러모아 기도하게 하고, 헌금을 바치도록 한다. 지금 당장 성전을 허물고, 노무현을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려 놓기 바란다. 정의롭고 당당하게 열심히 일한 인간 노무현을 신으로 격상시켜 죽이지 않길 바란다. 신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가치를 이어받고 싶다. 누가 노무현의 바울인가···. /공봉학 변호사

2025-12-15

앙상한 절약 비법

세밑 달 중순 첫날이다. 앙상한 활엽수 가지들이 초겨울 유리알 하늘에 매달렸다. 쓸쓸하다. 정열 불태우던 단풍잎들은 봄에 나서, 늦가을에 떠나는 짧은 생만 살고 가는 기분이 어땠을까. ‘하루살이도 있는데, 세 계절이나 살았으니 여한 없다’라고 할까. ‘나무는 수십 년씩 사는데, 우리는 겨우 세 철을 살게 하다니요. 하느님 너무해요’하고 원망이라도 할까. 생기 찬란했던 봄날도, 성숙 일렁이던 여름철도, 황금 들판 빛나던 가을도 가고 초겨울이 왔다. 지난 한 해 햇볕과 공기와 물로 양분을 만들어 자신도 살고, 나무도 키워온 나뭇잎들. 오늘은 왠지 앙상한 나무가 마치 우리나라 같다. 자칫 나라가 겨울로 갈 수도 있는 요즈음일 테니까. 나라란 나무는 기관, 기업, 단체 등 생산‧유통‧소비자를 망라한 국민일 터.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나뭇잎이 단풍들어 낙엽 지는 건 나무의 ‘생존 전략’이라고…. 광합성의 촉매제 엽록소 결합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줄기나 뿌리로 비축되며 단풍이 물든다. 활엽수는 잎에서 수분이 증발한다. 겨울엔 뿌리의 수분 흡수가 어렵다. 때문에, 나무는 코르크 세포 장벽 떨켜를 만들어 낙엽 지게 해 ‘수분 절약’을 한다. 곧, 활엽수는 겨울을 ‘앙상한 절약’으로 살아낸다. 결국, 나무는 살기 위해 나뭇잎을 떠나보내고 낙엽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떠난다. 한 해 동안의 행복했던 삶이, 단풍이란 아름다움과 낙엽이란 아쉬움으로 마감되는 자연의 섭리가 깔끔하다. 이론(異論)도, 미련도 없다. 낙엽은 나뭇가지에 새 눈을 남겼고, 나무는 다음 한해살이를 위해 새 눈들의 도입 교육에 들어갔으리라. 지금, 나라에 겨울을 예고하는 징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낙엽 져 가지들이 앙상하듯, 우리 경제란 나무도 그래 보인다. 거침없던 성장의 잎사귀들은 정치 바람에 낙엽처럼 흩어지고, 억지로 버티는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다. 원화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외환 위기 우려가 커진다. 제2의 IMF가 온다는 소리도 떠돈다. 국민연금으로 환율하락을 막겠다는 보도가 국민 심장을 찌른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같이 괴상한 법률들이 입법부 단상에 막무가내로 진상(進上)되고, 물가는 돌아서면 오른다. 가계 수입이 같아도 실질소득은 줄어든다. 한미환율협상 후유증으로 비어가는 상가와 공장들이 늘어난다. 나랏빚이 천문학적인데, 위정자는 ‘민생지원금’이란 구실로 빚을 내서 공짜로 나눠준다. 누가 갚으라고···. 각자도생이란 말이 가슴에 박혀도 기댈 언덕이 안 보이는 세태다. 하지만, 앙상한 나뭇가지가 ‘수분 절약’으로 설한풍에 맞서 도생을 꾀하듯, 국민도 ‘절약’으로 닥칠 나라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정부도 앙상한 가지같이 ‘절약’해야 겨울을 견딜 것 아닌가. 예전 IMF 때, 국민이 근검절약하고 금 모으기 정신으로 외환 위기를 이겨냈듯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엽 졌다’라는 탄식보다 새잎을 피우기 위한 용기와 절약이다. ‘앙상한 절약’이 우리나라에 내려주는 하늘의 든든한 국가 도생 비법일 테니까···. /강길수 수필가

2025-12-15

AI 시대에도 인간의 연주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

인공지능의 작곡·연주 기술이 급속히 고도화되면서 음악 경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AI 연주는 여전히 리듬게임처럼 딱딱한 감이 있으며 인간 연주의 미세한 뉘앙스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방대한 연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템포 루바토, 다이내믹, 터치 등을 학습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간극은 점차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연주를 기계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사실 100년 전쯤 ‘자동연주 피아노’에서 시작되었다.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연주자의 연주를 그대로 재생하는 방식이다. AI 기술은 이를 넘어, 동일한 악보를 연주할 때 연주자 간 스타일 차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본다. 이론적으로는 고(故)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윤이상의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전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연주’라는 행위는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일까. 연주의 핵심에는 기교뿐 아니라 해석, 표현, 구조 이해, 소통, 그리고 감정이 포함된다. AI가 구현하는 감정 표현은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그럴듯한 패턴을 산출한 결과이다. 반면 인간의 감정 표현은 삶의 경험과 기억, 신체 감각이 통합되어 나타난다. 예술 행위는 ‘체화된 인지’의 산물이며, 인간 연주의 감정은 호흡과 근육 긴장, 미세한 시간 지각이 함께 작동하는 체화된 정동적 사건이다. 즉 연주자의 삶 자체가 연주에 스며드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떠올려보면 더욱 분명하다. 절망의 시기를 통과하며 탄생한 이 작품은 인간 연주자가 그 서사를 감각적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청중에게 강한 울림을 전달한다. 반면 AI는 감정의 원천이 되는 생애 경험을 가질 수 없으며, 감정을 ‘유사 패턴’으로 처리할 뿐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에서 연주자는 악보라는 추상적 기호를 시간 속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능동적 해석자다. 동일한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음악이 전혀 다른 이유는, 해석이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연주자의 인식과 신체, 경험이 결합된 수행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AI는 해석의 결과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왜 이러한 해석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해석의 동기가 결여된 결과만을 산출한다. 음악 경험은 또한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공연 현장에서 연주자와 청중은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호흡과 긴장, 침묵의 밀도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이는 무대 예술의 핵심 개념인 ‘현존성’과 직결되며, 단순한 물리적 존재를 넘어 상호 감각적 조응 속에서 생성되는 관계적 에너지다. AI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구조에 참여할 수 없다. AI 기술은 완벽함을 구현함에 의미가 있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곧 예술적 깊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느끼고자 하는 감정을 정교하게 건드릴 수는 있어도 그 감성의 근원은 비어 있다. 그렇기에 연주는 여전히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며, 연주자는 AI 시대에도 마지막까지 남을 예술적 직업 가운데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예술의 가치는 인간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데 있으며, 기술은 그 ‘살아 있음’을 대체할 수 없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5-12-15

가난한 사람은 지하실로 간다?

