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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언어폭력 ‘정도’라니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초등학교 때 장면 하나, 하늘은 파랗고, 길 양옆에는 벼가 넘실거리는 초가을, 경운기가 다닐 만한 흙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꼬마 서너 명이 ‘돼지야’ 하고 소리쳤다. 나를 놀리는 말이다. 그날 나는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장면 둘, 마루 끝에 앉아 있는 나를 가리키며 방에서 엄마가 이웃집 아줌마에게 ‘덩치는 인왕산만 한 것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나는 마루 밑으로 사라지고 싶었다.이 두 장면의 ‘맥락’을 보자면,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 꼬마들의 놀림은 위협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장난이었고, 엄마의 인왕산 비유는 나의 심한 낯가림을 걱정하면서 나온 말이라 학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돼지’와 ‘인왕산’이라는 단어에 심하게 위축되고 이후 성격 형성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나의 ‘기질’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언어폭력이라고 죄를 묻기는 어렵다.그러나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경우는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순신의 아들은, 내가 길에서 우연히 몇 번 만난 꼬마가 아니라, 기숙사에서 피해자와 같은 방을 쓰는 동급생이었고, 아버지의 권력을 자랑하며 피해자에게 ‘좌파 빨갱이’, ‘제주도에서 온 돼지’라고 했다. 8개월 이상 지속된 혐오 표현은, 피해자가 호소한 고통을 고려했을 때 명백한 언어폭력이다.그런데 그 부모는 학교의 전학 조치에 불복해서 무죄를 주장하며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가서 가해 학생은 1년 이상 학교에 더 있었다. 피해자가 자살 시도까지 하고 학업을 포기했는데도 변호인 측은 ‘맥락’을 봐야 한다거나, 피해자의 ‘기질’의 문제로 몰아갔다고 한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 중에 특히 내 눈에 들어온 부분은 ‘언어폭력 정도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일반적으로 피해 학생과 같은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서 인간은 ‘말’로 서로를 조절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한 실험을 보면, 실험 참가자들에게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의 위험 상황을 단순히 말해주기만 했는데도 심박수, 호흡, 신진대사, 면역체계, 호르몬은 물론이고, 체내 여러 가지를 제어하는 뇌 시스템의 활동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은 혐오스러운 말을 들으면 뇌는 위험을 예측하여 다량의 호르몬을 혈류로 보내어 생존에 필요한 신체 예산을 탕진하게 된다.이렇게 ‘말’은 인체를 조절할 수 있어서 몇 달 이상 지속적이고 강력한 언어폭력은 만성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뇌를 갉아먹는다고 한다. ‘언어폭력 정도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이런 피해를 입을 수 없다’가 아니라 ‘언어폭력만으로도 누구나 피해 학생과 같은 피해를 충분히 입을 수 있다.’그러나 피곤할 때 한마디 격려의 말이 마음을 진정시키듯이, 배럿은 말로 망가진 뇌는 말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가까운 이의 따듯한 말도 피해자를 도울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피해자의 회복에 제일 중요하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2023-03-05

독서율 높이는 법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올해 EBS에서는 우리나라가 문해력 등 사회적 소통 능력이 부족한 이유가 독서율이 낮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역사를 바꾼 책’을 선정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독서율이란, 15세 이상 중에서 일반도서를 일 년간 한 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이다. 교과서, 학습 참고서, 수험서나 잡지와 만화는 제외되지만, 단행본으로 발행된 것이라면 그림책이든 동화든 소설이든 상관없다. 웹소설도 도서에 포함된다.그러고 보니, 독서와 관련된 에피소드 두 개가 생각난다. 하나는, 동네에서 20여 년째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초창기 독서 모임에 참여하던 한 지인이 서울대 나온 자기 이웃에게 권했더니 책이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손사래를 치더라는 일화이다. 지금 생각하니 거절하는 핑계였나 싶기도 한데, 그때는 명문대 졸업생이 얼마나 책에 질렸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놀랐다.다른 하나는 작은애 이야기다. 작은애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읽은 책은, 절반은 그림으로 된 ‘구렁덩덩 신선비’와 ‘나무꾼과 선녀’ 딱 두 권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서 폭발적으로 독서량이 늘더니 지금도 직장에서 독서 동아리에 들어 책을 읽고 있다. 학년에 맞는 책 읽어야 한다고 강요받지도 않고, 자기가 선택한 책을 책장이 떨어질 정도로 읽은 것이 즐거운 기억으로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부터 종이책 독서율은 40%이고, 전자책, 오디오북을 포함한 종합 독서율은 47.5%라고 한다. 성인의 절반 이상이 어떤 형태의 책이든 1년에 단 한 권도 안 읽은 셈이다. 독서율 기준이 이렇게 낮은 것을 보면, 독서율이 낮다는 것은 문해력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책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실제로 2018 책의 해 기념으로 진행된 ‘독자 개발 연구’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강압적인 독서로 인한 독서 혐오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각종 기관에서 정해주는 추천 도서로 학습용 독서를 하다 보니 독서가 즐거운 활동이라는 경험이 부족하고, 그래서 성인이 되면 독서에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즐거운 독서 체험은 독서율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핀란드가 세계에서 독서율이 가장 높은 이유도 어렸을 때부터 즐거운 독서 체험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2018년 국제독서콘퍼런스 영상을 보니, 핀란드에서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독서 도우미 개를 이용하여 어린이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단다. 유치원과 학교는 도서관과 연계하여 독서를 촉진하며, 도서관은 지하철 역 근처에 있어 이용 편의성도 높다. 이런 제도 속에서 즐거운 독서가 생활화되다 보니, 자기가 원하는 책을 스스로 발견해나가게 되고 나이가 들어도 책을 찾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19세 이상의 독서율을 높이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즐거운 독서 경험을 많이 하게 하는 것,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2023-02-26

