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결혼한 딸을 설 연휴 전날 만났다. 올해부터 시가에서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시부모님을 뵈러 남편 고향에 가기는 하지만, 차례가 없어져서 올해부터 시가 방문 일정이 하루 줄었다고 한다. 차례를 주관하는 시가의 큰집에서 결정한 일이라는데, 그 집이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렇게 차례나 심지어 제사까지 지내지 않거나 간소화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본래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한밤중에 조상을 추모하는 의례이고, 차례는 명절이나 특정한 날 아침에 지내는 의례지만, 요즘에는 구분하지 않고 모두 제사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용어를 쓰느냐 하는 것보다 그 의례를 지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명절에 정성스럽게 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오랜 기간 외국 생활하는 지인이 명절마다 SNS에 올리는 차례상을 보면 감탄을 넘어 감동에 젖어 든다. 문제는 그런 정성이 우러나오려면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집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설이나 추석에 민족이 대이동 하던 일은 우리 학창 시절만큼 뉴스거리는 아니다. 애써 가족이 모였어도 의미 없는 웃음과 상투적인 대화만 오가기 쉽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너무 오랜만에 만나 그럴 것이다.
그래도 60~70대 중 응답자의 35%가 넘는 사람은 명절이 추모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해진 예법대로 유교 의례를 수행하지 못한다 해도 유교 사상이 우리 문화 유전자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대가 내려갈수록 이 비율은 한없이 낮아진다.
2월 15일자 뉴스를 보니, 국민 3명 중 2명이 설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대신 가까운 해외나 국내 여행을 선택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명절이 충전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2030이 응답자의 50%가 넘는다. 명절이 추모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60~70대는 35%지만 20대는 10%도 안 된다고 한다. 명절이면 부정적인 뉘앙스로 세대 격차에 대한 통계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유교에서는 후손이 차례나 제사를 지내면 음식을 흠향한다고 한다. 조상신이라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조상신이 와서 흠향하고 간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이렇게 명절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는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과 조상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문화 유전자에 유교 사상이 남아있다고 해도 그것을 실천할 여건이나 믿음이 없으면 명절 문화도 바뀌어 갈 수밖에 없다.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를 기리기 위해 조상신의 흠향을 믿고 전통 의례를 수행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가정마다 혹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조선시대조차도 ‘가가례’라고 해서 집집마다 예가 달랐다. 박제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후손들의 화목과도 거리가 멀다. 전통 의례를 미풍양속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이 사라진다고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 행복한 의미 있는 의례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유영희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