사는 집은 사람의 생활수준과 가진 돈을 우회적으로 확인하게 해준다. 이른바 서울 중심가의 아파트는 거래가격이 수십억 원에 이른다. 대구·경북에도 고가 아파트가 적지 않다. 하늘 높이 솟아 마천루를 이루는 고층 아파트를 보면서 ‘나는 언제쯤 저런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절망하는 서민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형태는 어떨까? 지하 또는, 반지하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하는 어둡고 갑갑하며 습기가 차는 공간이다. 그러나, ‘지상의 집’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길에서 이불 깔고 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엔 부잣집 가정부의 남편이 오랜 세월 지하실에 갇혀 생활해온 모습이 영상으로 보여진다. 주인공 가족의 주거 형태도 유사하다. 방 안에서 거리가 올려다 보이는 반지하 집인 것. 가난한 사람들은 땅 위가 아닌 땅 아래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의 영화적 형상화가 아니었을까.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비슷한 모양이다. 최근 대만의 언론매체 TVBS는 딱한 사연 하나를 보도했다. 한 아파트 주차장 지하실에서 3년 넘게 살아온 70대 노인이 불법 점유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아파트 입주민이었으나 문제가 생겨 자신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자 생활필수품만을 챙겨 지하실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고 한다. 긴 세월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주차장 지하실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야했던 대만 노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측은지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15

[팔면경] 한국 박물관의 세계화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올들어 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사람이 6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1945년 박물관 개관 이래 한해 누적 방문객으로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것이다. 그 숫자는 동양권 국가에서 가장 많고, 세계적으로는 루브르, 바티칸, 영국박물관에 이어 네 번째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2024년 기준 한해 약 870만 명이 다녀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객이 늘어난 것과 관련 박물관 관계자는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전통문화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분석을 한다. 특히 한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외국인 관람객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박물관이 K-컬처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영국의 킹스칼리지 런던연구팀은 이색적인 연구결과를 발표, 관심을 모았다. 연구팀은 프랑스 화가 마네, 고갱, 네덜란드 화가 고흐 등 세계적 명성의 화가가 그린 진본을 감상하면 스트레스가 줄고,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연구팀은 50명의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미술관에서 세계적 화가의 진짜 그림을 보게 하고, 다른 그룹은 다른 장소에서 복제된 그림을 보도록 해 신체 변화를 살폈다는 것이다. 진짜 그림을 본 그룹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감소하고 몸속 염증 물질도 줄어든 반면 복제본을 본 그룹에서는 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 한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역사와 전통, 유산 등이다. 한국의 문화가 집대성된 박물관은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늘어나는 것은 바로 한국박물관의 세계화가 멀지 않았다는 신호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12-14

수사기관이 도둑의 하수인이 되려는가

“민나 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모두가 도둑놈이다’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1982년 한 TV 방송 시리즈물 ‘거부실록’에서 공주 갑부 김갑순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자유당 정권 때 유행하고, 4.19 직후 김상돈 서울시장이 취임식에서 이 말을 인용해 회자됐다고 한다. 김갑순은 주변에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들뿐이라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믿을 놈이 없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해먹을 궁 리뿐이다. 나라를 걱정이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서민 입에서 ‘모두 도둑놈’이란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부인을 보호하려고 비상계엄을 발동한 윤석열 전 대통령도 어이가 없지만, 정권을 거저 얻은 이재명 정부가 입법 권력으로 장난쳐, 법치를 희화화하는 것도 기가 찬다. 유죄를 무죄로, 무죄를 유죄로 만든다. 통일교와 유착했다고 국민의힘을 해산해야 한다고 소리 지르던 민주당 인사가 정작 로비를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제 내놓고 ‘내로남불’이다. 특검 수사가 너무 편파적이다. 야당은 수사하고, 여당은 은폐한다. ‘김건희 특검’이 여권 연루 사실을 안 것은 지난 8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지난 5일 법정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라면서 “현 정부의 장관급 인사 등 4명과 국회의원 리스트를 (특검팀에) 말했다”라고 증언하면서 드러났다. 그제야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의 수천만 원대 금품수수 혐의를 경찰에게 넘겼다. 한겨레는 윤 전 본부장이 민주당 정치인 15명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통일교가 민주당 인사 중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강선우 민주당 의원 등을 직접 접촉하며 관리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윤 전 본부장은 대선 직전 “이재명 후 보 쪽에서도 다이렉트로 어머님(한학자 총재) 뵈려고 전화가 왔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특검은 국민의힘만 조사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특검은 전 정부와 국민의힘 인사들에 대해 최소 18명을 30차례 이상 조사했다. 민주당은 단 한 명도 수사하지 않았다. 특검 측은 민주당 관련자들이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초에 통일교 자금 문제로 권성동 의원을 조사한 게 별건이었다. 특검이 기소한 24명 가운데 16명은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때는 특검법상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범죄행위’도 수사할 수 있다며 정당화했다. 수사가 아니라 야당 때려잡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진술은 정식 조서가 아닌 수사보고서만 만들었다.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의 법정 발언이 있고, 외부로 불거지자, 부랴부랴 입건 전 내사 사건 번호를 붙여 경찰에게 던져버렸다. 특검은 2023년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통일교 신도가 집단 입당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지난 8~9월 세 번이나 국민의힘 당사 압수수색을 시 도했다. 결국 당원 명부를 확보했다. 민주당은 “종교 권력에 기생한 정치 집단의 정당 해산은 불가피하다”라는 주장까지 했다. 윤 전 본부장은 여당에도 입 당했다고 증언했다는 데도 말이다. 특검과 민주당이 짜고, 정치공세 한다고 의심받기에 꼭 알맞다. 이재명 대통령 개입은 화룡점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종교의 정치 개입 사례를 지적하면서 ‘종교재단 해산 명령’ 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9일 이 대통령은 “(종교)법인체도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지탄받을 행위를 하면 해산시켜야 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문체부는 통일부 재산 목록 제출을 요구했다. 갑자기 왜 이런 조치들이 나왔을까. 윤 전 본부장이 말을 뒤집었다. 그는 12일 “(여권 인사에게 금품을 줬다는)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이 대통령의 경고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연루 진술이 없었다면 특검은 무엇을 경찰에게 넘긴 건가. 영화 ‘아수라’처럼 수사 기관이 도둑의 하수인, 조롱거리가 되어간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2-14