역사를 바꾼 책이 독서율을 높일까?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4년 전쯤, 중장년을 위한 사회 교육 기관에서 강의할 때 대학원 수료 학력 수강생의 포부를 들은 적이 있다. 연세가 60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죽기 전에 서울대 추천 도서 100권을 다 읽고 싶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서울대에서 추천했으니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그런데 며칠 전 EBS에서는 역사를 바꾼 책 100권을 선정하여 전 국민에게 홍보할 예정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 발표를 보니, 그때 수강생도 생각나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해서 서울대 목록과 비교해보았다. 과연 서울대 100권 중에는 과학책이 10권인데 비해 EBS의 과학책은 19권이었다. 두 기관의 추천 목적도 달랐다. 서울대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서울대 목록에서는 “고전이란 모름지기 인류의 지혜가 집약된 보고이므로 고전에 대한 독서를 통해 판단력과 사고력을 함양하는 한편 성숙한 지성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반면, EBS는 독서율 저하 때문에 문해력이 부족하고 개인 역량이 떨어지며 사회적 소통 능력이 낮다고 보고,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역사를 바꾼 책으로 독서율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작년에 방송된 ‘당신의 문해력+’13부작에서 나온 문해력 문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 방송에서는 업무용 이메일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휘력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등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보여주었다.그런데 역사를 바꾼 책 선정 기준이 학제 간 의미를 중시하고 특히 과학책의 비중이 높다면서 이전의 다른 목록과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해도, 서울대 목록과 25권이 겹치고 나머지 75권도 서울대 목록과 난이도는 비슷하다. 철학 비중이 높아서 그런지 오히려 더 어려워 보인다. 칸트의 저작 중 서울대에는 ‘실천이성비판’한 권이 있는데 비해, EBS에는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 비판’, 두 권이 있다. 칸트의 저작이 왜 두 권이나 들어갔는지도 의아하고,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 비판’이 ‘실천이성비판’보다 당대 사조를 바꾸는 데 더 기여했다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역사를 바꾼’을 앞세운 것을 보면, 아무래도 EBS에서 기대하는 문해력 수준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과 판단력까지 포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그냥 읽기만 해서는 높아지지 않는다. ‘이 말이 맞는 말인가?’, ‘논리적으로 문제는 없나?’,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 숙고하며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핵심 메시지를 전문가가 설명하는 홍보 영상까지 만든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질문하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이렇게 숙고할 기회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어떤 목적을 위해 도서를 선정할 때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고학력자의 교양 쌓기 목록 같은 고전 읽기 운동으로 독서 진흥이 잘 될지, 한 방향 홍보 영상이 문해력 향상과 사회적 소통 능력 제고라는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2023-02-19

행복한 청소부의 노동 시간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율곡로, 퇴계로, 세종로 등 서울에는 위인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독일도 그런가 보다. 독일 작가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에 나오는 청소부는 예술가 이름을 딴 거리에서 표지판을 닦는 사람이다. 그래서 표지판이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토마스 만 광장 등 예술가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어느 날 청소부는 꼬마가 하는 말을 듣고 표지판의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 후 5시에 퇴근하면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에 다니면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는다. 나중에는 대학에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청소부는 청소부로서의 삶이 너무나 행복해서 그 요청을 거절하고 변함없이 표지판을 닦았다고 한다.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른에게 시사하는 바는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부가 이렇게 행복한 것은 청소부가 5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적정한 노동과 퇴근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참고로, 2021년 현재 독일의 연간 근로 시간은 1천349시간으로 한국보다 566시간이 적다.시간적 여유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례는 네덜란드다.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 ‘물 건너온 아빠들’에서 네덜란드 사람 톨벤이 25개월 된 딸을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딸의 손놀림이 느려도 아빠가 전혀 재촉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주자, 패널들이 모두 톨벤의 여유에 감탄한다. 이런 육아법 때문인지 네덜란드는 아이 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고 한다. 반면, 한국 아이의 행복지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OECD 국가 중 꼴찌를 맴돈다. 톨벤은, 이렇게 네덜란드 부모들이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이유는 근로 시간이 적고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평균 노동 시간은 주 28~33시간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네덜란드는 이런 제도를 1980년대부터 실시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우리 정부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주 12시간까지만 연장 근로를 허용하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제대로 실시한 지 2년이 안 되었는데, 올해부터 정부는 연장 근로 방식을 월 단위나 분기, 반년, 1년 등으로 다양하게 적용하여 최대 69시간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2021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 시간은 1천915시간으로, 지난 26년간 멕시코의 2천128시간에 이어 2위를 고수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5위로 밀려났지만, 근로 시간이 개선된 것은 아니고 한국보다 근로 시간이 많은 페루,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가 OECD에 가입했기 때문이다.작년 10월, SPC 계열사 공장의 여성 노동자 사망은 연장 근로로 인한 과로 때문이었다. 2016년 IT업계 노동자의 연이은 자살도 과로 때문이었다. 어른의 연장 근로는 아이의 행복은 물론, 한 가정의 행복을 결정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행복한 청소부’는 책에나 있다고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 행복한 청소부는 현실에 있어야 한다.

2023-02-12

과소비인가 투자인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친구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멕시코 여행 중이던 어느 가족이 겪은 일이라고 한다. 그 가족이 머물던 옆집에서 냉장고가 내려오기에 이사 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행비를 마련하려고 냉장고를 파는 중이었다고 한다. 돌아와서 냉장고 없이 어찌 사느냐고 물으니, 그건 그때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단다. 정말 극단적인 사례인 데다 멕시코라는 문화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보다 생각하다가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플렉스 문화를 생각하니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플렉스 문화의 한가운데 있는 세대는 단연코 MZ 세대이다. MZ 세대의 사전적 의미는 1980년부터 2004년까지 출생한 사람이지만, 대체로 20·30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에 인증샷이 유행하면서 플렉스 문화도 계속 확장되는 듯하다.청년들의 성형수술은 이제 당연한 통과의례가 되었고, 이들의 명품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2022년 명품 구입액은 1인당 약 40만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는데, 젊은 층인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고가품 소비에 나선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의 전문가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탈출심리가 작용했다거나, 집 구매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자기 보상 심리라는 등의 분석을 내놓았다. 다른 쪽에서는 청년 빈곤, 청년 부채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라, 이런 청년의 소비 행태를 과소비라고 보고 비판하고 있다.그런데 지난달 어느 신문에 MZ들의 과소비는 투자라고 볼 수 있다는 칼럼이 실렸는데 이에 동의하는 청년 당사자의 댓글도 달리고 여기저기 공유되기도 했다. 이 칼럼의 요지는, 네트워크 자본주의 시대에는 가방끈이나 스펙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비공식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인적 자본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청년들의 과소비는 인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투자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2년 전 중국에서도 청년의 과소비를 비판하는 기사에 더 나은 경험과 품위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의견이 이어졌다.한국의 경우, 청년 부채의 가장 큰 원인은 주택 구입 때문이라고 하니 부채와 과소비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한편, 19~34세의 83%가 연봉 4천만원 이하라는 작년의 연구보고서를 참고하면, 어떤 MZ들이 씀씀이가 큰 것은 경제 성장 시기에 성공한 그들 부모 덕일지도 모른다.겉만 보고 과소비와 투자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같은 크루즈 여행이라도 누구에게는 소비고, 누구에게는 과소비고, 또 누군가에게는 투자이다. 자세한 내용도 모르고 MZ 세대의 소비 방식을 과소비라고 폄하할 것도 아니고, 인적 자본 형성을 위한 투자라며 안쓰러워할 일도 아니다. 이제 MZ에 대한 어설픈 뇌피셜 평가는 그만하고, 실증적인 조사와 연구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MZ가 만들어갈 미래를 위해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

