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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돌봄은 인간만 해야 하는가

청소년 소설 ‘GMO 아이’는 2005년에 출간되어 지금도 꾸준히 재판을 찍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주인공 나무의 부모는 우수한 아이를 낳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해서 출산했는데, 이 아이가 불치병이 있자 정 회장 집 앞에 버리고 떠난다. 작품에서 정 회장은 악역 담당인데, 그와는 상관없이 요즘 들어 정 회장이 24시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관리하고 집안일을 처리하는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맥박이나 혈압 체크는 물론 식단 등 건강 관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인공지능 로봇이 점검해준다. 20여 년 전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최근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고 있다. 어깨뼈 골절에 이어 얼마 전에는 발가락뼈까지 골절을 당해 외출이 어렵게 되었다. 다행히 ‘일시 재가 돌봄 서비스’ 대상자가 되어 요양보호사가 와서 도움을 받고는 있는데 문제는 요양보호사들 나이가 많다 보니, 그들도 돌봄을 받아야 할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이다. 처음에 온 요양보호사는 첫날부터 자녀들 걱정 들을 한 보따리 풀어놓더니 나중에는 자기도 다리가 아프다면서 한바탕 넋두리까지 한다. 알고 보니 당뇨도 위험 수치에 있었다. 이렇게 아픈 요양보호사에게 돌봄을 받으려니 마음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심지어는 돈이 더 필요하다면서 이용 시간을 늘려달라고까지 하면서 정작 근무 시간에는 게임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두 번째 온 요양보호사는 매뉴얼은 잘 지키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심장병 수술을 했고, 손목뼈가 부러진 적이 있어서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며 골다공증이 아주 심해서 약을 먹고 있다면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고도 한다. 어느 날은 너무 조용해서 찾아보니 작은 방 구석에 앉아 발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정 회장을 돌보던 인공지능 로봇 같은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그러나 과연 AI 돌봄이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 두어 달 전 출간된 ‘AI와 간호 돌봄’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간호 돌봄의 인간학적 성찰, 철학적 성찰 등 목차에서 짐작하듯이, AI는 돌봄의 도구일 뿐, 진정한 돌봄의 주체는 사람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논거 중 일부를 들여다보면, 너무 원론적이고 사변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돌봄은 인간의 근원적 속성이며, 돌봄은 인간의 존재론적 측면을 드러낼 수 있는 본질적이고 필수적 요소로서, 돌봄 이론의 핵심은 관계적 존재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돌봄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논리도 옹색하지만, 관계적 존재론이라는 현학적 논리로 돌봄 대상자와 돌봄 제공자가 상호의존적이라는 규정은 탁상공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봄 대상자의 상태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히 취약해서 그들의 서사를 들어줄 힘이 없고, 돌봄 제공자의 친절과 서비스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지나친 이상론에 기댈 것이 아니라 튼튼한 사람이 돌봄 노동에 진입할 수 있도록 보수를 충분히 주거나, 그런 일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것 같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23

인간 닮은 로봇을 만들 거라면

2022년 영국 로봇 기업 엔지니어드 아츠사가 개발한 ‘아메카’라는 인공지능 로봇은, 아직 몸체는 기계처럼 보이지만 얼굴과 손은 회색 고무 같은 재료로 되어 있고, 27개의 모터로 눈썹, 입술 등으로 섬세한 표정을 구현할 수 있어서 완전히 인간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6월에 코엑스에서는 아메카의 전신이 공개되고 11월 11일부터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아메카는 흉상 부분만 있다. 이것을 유튜버 비트가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서 언박싱하는 영상이 있어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눈에는 시각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외부 사물을 지각하고, 소형 마이크로는 소리를 포착한다. 뒤통수 아래에는 누크라는 미니 PC가, 뒤통수 위쪽에선 엔진과 모터로 머리 움직임을 정교하게 제어한다. 그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결된 인공지능이 계속 업데이트되면서 답변해주는 하이브리드 식으로 작동하고 자연어 처리 엔진이 텍스트를 생성하여 사람과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며 상대방의 감정을 분석하여 적절하게 표정도 짓는다. 언캐니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피부를 회색으로 만들었다지만, 대화 능력이나 표정 등 움직임이 너무 정교해서 정말 사람 같다. 실제로 비트는 ‘이 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처음에는 존대말을 쓰기도 한다. 로봇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라도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많은 SF를 썼는데, 그중 1976년에 발표한 ‘이백 살을 산 사나이’(바이센테니얼 맨)은 2000년에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백 살을 산 사나이의 이름은 앤드류 마틴, 그는 원래 가사도우미 로봇이었으나 인간에게서 독립해서 살다가 이백 살이 되던 해 죽는다. 그것은 그가 주인집 손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기를 원했는데, 법원에서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 죽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판결하자 인간의 장기를 이식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소설이나 영화에서 있는 일이고, 마틴의 외모가 완전히 기계 느낌이라 인간과 결혼한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빵조차도 동물 모양이면 칼로 자르기도 부담스럽고 먹는 것은 더 어렵다. 하물며 아무리 기계라도 사람과 아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 단순한 물건 취급하기는 더 어렵다. 2013년 영화 ‘그녀’에서 그녀는 몸체가 없는 인공지능인데도 주인공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그녀’가 여러 사람과 가상 데이트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몸부림칠 정도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닯았다는 뜻이다. 아메카가 이런 방식으로 개발된 이유는 사람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당연히 사람처럼 만들어야 더 실감 날 것이다. 이렇게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로봇권에 대한 논의도 미뤄서는 안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만든 로봇 3원칙으로는 부족하다. 로봇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통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로봇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논의도 병행되어야 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16

