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의 거리에서는 한 세대의 분노가 공통된 언어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든 Gen Z(1996년 이후 출생 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분노를 조직하고, 권력을 흔들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젊은 세대의 불만 표출 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현실 정치를 조직하고 변화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높은 청년 실업률, 생활비 급등, 그리고 만연한 정부 부패와 불평등이라는 전 세계적인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Gen Z 시위의 핵심 동력은 경제적 좌절감이다. 케냐의 젊은이들은 세금 인상안에 맞서 청년 실업과 부패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고, 결국 정부의 법안 철회를 이끌어냈다.
모로코의 청년들은 30%가 넘는 청년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공공 서비스 개선이 아닌 월드컵 준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현실에 분노하며 “경기장이 아니라 병원을 원한다“고 외쳤다.
특히 이들의 시위는 부패와 족벌주의라는 기성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네팔에서는 소셜 미디어 검열과 관리들의 호화로운 생활 방식에 대한 분노가 총리의 사임과 검열 조치 해제라는 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도 의원들의 특혜성 수당 인상이나 구호 기금 유용 의혹이 젊은이들의 거리 행진을 촉발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기본 서비스(물, 전기) 부족과 실업에 대한 분노가 대통령의 내각 해산까지 이끌어낸 것은, Gen Z가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Gen Z가 주도하는 시위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바로 조직 방식에 있다. 이들은 기존의 정당, 노조 등 수직적 조직 대신 소셜 미디어(TikTok, Discord, Instagram, Viber)를 통해 수평적이고 빠르게 소통하며 시위를 조직한다. 리더십이 분산되어 있어 정부가 시위의 구심점을 파악하고 진압하는 것이 어렵다.
이들의 연대와 조기화 능력은 국경을 초월한다. 한 국가의 시위 성공 사례는 다른 국가의 청년들에게 영감을 주어 모방 시위를 촉진하는 ‘국경 없는 연대‘를 형성한다.
더욱이, 일본 만화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적단 깃발‘과 같은 문화적 상징을 공유하며, 이질적인 국가의 젊은이들이 같은 분노와 희망을 공유하는 시각적 연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SNS는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고 정치 세력화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깃발‘인 셈이다.
Gen Z는 단순한 물질적 요구 외 정부의 투명성 및 책임성 강화를 핵심 요구 사항으로 내세운다. 이들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기성세대가 구축한 시스템의 불합리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청년 실업 해소, 높은 생활비 문제 해결과 더불어 부패 척결, 족벌주의 반대, 그리고 교육 및 보건과 같은 공공 서비스 확충은 이들이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서 요구하는 당연한 권리다.
영남대 이태우 연구교수는 “Gen Z의 등장은 전 세계적인 청년 문제와 디지털 환경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필연적 현상”이라며 “전 세계 정부들은 이제 기성 정치의 문법이 아닌, 이 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깃발‘과 분산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