2023-02-05

장미는 누가 키우나?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최근 지인의 친구가 시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시를 써서는 밥벌이가 안 되어 부동산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며칠 지나지 않아 SNS에서 황인숙 시인이 해방촌 옥탑방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촌은 코로나19가 돌기 전, 어느 서점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하느라 간 적이 있는데, 길도 좁고 꼬불꼬불한데다 가파르기까지 해서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황인숙은 1984년 등단한 이래 큰 문학상도 여러 번 받고 작년에 내놓은 ‘내 삶의 예쁜 종아리’까지 8권의 시집과 9권의 산문집을 낸 중견 작가이다. 2010년 모 잡지사에서 인터뷰한 기사에도 해방촌 옥탑방에서 산다고 했던데, 부동산과 돈을 좇아 사는 세상에서 시인답다 싶은 숙연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몇 년 전,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이 자신의 생활고를 SNS에 알려서 뉴스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두 시인의 삶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두 시인의 삶이 시인 모두의 삶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도 생활이 어려운데, 갓 등단한 문인이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지인의 친구가 부동산 공부로 방향을 바꿨다는 결정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빵뿐만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 ‘빵과 장미’라는 표현은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여성 노동자의 파업 투쟁에서 시작되었다. 뒤이어 여성 참정권 운동가 헬렌 토드가 ‘집과 안식처와 안전이라는 인생의 빵과 음악과 교육과 자연과 책이라는 인생의 장미’를 모든 사람이 누리기를 소망하는 글을 잡지에 쓰고,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도 ‘빵과 장미’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빵과 장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수 요소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이렇게 인생에는 빵과 장미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빵을 위해 사는 사람은 대부분 보상을 잘 받지만, 장미를 키우는 일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시’라는 장미를 키우는 사람은 더 취약하다. 시는 그냥 감상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고뇌 끝에 나온 시의 전문이 금세 인터넷에 넘쳐흐르니, 시집은 팔리지 않고 시인의 삶은 더 궁핍해진다. 예전에 어느 사이트에서 시인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배열되어 수백 편의 시 전문이 공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해도 되나 걱정한 적이 있다.그나마 요즘에는 문인을 포함해서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이 조금은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저작권을 보호해서 저자 허락 없이는 전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지 않게 해야 한다. 더불어, ‘시’라는 장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 시집도 많이 팔리고 시 읽는 모임도 많아지면 좋겠다. 해방촌의 그 서점처럼 시인들과 대화하는 자리도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시인들이 작은 집이나마 월세 걱정 안 하고 장미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2023-01-29

가난해져도 우아하게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평생 정규직이었던 적은 없어서 월급을 받아본 적도 없고, 재테크에 눈이 밝은 것도 아니어서 근로 소득으로만 살아왔으나,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그럭저럭 소득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씩 강의가 줄기 시작하더니 3년 전부터는 코로나까지 겹쳐 강의가 더 줄었다. 그렇다고 수입이 괜찮았을 때만큼 일할 자신도 기회도 없으니 이제는 이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역시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한 모양이다. 작가는 기자로 일하다가 해고된 후 전업 작가로 살아가면서 적은 돈으로 우아하게 사는 법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그는 절약을 몸소 실천한 부모님의 모습에서 실용성뿐 아니라 우아함을 발견하고 현대 소비문화를 비판하기에 이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은 돈으로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하다.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에서 정한 기준에 연연하다 보면, 항상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알면 사회적 인정 여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면 큰돈 없이도 자신의 멋을 누릴 수 있다. 폰 쇤부르크 역시 진정한 가난이란 물질적 결핍이라기보다는, 건강이나 아름다움, 부유함을 좇으면서 그것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러니 내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작가가 생각하듯이 값비싼 헬스클럽에서 화면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을 경멸할 생각은 없다. 부자의 삶은 부자의 삶이고 나의 삶은 나의 삶일 뿐이다.작가의 관점에 가장 많이 동의하는 부분은 집에 대한 생각이다. 집이란 손님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아름다워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런던이나 파리, 빈 같은 도시에서는 집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스파게티뿐일지라도 친구들 몇 명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단다. 음식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매개일 뿐, 음식이 조촐하든지 화려하든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고성능 음향기기나 대형 텔레비전, 디자이너 가구가 있다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것은 아니라면서 친구들이 모여드는 집을 가진 사람, 가슴 답답한 비 오는 날에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이 부유하다고 한다.나 역시 수입이 줄다 보니, 소비에도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다. 세워두기만 하던 승용차도 팔았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할 상황을 대비해서 책도 계속 없애나가고 있다. 책으로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지금처럼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김밥과 소금빵을 먹는 공간이 내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굳이 숲을 고집하지도 않으니 어디로 이사 가더라도 동네 골목을 더 많이 걸을 것이다. 특히 은퇴하면 대부분 현업에 있을 때보다 줄어든 돈으로 살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상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활 양식을 자신의 척도로 삼지 않고’, ‘불필요한 일을 피하고 정말로 중요한 일을 존중’하다 보면, 참된 만족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노년에 우아해지는 지름길일 터이다.