울퉁불퉁한 길 만들기

경주 APEC이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11월 1일 끝났다. 이재명 정부가 6월 4일 출범했으니 준비 기간이 5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여기저기서 호평이 많다. 그중에서도 젠슨 황이 GPU 26만 장을 한국에 우선 판매하겠다는 약속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모두 기뻐할 만한 깜짝 소식이었다. 이런 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 젠슨 황은 삼성 이재용, 현대 정의선 두 회장과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치맥 회동으로 뉴스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CPU는 알지만 GPU는 금시초문인 데다, 무료로 주는 것도 아니고 14조 원이나 되는 돈을 주고 사는 건데 왜 우리가 이토록 감사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여 여기저기 검색하고 강의도 찾아 들었다. AI가 미래 산업에서 엄청나게 중요한데, 이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GPU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도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고 한다.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GPU는 6만 5천 장인데 26만 장을 더 들여오면 30만 장이 넘어 세계 3위 보유국이 된다. 이것은 2천만 장을 보유하여 전 세계 보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1위 미국이나 25%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 비하면 엄청난 격차지만 30여 만장으로 3위가 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앞서간다는 뜻이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환호하는 분위기 일색에서 GPU 30만 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필요하다고 염려하면 눈치 챙기라는 지청구만 들을 가능성이 백 퍼센트다. 이제 AI는 우리 실생활에 파고들어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자리잡고 있으니 거부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전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은 음과 양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발전해왔다. 농업의 발전은 물론이고 산업 혁명, 정보 혁명 등 모든 기술 혁명에는 그림자와 부작용이 뒤따랐다. 지금 디지털 세상도 능력에 따른 빈부격차의 극심화나 인간 소외 등 부작용이 있다. 이에 AI가 발전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에서 신규 채용은 제로가 되었고, 대량 해고도 잇따르고 있다. 어느 소설가는 현실은 울퉁불퉁한데 휴대폰 세상은 너무나 매끄럽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중독되는 것이라 한다. 이런 논리를 AI에 적용하면, AI야말로 매끄러움의 끝판왕이다. 챗지피티에 어떤 자료를 넣어도 완벽한 결과물을 척척 내놓는다. 이제 인간 세상의 울퉁불퉁함과 어설픔, 시행착오는 악덕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휴대폰에 인간 세상의 울퉁불퉁함을 이식하여 속도를 늦추자는 그 소설가의 제안은 실현 불가능하다. AI의 발전도 막을 수 없다. AI는 계속 발전하는 대신, 개인과 지역 차원에서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조금이라도 확보하면 좋겠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프로스트가 폴을 치유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마담 프로스트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원을 갖게 되었다.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같은 비포장도로가 있는 집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09

상조가 미풍양속이 되려면

최근 여당 국회의원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자녀 결혼 초대장을 피감기관에게까지 보냈다고 한다.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SNS에 자초지종을 상세히 밝혔지만, 뒤이어 이미 받은 축의금을 보좌관에게 시켜서 반환하도록 지시하는 사진이 의회에서 찍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2023년 4월에도 이상호 강원 태백시장과 김성 전남 장흥군수가 직무관련자 100~200여 명에게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가 적힌 직계가족 부고장·청첩장을 보낸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무원 행동강령’ 이행 실태를 긴급 점검하여 밝힌 일이 있다. 이런 뉴스를 보노라니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대학원 동기가 지방대학에 교수로 부임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지역 유지들의 경조사에 불려가는 일이라면서 초임 교수 월급이 빡빡한데 부담이 크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크고 작은 학회에서도 경조사 단체 안내문이 수시로 온다. 동창회나 동호회에서도 단체 문자로 오는 경조사 소식은 빠지지 않는다. 요즘 내가 신청해서 듣는 강의에서 수강생이 교수 자녀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청첩장을 먼저 청해서 놀란 일이 있다. 유전자에 상조 문화가 얼마나 뿌리박혀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그래도 사적인 모임에서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무시할 수 있지만, 이권이나 권력이 개입된 인간관계에서는 그러기 어렵다. 본래 주고받는 상조 문화는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다만, 그 미풍양속이 생긴 배경에는 생활 공동체, 경제 공동체, 나아가 정서 공동체 역할까지 하는 농경 사회라는 조건이 있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으니 두레를 만들어 품앗이로 서로 돕고, 결혼이나 장례 같은 인륜지대사 역시 가족만으로는 치를 수 없으니 동네 사람들이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농경 사회 특성상 평생토록 일정 공간에서 같이 살면서 형편껏 내놓으니 까다로운 손익 계산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마드라는 말처럼 현대인은 떠돌아다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소속이 자주 바뀌니 주고받기가 보장되지 않고, 그러니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청구서 받는 기분이 든다. 상대가 상급자이거나 권력자라면 나의 의무만 있을 뿐 상대에게서 되돌려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소, 아유, 알리지 그랬어요? 하는 말은 다 빈말이라면서 괜히 알려서 나중에 빚 갚으러 다니지 말라시며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러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부모님의 뜻이 그러하니 부모님 장례는 물론, 딸들 결혼식에도 내 지인으로는 10명에게만 알렸다. 사회 관계에서 부조할 때도 받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최근 문형배 전 대법관이 ‘호의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호의’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이라고 하면서 호의를 악용하는 사람에게는 중단해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호의가 많을수록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호의의 정신을 장착하지 못하더라도 공과 사의 경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억지 춘향으로 하는 상조는 줄어들지 않을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02

싸울 것인가 화해할 것인가

얼마 전 주택조합 조합장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결원이 된 감사 보궐선거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로 입후보하려면 추천인 서명이 필요한데 조합장은 외국에서 보낸 서명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서 대리인이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나는 그 조항은 총회 때 대리인에게 위임하여 찬반 투표하는 경우라고 반박한 것이다. 작년에 그 조합장과 이사들이 불법 셀프 유임한 전적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런데 의견 차이가 곧 싸움으로 번졌다. 내가 ‘이 조항의 의미를 이해 못하시네요’라고 한마디 하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에 담지 못할 비난을 하는 등 개싸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를 잘 아는 지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조합장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해 못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 지인의 말을 들으면서 정은혜의 ‘싸움의 기술’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도 급소를 건드리면 개싸움이 된다면서 개싸움이 되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역시 내가 부주의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싸움이 되지 않게 하라는 싸움의 기술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 간 갈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만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고단수인 것 같다. 지난 22일 미국 백악관의 역대 최연소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의 이름이 온 매스컴을 장식했다. 허핑턴포스트 기자 S.V.데이트가 ‘부다페스트는 1994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장소인데 미·러 정상회담 장소를 부다페스트로 정한 건 누구냐’고 질문하자 레빗이 “느그 엄마”(Your mom did)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느그 엄마’는 미국 청소년들이 말싸움할 때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레빗의 이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했지만 백악관의 다른 대변인 테릴러 로저스가 ‘적절함 그 이상’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이것은 한 대변인의 돌발적인 발언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전략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이보다 며칠 앞서 18일, 트럼프는 700만 명의 ‘노 킹스’ 시위대를 향해 왕관을 쓰고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똥’을 투척하는 AI(인공지능)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다. 이런 전략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을 보면, 이들의 개싸움 전략은 잘 작동하는 것 같다. 주택조합의 이사회는 결국 스스로 물러났던 전임 조합장을 새 감사로 선택했다. 조합장을 비롯한 이사들은 까다롭게 따지는 A 후보가 감사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A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믿는 일부 조합원들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이기고 지는 것을 판가름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부당한 도발에 대해서만큼은’ 맞받아치는 전략도 필요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개인 차원에서는 개싸움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26

