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통일교 청탁 금품 수수 혐의 등으로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했다고 기소된 김건희 씨가 1심에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15년 구형도 적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구형의 9분의 1인 1년 8개월이 선고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해야 할 영부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영리를 취한 것은 옳지 않다고 판결문에 쓴 것도 공분을 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은 김부식이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온조왕 15년(BC 4년) 기사에 새 궁궐을 두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답되 사치스럽지 않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는 유홍준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백제와 조선의 미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전통미를 설명할 때마다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사자성어를 나란히 놓은 것은 좀 어색하다. 누추함과 가까운 검소와 사치와 가까운 아름다움이 한 건물에 공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부식이 백제의 새 궁궐을 검소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고 한 것은 임금이 사는 궁궐만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궁궐이 검소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아름다움만 추구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개의 사자성어의 출전은 다르지만 모두 유학의 경서다. ‘검이불루’라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공자는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검소해야 한다’거나 ‘꾸밈이 본바탕보다 지나치면 겉치레가 심한 것이고, 본바탕이 꾸밈보다 지나치면 거친 것이다. 꾸밈과 본바탕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고 해서 본바탕만 강조하는 것을 경계했으니 ‘검이불루’와 통한다.
‘아름답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은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한 구절을 ‘중용’의 저자가 인용하면서 비단의 아름다움을 감추기 위해 홑옷을 덧입는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홑옷의 재료도 아주 고급 천이라서 귀족만 입을 수 있고, 그 홑옷 때문에 안에 입은 비단옷 더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중용’의 저자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점이 있다. 그래도 그동안 겸양의 뜻으로 인용해왔다.
그런데 판사가 ‘권력자가 영리를 추구하면 안 된다’거나 ‘청탁과 결부된 선물로 자기를 치장하는 데 급급한 것은 문제’라면서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훈계하는 과정에서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인용한 것은 영부인에게 누추하지 않을 정도의 검소함을 요구하는 것이라 영부인의 지위에 전혀 맞지 않는다. 더 문제는 영부인이 사치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뇌물을 받은 것이 문제다. 뇌물을 받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어떤 인용이든 원문의 뜻에서 변형되는 것은 글의 숙명이다. 그러니 판사가 고전에서 사자성어를 재해석해서 인용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전혀 상황에 맞지 않게 사자성어를 맥락과 상관없이 단장취의하여 인용하는 것은 교묘한 곡학아세다. 그 판사가 아첨하고 싶었던 세상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진다.
/유영희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