2023-01-15

파레시아를 위하여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어느 날부터인가 임금님 귀가 점점 커져서 당나귀 귀만큼 길어졌다. 이 사실은 모자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임금이 비밀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장인은 죽기 전 도림사 대나무 숲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큰 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 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대나무를 자르고 산수유를 심었지만, 산수유가 자라면 그 소리가 여전히 들렸다.‘삼국유사’ 경문왕 조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가 원조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모자 장인이 아니라 이발사가 소문을 퍼트린다. 미다스 왕에게 불만을 품은 아폴론이 미다스 왕의 귀를 잡아당겨 귀가 길어졌는데, 이발사에게만은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유럽과 페르시아 지역에 퍼지고 신라에까지 전해졌다고 하니,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새해가 되면서 ‘파레시아’라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하다’,‘진실을 말하다’라는 그리스어이다. 모자 장인이나 이발사처럼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탈이 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자 장인이 대나무 숲에 가서 땅을 파고 외친 것은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에서조차도 기득권을 가진 집단과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특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엄청난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이혼율이 높아졌다지만 아직도 공공연하게 말하기 힘든 분위기다. 혹시나 부당한 상황에 맞닥뜨릴까 자기 검열에 시달리는 예술가들도 많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질환이나 타고난 것까지 감추어야 하는 현실은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 방송에 나왔다가 동네에서 죄인 취급 당했다는 방송을 보았다. 이웃 중에는 자녀가 발달 장애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알세라 쉬쉬하며 자녀를 가정에 꽁꽁 감추고 사는 이도 있다. 성 소수자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그럼에도 용기 있게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파레시아’이다. 푸코는 파레시아를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이라고 한다. 어제 스피치 동호인 모임에 온 어느 참가자의 경험은 푸코의 말에 딱 맞는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47세라면서 아직 결혼을 못 했고 붕어빵을 팔며 원룸에 살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그런 상황을 감추느라 에너지를 다 썼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도 내 삶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밝히고 나니 그제서야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유머도 늘었다고 한다.이렇게 ‘다 말하는 것’은 자신을 자기답게 존재하게 해주고 남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준다. ‘다 말하기’ 위해서는 47세 참가자처럼 안전하게 들어주는 모임에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쓰기든 말하기든 올해는 자신과 동료를 믿고 세상에 진실을 표현하는 모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3-01-08

다른 사람 의자에 앉아 보세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대학원 은사님과 선배와 강릉 율곡연구원에서 열리는 학회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가 취소되었다. 율곡연구원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다리에 많이 무리가 될 것 같다고 하신다. 은사님이 몇 달 전 다리를 삐었는데 치료를 잘못해서 나들이 이틀 전까지 불편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왼쪽 발목에 문제가 있어 걷기 힘들 때가 여러 번 있었기에 다리가 아프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고 있다.새해가 밝았다. 들뜬 마음으로 의욕적인 한 해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힘겨운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비롯한 인권보장을 외치며 2021년 12월부터 서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에게도 새해는 희망보다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1년여간의 시위로 많은 서울 시민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데다 ‘지하철 탑승 시위 지속하면 더이상 관용이 어렵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단호한 태도 때문이다.장애인 예산 부족이 시민 잘못도 아닌데 시민이 불편을 왜 겪어야 하느냐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장애인 인권보장을 호소했어도 아무도 몰랐다가 지하철 시위를 해서야 정치인과 시민에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전장연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생각해보니, 지하철 계단에 종종 보이던 장애인용 리프트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어도 전장연의 시위가 있기 전까지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현재의 질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사람 중에 질서의 결함을 다른 사람보다 강하게 느끼거나 그 결함에 희생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오에 겐자부로의 스승으로 알려진 와타나베 가즈오 교수의 말이다. 누구에게는 당연하고 필요한 질서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서, 불관용을 벌하기 위해 불관용으로 맞서는 것을 ‘관용의 자살’이라고 한다. 전장연이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불관용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을 다시 불관용으로 맞서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사소한 장소들에서 모든 사람이 무사히 함께 살아가게 하는 대화의 연속이라는 와타나베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장대익은 ‘공감의 반경’에서 느낌을 중심으로 하는 엠퍼시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면서 사고를 통한 엠퍼시를 강조했지만, 사고를 통해 엠퍼시를 경험하기는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감정 경험이 너무 강렬하고 직접적이다 보니 자기 사고의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따져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내가 서 있는 자리를 유지하면서 남의 고통을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진정한 ‘엠퍼시(empathy)’를 갖기 위해서는 자기가 겪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의 의자에 앉아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 의자에 앉으면 내 자리에서 보던 것과 다른 것이 많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내게는 안 보이기도 한다. 새해에는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이 휠체어를 타고 하루라도 다녀보고 전장연과 대화하기를 바란다.

2023-01-01

옐로도 화이트도 블루도 아닌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애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지인이 그동안 자신의 성격 유형이 7번인 줄 알았다가 전문가 상담 결과 2번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지난 몇 년간 자신을 잘못 알았다는 자괴감이 크게 밀려왔다고 전해왔다. 애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 유형을 아홉 가지로 분류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이 활용되는 성격 검사 방법이다.애니어그램 강사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성격 유형 번호로 사람을 규정짓지 말라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나는 몇 번, 너는 몇 번 하면서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판단하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가끔 어떤 유형이 열등하거나 우월한 유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론에서 가장 성숙한 인격은 이 아홉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많은 명상 지도자들이 ‘자아’를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자아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굳이 불교의 ‘무아’를 들먹이지 않아도, 질문 몇 개만으로도 자아라는 나의 본질은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 우리가 ‘자아’의 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차라리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다면적이고, 그 다면성 하나하나도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논픽션 작가 브래디 미카코의 두 권짜리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일본인인 저자가 영국 사람과 결혼하여 영국에서 살면서 아들을 낳아 키우는 이야기이다. 제목은 혼혈인 중학생 아들이 백인이 주류 사회인 영국에서 자기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인종 차별 사건을 통해 겪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동양인으로 규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백인이 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동양인이기도 하고 백인이기도 한 자신의 상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약간 블루’라고 했다가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린’으로 바꾸는 모습 또한 정체성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가 아들의 변신을 응원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아들의 유연한 사고가 작가의 지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나희덕의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처음에는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가, 조금 후에는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 나는 그 나무를 보고 알았습니다. /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라고 한다. 처음에 시인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복숭아꽃들이 부담스러워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눈부실 만큼 다양한 복숭아나무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다.많은 사람이 ‘자아’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하나의 색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고, 다양한 인종, 취향, 삶의 방식 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다시 보면, 내 안에도 무수한 색이 있고, 세상 역시 그렇다. 그 다양성은 삶을 눈부시게 만든다.

