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아’라니, 무슨 꽃 이름 같기도 하고, 나무 이름 같기도 한 이 이름의 정체는 바로 인간의 의식이다. 의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느낌을 갖거나 심지어 엉뚱한 다른 물건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은 이 ‘퀄리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퀄리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며칠 전 읽은 뇌과학 교양서, ‘인간을 읽어내는 뇌과학’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에서는 뇌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할 만한 주제를 골고루 설명하고 있다. 퀄리아도 그 중 하나다.
정신이나 의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학자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현대 뇌과학 분야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자르려야 자를 수 없는 ‘퀄리아’에 대한 연구 성과가 꽤 쌓여있다고 한다. 퀄리아 자체는 관찰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의 행동만으로도 그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세상과 접촉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정을 갖는 모든 것이 퀄리아를 형성한다. 색깔은 물질의 속성이 아니라 뇌가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으로 주관적 느낌일 뿐이다. 예를 들어 같은 빨간 사과를 보지만 빨강은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하고 사과의 맛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한다. 퀄리아는 감각마다 존재하는데, 시각 퀄리아, 후각 퀄리아, 청각 퀄리아, 미각 퀄리아, 촉각 퀄리아 등이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각은 실체가 아니라 나의 주관이 만들어낸 환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퀄리아를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퀄리아라는 것이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잘 감각하기 위해 좀 더 느리게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학부 전공은 심리학이니 빼고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대학원 진학부터 따지면 인문학에 종사한 지 40년이 지났다. 한 번도 휴학한 적 없고 다른 일에 전업으로 종사한 적이 없으니 아무리 게을렀다고 해도 이만하면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고전 평론가가 6, 70대에 들어서서 공허에서 벗어나려면 인문학 공부로 지혜와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던 일이 생각난다.
예를 들어 ‘논어’를 읽을 때는 유학이 세상 최고이고, ‘도덕경’을 읽을 때는 도가 사상이 최선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중인격적인 혼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런 지식이 그 사람의 허무를 어떻게 극복하게 해줄까 하는 의문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감각하는 모든 것, 모든 느낌과 생각이 퀄리아라는 주관적 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라니, 그렇다면 고통이나 통증 역시 퀄리아일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객관적 실체가 아니게 된다. 그것을 알면 인생의 짐이 가벼워지고 세상의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이런 퀄리아 이야기를 듣자노라니, 삶의 공허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문제의 답까지 얻은 기분이 든다. 그것도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덤으로 말이다.
/유영희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