21세기 소문의 벽

‘소문의 벽’은 1971년에 발표된 이청준의 중편 소설이다. 잡지사 편집장인 ‘나’가 우연히 만난 박준이라는 소설가를 도와주려다 오히려 병을 악화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박준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였지만, 진술 공포증에 걸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는 환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나’는 박준의 작품을 찾아 읽으면서 그 위협의 실체가 전짓불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6∙25가 일어나던 해 밤중에 들이닥쳐 전짓불을 들이대고 ‘좌’냐, ‘우’냐 묻는 정체 모를 사내들에게 느꼈던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오히려 그 전짓불을 들이대는 치료법을 택하고 박준은 병원을 도망쳐 나가 버린다. 여기서 소문은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비이성적인 이념이고, 벽은 진실이 억압된 상태를 말한다. 박준은 이런 현실에 저항하여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 전짓불의 공포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어서 병에 걸린 것이다. 20세기의 소문의 벽은 진실을 구속하는 존재였지만, 그래도 저항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소문의 벽은 다르다. 며칠 전 연달아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하나는 학계에서 발표된 논문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김예지 국회의원이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철회했다는 뉴스다. 17일 뉴스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가족 동의 없이도 장기 기증을 할 수 있게 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개정안’을 철회했다. 미국 극우 인사인 고든 창 등이 이 법안을 두고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것과 관련 있다는 식의 음모론을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악의적인 왜곡된 정보로 장기 기증을 신청한 분들과 그 가족들이 불안감을 느끼거나 신청을 취소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16일 소식은 코로나 백신이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논문에 대해 정재훈 교수가 반박하는 영상이다. 이 논문은 지난 9월 26일 꽤 괜찮은 학술지에 발표되었는데, 정규 연구는 아니지만 학문적 연구 범위에 부합하는 보편적 주제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구 원문 조회 수가 학술연구로는 폭발적이다. 지난 20 여일 간 19만 회를 넘었다. 이런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도 항간에는 백신을 맞아서 암 발생률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으니, 그런 소문을 확인해주는 연구가 된 셈이다. 두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소문이 정치권력자가 아니라 민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어느 정도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재훈 교수가 암이 발견되려면 발생한 지 최소 1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리는 데 비해 코로나는 감염되자마자 증상이 나타나 바로 발견되는 질병이고, 백신 접종자가 병원에 갈 확률이 높으므로 이것만 가지고는 백신 접종과 암 발생을 연관시키기 어렵다고 외쳐도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다. 20세기 소문의 벽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무너질 수 있지만, 21세기 소문의 벽은 미디어를 타고 급격히 확산되고 있으니 어떻게 깨야 할지 갈 길이 멀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20

단순한 복지, 빠른 복지

3주 전 일요일 어느 회사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넘어졌다. 당시에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로 충격이 컸고 가장 먼저 바닥에 닿은 오른팔은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있었으나 행사 스태프들이 얼음주머니 등 발 빠른 응급조치를 해주어 통증이 금세 완화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정형외과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보니 상완골 골절이라면서 4주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고 후 일주일은 특별히 유의해서 움직임을 최소로 해야 한다고 하니 걱정이 밀려왔다. 걸을 수도 있고 말하는 것도 문제는 없으니 강의는 할 수 있지만 손을 써야 하는 강의 준비는 물론이고, 음식 준비와 청소 등은 혼자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인에게 부탁했다. 지인은 강의 자료 만드는 일에 손 빠르게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고 며칠간 먹을 식사까지 챙겨주면서 정말 절실한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돌봄 SOS라는 복지제도이다. 돌봄 SOS는 일시 재가 서비스로, 거주지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담당자가 방문하여 상태를 점검하고, 관련기관에 의뢰하여 요양보호사를 파견해 준다고 한다. 이 제도는 서울시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대 중이라고 한다. 전혀 몰랐던 정보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알고리즘으로 본 영상에서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수백 가지라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닿지 않는 사례가 많다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영상을 본 것이 생각났다. 이번에 다시 찾아보면서 복지정책 단순화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이는 작년 10월 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4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이 있는데 ‘안심소득’으로 불렸던 ‘서울디딤돌소득’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이 정책은 복지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때 발표한 쉐퍼 교수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개념을 주장하면서 최소 소득 하한선을 설정해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면 복지 시스템이 단순해져 행정 비용도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8년 전 한 일간지의 집중취재에서는 이보다 더 과격한 주장이 실렸다.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류학)가 복지를 위해 기본소득제를 주장한 것이다. 기본소득제란 소득과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기본소득제는 원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가 지향하는 정책으로, 모든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실제 2012년 일본의 극우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기본소득제든 선별 지원이든 복지정책의 단순화는 비용 절감과 복지 혜택의 접근성을 위해 필요하다. 복지제도가 단순해지면 긴급 돌봄이 필요할 때도 빠르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1인 가구라 외부 도움이 없으면 왼손만으로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데 돌봄 SOS 신청한 지 3주가 되도록 자격심사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번 돌봄 SOS 신청은 헛일이 될 것 같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12