2022-12-25

뇌 말고 몸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한 달 전, 벼르고 벼르던 스탠딩 책상을 샀다. 최근 들어 30분만 앉아있어도 집중력이 떨어져서 까만 것은 글자고 하얀 것은 종이구나 하는 상태가 되고,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팠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큰마음 먹고 구매했는데, 서너 시간 지나도 멀쩡하다. 앉아있을 때는 허리가 불편하여 주의가 분산되는데, 서 있을 때는 덜 불편하니 작업 집중력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물론 깔창 있는 운동화를 신는다.애니 머피 폴의 책 ‘익스텐드 마인드’를 보니,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미국의 초등학교 교사도 학생들 책상을 스탠딩 책상으로 교체하고 수업 듣는 자세도 편하게 하고 움직일 수 있게 했더니 학생들이 더 집중하고 자신감 있고 생산적으로 변했다고 한다.앉아있는 것보다 서 있는 것만 작업에 효과적인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일하는 것도 집중력이 증가한다고 한다. 방사선 전문의 제프 피들러 박사는 매일 1만5천 개 사진을 앉은 자세로 검토하다가 사진을 대형 스크린에 띄워 놓고 그 앞에 트레드밀을 설치해서 걸으면서 사진을 보았더니 이상 징후를 더 잘 찾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서 있거나 걸을 때 작업 능률이 오르는 이유는 신체 활동을 할 때 우리의 시각이 더 예민해지기 때문이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에 한두 시간을 꼭 달린다고 하니, 운동을 한 후에도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제스처는 소통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설명하거나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제스처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말을 더 잘 이해하고, 제스처가 있을 때 한 말을 더 기억하기도 한다. 밀턴 에릭슨이라는 심리 상담사는 내담자의 동작을 은연중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내담자와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상담이 잘되었다고 한다.자연의 다양한 색과 형태 역시 창의성에 자극을 준다. 저자는 예술가 잭슨 폴록이 롱아일랜드에 갔다가 위안과 자극을 동시에 받고 바로 그 지역으로 이사 가서 걸작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소개해준다. 자연은 우리의 인지 부담을 줄여주어 창의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공간 역시 창의성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연극 수업을 받으러 갈 때 매시간 책상과 의자 배치가 달라서 수업에 관심이 더 생기고 다음 수업도 기대하게 되었던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다. 국립도서관에서 한두 시간만 있어도 두통을 느꼈는데, 도서관 리모델링 후에는 서너 시간 있어도 컨디션이 좋았던 것 역시 이런 맥락일 것이다.생각은 뇌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움직여야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하는 저자의 말을 듣다 보니,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온종일 교실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우리나라 수험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교육 방식도 말로만 하거나 기껏해야 영상 자료를 활용할 뿐이다. 교실 모양도 천편일률적이다. 손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많이 하고, 공간에도 다양하게 변화를 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한창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학생을 움직이게 하라.

2022-12-18

릴리푸트읍이 그렇게 나쁩니까?

유영희 작가 지금도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죽었다는 뉴스가 들리고 있다. 조사하면 언제나 노동자가 무리한 작업 상황에서 일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렇게 죽음이 이어져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가 2007년에 한 인터뷰를 보면, 1978년에 나온 이 책이 30년이 지나도록 읽힐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러고도 15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이 책은 유효한 것 같다.대강의 내용은, 아버지, 엄마, 영수, 영호, 영희 가족이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은강이라는 도시에 정착하여 저임금 노동자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결국 난장이 아버지는 삶을 스스로 마친다. 이 소설집에는 모두 열두 작품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에서 영희는 ‘릴리푸트읍’을 말하며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짓는다. ‘릴리푸트읍’은 가상의 국제 난장이 마을이다.“난장이들에게 릴리푸트읍처럼 안전한 곳은 없다. 집과 가구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용품의 크기가 난장이들에게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는 난장이의 생활을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억압·공포·불공평·폭력도 없다. …. 릴리푸트읍에는 전제자가 없다. 큰 기업도 없고, 공장도 없고, 경영자도 없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난장이들은 세계를 자기들에게 맞도록 축소시켰다. …. 독자적인 마을을 열망한 작은 힘들이 난장이 마을을 세웠다.”이 문단은 10여 년 전 어느 대학의 논술 모의고사에 나온 부분이기도 하다. 출제자는 릴리푸트읍을 비판하라고 했고, 예시 답안은 마을이 난장이들에게만 맞추어져 있는 획일적인 곳이어서 난장이가 아닌 사람들은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명분으로 사회적 약자가 자기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이렇게 뒤틀다니, 아무리 사고력을 시험하는 논술 문제라고 하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최근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을 보니 조세희의 이 작품이 다시 떠오른다. 1장 ‘좋은 불평등과 나쁜 평등’은, 평등은 좋고 불평등은 나쁘다는 기존 관념을 깨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저자는, 불평등이 심화된 것은 1994년부터인데, 이때부터 국내 총생산이 높아지고 대기업도 생겨서 덩달아 노동자의 임금도 올랐다고 하면서, 이것을 ‘좋은 불평등’이라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불평등해도 모든 국민이 가지게 될 파이가 커지면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릴리푸트읍에는 경제성장을 추동할 수 있는 강력한 전제자도 없고, 성장의 동력이 되는 대기업도 없다. 모의 논술 출제자에 의하면 릴리푸트읍은 획일적이어서 문제였는데, 최병천에 의하면 가난해서도 문제가 된다. 이렇게 릴리푸트읍을 나쁘다고 해도 괜찮은 것일까?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 모두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천부인권을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는 내용이 없다. 장애인과 임금 노동자에게도 천부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기가 점점 더 힘겨워지는 것 같다.