지방권 광역철도망 시대 연 대경선 개통 1년

구미에서 대구를 거쳐 경산까지 1시간 내 운행되는 대경선이 개통된 지 이 달로 1년이다. 지방권 최초의 광역철도망 시대를 연 대경선은 개통 한 달만에 승객 87만명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교통망으로 일찍 주목받은 바 있다. 철도공사에 따르면 개통 1년 동안 누적 이용객은 모두 512만 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1만4000명이 대경선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 이 같은 대경선 수요 증가 영향으로 대구권 통근 동선과 교통 흐름에 변화를 주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대구와 대구 인근 시군을 아우르는 교통수단으로서 대경선은 이제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대구권 교통수단의 주요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음도 확인한 셈이다. 대경선이 이처럼 빠르게 대구권의 중심 교통수단으로 안착하게 된 배경은 경산, 대구, 칠곡, 구미 등을 한 시간 내 오갈 수 있는 교통의 편의성이 널리 알려졌고, 대구와 경북의 지자체가 동참한 광역환승 할인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이 된다. 또 교통수단으로서 뿐 아니라 지역경제와 생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다. 대구역과 동대구역 일대 상가 방문객이 늘고, 구미는 관광객 증가로 상가 매출이 증대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앞으로 대구와 경북이 경계를 넘어 왕래하면서 광역경제권의 효과 상승도 기대된다 하겠다. 본래 광역철도망 구상은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의 하나다. 지방 대도시권 내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광역철도망을 만들어 수도권에 버금가는 메카시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대경선 하나로 메가시티를 얘기할 순 없지만 대경선과 같은 광역철도망의 추가 조성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우선은 현재 대경선이 안고 있는 숙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하다. 늘어난 이용객 편의를 위해 열차량의 추가 배치나 배차 간격 조정도 검토하고 신설역 수요에 대한 세심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대경선은 단순히 교통망을 연결했다는 교통망 구축의 의미를 넘어선다. 개통 1년의 성과를 중심으로 대구와 경북의 통합과 상생 길을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25-12-14

가르친다는 것

이번 학기에 ‘문학과 영화, 그리고 나’ 교양 수업을 진행하고 나서 느끼는 소회(所懷)가 이 글을 쓰도록 인도한다. 학생들에게 고전 문학 작품들을 읽히고, 고전에 기초한 영화를 감상하게 함으로써 문학과 영화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게 강의 요지다. 그러하되 강의의 방점은 영화가 아니라, 문학에 찍혀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나는 이른바 ‘최대강령주의자’에 속한다. 무엇을 하든 열렬하고 집요하게 대상을 파고드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강의 준비도 치밀하고 폭넓게 하고, 강의 시간도 최대한 준수하려 애쓴다. 당연히 휴강은 없다. 시인 동주는 “한 시간의 휴강은 실로 살로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인 시점에 그런 자세는 너무 한가하다는 생각이다. 학생들과 15주 강의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느낀 뼈아픈 사실은 그들 내면에 지나치게 깊이 새겨진 사회적 수동성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이번 학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동성의 깊이와 폭이 심화-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타자를 위한 배려가 실종되고, 각자의 좁은 공간에 자발적으로 유폐된 청춘들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언젠가 여기는 강의실이 아니라, 공원묘지나 무덤 속 같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졸거나 자거나 휴대전화 건드리면서 75분을 간신히 버티는 학생들의 무표정하고 생기 없는 얼굴과 눈빛을 보노라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세대차(世代差)와 ‘엄근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지만, 학과장 말에 따르면, 많은 강의실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공자는 지식인의 기본자세를 ‘묵이지지(黙而識知)’ ‘학이불염(學而不厭)’ ‘회인불권(誨人不倦)’ 셋으로 정리한다. 이 가운데 나는 회인불권, 그러니까 사람을 가르침에 지겨워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을 가장 요긴한 것으로 생각한다. 회(誨)를 파자(破子)하면, 매번 말한다는 뜻이다. 무엇인가 부정적인 상황이나 언행을 보면 그것을 말로써 계도(啓導)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렇게 끈질기고도 정성스럽게 가르치는 행위가 아무 보답도 없이 시간과 더불어 스러질 경우, 완전히 속수무책이라는 데 있다. 그때 적용할 수 있는 영어 속담이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그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을 먹을지 말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최종적인 주재자는 교수나 부모가 아니라, 학생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말이 목구멍에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꾹 눌러 참고 노자의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를 떠올린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야말로 참교육을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도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언행일치 교육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학부모는 가능하지만, 교사나 교수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거의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회적 수동성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교육이 재편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행-재정적인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하는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인재 양성은 기대난망(期待難望)일 밖에 없을 것이다. 창밖 겨울비 촉촉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14