노란봉투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주 전쯤, 건축업에 종사하는 이웃과 동네 일을 의논하러 만났다가 대화 주제가 노란봉투법으로 이어졌다. 그 이웃은 공사 현장에서 사람 다치고 죽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렇게 패널티를 많이 주면 건축업이 위축된다면서 정부를 비판했다. 바로 며칠 전에도 유튜브 채널 부읽남TV에서 같은 논조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는 건축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죽었을 때 어떤 패널티를 주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노란봉투법이 주택 공급 소멸 정책이라며 집값 폭등을 예고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가 파업했을 때 법원에서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하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4만 7천 원씩 넣어 후원했다. 현금으로 월급을 주던 시절 노란 봉투에 담아 주었기 때문에 노란 봉투에는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를 일부 개정한 것이다. 제2조는 근로자와 사용자, 노동쟁의의 정의 등을 규정하고 있고, 제3조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및 배상 책임을 다룬다. 9월 12일 공포된 이 법안은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크게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했다. 사용자를 근로계약 당사자만이 아니라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를 모두 사용자라고 보았다. 이렇게 되면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종사자도 노조의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어 원청과 협상할 수 있다. 둘째는 노동쟁의의 대상이 확대된 것인데, 이전에는 임금과 근로 조건에 직접 관련된 상황에서만 쟁의가 가능했지만. 노란봉투법에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도 쟁의 대상이 된다. 물론 회사가 불법행위를 하거나 단협을 위반했을 때 가능하다. 셋째는 파업이나 노조 활동을 했을 때 지나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파업 때 47억 원을 청구한 것이 부당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권익 보호의 폭이 확대된 것이다. 그러니 사업자 측이 반발할 것은 당연하다. 전국경제인연합은 경영권 직접 침해, 해외 투자 위축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기준과 매뉴얼을 마련해서 불확실성과 남용을 방지하겠다”고 했지만, 갈등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럴 때는 오히려 철학적이고도 원론적인 접근이 유효할 수 있다. 롤즈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원초적 상황을 가정한다. 사회 계약 후의 내 지위를 전혀 알 수 없다고 전제했을 때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인 약자에게 최대이익이 되도록 조정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사회 정의를 고려할 때 자신이 약자가 될 경우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부읽남TV 댓글 중 한 명의 병사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장수는 패한다는 말이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사람 한두 명도 죽지 않기를 바라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죽는 병사가 나라면, 내 가족이라면 그래도 그 장수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9-21

미리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꼭 하는 편이다. 평생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살아온 데다 나는 사심이 없고 내 말이 옳다는 신념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강하게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내 생각이 옳아도 그것을 관철시키려면 상황에 따라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수위도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중용’의 말처럼 신중하게 미리 준비해야 한다. ‘천하와 나라와 집안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큰 원칙은 9가지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원리는 하나이니, 그것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할 일을 미리 준비하면 성공하고, 할 말을 미리 준비하면 실수하지 않으며, 일을 미리 정하면 막히지 않고, 행동을 미리 정하면 탈 나지 않으며, 방법을 미리 정하면 오래 유지한다.’ 말이나 행동은 물론이고 일을 도모하는 것도 미리 준비하면 실수하거나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언제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우발적인 사고는 막을 수 있지만, 평소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미리 준비해도 성공하기 힘들다.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객관적이고 공평한 시각을 전제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실수하는 사람은 계속 실수한다. 최근 최강욱이 조국혁신당 고위 당직자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한마디 했다가 결국 더불어민주당교육연수원장에서 사퇴했다. 6분 정도 되는 최강욱 발언의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2차 가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처음에는 열린우리당의 합당 반대파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조국혁신당의 성추행 사건으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사실 확인도 없이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단정하고 그런 사람을 개돼지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개돼지라는 표현의 수위도 높은데다 그가 말하는 열린우리당의 일과 조국혁신당의 일 사이에 연결고리도 별로 없다. 굳이 연결고리를 찾자면, ‘사소한 시비 다툼’이 될 텐데, 과연 열린우리당 합당 반대파들의 주장이 사소한 시비 다툼이었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최강욱을 검색해보니 ‘말’로 구설에 오른 일이 여러 번이다. 그러고 보면, 최강욱의 평소 화법이 조심성이 없거나 평소 생각도 치우쳐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중용’에서는 미리 준비하기를 잘하려면 혼자 있을 때 생각과 감정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이 만든 터널에 갇히기 쉽다. 자기가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라는 인식이 강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요즘 동네 단톡방에서 리더 집단의 무능과 부정을 지적하다가 그들과 갈등의 골이 깊은 상태다. 내가 옳다는 떳떳함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한 주민에게서 내 발언이 아무리 옳아도 그렇게 강경하게 발언하면 일반 주민에게는 시비 거는 사람으로 보인다면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고 깨달은 바가 많다. 어떤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미리 준비할 때는 혼자 있을 때 마음공부도 필요하고 듣는 이의 상황에 따른 표현 조절도 중요하다. 정치인들에게 특히 필요한 덕목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9-14

억울하면 출세해야 하나요?

지난 4일 조국혁신당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이 있었다. 조국혁신당 고위 당직자들의 성추행 사건을 처리하는 조국혁신당의 늑장 대처에 실망을 넘어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내용이다. 조국 전 대표의 침묵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도 애절한 데다 눈물을 흘리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창당할 때 보여준 당찬 모습은 어디 가고, 배신감에 흐느끼는 모습을 보니 그이가 느낄 참담함에 절로 공감이 되었다. 기자회견 내용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내용은 ‘그래도 나는 기득권이 있어서 기자회견을 한다. 그러나 심한 성추행을 당한 어린 피해자들은 기자회견 할 기회도 없다.’는 말이었다. 기자회견 후 혁신당에서 바로 반박 기사를 내보낸 것 역시 강미정의 지위를 말해준다. 그렇다고 일부 언론에서 강미정 사태라고 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강미정 대변인 탈당 기자회견이 있을 때까지 이 사건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았다. 처음 언론 보도는 4월 30일인데, 피해자가 혁신당 내부에서 비위 신고를 한 것은 4월 14일과 17일이라고 한다. 혁신당에서는 바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다고 밝혔지만 피해자들의 말은 다르다. “조사 개시와 외부기관 선정이 지체되고 번복되는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이 있었고, 가해자와 업무상 분리 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기사를 추적해보면 피해자 말에 신빙성이 더 많다. 혁신당은 5월 1일, 당이 이 문제를 인지한 지 약 2주 만에 가해자로 지목된 고위 당직자 ㄱ씨를 전날 직무 배제했다고 밝혔는데, 결국 4월 30일 언론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이루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나서 접수 70여 일 만에야 가해자 1명은 제명(당적 박탈 및 출당), 다른 한 명은 당원자격정지 1년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5월 2일 기사에서 더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혁신당에서 이 가해자 말고도 다른 당직자에 대해서도 직장내괴롭힘과 성 비위 등으로 3건이 접수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추행은 신고하지 않는다는 관행을 볼 때 작은 당에서 신고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당내 성인지 감수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조국 전 대표의 태도다. 조국은 강민정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이 있던 날 저녁에서야 입장을 밝혔다. 조국은 ‘비당원 처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남 얘기 하듯 말했다. 그러자 혁신당 피해자 대리인은 ‘비당원이 의전 받으며 현충원 참배를 하느냐’며 조국 말의 모순을 지적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1969년 영화가 있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높은 직급에 오른 남자 이야기다. 1965년에 나온 같은 제목의 고봉산 작곡의 열심히 일하라는 교훈적인 노래도 있다. 그러나 강미정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을 보노라니 부당함을 시정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직급 없는 사람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암담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9-07

사법권은 어디에 속해야 하나?