2022-12-11

대표라는 무게

유영희작가 2022년은 참 힘 빠지는 한 해였다. 국정 지지도를 회복하지 못하는 집권 여당은 물론,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 거대 야당의 행태에 국민의 한숨은 날로 커지고 있다.집값은 좀 내려간 듯하지만 거래 절벽으로 큰 효과는 없는 상태다. 고물가 때문에 실질 소득은 2.8% 줄고, 하위 20% 가구는 명목 소득마저 줄어들어 빈부 격차는 더 커졌다.이렇게 우울한 한 해를 보내던 우리 국민에게 12월 3일 새벽 울려 퍼진 대표팀의 월드컵 16강 진출 소식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우리 팀이 16강에 진출할 확률은 9%였고, 32강 진출도 어마어마한 성과였다고 하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이 포르투갈에게 먼저 1점을 내주었을 때 선수들이 얼마나 절망했을까? 우리가 1점을 얻어 추가 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의 선수들의 긴장감 역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 선수 7명에게 둘러싸인 손흥민이 가랑이 사이로 환상적인 패스를 하고, 열심히 공을 따라온 황희찬이 귀신같이 이 공을 잡아채어 골을 넣었으니, 소설을 쓴대도 이런 역전극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가 나오기까지 5분은 선수들에게 숨 막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무엇보다 이 역전 드라마가 더 감동적인 이유는 손흥민과 황희찬의 부상 투혼 때문이다. 손흥민은 바로 한 달 전 챔피언스리그 경기 중 부상으로 안와골절 수술을 받아 마스크를 끼고 뛰고 있었고, 역전 골을 넣은 황희찬 역시 허벅지 부상으로 1, 2차 전에는 출전도 하지 못하고 3차 전에서도 후반전에서야 뛸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다.이런 부상에도 이들을 열심히 뛰게 한 원동력은 1억6천만 원의 포상금이 아니다.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9%라는, 그 작은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너무나 많이 노력했고, 부담 속에서 성장해왔다고 하면서, 골 넣은 것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16강 진출이 기쁘다고 한다. 16강 진출이 온 국민의 열망이라는 것을 선수들은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개인의 명예나 부는 그 책임을 다했을 때 뒤따라오는 포상일 뿐이다.그런데 정작 안전과 생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을 약속하여 선출되었건만, 당선된 후에는 공복으로서의 책임은 뒷전이고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 10·29 참사만 봐도 일선에서 책임져야 하는 용산구청장은 거짓말까지 하며 발뺌하기 바쁘고, 수해로 일가족이 참사한 지역에 간 정치인은 비가 와야 사진이 잘 나온다는 망언까지 서슴없이 한다.요즘 내가 사는 지역의 기초 의회 정례회를 참관하는 중이다. 의원들이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오거나, 공무원의 답을 듣지도 않고 윽박지르거나, 심지어 결석하는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의원들이 여럿 보였다. 중앙정치인들처럼 이들에게도 대표라는 무게는 가볍기 그지없었다. 혹시 우리가 스포츠에 거는 기대만큼 정치에 관심 갖지 않아서 이들에게 대표라는 무게가 이토록 가벼운 것일까?

2022-12-04

이솝 우화를 고쳐 쓰다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이솝의 우화를 읽다 보면, 세상 물정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얻는 때가 많다. 답답한 도덕 교과서도 아니어서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우화는 답답하면서도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한번은 늑대들과 개들이 서로 적대했다. 개들은 그리스 개를 자신들의 장군으로 뽑았다. 그리스 개는 늑대들이 심하게 위협해 오는 데도 전투를 시작하기를 망설였다. “너희는 내가 왜 망설이는지 알겠나? 늑대들은 종족도 같고 색깔도 같지만, 우리 군사는 관습도 다르고 색깔도 달라서 조화롭지 못하니, 이렇게 모든 점에서 다른 자들을 내가 어떻게 싸움터로 인도할 수 있겠나?”이것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정본 이솝 우화’의 ‘늑대와 개들의 싸움’ 이야기를 약간 줄인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이솝 우화’는 본문과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교훈은 이솝의 작품이 아니고, 이솝이 살았던 시대보다 최소 200년이 지난 헬레니즘 시대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우화의 의미를 이해할 때 교훈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교훈이 다 옳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군대에게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의지와 생각의 통일이라는 것이다’라는 이 우화의 교훈 역시 지금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진다.개들이 그리스 개를 장군으로 뽑았다는 것은 그만큼 의견이 통일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개들의 출신과 크기와 털 색깔이 늑대와의 싸움에 불리하다는 증거도 없고, 설사 불리하다 해도 그것을 이유로 싸움터에 나가기를 망설인다는 것은 장군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장군이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머뭇거리면 개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장 하나 덧붙여서 이 우화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들은 늑대한테 다 잡아먹혔다’고.이제 이 우화의 교훈은 확실하게 ‘장군 한번 잘못 뽑으면 개들이 다 죽는다.’가 되어 버린다. 장군 하나 잘못 뽑은 대가가 너무 큰가? 그러나 지도자가 잘못해서 국민이 도탄에 빠진 일은 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그렇다면 좀 더 낙관적으로 고쳐 써 보면 어떨까? ‘개들은 그리스 개를 무리에서 영원히 추방하고 새 장군을 뽑았다. 새 장군은 개들의 출신, 크기, 털 색깔을 적절히 활용하여 각개전투 방식으로 늑대를 혼란에 빠트려 완벽하게 물리쳤다’고. 이솝이 아폴론 신전 사제의 탐욕을 고발해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이솝의 의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이렇게 ‘늑대와 개들의 싸움’을 읽으며 고쳐 쓰기를 하노라니, 슬그머니 요즘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사실을 보도한, 또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보도하지 않은 한 방송국을 악의적이라고 비난하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도 배제하고 도어스테핑까지 중단한 대통령실의 태도는 마치 개들 크기와 털 색깔이 다르다고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겠다는 그리스 개와 오묘하게 닮은 듯하다. 현실 고치기는 우화 고쳐 쓰듯 할 수 없으니, 맥없이 우화만 고쳐 쓰면서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2022-11-27

신중년의 커튼콜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조명이 켜지고 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라는 무대에 배우가 되어 섰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 출연하여 한 사람당 10여 분간 독백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이었다. 9주 동안 현역 극작가와 배우의 지도로 5060 여성들이 참여했는데, 다양한 표현 활동을 거친 후 마지막에는 자기가 직접 대본을 쓰고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은 모두 가족이나 지인 중심의 조촐한 무대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참가자가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이라 그런지 서로 지지해주면서 인생 2막을 위한 커튼콜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이 프로그램 신청 자격은 5060 신중년 여성이었다. 50세에서 64세까지를 신중년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신중년’이라는 2017년 일자리위원회에서 ‘신중년 인생3모작 기반구축 계획’을 마련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베이비부머 효과 등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체 인구에서 506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했기 때문이다.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신중년에게 가장 근본적인 당면 문제는 소득 감소이기는 하지만, 주변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으며 질 높은 여가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 역시 긴급한 문제다. 은퇴한 5060에게 주변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경제적인 문제도 어려워지고 공허감이 밀려오기 쉽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까지 겹치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신중년 여성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여성이기 때문에 받은 차별까지 더해지면 5060 여성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과 같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의미는 크다. 특히 이번처럼 자신의 이야기로 대본을 쓰고 직접 연기까지 하는 활동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같은 관심을 가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오랜 기간 묵혀온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때로는 새롭게 생긴 인생 과제에 대처하는 힘을 기르기도 한다.어떤 이는 돌아가신 엄마와 화해하고, 어떤 이는 가족에 갇혀 살던 지난 60년에서 독립할 것을 다짐했다. 어떤 이는 남과 다르게 살았던 자신이 잘못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난치병이 재발한 어떤 이는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깨달으며 더 의연해졌다. 어떤 이는, 그 어느 인생도 순탄하지 않았던 엄마와 자신과 딸, 누구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 삶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마음을 발견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남아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동지애를 느끼게 된 점도 뜻깊다.현재 기준으로 여성의 기대수명은 86.5세라고 하니, 5060 신중년 여성에게 남은 평균 시간은 최소 20년에서 36년이다. 신중년에게 이 시간은 연극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배우를 불러내는 커튼콜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중년의 시간이 의미 있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2-11-20

