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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논란을 보다가

등록일 2025-12-21 11:44 게재일 2025-12-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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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지난 12일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받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에 대해 질문한 일이 있다. ‘환단고기’는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역사서이고, ‘환빠’는 ‘환단고기’ 맹신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때 대통령이 ‘환단고기’가 문헌이다,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비판의 소리가 크다.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환빠’라고 한 것만 봐도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다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인지하는지, 역사관을 어떻게 수립할 것이냐의 질문 과정 중 하나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런 단군 관련 이슈에 특별한 관심이 가는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1909년 나철이 민족 종교인 대종교를 중광했는데 대종교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 한얼님이라고 하여 모두 믿는다. 중광(重光)은 한국에 단군과 천신을 모시는 전통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나철이 그것을 재건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종교는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 아버지가 만주에서 사실 때 대종교 3대 도사교였던 윤세복이 이웃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몇 번 방문한 적도 있다.

대종교의 경전은 ‘삼일신고’와 ‘신사기’인데, 특이한 것은 대종교에서는 1917년에 발견된 ‘천부경’도 경전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삼일신고’는 온전히 수행에 관한 책이고 ‘신사기’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지만 ‘환단고기’처럼 실재 사실처럼 서술했다기보다 신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천부경’ 역시 수행과 관련이 깊다. 대종교가 ‘환단고기’를 수용하거나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신봉하는 사람들이 극단적 민족주의 경향을 띠는 것과는 달리, 대종교에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관점은 수행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대종교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종교 신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은 일제 탄압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자결하였고, 2대 도사교 김교헌은 1919년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3대 도사교 후보였던 서일은 독립운동을 위해 도사교를 마다하고 대한정의단을 발족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많은 대종교인들이 참여하였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지향한 활동이 아니다.

대통령이 왜 ‘환단고기’와 ‘환빠’를 언급했는지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만약 지금도 ‘환단고기’를 실제 역사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면, 제대로 대응해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 옳다. 다만, 엄밀한 역사학이라는 명분으로 고대에 대한 상상력까지 말살하지 않기를 바란다. ‘환단고기’는 수용하지 않더라도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민족 정체성과 관련해서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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