시민불복종, 명령불복종

지난 12일, 비상계엄 가담 공직자를 조사 중인 국방부 헌법존중 정부혁신 티에프(TF)는 박정훈 대령을 중심으로 조사분석실을 신설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박정훈 대령은 2023년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후 결과 임성근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려던 중 보류 지시를 받았지만, 수사 결과를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한 일로 항명죄로 기소되었다가 올 1월에 무죄 판결을 받은 군인이다. 재판부가 무죄 판결한 이유는 이첩 중단 명령이 부당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2월 민형배 등 10명의 국회의원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몇 가지 내용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군인이 정당한 명령에만 복종하고, 위법 또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군형법」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은 군인을 항명죄로 처벌한다. 물론 군인은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법규 및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반하는 사항, 또는 자신의 권한 밖의 사항에 관하여 명령은 하달할 수 없다. 이것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이기는 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에서 보다시피 시민불복종은 기본권과 헌법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부당한 법이나 제도를 거부하는 행동이다. 명령불복종은 시민불복종과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지배 권력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명령불복종은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전시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상명하달이 중요하기 때문에 엄한 벌을 받는다. 1995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 ‘크림슨 타이드’는 위기 상황에서 명령불복종을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러시아의 핵공격 압박 상황에서 1차 통신에 선제 핵미사일 발사 명령이 왔다가 2차 통신이 오던 중 중단되어 발사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 되었다. 함장 램지는 1차 통신을 근거로 발사를 명령하지만, 2인자인 부장 론터는 분명하지 않다며 명령을 거부하고 함장을 감금하기까지 한다. 다시 도착한 3차 통신은 발사하지 말라는 것이어서 영화는 헌터의 편을 들어준다. 하지만 램지는 월권으로, 헌터는 항명으로 모두 해군 청문회에 소집된다. 결론은 모두 국가를 위한 충정이었다고 보고 램지 함장은 징계 없이 전역하고 헌터 부장은 승진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핵발사의 후폭풍이 너무나 크기에 신중함도 필요하지만, 헌터의 명령불복종은 위험했다. 선제적 핵발사가 꼭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와 정당과 부당이 확실한 박정훈 대령의 사례는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헌터의 승진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명령불복종의 명분이 정당하다면 용인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박정훈이 비상계엄 가담 공직자를 조사하는 중심인물로 복직된 것은 다행이다. 이번 기회에 법률이 일부 개정되어 기본권이 존중받는 군대가 되기를 바란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14

갈등보다는 통합의 정책을

정부와 민노총의 새벽 배송 금지 법안 추진을 놓고 의견이 갈린다. 하루라도 빨리 입법을 추진하려는 민노총 택배노조와 참여연대가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 대행진’을 열었다. ‘속도보다 생명이다’, ‘늦어도 괜찮아 과로 없는 안전한 배송’ 구호를 외치며, 새벽 배송 최소화를 요구했다. 택배노조에 대하여 쿠팡노조는 “새벽 배송은 국민 삶에 필요불가결한 서비스이며 현실을 외면한 정책은 택배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고 말했다. 새벽 배송을 금지하면 배송을 맡은 기사들과 관련 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일자리를 잃는다. 2000만 명이 넘는 이용자와 15조 원 규모의 시장을 송두리째 잃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새벽 배송 금지는 늘어난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에 필요한 생필품 구매 수단을 무너뜨림으로 새로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산지에서 생산한 농산물 이동망의 붕괴로 농산물은 경매시장으로 몰려 가격의 하락과 생산 농가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새벽 배송은 이미 큰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에서 입법으로 규제하려면 국민 생활과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에 시행해야 한다. 새벽 배송이 택배 기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시간대별로 분석하고, 택배 산업과 농산물 재배와 유통업자와 농산물 시설 관련 산업 등을 폭넓게 조사해야 한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택배 기사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새벽에 일하는 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법으로 금지한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택배기사들이 새벽 배송을 선호하는 이유는 43%를 차지하는 ‘주간보다 교통체증이 적고 엘리베이터 이용이 편리하다’, 29%의 ‘수입이 높다’, 22%의 ‘주간에 개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6%를 차지하는 ‘주간 일자리가 부족하다’로 조사되었다. 결과를 보면 국민 생활패턴의 변화와 사회 여건이 새벽 택배를 하게 만드는 측면이 강하다. 섣부른 정책 시행으로 그렇지 않아도 활기 잃은 경기를 침체의 국면으로 정부가 나서서 몰아야만 하는지. 새벽 택배 관련 산업을 없앰으로써 얻는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조사에서 새벽 배송을 유지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사를 정부는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실업자를 양산하여 사회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반대하고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굳이 할 이유가 있을까. 현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택배기사의 건강을 정부가 챙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철저한 조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쓸데없는 일로 국론을 분열하고 사람들을 가르는 일을 정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국민의 삶과 무관한 정치권의 지루한 샅바싸움에 국민은 지친다. 국민이 필요하고 행복한 정책을 정치권은 고민해야 한다. 국민을 바라보는, 국민의 삶을 살피는 그런 정책을 국민은 원한다. 갈등보다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김규인 수필가

2025-12-14

‘K-스틸법’ 시행령, 현장의견 반드시 반영을

국내 대표 철강도시인 포항·광양·당진시 단체장들이 지난 12일에도 국회를 찾아 철강업계에 긴급지원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 3개 도시는 국내 철강 생산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지만, 최근 수출액이 급감하고 있다. 핵심 요구사항은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K-스틸법’ 시행령에 ‘기업 전기요금 부담 완화’와 ‘탄소중립 투자 지원’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포스코 본사가 있는 경북도의 경우 그동안 기업들의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위해 ‘지역별 요금 차등제’ 도입을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었다. ‘지역별 요금 차등제’는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의 전기요금을 낮춰주는 제도다. 지난 2023년 5월 ‘분산요금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이 법이 시행되면 경북도처럼 발전소가 몰려 있는 곳은 전기요금이 싸지고, 수도권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비싸진다. 이 제도의 원래 취지는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의 경우 전기요금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할 수 있다. 철강 대기업의 ‘탄소 중립(제로)’ 실현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하루빨리 고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지금 유럽연합(EU)과 미국에서는 탄소배출 규제안을 강화하고 있어 철강 대기업이 고로를 탈피하지 못하면 결국은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몇 년 전부터 포스코의 라이벌인 해외 철강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받아 수소환원제철 기술도입에 총력을 쏟고 있다. 스웨덴의 사브(SSAB)와 독일의 잘츠기터(Salzgitter)는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며, 일본도 철강 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10년간 3조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산업인프라의 기반인 철강업계가 하루빨리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하면 국내경제 전체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K-스틸법’이 불황을 겪는 국내 철강업계의 실효성 있는 처방전이 되려면, 시행령 제정 단계에서 지역 현장의 이러한 요구와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2025-12-14

