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모들이 공동체 정신은 없이 개인적 탐욕으로 아이를 잘못 키운다고 비판하는 ‘탐욕스러운 돌봄’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어느 게시글에는 ‘알 만한’ 이들조차 부동산과 자식 교육 두 가지 앞에서는 딴사람이 된다면서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게시글을 쓴 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부동산과 자식 문제만큼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별로 없다. 진보를 자처하거나 능력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자녀를 위해 강남으로 이사하는 사례가 많다. 두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나 역시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다면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입시는 한국의 부모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다.
그러나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말하듯이 “돌봄의 어려움은 나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으므로” 양육을 사적인 헌신에 가두지 말고 모두의 책임으로 재사유하자는 제안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저자는 이런 주장에 논거로 제시한 것은 들러리 서는 아이들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모 찬스’를 쓸 운이 없었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능력 있는 부모들의 개인적인 탐욕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불안과 욕망을 부추겨 공동체를 훼손하는 사회 전체의 탐욕을 더 비판한다.
이렇게 하여 저자가 도달한 결론은 부모인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돌보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말고 사회 구성원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도 부모이기 이전에 시민이 먼저라면서 이 주장에 동의한다.
이런 주장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3년 전쯤 만난 어느 법조인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자녀가 공부에 큰 재주가 없는 것 같다면서 그런 아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공부에 재주가 없으면 다른 재주를 계발해야 하지 않나, 사회 구조가 어떻게 그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주장에 의문이 생긴 두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 자식을 돌보는 데서 남긴 에너지를 어떻게 공동체 구성원을 돌보는 데 얼마나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오래전 두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생협을 이용하다가 지역 공동체 활동으로 반경을 넓혔는데, 두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쏟는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자기들에게 신경 써달라고 여러 번 불평한 적이 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도 내 가족과 공동체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녀가 5분이라도 찬 바람 맞는 것을 꺼리는 것을 탐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불법의 영역만큼은 엄격하게 단속해야 한다. 아이를 태우기 위해 도로에 불법 주차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니 비판하고 규제해야 한다. 부모들의 불법을 단죄하는 것은 사회의 모든 아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노력과는 관계없지만 사회 구성원을 훌륭한 시민으로 만들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유영희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