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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것인가 화해할 것인가

등록일 2025-10-26 16:18 게재일 2025-10-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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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얼마 전 주택조합 조합장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결원이 된 감사 보궐선거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로 입후보하려면 추천인 서명이 필요한데 조합장은 외국에서 보낸 서명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서 대리인이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나는 그 조항은 총회 때 대리인에게 위임하여 찬반 투표하는 경우라고 반박한 것이다. 작년에 그 조합장과 이사들이 불법 셀프 유임한 전적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런데 의견 차이가 곧 싸움으로 번졌다. 내가 ‘이 조항의 의미를 이해 못하시네요’라고 한마디 하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에 담지 못할 비난을 하는 등 개싸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를 잘 아는 지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조합장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해 못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 지인의 말을 들으면서 정은혜의 ‘싸움의 기술’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도 급소를 건드리면 개싸움이 된다면서 개싸움이 되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역시 내가 부주의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싸움이 되지 않게 하라는 싸움의 기술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 간 갈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만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고단수인 것 같다.

지난 22일 미국 백악관의 역대 최연소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의 이름이 온 매스컴을 장식했다. 허핑턴포스트 기자 S.V.데이트가 ‘부다페스트는 1994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장소인데 미·러 정상회담 장소를 부다페스트로 정한 건 누구냐’고 질문하자 레빗이 “느그 엄마”(Your mom did)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느그 엄마’는 미국 청소년들이 말싸움할 때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레빗의 이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했지만 백악관의 다른 대변인 테릴러 로저스가 ‘적절함 그 이상’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이것은 한 대변인의 돌발적인 발언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전략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이보다 며칠 앞서 18일, 트럼프는 700만 명의 ‘노 킹스’ 시위대를 향해 왕관을 쓰고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똥’을 투척하는 AI(인공지능)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다. 이런 전략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을 보면, 이들의 개싸움 전략은 잘 작동하는 것 같다.

주택조합의 이사회는 결국 스스로 물러났던 전임 조합장을 새 감사로 선택했다. 조합장을 비롯한 이사들은 까다롭게 따지는 A 후보가 감사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A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믿는 일부 조합원들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이기고 지는 것을 판가름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부당한 도발에 대해서만큼은’ 맞받아치는 전략도 필요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개인 차원에서는 개싸움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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