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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길 만들기

등록일 2025-11-09 15:49 게재일 2025-11-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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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경주 APEC이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11월 1일 끝났다. 이재명 정부가 6월 4일 출범했으니 준비 기간이 5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여기저기서 호평이 많다. 그중에서도 젠슨 황이 GPU 26만 장을 한국에 우선 판매하겠다는 약속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모두 기뻐할 만한 깜짝 소식이었다. 이런 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 젠슨 황은 삼성 이재용, 현대 정의선 두 회장과 삼청동 깐부치킨에서 치맥 회동으로 뉴스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CPU는 알지만 GPU는 금시초문인 데다, 무료로 주는 것도 아니고 14조 원이나 되는 돈을 주고 사는 건데 왜 우리가 이토록 감사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여 여기저기 검색하고 강의도 찾아 들었다. AI가 미래 산업에서 엄청나게 중요한데, 이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GPU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도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고 한다.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GPU는 6만 5천 장인데 26만 장을 더 들여오면 30만 장이 넘어 세계 3위 보유국이 된다. 이것은 2천만 장을 보유하여 전 세계 보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1위 미국이나 25%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 비하면 엄청난 격차지만 30여 만장으로 3위가 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앞서간다는 뜻이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환호하는 분위기 일색에서 GPU 30만 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필요하다고 염려하면 눈치 챙기라는 지청구만 들을 가능성이 백 퍼센트다. 이제 AI는 우리 실생활에 파고들어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자리잡고 있으니 거부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전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은 음과 양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발전해왔다. 농업의 발전은 물론이고 산업 혁명, 정보 혁명 등 모든 기술 혁명에는 그림자와 부작용이 뒤따랐다. 지금 디지털 세상도 능력에 따른 빈부격차의 극심화나 인간 소외 등 부작용이 있다. 이에 AI가 발전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에서 신규 채용은 제로가 되었고, 대량 해고도 잇따르고 있다.

어느 소설가는 현실은 울퉁불퉁한데 휴대폰 세상은 너무나 매끄럽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중독되는 것이라 한다. 이런 논리를 AI에 적용하면, AI야말로 매끄러움의 끝판왕이다. 챗지피티에 어떤 자료를 넣어도 완벽한 결과물을 척척 내놓는다. 이제 인간 세상의 울퉁불퉁함과 어설픔, 시행착오는 악덕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휴대폰에 인간 세상의 울퉁불퉁함을 이식하여 속도를 늦추자는 그 소설가의 제안은 실현 불가능하다. AI의 발전도 막을 수 없다. AI는 계속 발전하는 대신, 개인과 지역 차원에서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조금이라도 확보하면 좋겠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프로스트가 폴을 치유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마담 프로스트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원을 갖게 되었다.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같은 비포장도로가 있는 집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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