굵직굵직한 사건이 재판에 회부될 때마다 온 국민의 관심도 재판부에 쏠린다. 대통령 파면에서부터 사연 많은 형사 사건까지 어떤 판결이든 국민 여론이 나뉜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무섭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SNS에서는 법관만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법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법관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세상이 쉬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로봇이 수술하는 세상이 왔어도 여전히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판결을 인공지능에 전적으로 위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도라도 보완해야 한다. 헌법에서는 입법권에 대해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41조 ①국회는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라 하고, 행정권에 대해서는 ‘제66조 ④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법권은 다르다. ‘제101조 ①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로 되어 있어 ‘법관으로 구성된’ 일곱 글자가 도드라져 있다. 국회와 정부는 선출직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법관은 선출직이 아니므로 굳이 ‘법관으로 구성된’을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법관의 전문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소수의 법관에게 판결의 전권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미국의 경우,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되어 있어 시민이 의무적으로 평결에 참여한다. 1957년에 나온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고전 영화다. 가난한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피소되었는데 유죄 판결이 확실하다. 그러나 12명의 배심원이 열띤 토론 끝에 ‘죄 없음’이라고 판결한다. 미국 배심재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배심원들’이라는 국민참여재판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역시 가난한 가정의 아들이 엄마를 죽였다는 혐의로 피소되어 유죄가 확정적이었지만 배심원들의 토론으로 만장일치로 ‘죄 없음’을 선언하고 재판장이 이를 받아들인다. 다만, 영화에서는 재판장이 배심원 의견을 따랐지만, 우리나라는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따를 의무가 없다. 두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배심원들이 자기 판결이 가져올 결과의 엄중함을 의식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법관만이 평결의 권리를 가질 때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고, 권력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소수의 법조 권력에 의해 판결이 좌우되지 않도록 배심원 제도를 두는 것이다. 배심원 방식과는 다르지만, 독일, 일본 등도 시민이 재판에 큰 비중으로 참여한다. 이제 우리 헌법에서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구성된’이라는 일곱 글자를 삭제하여 사법권에서도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31

관종인가 연결인가

이름 대면 알 만한 상담전문가가 SNS에 올린 글을 읽게 되었다. 알고리즘으로 뜬 모양이다. 그의 남편이 암으로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재택 임종을 원해서 집에 왔는데 맥주를 너무 먹고 싶어 해서 무알코올 맥주를 건넸다는 이야기다. 남편이 침대에 누워 맥주를 들고 있는 사진까지 올렸다. 몸통만 보였는데 너무나 앙상해서 불치병 환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사진까지 올린 그 상담전문가의 용기가 놀라웠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맥주 건넨 것을 잘했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아플 때 먹고 싶은 것을 금지했던 일을 후회한다는 댓글도 많았다. 나 역시 그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우리 부모님도 모두 재택 임종하셨다는 댓글을 달아 위로했다. SNS는 현대인의 생존 방식이자 중요한 소통 창구이다. 실종된 딸을 오직 딸의 SNS 흔적만으로 발견하는 영화가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 SNS에 올라온 글은 정보 창고이기도 하고 사람을 연결해주는 끈이 되기도 한다. 상담전문가의 SNS의 글도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글쓴이는 재택 임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싶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 자신도 많이 두려울 것이다. 말로는 맥주를 주는 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했지만 무알코올 맥주를 마신 후 상태가 악화될까 걱정하면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올 수도 있다. 그런 힘든 마음을 SNS에 고백하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무너지고 있는 자신을 부여잡기 위해서, 글이 아니면 아무런 생의 목표도 없이 흩어져 버릴 것 같아서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행동이 몹시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분이 돌아가신 후 지인이 그분의 생전 모습을 SNS에 올렸는데 약간 취한 모습이라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분이 살아있었으면 틀림없이 그런 영상은 내리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혹시 그분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올렸나 의심하기도 했다. 심지어 부모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서 올리는 사람도 봤다면서 SNS에는 밝은 모습만 올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면, 아무래도 자기 개방을 많이 한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연결고리를 만드는 경향이 많다. 봄 학기에 50대 후반의 여성 수강생이 대학 시절에 자기의 입술이 키스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키스할 때 안 지워지는 립스틱을 바르면 안 된다는 글을 발표했다. 그때 모든 수강생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강의실 분위기가 화사해진 느낌이 들었던 것 역시 비슷한 경우다. SNS 글쓰기는 현대인의 필수 소통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관종인가 연결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수용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글을 쓰는 이가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내면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는가만 중요하다. 덧붙여 그 글들이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주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 글은 온전히 잘 쓰인 것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24

누가 배터리를 바꿔줄까?

