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아닌 공존을 향한 노동시장으로 재설계 해야
“한국의 노동시장은 지금 거대한 저울 위에 놓여 있다”(The Korean labor market is now placed on a great balancing scale.)
최근 노동계가 ‘65세 법정 정년 연장’ 입법을 적극 촉구하면서 사회적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저출생·고령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 역시 정년 연장 논의를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생산연령인구가 급속히 줄고 연금 재정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보인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중장년층에게 정년 연장은 더 오래 일할 기회이자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긍정적 변화다. 능력이 있어도 나이 때문에 일터에서 밀려나는 문제를 완화하는 역할도 기대된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보면 이 문제는 단순히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자’는 차원을 넘어 세대 간 고용 구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과제다. 이미 청년층은 심각한 취업난과 높은 주거비, 미래 불안으로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현실화된다면 청년층이 진입할 수 있는 일자리의 문은 더 좁아진다는 우려가 크다. 조직의 연령 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승진 정체와 경력 단절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누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곧 ‘누가 일자리에서 밀려나는가’라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 갈등은 국제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정부가 법정 퇴직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자 청년층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표면적 구호는 “64세까지 일하기 싫다”였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좁아진 앞길이 더 막힌다”는 세대적 절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를 ‘세대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역시 고령화 대응을 위한 퇴직연령 연장 정책에 대해 청년층의 반발이 거세다. ‘탕핑(躺平)’ ‘바이란(擺爛)’ 같은 신조어는 미래에 대한 무력감을 상징한다. 노년층 생계 보장의 정책이 오히려 젊은 세대에는 ‘나의 미래가 더 뒤로 밀린다’는 위기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년 연장이 반드시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 이상으로 연장하면서 피크임금제와 계속고용 제도를 병행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조정했다. 동시에 청년 고용 확대 정책을 병행해 고령층과 청년층의 고용을 모두 유지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OECD도 고령자 고용과 청년 고용이 반드시 대체 관계가 아니라, 제도 설계에 따라 충분히 보완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해왔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숫자 조정’이 아니라 ‘구조 개편’이다. 한국이 정년 연장을 추진한다면, 단순히 정년을 몇 세로 설정할 것인지만 논의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고령자를 고용하면서도 청년 채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해 연공서열식 인건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 더불어 고령층이 새로운 직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교육·전직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다. 이렇게 해야 고령자 고용 확대와 청년 고용 확대가 충돌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두 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세대 간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자신이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더 늦게 은퇴하며, 결국 더 적은 복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 속에 있다. 이런 감정이 누적되면 해외에서처럼 거리로 표출되는 분노로 변할 수 있다. 저출생 대응이든 고령사회 정책이든, 지속 가능한 방향은 특정 세대의 희생 위에 구축될 수 없다. 세대 간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핵심 원칙이 되어야 한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최진문 운영위원은 “정년 연장은 결국 한국 사회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논의다. 하지만 그것이 세대 갈등의 뇌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일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세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이 세대 간 분열이 아닌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한국 사회는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