포항시립연극단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

최근 공연된 포항시립연극단의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노년 빈곤, 가족 해체, 세대 간 단절이라는 묵직한 사회적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며 관객 앞에 섰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비관에 함몰되지 않고, 생의 아이러니를 유머와 상징으로 재해석해낸 점이다. 장면의 미학과 배우의 신체 연기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노년의 삶을 단순한 동정이나 비극이 아닌 삶의 역설적 풍경으로 그려낸다. 노년 서사를 블랙코미디로 다루는 독특한 시도는 관객이 현실을 비장함 없이 바라보도록 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웃음 강조로 인해 인물의 고통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채 전환되는 순간이 발생한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연극이 흔히 빠지는 함정-메시지와 장면 리듬의 충돌-이 이 공연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노년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생활적 오브제와 신체 이미지를 활용해 상징적 층위를 쌓아 올린다. 이는 박장렬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 선택한 중요한 전략이며, 그 전략은 상당 부분 유효하다. 최현아가 연기한 광주리 할머니는 작품의 중심축으로, 그녀의 신체는 과장 없는 리얼리티로 세월의 질감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는 설명적 대사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일부 장면에서 신체 이미지의 미학적 강조가 인물의 구체적 삶을 압도하며 해석의 간극을 남기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희와 윤도경이 연기한 미미와 분신의 이중 구조는 청년 세대의 불안정한 심리를 날카롭게 시각화한다. 담요에서 탈피하는 듯한 연출은 유머와 위태로움이 교차하며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징적 퍼포먼스가 서사의 흐름을 압도해 인물의 내적 갈등이 희미해진다. 중년 부부와 군상 배우들은 장면의 리듬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공동체적 분위기를 구축하나, 후반부 군상 장면은 기능적 역할에 머무르며 초반의 세밀함이 퇴색된다. 미니멀한 무대는 배우의 신체성을 부각시키는 연출 의도와 조화를 이루나, 일부 장면에서 과도한 여백이 인물의 감정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조명은 어둠 속의 미세한 빛으로 고독을 섬세하게 표현해냈지만, 장면 전환 시 배우 동선과 조명 타이밍의 불일치로 명료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장렬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몸의 언어’를 전면에 세우는 방식을 택했다. 설명을 줄이고 경험을 강조하는 이 연출 방식은 최근 한국 연극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신체 이미지는 본래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단순화할 위험도 갖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노년을 소재로 삼았지만, 결국 세대 전체의 균열을 드러내는 사회적 진단에 가깝다. 작품은 높은 미학적 성취와 형식적 실험을 보여주면서도, 장면 간 정서의 불균형, 상징의 반복으로 인한 의미 과포화 등 몇 가지 과제가 남는다. 그럼에도 이 공연은 지역극단의 정기공연을 넘어, 동시대 한국 연극이 사회적 소재와 미학적 실험을 어떻게 병치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품은 완성도에 더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비평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백진기 문학박사·호산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초빙교수

2025-12-14

도심 속 까마귀

엷은 커텐 사이로 가만가만 들어온 햇살이 눈을 간지럽힌다. 빨리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라는 신호다. 아침의 행복한 순간이다. 맑은 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희망적이어서 좋고,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마음을 안정시켜서 좋다. 바람에 밀려 모양을 바꾸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이런 소소한 기쁨을 깨뜨리는 존재가 나타났는데, 바로 까마귀이다. 이 새는 가볍게 짹짹 대는 참새나 까치 소리에 익숙했던 내 잔잔한 하루의 시작을 흔들고 있다. 까마귀를 처음 본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여름 방학 중 강원도에서 동아리 활동이 끝나는 날 오대산을 들렀다. 산 초입에 무리 지어 앉아 있던 새까만 새들을 보았고, 그 울음 소리를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그 새는 몸집도 상당히 컸다. 까마귀를 흉조라 말했던 어른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온통 검은색인 모습은 묘하게 위협적이었다. 꽤 오랜 동안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숲에서 살던 까마귀들이 도심에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고 한다. 숲의 개발은 그들의 서식지를 빼앗았고 먹이를 찾아 도시로 나오게 된 것이라 했다. 열섬으로 인해 도심지의 온도가 산이나 들보다 높은 것이 그 새들이 도심지로 오는 이유라고 설명한 글도 있었다. 생태계의 변화는 까마귀의 생활방식조차 바꾸어 놓은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는다. 자연적인 성장으로 겪는 것도 있지만 달라지는 환경으로 오는 것도 있다. 어떤 변화는 작고 미세하여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는 반면 그 흐름이 격렬해서 몸을 맡기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발전의 속도가 빨라서 일상적인 삶의 양상도 많이 바꾸어놓았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발전은 가히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또한 더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고, 연결된 다양한 사물들이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데이터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 데이터들을 모아 클라우드(Cloud)에 저장하고 인공지능으로 효과적으로 학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 흔한 일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물론 젊은 사람들조차 그 빠른 속도를 맞추어 따라가느라 바쁠 것이다. 번역일을 하는 친구가 챗GPT를 사용하면서 느낀 AI의 엄청난 발전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조만간 사라질 직업군 가운데 작가도 있다는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는데 며칠 전 뉴스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이 실시한 설문 조사가 소개되었다. 영국 소설가 10명 중 4명은 생성형 AI 등장 이후 소득이 줄었다고 했다. 또한 85%의 소설가는 생성형 AI로 인해 향후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 소설가들은 장차 직업이 사라질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61%는 여전히 AI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게 사용을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민감한 순응은 변화에 가장 어울리는 대처법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배우기 힘들다는 이유와 첨단 기기를 많이 쓸 일이 없다는 이유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양한 검색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 그것을 활용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고 느꼈지만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며, 이제는 나이도 들었으니 조금은 모른 척하고 살아도 되지 않았나 하는 적당히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 생활은 앞으로도 가속이 붙어 상상을 넘어서는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다. 이미 정보화시대는 빠른 발걸음으로 앞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필요한 정보를 찾고 그것을 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에 빠르게 순응할지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배우고 익히지 않는다면 책임도 내 몫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생활터전이 위협받자 서식지를 바꾼 까마귀의 순응의 지혜가 마음에 다가왔다. 생존을 향한 열정을 보이는 모습이 처음으로 위협적이지도 무섭지도 않게 느껴졌다. 필요를 느끼면서도 게으름을 부렸던 나를 달래는 소리로 들렸다. 오랜 동안 미뤄왔던 챗GPT앱을 찾아서 비로소 휴대폰에 깔아본다. 부드러운 햇살이 창 깊이 들어와 아침을 밝혀주고 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2-14

여권주도로 속도내는 ‘대법원 대구이전’