10년 전 아버지가 혼자 사실 때 가장 힘들어한 것이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었다. 파킨슨 병으로 14년 간 투병하시는 엄마 간병의 고통보다 대화 상대가 없는 외로움의 고통이 더 힘들다고 호소하셨다. 자식들이 자주 가고 요양보호사도 세 시간씩 방문하지만 24시간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도 자식들과 같이 사는 것은 한사코 거부하시다가 결국 엄마가 돌아가신 후 7개월만에 아버지도 엄마를 따라가셨다. 외로움은 노인의 심신 건강에 이렇게 치명적이다. 만약 그때 돌봄 로봇이 있었다면 아버지의 외로움은 줄어들었을까? 2024년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아기처럼 생긴 AI 로봇을 개발했다. 영상을 보니, 이 로봇이 독거노인과 함께 살면서노인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할머니는 효돌이 로봇에게 옷도 만들어 입히거나 장신구도 달아주고 안아준다. 효돌이는 할머니에게 약 먹을 시간도 알려주고 애교 있는 말도 해준다. 어떤 할머니는 민희라고 이름 붙인 AI 로봇 덕에 두 달 만에 우울증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2013년 제작된 ‘체인징 배터리’라는 5분짜리 애니메이션에도 돌봄 로봇이 나온다. 이 영상은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아들이 로봇 선물을 보내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할머니가 무언으로 로봇과 교감하면서 기쁨을 되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로봇이 작동을 멈추자 배터리를 갈아주어 살린다.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눈을 뜨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로봇은 자기처럼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배터리를 가져오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할머니가 먼저 죽고 로봇도 결국 배터리를 갈아줄 사람이 없어서 정지한다. 그때 할머니 영혼이 와서 로봇의 손을 잡고 하늘로 같이 간다.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AI 로봇의 유용성과 필요성을 설득하는 영상이다. 그러나 효돌이든 애니메이션의 로봇이든 이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외로움 극복에 실제 도움 될지 아직은 실감 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6월에 나온 뉴스를 보니 2029년이 되면 전 세계 돌봄 로봇 시장은 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1999년에 처음 개발된 돌봄 로봇이 2010년대까지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돌봄 로봇의 수요가 급성장한 것이다. 일본은 올해 3월 와세다대 연구진이 요양 환자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예방하는 등 실제 돌봄 인력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돌봄 로봇 ‘AIREC’를 개발했고 보험 지원도 해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효돌이 판매를 검색해보니, 현재 9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이고 복지 혜택을 받으면 28만 원 정도다. 이렇게 돌봄이 기계로 대체되는 추세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일지는 의문이 든다. 올해 말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출시될 가정용 로봇 ‘볼리’와 ‘Q9’는 기계처럼 생겨서 효돌이만큼 교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아버지가 생전에 효돌이가 있었다 해도 외로움은 해소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도 필요하고 약간의 갈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17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지난주 인지 건강 강의에서 공자의 즐거움을 소개했다. ‘논어’의 첫 문장,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는 인지 건강에 중요 요소인 공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나오는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도 당연히 소개했다. 수업이 끝날 때 수강생들은 배우는 기쁨을 한껏 느꼈다면서 한문을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을 때는 전율이 느껴진다고도 하셨다. 공자만 소개하면 서운해서 맹자의 삼락도 덧붙였다. 칠십 대 이상인 분들도 있어서 ‘부모가 모두 생존하고 형제가 무탈한 첫 번째 즐거움’과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세 번째 즐거움’은 생략하고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두 번째 즐거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 수강생이 ‘이건 불가능해요.’라고 하신다. 순간 아, 그렇지, 하고 바로 수긍하게 되었다. 하늘에 부끄러움 없기야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지만 사람에게 부끄러움 없기도 쉽지는 않다. 맹자는 물론, 제아무리 공자라도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게 떳떳했을까 의문이 든다. 설령 그들 스스로 부끄러움 없다고 자부했다면 그것이 더 수상쩍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잘못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너무나 떳떳하여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혹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즐거움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그러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고 또 가능한 일은 잘못을 저지르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반성할 줄 아는 것일 게다. 지난 3월 7일 구속취소되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넉 달만인 7월 10일 재구속되었다. 구속취소 전에도 모든 조사를 거부했고, 재구속 이후의 조사도 다 거부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속옷만 입고 누워서 버텼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을 당황하게 하더니 7일에도 완강히 거부해서 부상을 우려한 특검팀이 결국 체포 집행을 중단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설이 없다. 혹시나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무서워서 그러는 것일까? 그러나 시민 104명이 12·3 불법계엄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자 바로 항소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윤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이 ‘10여 명의 젊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대통령을 양쪽에 팔을 끼고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차량에 탑승시키려 했다’면서 이것은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관계자들을 불법체포감금죄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성토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자신들이 무고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 당당하게 나와서 조사받아야 할 텐데 일관성이 없다. 부끄럽지 않을 경지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것은 배워서 할 수 있다.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10

노후 준비, 누구의 책임인가?

작년 12월부터 다시 가계부를 쓰고 있다. 2년 전 금융감독원에서 재무 컨설팅을 받기 위해 반짝 열심히 쓰고 나서는 다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때부터라도 가계부를 꾸준히 쓰지 못한 것은 평생의 습관 고치기가 쉽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가계부 관리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도 크다. 수입이 많지 않기도 하고 가정 경제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지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때가 많아 딸들의 도움을 받아 가계부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2025년 1인 가구 중위소득이 256만 원이고, 1인 가구 적정생활비는 192만 1천 원이며, 최소필요노후생활비는 월 136만 1천 원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 비하면 내 소득은 중위소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지출이 큰 항목인 주거비 지출이 없으니 내 지출 목표가 어마어마하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항상 지출이 수입을 넘는 달이 많다. 이럴 때는 무조건 안 쓰는 것이 답이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수입이 더 줄어들 텐데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결국 8월부터 연금을 수령하기로 했다. 작년부터 연금 수령 자격이 되었으나 미루다가 받을 돈은 일찍 받는 쪽이 유리하다는 주위 말을 믿고 결정했다. 임의가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몰라서 뒤늦게 가입한 데다 수입 불안정으로 최소 금액으로 납부한 터라 금액만 따지면 최소필요노후생활비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지금은 수입이 있으니 그런대로 살 수 있지만 수입이 줄어들면 낭패인지라 최대한 은퇴를 늦추는 수밖에 없다. 어느 기사를 보니, 2024년 12월 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보고한 ‘1인 비임금 근로자의 국민연금 인식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에서도 “대체로 ‘노령’이라는 사회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노동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나도 딱 그 경우에 해당하는 셈이다. 올해 발표한 국민연금 개편안에서는 내년부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렸다. 그러나 국민연급 가입자 월 평균 소득 309만 원인 사람이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한다는 전제로 나온 수치라서 해당 안 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월 평균 연금수령액은 67만 원이니,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이렇게 노후 준비를 못한 것은 1차적으로 개인 책임이 크다. 내 경우만 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경각심이 부족했다. 노후 준비를 위한 정보가 국민 모두에게 닿을 수 있게 정부가 더 노력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알고는 있어도 연금을 납부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현재 일정 소득 이하의 농어업인에게나 두루누리사회보험료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 영역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이다미 연구위원은 소득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반영하여 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할 것을 주문하면서 특수고용직 같은 실질적 사용자가 사회보험을 부담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가 안정되는 데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03

