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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가 미풍양속이 되려면

등록일 2025-11-02 16:21 게재일 2025-11-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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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최근 여당 국회의원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자녀 결혼 초대장을 피감기관에게까지 보냈다고 한다.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SNS에 자초지종을 상세히 밝혔지만, 뒤이어 이미 받은 축의금을 보좌관에게 시켜서 반환하도록 지시하는 사진이 의회에서 찍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2023년 4월에도 이상호 강원 태백시장과 김성 전남 장흥군수가 직무관련자 100~200여 명에게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가 적힌 직계가족 부고장·청첩장을 보낸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무원 행동강령’ 이행 실태를 긴급 점검하여 밝힌 일이 있다.

이런 뉴스를 보노라니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대학원 동기가 지방대학에 교수로 부임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지역 유지들의 경조사에 불려가는 일이라면서 초임 교수 월급이 빡빡한데 부담이 크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크고 작은 학회에서도 경조사 단체 안내문이 수시로 온다. 동창회나 동호회에서도 단체 문자로 오는 경조사 소식은 빠지지 않는다.

요즘 내가 신청해서 듣는 강의에서 수강생이 교수 자녀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청첩장을 먼저 청해서 놀란 일이 있다. 유전자에 상조 문화가 얼마나 뿌리박혀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그래도 사적인 모임에서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무시할 수 있지만, 이권이나 권력이 개입된 인간관계에서는 그러기 어렵다.

본래 주고받는 상조 문화는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다만, 그 미풍양속이 생긴 배경에는 생활 공동체, 경제 공동체, 나아가 정서 공동체 역할까지 하는 농경 사회라는 조건이 있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으니 두레를 만들어 품앗이로 서로 돕고, 결혼이나 장례 같은 인륜지대사 역시 가족만으로는 치를 수 없으니 동네 사람들이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농경 사회 특성상 평생토록 일정 공간에서 같이 살면서 형편껏 내놓으니 까다로운 손익 계산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마드라는 말처럼 현대인은 떠돌아다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소속이 자주 바뀌니 주고받기가 보장되지 않고, 그러니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청구서 받는 기분이 든다. 상대가 상급자이거나 권력자라면 나의 의무만 있을 뿐 상대에게서 되돌려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소, 아유, 알리지 그랬어요? 하는 말은 다 빈말이라면서 괜히 알려서 나중에 빚 갚으러 다니지 말라시며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러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부모님의 뜻이 그러하니 부모님 장례는 물론, 딸들 결혼식에도 내 지인으로는 10명에게만 알렸다. 사회 관계에서 부조할 때도 받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최근 문형배 전 대법관이 ‘호의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호의’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이라고 하면서 호의를 악용하는 사람에게는 중단해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호의가 많을수록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호의의 정신을 장착하지 못하더라도 공과 사의 경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억지 춘향으로 하는 상조는 줄어들지 않을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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