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 작가
그동안 주먹구구로 살아온 것을 반성하며 몇 달 전부터 가계부를 착실히 쓰고 있다. 그런데 앱에 기록해서 그런지 갑자기 유튜브에서 소비 생활 관련 영상이 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말고 해야 한다는 영상이 뜨더니, 요즘에는 무조건 아끼기부터 해야 한다는 영상이 뜬다.그러나 어디까지가 자기 계발인지 경계를 정하기가 어려워 투자인지 과소비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고, 무조건 아끼다 보면 궁상맞거나 인색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인 데다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소비 잘하기가 쉽지 않다. 얼핏 보면 두 가지 주장이 달라 보이지만,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든 알뜰 소비든 모두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래서 조회수가 엄청난가 보다.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농부 빠홈이 땅 욕심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빠홈은 바쉬끼르라는 곳에 아주 싸고 좋은 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간다. 바쉬끼르의 이장이 하루치 걸은 땅값이 1천 루블뿐이라고 하자, 빠홈은 무리하게 걸어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죽는다.그러나 욕망 자체를 부정적으로 그린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빠홈은 가난하기는 해도 일확천금에는 관심 없는 소박한 사람이었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지주에게 수확을 다 빼앗기는 러시아 농노가 땅 욕심 좀 냈기로서니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니 오히려 빠홈에게 동정이 갈 지경인데다, 설사 빠홈이 많은 땅을 탐냈다고 해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적은 땅으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많은 땅을 원할 수도, 필요할 수도 있다.빠홈의 문제는 오직 하나, 자기가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뿐이다. 다만, 그 땅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로 걸어야 하는지, 중간에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가계부를 쓰다 보니, 내게 필요한 땅은 얼마만큼인지, 어떤 속도로 걸어야 하는지,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보인다.어디 가계부뿐이야? 사실은 모든 쓰기가 다 그렇다. 가계부 쓰듯이 그저 있는 그대로 쓰면 보이는 것이 많다. 기록학 전문가 김익한 교수가 알려주는 글쓰기 방법 하나는, 들은 것, 본 것, 맛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쓰라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방법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반성하는 글쓰기는 죄책감만 늘고 자기 비하에 빠지니, 그것만 경계하면 된다.삶이 팍팍할수록 욕심만 크면 불행해진다. 나에게 맞게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내 삶의 지향과 규모를 잘 알기 위해서는 가계부든 일기든 10분 쓰기든 무엇이든 쓰는 것이 좋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로 10분만 글을 써도 문제가 보이고 답이 보인다. 쓸수록 삶이 또렷해진다.
202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