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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 연극의 씨앗 다시 심다

고성환 기자
등록일 2026-01-11 12:53 게재일 2026-01-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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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협회 문경지부 창립 인준… 연극인 부부의 9년 ‘약속’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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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협회 문경지부 창립 주역인 남우성(오른쪽)-안선영 부부. /고성환 기자

연극을 떠나기 위해 문경으로 내려왔던 한 연극인 부부가, 결국 다시 연극으로 돌아와 문경에 공식 연극협회를 세웠다. 

한국연극협회 문경지부가 지난해 12월 29일 공식 인준을 받으며 문경 연극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문경지부 설립의 중심에는 연극인 부부 남우성, 안선영 씨가 있다. 이들은 약 10년 전 도시의 삶과 연극계를 떠나 문경으로 귀촌해, 점촌에서 ‘남안골’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며 조용한 생활을 시작했다. 연극과 거리를 두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지만, 눌러두었던 연극에 대한 열정은 결국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남우성 지부장은 “AI와 자동화의 시대에 대체 불가능한 예술이 바로 연극”이라며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살아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사실성과 즉각성이 연극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극의 위기는 아이디어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의 이야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문경 연극 여정은 2018년 ‘새재아리랑’ 공연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연출가 윤우영과 극단 나마스떼가 의기투합해 문경에 연극의 씨앗을 뿌린 이후, 포항과 김천 등지의 소극장을 찾아 순회공연을 이어오며 지역 연극 기반을 다져왔다. 그렇게 9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문경 연극인들의 구심점이 될 협회 창립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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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협회 문경지부 초대지부장을 맡은 남우성 연극인. /고성환 기자

문경지부 초대 지부장을 맡은 남우성 씨는 “관객과 만나기로 한 약속된 시간과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연극”이라며 “부모상을 당해도 무대에 오르는 것이 연극인의 숙명이라는 선배 연극인의 말처럼, 연극은 약속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문경에도 연극 소극장 하나가 마련되기를 소망하며, 또 다른 약속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극단 대표이자 제작자인 안선영 씨는 “문경에서 다시 연극을 시작하겠다는 남편과 수없이 다퉜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며 “지원사업 없이 사비로 운영해 온 극단 살림은 쉽지 않았지만, 연극을 통해 문경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다는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문경지부 창립을 기념해 오는 30일 19시 30분과 31일 15시, 미디어아트홀 무대에 오를 작품은 블랙코미디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암울한 시대와 어긋난 현실을 유머로 풀어내면서도, 웃음 뒤에 숨은 사회적 상처를 관객에게 되묻는 작품이다. 남 지부장은 “마냥 웃고만 볼 수 없는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경북 연극계의 기대도 크다. 경북지회 김용원 회장은 축사를 통해 “연극은 도시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종”이라며 “연극이 생산·유통·소비되는 도시는 아이를 키우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도시”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경지부가 머지않아 경북 연극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사회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후원회장을 맡은 남시욱 씨는 “연극 소극장이 없는 문경에도 하루빨리 공연 공간이 마련돼 문화의 향기가 도시 곳곳에 퍼지길 바란다”며 “극단 나마스떼와 문경 연극인들의 창작 여정에 시민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쟁과 기후 위기, 정치적 혼란 속에서 예술이 가장 먼저 외면 받는 시대. 그럼에도 문경의 연극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무대를 꾸미고 관객을 만나러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기억을 지우고 미래를 꿈꾸는 일, 그 아이러니한 여정이 바로 연극이라는 믿음으로. 

한국연극협회 문경지부의 창립은 단순한 단체 하나의 출범을 넘어, 문경이라는 도시가 다시 인간의 숨소리와 이야기를 회복하려는 문화적 선언으로 읽힌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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