터널 비전이 문제는 아니다

지난 주말 이틀간 사진 치료 워크숍에 참여했다. 작년에 ‘사진으로 대화할까요’라는 책을 사놓고만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의 저자인 김문희 사진상담치료사가 직접 진행한다기에 바로 신청했다.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무지했거나 외면했던 여러 가지 마음 패턴을 발견했다. 그중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치료사가 A, B. C를 말했는데 A에 꽂히면 B와 C는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터널 비전에 사로잡힌 것이다. 터널 비전은 원래 시각장애를 뜻하는 의학용어로, 주변부 시야가 사라지고 중심부 시야만 남아 마치 터널 안을 보는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의미가 확장되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심리상태나 한쪽 정보만으로 판단이 편협해지는 인지적 문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같은 사진 카드에서 참여자들이 각자 다른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터널 비전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재난 상황이나 운동 경기, 큰 시험 등 고도의 집중력이 상황에서는 터널 비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본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은 듣지 않는 내게 치료사가 집중력이 좋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터널 비전은 프레임과 혼동하기 쉽지만 프레임은 아예 객관적 인지를 못하는 상태인 반면 터널 비전은 대상을 제대로 보기는 하지만 시야가 좁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다른 참가자의 시선을 보거나 사진상담치료사의 피드백이 충분하면 자신의 터널 비전을 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없다면 터널 비전은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 최근 사퇴한 강선우 여가부 장관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의 밑바닥에도 터널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강선우를 비판하는 쪽은 보좌관 갑질에 주목하고, 찬성하는 쪽은 보건복지 관련 입법 발의한 경력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주목하는 부분이 다른 것만으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집중한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심지어는 증명되지 않은 논리로 비판하는 데 이르렀을 때 문제가 커진다. 아무리 터널 비전을 가지고 있어도 더 많은 사실을 보여주면 상대를 이해하거나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는 쪽이 제시하는 사실을 축소 해석하거나 ‘음모’니 ‘수박’이니 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면 토론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은 이렇게 지나친 해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국민의힘이 반대하니 적격자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강선우 지명자를 비판하는 쪽과 옹호하는 쪽, 그중에서 논리 비약을 많이 하는 쪽이 더 단단한 프레임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국민 모두에게 사실을 공개하고 토론에 붙여 어느 쪽이 논리 비약이 많은지를 기준으로 적격 부적격을 판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자세히 설명하다 보면 내가 일부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듯이 강선우의 행태를 모두 열거하고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여론은 터널 비전을 자각하게 하는 한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퇴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한 셈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27

환대, 사람됨의 조건

며칠 전, 세탁기 없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래전이지만, KBS ‘일요스페셜’에 세탁기 안 쓰는 사람으로 출연했을 만큼 세탁기를 안 썼다. 잠시 세탁기를 들인 적도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오래지 않아 없앴다. 그런데 석 달 전 손목에 이상이 생겨 빨래를 짤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세탁기를 사게 된 것이다. 마침 중고거래 장터에 새 상품이 반값에 나왔다. 인수하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고 용달비를 추가로 물어야 해서 대단히 유리한 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물건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세탁기용 수도가 없다는 것이다. 세탁기 쓸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오래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집수리센터에 가서 사진을 보여주고 견적을 받았으나 직접 와서 보고는 못 하겠다고 한다. 사진만 보고 부른 견적이 너무 싸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비용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했지만 이유도 묻지 못하고 중고거래 동네생활에 사정을 올렸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눔으로 해주겠다고 나섰다. 전문업자도 안 한다는 일을 생면부지 남을 위해 나서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이유를 물었다. ‘생활 속에서 부품 몇 개로 DIY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을 도와드리는 것뿐, 금전을 받을 만큼 전문은 아닙니다. 우울한 일상에서 몰랐던 것도 배우게 돼서 해드립니다.’ 드디어 세탁기가 들어와서 나눔 해주시는 분이 오기로 했다. 하필 전날 폭우가 내리쳐서 계단참에 빗물이 흥건히 고였길래 얼른 나가서 물웅덩이를 말끔히 쓸었다. 집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다 치웠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돈을 지불하는 집수리업자가 와도 이렇게 했을까 의문이 들면서 ‘환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환대’는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은 그의 대학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출간된 지 10년이 되어가는데도 지금도 여러 독서 모임에서 선정되고 있다. 사람을 교환가치로만 생각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묵직한 문제의식이 시의성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현경은 프롤로그에서 그림자나 웃음, 눈물이 없다면 사회에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우화 몇 개를 소개하며 그림자나 웃음, 눈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만 환대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자나 웃음, 눈물을 환대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재해석하고 싶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가 공공성을 창출하는 ‘사람’이 되는 조건이 바로 환대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눔을 해준 분은 동네생활의 몇 글자만 보고 기꺼이 도움을 약속했고 90분에 걸쳐 세탁기 수도를 연결해주고는 공구 가방을 따릉이에 싣고 ‘손목 아프지 마세요’ 인사를 남기고 어떤 선물도 거절한 채 홀연히 떠나갔다. 김현경은 환대와 증여를 구분하면서 준 것을 잊어야 환대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눔해준 그 분이야말로 진정으로 환대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다만, 받은 것도 잊어야 환대라는 저자의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준 사람은 잊어도 받은 사람은 잊지 않는 것, 그것이 환대의 완결이 아닐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20

‘다른’ 사람과 연결하기

지난 8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 소속 장애인 부모들이 국회의사당 본관 계단 앞에서 환한 얼굴로 ‘오체투지 보고대회’를 열었다. 4일 이재명 정부 첫 추경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 249억원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잡은 2025년도 예산이 4천3십억 원이었으니 6%가량 증액한 셈이다. 이 추경 예산이 장애인 부모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무더운 날씨에 지난달 16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매일 100배 제자리 오체투지를 하면서 발달장애인 추경 예산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부모연대의 시위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거의 매년 발달장애인 복지를 위해 시위했고, 3년 전에는 부모들이 삭발 시위까지 했다. 이런 꾸준한 노력으로 얻은 결과인 셈이다. 내가 발달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청소년과 자주 만난다는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다. 그 청소년은 지능지수가 경계선 지능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하는 데도 부모의 각별한 관심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스무 살이 넘으니 독립에 대한 욕구가 많은데 사회적 지원 체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추경 예산 확정 소식을 본 것은 일간지가 아니라 어느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 소식 sns다. 검색해보니 실제로 주요 일간지에서는 다루지 않았고 장애인 관련 인터넷 신문에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만큼 발달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뜻이리라. 심지어 발달장애인 권익 요구 관련 뉴스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댓글이 달린다. ‘지원해줄수록 더 달라고 한다’부터 심하게는 ‘발달장애인이 사람이냐’까지 부정 의견의 스펙트럼은 넓다. 그러나 정상이라는 범주를 설정해놓고 그 범주를 벗어난 존재를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장애인을 가스실로 보냈던 나치와 다를 바 없다. 지금 당장 내게, 내 가족에게 장애가 없다고 해서 장애가 영원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치매에 걸릴 수도 있고, 사고로 다칠 수도 있다. 며칠 전, 박산호의 ‘다르게 걷기’를 읽다가 장애인 인권활동가 변재원의 인터뷰를 만났다. 어려서 큰 병을 앓고 의료사고까지 당해서 척수마비에 걸려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 상황을 못 받아들인 엄마의 폭력까지 견뎌야 했다고 한다. 그가 발달장애와는 다른 후천적 신체장애이고 지적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엄마가 불안이 컸던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머리로는 어렵다.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그들도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급선무다. 서울 혜화동에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도서관 ‘라이브러리 피치’가 있다. 이곳에 가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경험이 일상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면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사라질 것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13