맨발로도 청춘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아니, 여기서 신발을 벗어요? 산을 그냥 다 맨발로 올라가요? 네, 다 맨발로 올라가는 거예요. 처음 맨발 등산을 제안한 한 사람만 이 상황을 알고 있었나 보다. 따라나선 네 명은 어리둥절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한 명 두 명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었다. 뒤이어 제안자가 신발 들고 다니기 불편하면 여기 벤치 아래 그냥 놔두고 가면 된다고 했지만, 네 명은 기어코 신발을 배낭에 넣었다.맨발 걷기라니, 살짝 긴장감이 느껴진다. 모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디뎠다. 머뭇머뭇하던 중 누군가 정상을 목표로 하지 말고 한 시간만 걷자고 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한다.이렇게 맨발로 줄지어 산에 오르니 남들이 보면 꽤 오래된 친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서로 이름도 잘 모르는 사이다. 이들은 오늘 60대를 위한 가치 있는 여행 방법을 교육하는 모임에서 한 사람의 제안이 옆 사람으로 꼬리를 물어 갑자기 함께하게 된 것이다. 60대라고 해도 모임 주제가 여행인 데다,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신청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적은 것 같다.그래도 처음 올라갈 때는 맨발 산행의 효과 같은 건강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맨발로 걸을 때는 터널 위는 안 되고 땅밑까지 다 흙으로 된 산을 걸어야 한단다.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맨발로 땅을 디디면 사람 몸의 양전하가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화되는 접지 효과로 건강이 좋아지는 것이란다.그러나 10m도 못 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도나도 인증샷을 찍자고 한다. 맨발을 한 발씩 내밀어 사진을 찍었다. 산에 다 올라가서는 나란히 서서 셀카도 찍었다. 이제 내려올 때 우리의 대화는 금세 정치, 결혼, 예능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우리 다섯 명이 찾은 D 산은 도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산이라 그런지 발바닥이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동창의 저서 ‘맨발로 걸어라’가 매스컴을 탄 후 이 산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산에서 매주 맨발 걷기 강좌도 진행되고 있었다. 맨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두고 간 신발이 제자리에 잘 있다. 옆에 다른 신발도 하나 놓여있다. 배낭이 없는 누군가가 두고 갔으리라. 한 시간 만에 신발을 신으니 신발이 이렇게 푹신했던가 부드러운 감촉에 감탄하면서도 맨발로 걸었던 80분이라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맨발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뜬금없이 최희준의 노래 ‘맨발의 청춘’이 생각났다. 노래에서 맨발은 길거리 청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의미하지만, 우리의 맨발에 그런 열정이 담겨 있을 리 없다. 행여 다칠까 조심조심 올라가느라 길을 잘 못 봐서 내려올 때는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우리가 맨발로 산행 한번 했다고 청춘 같은 건강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공동의 관심으로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활기를 회복했다는 기분이 든다. 시니어를 위한 문화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치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2022-11-13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고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10월 29일 서울 용산에서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정부는 발빠르게 여러 가지 수습책을 제시했다. 수습책에는 단어 사용을 제한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교통사고로 서너 명이 한꺼번에 죽어도 참사라고 하는데, 156명이 한 곳에서 갑자기 죽은 일에 참사를 쓰지 말고 사고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이런 정부가 정말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까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이태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변명처럼 보인다. 이태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을 정말 염려했다면, 맨해튼 테러가 아니라 9·11 테러라고 한 선례처럼, 이태원이라는 지명을 빼고 10·29라는 날짜를 써야 한다는 국어학자 신지영 교수의 지적은 백번 옳다. 많은 희생자를 내고 붕괴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는 새로 지으면 위험이 사라지지만, 이태원이라는 지역은 새로 만들 수 없으니 사건 이름에 지역을 넣은 것은 그 지역에 영원히 낙인을 찍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을 수도 있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자, 참사라고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한덕수 총리가 외신 기자 회견에서 이번 참사 원인이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의 부족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드론 등 디지털 역량을 개발하고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한 대목에서는 검고 끈적한 덩어리가 목을 누르는 것 같은 좌절감이 들었다.먼저 이번 10·29 참사가 디지털 역량 부족 때문이라는 분석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사건 발생 네 시간 전부터 신고 전화가 빗발쳤고,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당시 그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 시스템이 이미 지난 9월 1일 개발이 완료되어 있었다. 이 시스템은 서울시 여러 지역의 실시간 혼잡도를 5분마다 집계해서 바로 보여준다. 관심만 있다면 충분히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혼잡과 위험이 예상되는 그날 아무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임자의 안전불감증이 문제지, 디지털 역량이 부족해서, 드론이 없어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그러나 원인 분석과 대안의 부당함과 비현실성 때문에 좌절감이 든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를 힘주어 말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기막힌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당당함과 무감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죽다’나 ‘다치다’보다 ‘사망’이나 ‘부상’이라는 한자어만 써도 그것은 활자화된 표현이 되고 나의 삶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한자어조차 이렇게 생생함을 떨어뜨리는데, 영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이 참사의 책임은 기술에 전가되고 보호해야 할 시민은 관리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방법은 10·29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2022-11-06

