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고전 한 구절 인용하는 방식은 진부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며칠 전 ‘논어’ 한 구절을 읽다 보니, 역시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맛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 개의 수레를 보유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신중한 태도로 백성의 형편을 잘 헤아려 정책을 실시하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서 백성에게 믿음을 주며,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백성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2024년 예산안은 여러 분야에서 삭감되었는데, 삭감된 내용을 보면 더 놀란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중점 육성하겠다고 한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우주, 데이터 분양까지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예산 15억원을 비롯하여 과학기술 인력 양성 사업 전반에 걸쳐 940여 억원이 삭감되었다. 이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R&D 이권 카르텔 한 마디에 빚어진 사태다. 9월 5일,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출범해 과학기술기본법에 있는 절차도 무시했다고 항의하며 예산 지키기에 나섰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낙관하기 힘들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한 마디로 의전원이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카이스트에서 의사과학자 육성 대학원 설립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보낸 후 카이스트의 의전원 설립이 속도가 붙었다. 포스텍도 2028년을 목표로 의전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은 두 말이 필요가 없다. 화이자에서 mRNA 백신을 개발하여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독일의 우구르 사힌, 외즐렘 튀레지 박사 부부가 바로 의사과학자이다. 오랜 기간 과학계의 mRNA 연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여성 과학자 카탈린 커리코는 드류 와이즈만과 함께 mRNA가 면역 체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발견하여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공으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중차대한 의사과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양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과학자에 대한 홀대 때문이다. 카이스트가 미래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의사과학자를 배출한다고 해도 진료하는 의사의 평균 연봉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로 과연 계속 이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가 하는 현실이 의사과학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도 과학고등학교 졸업생의 의대 쏠림 현상이 노골적인데, 의전원 졸업생을 의사과학자로 붙들어두기는 더 어렵다. 현재 배출된 의사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반대 의견이 타당하게 들리는 이유다. 게다가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카이스트나 포스텍에서 설립할 의전원에서 얼마나 내실 있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도 많다.
무엇보다 연구개발비는 삭감하면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신중한 절차를 거쳐 백년을 내다보는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