대구 출신 여권 의원들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대법원의 대구 이전 추진에 나섰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비례대표)은 지난 10일 대법원과 부속기관을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경기 화성시병이 지역구인 권 의원(3선)은 경북 영천 출신이며 차 의원은 경남 합천 출신이다. 둘 다 대구에서 중·고교를 졸업해 TK 출신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두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개정안의 취지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완화하고 국가균형발전 촉진, 사법부 독립성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서울에 있어 사법기관, 법조 인력, 사법 인프라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몰리는 구조가 고착됐다는 것이다. 두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2004년 신행정수도 헌법소원 결정에 따라 사법기관 이전은 법률적·헌법적으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구를 최적지로 평가한 이유는, 비수도권 균형 축을 형성할 수 있는 영남권 중심도시라는 점과 대구가 과거부터 서울 다음의 법조 도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들었다. 대법원 대구 이전은 과거부터 민주당에서 제안했었다. 지난 2021년 송영길 당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대구를 찾았을 때 대구에 대법원을, 광주에 헌법재판소를 이전하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대법원 유치에는 최근 세종시도 뛰어든 상태다. 그러나 대구는 이미 대법원 이전 가용부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과 관련 부속기관 배치가 가능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범어동에 있는 법원과 검찰청이 2030년까지 수성구 연호지구로 이전할 경우 그 후적지를 대법원 용지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대법원의 대구 이전은 시민들로선 크게 환영할 일이다. 대구가 ‘사법수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도시로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뿐만 아니라 부속기관(윤리감사실, 법원 행정처, 사법연수원, 법원공무원교육원, 법원도서관, 사법정책연구원, 소속 위원회, 부속 병원) 이전은 대구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2025-12-11

경북형 이모작 공동영농 전국으로 확산된다

경북도가 2023년부터 중점 추진한 경북도 농업 대전환 사업이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산된다. 농림축산부는 경북도에서 시작한 공동영농의 사업자 공모를 벌여 이에 응모한 전국 5개 지역을 선정했다. 이번에 선정된 곳은 경북 경주시와 상주시, 강원도 황성군, 전남 영광군, 전북 김제시 등이다. 이들 지역은 국비 지원 등을 통해 앞으로 이모작 공동영농 사업을 벌이게 된다. 경북에서 시작한 공동영농사업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야심 찬 농업 대전환사업이다. 이 지사는 “농민은 왜 땅도 있고 일도 열심하는데 도시 근로자만큼 못 사는가”하는 물음에서 농업 대전환을 시작했다. 잘 사는 농촌을 캐치프레이즈로 걸어 경북도의 준비도 단단했다. 도는 첫 번째 시범 사업지로 문경 영순 들녘을 선정했다. 영순지역은 60세 이상 고령농이 대부분으로 활기를 잃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공동영농의 핵심은 영농은 법인이 맡고, 농민은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다. 영농을 맡은 법인은 벼 대신 고소득 작물을 이모작으로 재배, 소득을 올린다. 발생한 소득은 배당 형태로 농민에게 지급한다. 이 지사의 관심과 열정으로 영순지구 사업은 첫 결실부터 성공했다. 쌀 생산 때보다 농업소득은 3배, 농가 소득은 2배가 많았다. 영순지구 사업이 성공하자 타 지역의 벤치마킹이 늘어났다. 경북도도 사업대상지를 14곳으로 확대했다. 2024년 경북 공동영농 사업이 드디어 정부 시책사업으로 채택된다. 경북도가 잘사는 농업을 목표로 뛴 이모작 공동영농이 대한민국 농업 정책의 중심에 섰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이모작 영농은 쌀 생산을 줄이고 곡물 자급률을 높이며 농가 소득까지 올릴 수 있으니 1석 3조의 기대효과가 있다. 게다가 농촌의 인력난, 고령화, 이상기후 문제에도 대응하는 장점이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경북에서 쏘아 올린 공동영농이 결실을 거둬 전국으로 확산됐다는 자부심을 피력했다. 정부가 인정한 경북 형 공동경영이 전국으로 퍼져가면서 제2의 농지개혁에 버금가는 효과를 거뒀으면 한다.

2025-12-11

법정 휘젓는 AI 환각 판례

의뢰인들이 찾아 가져온 판례나 법률 정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인 일은 이제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특히 챗지피티에 물어 얻어낸 판례는 실제로 없는 AI 환각(Hallucination) 판례인 경우가 매우 많다. AI 환각이란 인공지능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정보를 생성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AI는 진실을 판단하거나 검증하는 능력이 없으며, 단지 다음에 올 텍스트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그럴듯한지만 예측하여 생성하기 때문에 매끄럽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 정보도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요즘 법원과 수사기관에서 변호사나 경찰이 이런 환각 판례를 그대로 법률서면에 사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변호사가 AI가 만든 허위 판례를 인용한 서면을 법원에 제출했다가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법원의 형사재판부는 이 변호사가 제출한 의견서에 인용된 판결 5개를 법원 전산망에서 조회한 결과, 해당 판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변호사는 다음 기일이 열리기 전 문제가 된 판례를 철회한다는 의견서를 냈지만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AI 환각 현상이 만든 가짜 판례를 검증하지 않고 법원에 제출했다가 발각된 것이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문에 AI 허위 판례를 인용한 사건도 있었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작성한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의 불송치 결정문은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인 언행만으로는 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반복성·지속성 및 구체적인 피해 정황이 인정되어야 한다”라는 대법원과 서울북부지법 판결문을 인용했는데 고소인 측이 확인한 결과 해당 문장은 판결문에 없는 내용이었다. 행정심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부당해고를 당해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낸 부당해고 사건에서 청구인은 상대방 회사 측 공인노무사가 제출한 답변서에 인용한 전체 법원 판례 10건의 원문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10건의 판례엔 존재하지 않는 판례 번호가 달려 있었다. 청구인 측이 판례의 진위를 따지자, 해당 노무사는 그제야 AI가 만들어준 판례였다고 시인했다. 노무사는 “사실관계를 조작하지 않았으니, 고의나 허위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청구인 측은 허위 판례를 인용한 노무사의 노무사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며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관련 분야 전문직종에서조차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으니 일반 민원인들이 내는 서류에 이런 환각판례와 허위정보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된다. 법률전문가가 낸 서면에서도 환각 판례를 인용했으나 발각되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점점 사람들은 AI를 좋아하고 의존한다. 하지만 법률 분야에서의 이런 일들을 지금 적절히 규제하지 않으면 법률절차와 우리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성 자체가 흔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변호사가 쓴 서면과 판사의 판결문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 말이다. 환각판례 인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변호사협회에서도 변호사들이 보조도구로서만 AI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11