청춘의 축제를 탓할 수는 없다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지난 토요일,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세 시에 잠이 깨어 비몽사몽 중에 휴대폰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안전 안내 문자가 8통이나 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찾아보니 서울 이태원에서 인파에 밀린 압사 사고 소식이 포털 첫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서 뉴스만 보았다. 뉴스를 새로 클릭할 때마다 사상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30일 오후 5시 현재 사망자는 153명이라고 하지만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뉴스에서는 사망자 소식과 함께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이 요란하다. 한국식 할로윈 축제가 얄팍한 상술과 결합하여 변종이 되었다며 이참에 무분별한 외래문화 수용을 점검하자는 비판론도 보인다. 실제로 젊은이들의 할로윈 축제가 무분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젊은이들의 빈약한 놀이 공간과 놀이 문화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기사도 있다.나 역시 한때는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도 걱정스럽게 여긴 적도 있다. 그러나 할로윈 축제가 외래 문화라고 해서, 또는 내가 관심 없다고 해서 그것을 즐기는 청춘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할로윈 축제가 상술과 결합했다고 비난하거나, 젊은이들의 문화가 빈약하다고 성토하는 것도 공허하다. 축제를 즐기는 데 국적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기도 하다.여기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 전날 금요일 같은 지역의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수천 명이 모였을 때 사람들이 인파에 떠밀려 쓰러진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마약과 성범죄만 대비했을 뿐 인파에 떠밀리는 압사 사고 대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러나 4m 골목에 10여만 명 인파가 순식간에 몰렸을 리는 없다. 미리 대책 회의를 하지 못했다고 해도 인파가 늘어나는 추이를 살펴보고 용산경찰서는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에서도 할 수 있는 사고 예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참사가 인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그렇다고 지금 책임만 묻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사후 수습과 재발 방지가 더 중요하다. 방금 페이스북에 올라온 생명안전시민넷의 성명서를 보니, 모두 당연한 말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내용이다. 그중에도 피해자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불확실한 정보가 확산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말에는 고개가 더욱 끄덕여진다.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언론의 책임도 중요하다. 이런 재난 상황에도 조회 수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취재를 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노출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한 지인은 트위터에서 사고 사진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세월호 사건으로 304명이 죽은 지 8년 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무지와 방심이 빚은 참사라는 어른도 있지만, 청춘의 축제를 탓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무지하고 방심해도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2022-10-30

쳐다본다는 것

유영희 작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쟁은 말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오늘 있었던 모임의 한 참가자는, 의사가 자신의 암 재발 소식을 알리면서 최대 5년 살 수 있을 거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더라며 웃었다. 그녀가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준비를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나 준비도 못 했는데 갑자기 죽음이 닥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죽은 이에게도 많은 회한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은 사람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다.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이 작품은 1938년 퓰리처 상 희곡 분야 수상작으로, 무대 감독이 해설자 역할을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잔잔하게 보여준다.극의 여자 주인공 에밀리는 출산하다 갑자기 죽게 된다. 공동묘지에는 죽은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묘지에 막 들어선 에밀리는, 먼저 죽은 이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해설자에게 전생으로 가고 싶다고 졸라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로 돌아가서 가족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금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는다. 엄마는 에밀리 생일이라고 구하기 어려운 선물도 준비해주었고, 아빠도 강연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에밀리의 생일을 축하했지만, 에밀리는 그들이 서로 쳐다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에밀리가 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데 왜 서로 쳐다보지 않느냐고 외치지만 소용이 없다.가족뿐 아니라 자신이 누리는 물건들이나 커피 한잔 하는 자신의 일상조차 제대로 느끼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너무나 아름다워 진가를 몰랐던 모든 사물에게 작별하며 에밀리는 이승을 완전히 떠난다.쳐다보기를 제대로 못 하는 가족이 에밀리 네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생일도 챙기고 여행도 하는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 뿐 정작 중요한 서로 쳐다보기는 못하는 가정이 많다. 작은 충격이라도 들어오면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아슬아슬한 가정도 많다.행복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맹목의 열정에 사로잡혀 언제나 분주하게 친구를 만나거나 재물을 모으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쳐다보기를 못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그런 성취 역시 허울만 좋은 가족처럼 덧없다.무대 감독은, 산다는 것은 무지의 구름 속을 헤매면서 괜히 주위 사람들 감정이나 짓밟고, 마치 백만 년이나 살 듯 시간을 낭비하고, 늘 이기적인 정열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면서, 인간과 항상 함께 하는 데도 인류가 까맣게 잊고 있는 영원한 무엇이 있다고 한다.“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에밀리의 이 물음은 우리가 죽음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이 무대 감독이 말한 영원한 그 무엇과 함께 하는 것이다.

2022-10-23

사랑의 범위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나는 점차로 프랑수아즈의 상냥함이나 뉘우침 또 여러 미덕들이 부엌 뒤채의 비극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친척을 제외하고는,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만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당한 불행을 신문에서 읽을 때면 눈물을 펑펑 흘리다가도, 그 불행의 대상이 다소나마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면 눈물이 금방 말라 버리는 것이었다. 부엌 하녀가 출산한 후 어느 날 밤, 심한 복통으로 고생하는 하녀의 신음 소리를 듣다 못한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 프랑수아즈를 깨웠지만, 프랑수아즈는 냉담하게 그 비명이 연극에 불과하며 주인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프랑수아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 ‘나’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이다. 프랑수아즈는 손자가 약한 감기라도 걸리면 한밤중에 길을 떠나 사십 리 길을 가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돌아올 정도로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신문에 나오는 불행한 사람에게도 동정심이 넘쳐흐르지만, 그 중간에 있는 자기 주변의 딱한 사람에게는 한치의 아량도 없다. 프랑수아즈는 부엌 하녀가 아스파라거스 냄새를 맡으면 천식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알고, 매일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만들게 해서 집을 떠나게 한다.이런 프랑수아즈의 행동을 마음 놓고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이 마음 한구석에 이런 마음을 감춰두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은 문제가 없지만,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후원금을 보내면서도 내 근처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은 외면하기 쉽다.불현듯 프랑수아즈가 떠오른 것은 며칠 전 SNS에서 본 지인의 고민을 읽고 나서다. 지인은 지역의 의정감시단 활동을 비롯하여 독거 노인 도배 사업과 같은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청년 주택 사업을 하며 지역 공동체 운동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다가 몇 년 전부터 지방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다.그런데 보증금 100만원을 3개월 후에 내겠다는 입주 희망자를 받아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며 SNS에 올린 그의 글을 본 것이 석 달 전이다. 자기를 찾아온 현금 100만원이 없는 40대 남자의 처지를 내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든 것이다. 많은 페친이 반대했지만 지인은 결국 방을 내주었는데, 이제 또 보증금을 3개월 후로 미루니, 그동안 월세는 잘 내서 수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황스럽다는 글을 며칠 전 올린 것이다.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딱한 처지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책임의 지속성과 광범위성 때문일 것이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눈물을 흘리거나 월 몇 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감당하기 어렵거나 철회하기 어려워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비슷한 고민이 있는 터라 자신도 보호하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불행에도 관심 갖는 현명한 공감법을 배우고 싶다.

2022-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