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옷, 재앙이 되다’ 행사가 열렸다. 패션회사가 팔지 못한 재고를 소각하거나 폐기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법안 마련을 위한 자리였다. 이 법안이 필요한 이유는 팔리지도 않은 엄청난 양의 새 옷이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엘렌 맥아더 재단이 2017년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의류 생산이 2배 증가해서 2015년에는 1천억 벌의 옷이 생산되었으며 그중 73%가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등 폐기되었다고 한다. 국내 의류 폐기물 발생량 역시 심각해서, 2020년의 폐의류 발생량은 약 8만 t이 넘고, 공장의 폐섬유 발생량은 3만 t 가까이 된다. 우리 헌 옷을 수입한 나라에서도 재사용되지 못한 옷이 쓰레기 산을 이룬다.
이러한 생산 증가가 단순한 인구 증가 때문이거나 삶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유엔 조사에 따르면 의류 산업의 탄소배출 비중은 10%나 되고, 폐수 발생 비중은 20%를 차지할 정도로 옷 생산에 환경 부담이 크다. 청바지 하나에 물 7천ℓ, 섬유 1t 생산에 물 200t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렇게 의류 폐기물이 급증한 데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의류 산업의 상술과 재고 보관에 비용이 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패스트 패션의 유행도 한 몫 한다.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는 계절에 따라 1년에 4번 기획하고 생산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1~2주마다 새로운 의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류 산업 차원에서 대규모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아무리 중고 마켓을 이용하고 재사용을 위해 힘쓴다고 해도 개인의 힘이 닿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의류 폐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자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재고 의류 재사용을 법제화했고, 벨기에나 독일은 재고 물량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법안으로 제정했다. 한국에서도 2022년에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제정되기는 했으나 의류 폐기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의 헌 옷 수출량이 미국·중국·영국·독일 다음으로 많은 세계 5위로, 인구를 고려하면 1인당 버리는 옷의 양은 세계 1위인 셈이니, 어느 나라보다 법안 제정의 필요성은 절박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옷, 재앙이 되다’에서 재고 의류 폐기 반대 법안에 서명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아무리 의류 산업이 환경 부하가 크다고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패션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패션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작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 옷을 다 정리하고 나니 좋은 옷이란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 옷을 장만할 때는 더 신중해지고 나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옷 몇 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잘 맞는 패션을 아는 것도 패스트 패션의 광풍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