남아선호 사상이 문제

남녀 성비(性比)의 불균형이 생기는 결정적 이유는 남아선호 사상에 있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남아선호 사상이 지배한 사회다.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칠거지악이나 남존여비 사상의 발단도 근원적으로 보면 남아선호 사상에 기인한다. 남아가 우대받던 신라시대에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른 것은 특이한 경우다. 당시 진골의 남자는 많았지만 성골의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혈통과 신분을 중요시하는 관습에 따라 성골의 여자를 왕위 계승자로 뽑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선덕여왕의 왕위 계승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장자 상속이나 부계 중심으로 집안이 이어졌다. 특히 유교문화 영향으로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한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는 해방 후에도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성비 불균형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1990년 우리나라 출생 성비는 여성 100명 당 남성 116.5명. 셋째 자녀까지 내려가면 여아 100명당 남아는 200명까지 치솟았다. 이러던 것이 2007년 107명 아래로 떨어졌고, 2022년에 와서는 정상 성비 범주에 들었다. 남아선호 사상은 전 세계 국가의 공통된 흐름이다. 중국과 인도는 남아선호 갈등 구조가 특히 심했던 나라다. 베트남은 세계 217개국 중 네 번째로 성비 불균형이 큰 나라다. 작년 베트남의 출생 성비는 111.4명. 2034년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150만명이 더 많을 거란 관측도 있다. 정부가 태아의 성별을 공개한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고, 성별 시술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유교 영향이 큰 베트남의 남아선호 사상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11

전문가다운 이야기를 듣고싶다

어떤 대담 프로에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하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얼핏 알겠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잘 이해할 수 없다. 뭔가 번지르르한 단어와 외래어나 외국어를 섞어 이야기하는 통에 말하는 바를 평범한 사람이 주워 담기엔 역부족이다. 더 웃기는 것은 대담하는 장소에서 대담은 하지 않고 자기가 준비해 온 것만 줄곧 읽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마치 한 개인에 불과한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비판이나 비난, 불평만 하는 것은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고 대다수의 바보들은 그렇게 한다’라는 것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대안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요즘 방송에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전문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관 학과 교수나 그쪽 계통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소위 ‘전문가’라고 치고 섭외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도저히 전문가 같지 않은 분이 나와서 자기 주관대로 말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런 사람을 전문가라 부르기는 무리가 따른다. 마치 뚱뚱한 사람이 다 미식가가 아닌데 그런 사람만 끌어모아 맛 탐방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전문가라고 하는 것은 그 분야에 능통함은 물론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단어가 아닌가? 사실 종편을 보면 심하게 꽉 막힌 사람들이 전문가입네 하고 나와서 온갖 말을 다 쏟아내고 있다. 사실 검증이나 제대로 거친 이야기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상관없다. 그냥 특정인의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다. 사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마련이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가늠하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래서 더 많고 정확한 정보에 기초해서 더 정확한 판단과 예측이 가능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견해를 검증받고자 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요즘 ‘농업’이란 교과 과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만, 옛날 농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작물들의 파종 시기를 한 시간 내내 강의하시다가 마지막 한마디로 종료한다. ‘책대로 하지 말고 집에 할아버지가 씨뿌리라면 그때가 씨뿌리는 시기’라고. 연습생 시절을 거치지 않고 목청만 좋다고 다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많이 먹어보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음식 전문가가 될 수가 없다. 선수 시절이 없는 감독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진리다. 그냥 책만 보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람은 적어도 정보 수집과 분석함에 있어서의 편견 없이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가치중립적으로 이해한 후 그 경험적 정보를 바탕으로 일반화하기에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마치 귀신에게 홀려 설득당하는 기분까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가 드물다. 그러니 몸에 와닿지 않아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선택은 내 몫이 되고 만다. 이걸 흔히 전문 용어로 ‘제자리 곰뱅이’라고 하던가? /노병철 수필가

2025-12-11

‘2035 NDC’

올해 유난히 길고 혹독했던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가며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난 11월 11일 우리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매우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국제사회가 약속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관문으로서, ‘2035 NDC’를 최종 확정한 것이다. 전 세계가 함께 지구 온도를 낮추기 위해 치열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 대열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절박한 선언이다. 그렇다면 ‘NDC’는 무엇일까? NDC는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각 나라가 “우리는 이만큼 줄이겠습니다”라고 유엔(UN)에 제출하는 ‘탄소 감축 숙제’이자 ‘국제적 공약’인 셈이다. 이번에 정부가 확정한 목표는 2018년 배출량 대비 무려 53%에서 최대 61%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기존 2030년 목표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이 수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 경제와 사회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야만 달성 가능한, 그야말로 ‘전시 체제’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거대한 숙제 앞에서 우리 대구와 경북은 어떤 상황일까? 우리 지역은 탄소 감축의 ‘위기’와 ‘기회’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곳이다. 대구는 건물과 자동차가 빽빽한 소비 중심 도시이고, 경북은 철강과 전자 산업이 주력인 생산 중심 지역이기 때문이다. 대구는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내뿜는 탄소를 줄여야 하고, 경북은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탄소를 줄여야 하는 서로 다른 숙제를 안고 있다. 포항의 제철소나 구미의 산업단지가 탄소 국경 장벽에 막혀 수출길이 막힌다면 지역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반대로 대구의 노후화된 건물들이 에너지를 펑펑 낭비한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미 유럽(EU)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은 2035년까지 60% 이상의 감축을 목표로 달리며 새로운 녹색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우리도 ‘2035 NDC’를 지역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대구는 ‘걷기 좋은 도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하철과 전기·수소 버스를 중심으로 대중교통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낡은 건물은 ‘그린 리모델링’을 통해 에너지가 새지 않는 똑똑한 건물로 바꿔야 한다. 경북 지역은 ‘녹색 혁명’의 최전선이 되어야 한다. 포항의 철강 산업은 수소로 쇠를 만드는 기술을 도입해 세계 최고의 친환경 제철소로 거듭나야 하고, 동해안은 바람과 원자력을 이용한 청정에너지의 보물창고가 되어야 한다. 농촌에서는 논물을 관리해 메탄가스를 줄이고, 가축분뇨를 에너지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 앞에는 10년이라는 ‘골든타임’이 남았다. 2035년, 대구·경북이 대한민국 탄소중립의 심장으로 힘차게 뛰고 있을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숨을 헐떡이고 있을지는 바로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2-11