취향과 옳음, 그 사이

우연한 계기로 21년째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질병으로 죽으면 다시 길냥이를 들여서 많을 때는 네 마리를 키운 적도 있고, 지금도 12년 째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려동물 기사에는 눈이 간다. 지난 2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이 A씨가 자기 반려견을 공격한 개의 주인인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A씨 손을 들어주었다는 기사도 그 중 하나다. 피해견 견주는 개 치료비 80만원, 본인 손 다친 치료비 3만원에 위자료 200만원을 더해 283만원을 청구했는데 승소한 것이다. 사건 발생일이 2023년 9월이라고 하니 거의 2년 동안 재판한 셈이다. 이 기사가 특별했던 것은 A씨가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을 모두 잃은 상황에서 반려견과 교감해와 A씨에게 개는 가족에 준하는 존재였다고 했기 때문이고, 이 판결을 반대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위자료가 2백만 원일 수는 없으므로 재판부가 개를 실제 가족이라고 간주한 것은 아니다. 개가 피해를 본 사건에 대해 견주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러 매체에서 뉴스로 다뤘다는 것은 위자료 지급이 여전히 특기할 만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댓글에는 판사가 사람과 개를 구분 못 한다는 비난부터 밴에 개 5마리 태우고 가면 버스전용차선으로 가도 되느냐는 조롱까지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실제로 현행 민법(98조)에서는 동물을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으로 본다. 그러나 소유물을 잃어버렸을 때와는 달리 키우던 동물이 죽었을 때 주인은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이 죽은 뒤 겪는 상실감과 우울증상)을 겪는다. 그래서 이런 사고에 대해 법원도 정신적 피해 부분을 인정해준다. 위자료 산정을 둘러싼 논란에는 동물의 위상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담겨 있다. 키우는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주 글쓰기 수업에서 한 수강생이 반려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는 주제로 쓴 글에도 이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동물 학대와 유기도 문제지만 지나친 동물 사랑도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설날에 강아지 떡국을 마련하거나 집을 비울 때 강아지를 비싼 호텔에 맡기기도 하고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화장하고 납골함을 마련하는 사람들의 세태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 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는 사람과 동물을 다르게 보는 것을 ‘종 차별’이라며 비판한다. 피터 싱어의 목적은 동물 착취를 반대하는 것이지만 그 논리를 확대해서 동물 복지를 추구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이런 이론을 동원할 것도 없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태도는 옳음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취향의 영역이기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할 때도 상대의 취향이나 관심을 존중해야 하듯이 정말로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면 동물에게 인간 문명을 적용하려 드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동물들의 이익관심(interests)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피터 싱어의 말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06

시, 인생, 정치

‘인생은 시와 닮아서 멀리서 보면 불가해한 암호 같지만 이해해보리란 마음으로 들여다 보면 비로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지요. 나와 상월이를 한 단어로 담아보려 평생 애썼지만 모두 어딘지 넘치거나 모자라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부디 이 외롭고 다정한 아이를 시를 읽는 마음으로 바라봐주세요.’ 요즘 시청률 고공행진하고 있는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김로사가 현상월을 위해 남긴 편지에 있는 글이다. 고아원 친구 김로사와 현상월, 두 사람은 너무나 불행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자기 몸처럼 아끼는 사이였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김로사를 현상월이 구하고 김로사는 죽기 전 현상월에게 자기 자식을 맡기며 자기 이름으로 살기를 부탁했다. 김로사와 현상월의 애닲은 사연을 여기에 옮길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인생과 사람은 시와 닮아서 멀리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하려고 하면 의미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시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은 저 말을 이해할 것이다. 멀리서 보고 지레짐작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족조차 이해하려들지 않으면 암호처럼 느껴진다. 정치인들을 대할 때는 더 심하다. 차라리 암호라고 생각하면 다행인데, 자기 관점에서 비난하며 지지자들까지 서로 반목한다. 며칠 전 글벗 세 명이 밥을 먹었다가 어쩌다가 대통령 선거 이야기로 주제가 흘렀는데 알고 보니 투표한 사람이 다 달랐다. 경직된 우리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자칫 불꽃이 튈 수도 있었지만, 글벗답게 각자 투표한 이유를 말하다 보니 정치인 한 사람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그러더니 A가 어려운 시라도 소리 내어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더라며 시에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요즘 읽고 있는 김혜순의 시를 소개했다. 오래전 그의 ‘불쌍한 사랑 기계’를 읽고 너무 어려워서 가까이 가지 못하다가 두 달 전부터 김혜순 시집 전작 읽기를 하던 참이었다. ‘그가 핀셋으로 눈물 한 방울을 끌어 올린다. 내 방이 들려 올라간다. 물론 내 얼굴도 들려 올라간다. 가만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으면 귓구멍 속으로 물이 한참 흘러들던 방을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 깜빡이는 하늘이 다가든 것만 같다.’ (김혜순 ‘눈물 한 방울’ 일부) “해 떠오르면 머리를 감는 여자 / 허벅지가 없는 그 여자가 / 머리칼 위로 모래를 한 바가지 퍼 들이붓고는 / 첨벙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담그는구나 / 발도 없는 여자가 / 모래강 위에서 머리를 절레절레 헹구고 있구나···."(김혜순, ‘타클라마칸’ 앞부분) 그냥 보면 무슨 말이야 하고 지나치기 좋은 암호 같은 문장들이다. 이렇게 이상한 시가 이해하려고 다가가서 소리 내어 읽으니 신기하게도 시적 화자의 슬픔과 허무가 느껴진다. 시를 읽듯이 상월이를 봐달라는 김로사의 말처럼, 어쩌면 암호보다 더 이상해보이는 정치인이라도 한번쯤은 시 읽듯이 바라보자고 하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