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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괄식을 쓰는가

등록일 2023-07-02 16:54 게재일 2023-07-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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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4년이 되어 가건만, 칼럼의 첫 번째 독자인 딸에게 아직도 핵심 문장이 맨 끝에 찔끔 나온다고 지적받는다. 어떤 때는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가, 어떤 때는 남의 말만 중언부언 인용하다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맨 끝 한 문장일 때도 있다. 미괄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능숙하지 못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두괄식과 미괄식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국어 지식이다. 두괄식은 논점이나 중요한 내용을 앞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미괄식은 핵심을 맨 뒤에 두거나 숨어 있다는 것, 두괄식은 직설적이고 간결한 반면, 미괄식은 간접적이고 복잡하다는 것, 두괄식은 정보 전달에 효과적이고 미괄식은 소설이나 시나리오 같은 장르에 적당하다는 것과 같은 사전적인 지식은 알고 있어도 글을 쓸 때는 제멋대로 흘러버린다.

왜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 돌아보면, 논문 쓰던 버릇이 너무 깊게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학술 논문은 미괄식이라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 마지막에 결론을 낸다. 그래서인지 학회에 가보면, 많은 교수가 발표 시간을 넘겨서 결국 결론을 서두르거나 말하지 못하고 끝낸다. 힘 있는 사람의 글이 길기 쉬운데, SNS조차도 문화 권력자들의 글은 길고 핵심은 맨 끝에 나온다.

그러나 이런 미괄식 전달방식은 디지털이라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뉴스 미디어 기업 ‘악시오스’ 창업자 짐 벤더하이 등 세 사람이 같이 쓴, ‘스마트 브레비티’를 보면, 현대인이 인터넷에서 콘텐츠 하나를 읽는 데 평균 26초 걸리고, 클릭한 것이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는 데는 0.017초 걸린다고 한다. 이들은 현대인들의 이런 읽기 습관을 고려하여, 독자가 200 단어만 읽는다면 200 단어가 그들이 읽어본 중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단어가 될 수 있게 전달하자고 한다. 이 책의 예시문을 보면 평소 우리가 얼마나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장황하게 말하고 쓰는지 반성하게 된다.

유튜브라는 매체 역시 환경 변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2022년 10월 ‘모바일인덱스’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81%인 4천183만 명이 유튜브 앱을 사용하며, 매월 32.9시간을 시청한다고 한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1분에 4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올라온다고 하니,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핵심을 짧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 고급 지식 콘텐츠라도 제한된 시간 안에서 짧고 굵게 보여주는 유튜버는 구독자가 많다.

나는 힘도 없고 문화 권력자도 아닌데 미숙한 미괄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미괄식 습관을 고치려고 일부러 신문 기사의 맨 앞에 나오는 리드 쓰기 연습을 여러 번 해보았다. 역량이 부족한지 여전히 부족해서 갈 길이 멀다. 힘이 없는 사람은 두려워서 미괄식을 쓰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미괄식을 쓴다. 이제 미괄식은 소설가에게 넘기고, 정보 전달에는 계급장 떼고 두괄식을 활용하여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자. 인기 있는 교장 선생님은 훈화가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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