'TK통합 불씨'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대구·경북(TK) 행정 통합과 관련해 “이럴 때(대구시장 공석)가 찬스 아닙니까”라고 언급하자,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이에 화답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이 대통령은 이날 지방시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TK통합 논의가 대구시장 궐위로 지연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이럴 때 오히려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역발상을 제시했다. 이 지사는 이와 관련 9일 SNS를 통해 “행정통합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다극적 균형발전 모델을 만드는 국가적 과제다. 대구·경북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일”이라면서 “성공의 열쇠는 낙후 지역 문제를 포함한 균형발전 방안을 국가가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행정 통합 때 TK, PK, 호남, 충청 단위로 대기업 그룹을 하나씩 옮기면 된다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행정통합이 가능해지려면 정부 차원에서 대기업 지방이전과 같은 전향적인 유인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지사는 특히 ‘경북이 대구에 흡수될 것’이라며 행정통합에 부정적 여론이 높은 경북 북부지역을 언급하면서, 정부가 이 지역의 해묵은 현안인 동서5축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남북9축 고속도로 같은 핵심 SOC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 지사는 이러한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국가적 약속이 전제된다면 TK지역은 어느 지방정부보다 먼저 통합을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지난해 10월 TK행정통합안에 서명한 이후 내년 7월 1일을 ‘대구경북특별시’ 출범일로 정하고 통합 논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경북 북부권 주민들의 반발이 큰데다, 홍준표 전 시장이 대선 출마를 이유로 조기 사퇴해 사실상 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대구시는 현재 행정통합을 장기과제로 전환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운영해온 행정통합추진단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무산될 위기에 놓인 TK행정통합이 이 대통령의 ‘발상의 전환’과 이 지사의 화답으로 논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2025-12-10

경북 1인가구 39%, 맞춤형 정책 나와야

우리나라 1인가구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작년 기준 우리나라 1인가구는 처음으로 800만가구를 넘어섰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21만6000가구) 증가했다. 전체 가구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6.1%다. 2019년 처음 30%를 돌파한 후 지속 증가세다. 연령대별로는 70세 이상이 19.8%다. 작년 기준 대구와 경북의 1인가구도 가파른 증가세다. 대구는 1인가구가 37만가구로 전체의 35.5%로 조사됐다. 1년 전보다 0.8%포인트 증가했다. 경북은 1인가구가 45만가구다. 전체의 38.9%로 전국 17개 시도 중 다섯 번째 높다. 특히 경북은 60세 이상 1인가구 비중이 46.7%로 나타나 고령층의 절반 가까운 가구가 혼자 산다. 1인가구 증가 원인은 복합적이다. 결혼을 기피하는 사회적 추세와 저출산, 경제력 부족, 사별, 이혼 등 다양하다. 문제는 1인가구가 노령층에 국한되지 않고 청년층에서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1인가구가 사회 전반의 새로운 흐름으로 정착하고 있어 이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 나와야 한다. 도농복합 도시인 경북은 고령층의 독거와 도시의 청년 독거가 동시에 일어나는 이중 구조를 띈다. 노인층의 빈곤과 청년층의 취업문제 등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정밀한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의 사례를 보면 1인가구 증가는 고독사와도 직결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수만명이 고독사하고, 세상을 떠난 뒤 한달이상 지나서야 자택에서 발견되는 고독사도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가데이터처 조사에서 우리나라 1인가구의 절반은 “외롭다”는 응답을 했다. 경제적 이유로 주말에도 혼자 놀며, 여가활동으로 동영상 콘텐츠 시청을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1인가구가 뉴노멀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다. 복지체제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주거, 복지, 세제 등 많은 분야에서 1인가구와 사회가 연결되는 사회안전망 형성에 노력해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2025-12-10

법관의 양심, 믿을 수 있나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적는다. 사법독립의 원칙처럼 보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헌법과 법률’은 공개된 객관적 기준이 맞지만, ‘양심’은 개인의 내면이 아닌가. 법적 판단에 주관적 요소가 개입할 위험성을 헌법 조문이 버젓이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사회에서 사법불신은 반복되어 왔다. 정치사건, 재벌관련 사건, 권력형 비리에서 ‘판사의 양심’이 과연 공정했는가 싶은 의심이 따라붙었다. 판사도 인간이다. 학연, 지연, 이념과 무관할 수 없다. 개인의 경험과 가치가 판단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면, 그 주관성을 어떻게 통제하고 공개하며 객관화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양심’ 개념에는 이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 판결에는 법리만 남고, 뒤에서 작동한 양심과 가치판단에 관한 설명은 사라진다. 양심은 기록되지 않으며 검증할 방법도 없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은 헌법 어디에도 ‘양심’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판례(precedent)와 정당한 절차(due process)가 핵심이다. 판사의 판단이 개인의 내면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공개된 판례 체계와 충돌하지 않도록 구조적 제약을 둔다. 영국은 판사의 주관 대신 합리성(reasonableness)을 외부 기준으로 요구하고, 이해관계 신고와 회피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용한다. 독일 역시 판사교육과 법리체계에서 ‘양심’을 강조하지 않고, 비례성, 기본권, 법치의 원리 등 실증적 원칙을 적용한다. 개인적 도덕감정보다 공개가능한 법리기준이 중심이 된다. 주요 법치국가들은 이렇게 ‘양심’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공개된 원칙과 구체적 절차로 사법신뢰를 확보한다. 우리 헌법 제103조의 ‘양심에 따라’는 법적인 검증 또는 견제장치가 없는 불확정적인 개념이다. 양심이라는 이상을 강조하기 전에, 그 이상을 객관적으로 보증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사법독립을 말하면서도 국민이 법원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양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주장과 강변만 남지 않을까. 헌법의 해당 문구를 다시 살펴야 한다. 법관의 독립은 객관적 기준과 실증적 절차로 보장할 일일 뿐 내면적 자의적 양심으로 보장할 일이 아니다. 판결의 공개성과 예측 가능성도 확보해야 한다. 주요 판결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시민이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판사의 이해관계 공개와 시민참여 감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판사가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라면, 양심을 감시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AI판사 도입논의가 등장한 것도 결국 같은 문제에서 비롯된다. 양심이라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무엇을 제거하고 일관적이며 통제 가능한 수단을 확보하자는 요구다. 인공지능이 모든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종적으로 사람의 ‘양심을 믿어달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 양심은 개인의 내면이고, 법은 사회적 약속이다. 사법의 신뢰는 고상한 단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며 확인이 가능한 제도에서 나와야 한다. ‘법관의 양심’이라는 표현을 신화적 기대에서 구체적 현실로 끌어내는 작업이야말로 대한민국 사법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